고방서예[6982]梅湖 陳澕(진화)선생시 柳류
柳(류)-버드나무
陳澕(진화) 澕=깊을화
鳳城西畔萬條金 (봉성서반만조금)
句引春愁作暝陰 (구인춘수작명음)
無限狂風吹不斷 (무한광풍취부단)
惹烟和雨到秋深 (야연화우도추심)
惹-이끌야.일으키다.
봉성(鳳城) 서쪽 밭둑에는 일만가지 금빛 버들,
봄 근심 묶어 매어 둔 그늘 이루었다.
무한한 광풍은 끊임없이 불어오고,
연기와 비를 끌어들이고 깊은 가을 이르렀다.
鳳=봉새 봉. 봉황의 수컷.
城=재 성.
西=서녁 서.
畔=두둑 반.
萬=일만 만.
條=가지 조.
金=금 금.
句=귀절 구.
引=끌 인.
春=봄 춘.
愁=근심 수.
作=지을 작.
暝=어두울 명.
陰=그늘 음.
無=없을 무.
限= 한계 한.
狂=미칠 광.
風=바람 풍.
吹=불 취.
不=아닐 부.
斷= 한계 한
惹= 이끌야.일으키다.
烟=煙=연기 연.
和=화할 화.
雨=비 우.
到=이를 도.
秋=가을 추.
深=깊을 심.
이하= 陳英奎님 譯
버드나무
궁궐 서쪽 밭둑에서 금빛 나뭇가지 휘날리고
시름진 봄을 읊조리니 어두운 그늘이 지네
무섭게 부는 바람 끊임 없이 불어 대고
비에 섞인 연기 피어오르니 가을이 깊어졌네
[시의 배경과 이해]
이 시(詩)는 익재집(益齋集)의 『역옹패설(櫟翁稗說)』과
『매호유고(梅湖遺稿)』에 수록된 칠언절구(七言絶句)다.
익재는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
“일찍이 봄바람과 춤 자리를 쓸었고, 맑은 정원에서 즐겨 놀며 애끓기도 했었지.
어쩌다가 맑은 가을날까지 왔는가, 이미 석양 되었는데 여기다 매미까지 우니
(曾共春風拂舞筵樂遊晴苑斷腸天如何肯到淸秋節已帶斜陽更帶蟬)를
본떠 지은 듯하다.”라고 했다.
편저자는 시의 제목(柳)이 같아서 나온 평이라고 여기고 싶다.
익재의 시(詩)와 매호의 시(詩)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詩)를 찬찬히 분석하면 매호 선생이 버드나무에서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계절을 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행에서 낙엽 지고 노란 나뭇가지만 있으니 겨울이고, 2행에서 봄의 시름을 자아낸다(引春愁)라고 했으니 봄이다. 3행은 광풍(狂風)이 태풍을 연상하니까 여름이며, 4행은 직접 가을의 심연에 도달했다(到秋深)라고 하였다.
1행에서 봉성(鳳城)을 소재로 서두에 넣었다. 봉성은 궁궐이고,
임금을 향한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가지(萬條)에서
나무껍질(樹皮)만 남아서 노랗게(金) 보이더라는 것이다.
시의 제목인 버드나무는 낙엽이 지면 금빛이고,
노란색은 용상(龍狀)을 의미하는 색상이다.
따라서 잎이 떨어진 노란 버드나무 가지에서 쓸쓸한 임금의 모습을 보는 듯하였을 것이다.
2행에서는 나른한 봄에 시(詩)를 짓고 있으니 눈까풀이 처져서 그늘이 졌다고 했다.
봄바람에 나무 이파리의 몸짓을 눈까풀과 대조하고 있다.
어쩌면 고려 무신정권 당시의 임금님 일상(日常)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3행에서 광풍(狂風)은 여름의 무서운 태풍을 연상하게 한다.
특히 그침이 없는 광풍이라고 했다. 어쩌면 정치적인 광풍인지도 모르겠다.
4행에서 깊어가는 가을에 고요함과 쓸쓸함을 노래하고 있다.
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마을에서 굴뚝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정경을
요즘의 신세대는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비와 연기를 하나로 묶은(煙和雨) 자연은 참 고즈넉하다.
언젠가는 평화로운 나라가 되리라는 시인의 염원(念願)으로 시를 마감하고 있다
이 시는 버드나무에서 4계절의 시(詩)가 나왔다.
버드나무와 궁궐을 대비시키면서 시인의 마음을 읊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임금을 향한 충(忠)이고 백성의 일반적인 마음이었을 것이다.
[한자 각주(脚註)]
| 한자 | 훈과 음 ➙ 뜻 |
| 鳳 | 봉새 봉 ➙ 봉새, 봉황새. 어수룩하여 빼앗아 먹기 좋은 사람. |
| 城 | 성 성 ➙ 성, 나라, 도읍, 구축하다, 성을 쌓다. |
| 畔 | 두둑 반 ➙ 두둑, 논밭의 경계, 경계(境界), 100무(畝)의 경계, |
| 條 | 가지 조 ➙ 가지, 나뭇가지, 개오동나무, 유자나무(柚). 조목. 조항. |
| 句 | 글귀 구 ➙ 글귀, 문장이 끊어지는 곳, 굽다, 구부러지다. |
| 引 | 끌 인 ➙ 끌다, 끌어당기다, 활을 쏘다, 물러나다, 물리치다. |
| 暝 | 어두울 명 ➙ 어둡다, 어둑어둑하다, 해가 지다, 성(姓). |
| 陰 | 응달 음 ➙ 응달, 음(陰), 습기, 축축함. |
| 無 | 없을 무 ➙ 없다, 허무(虛無)의 도, 말라, 금지하는 말. |
| 限 | 한계 한 ➙ 한계, 지경, 경계, 구역, 규정, 제한, 끝, 기한, 문지방, 원수, |
| 狂 | 미칠 광 ➙ 미치다, 사리 분별을 못하다, 상규(常規)를 벗어나다, 경솔하다, |
| 斷 | 끊을 단 ➙ 끊다, 절단하다, 쪼개다, 가르다, 근절시키다. |
| 惹 | 이끌 야 ➙ 이끌다, 끌어당기다, 흐트러지다, 끼다, 엉겨 붙다. |
| 煙 | 연기 연 ➙ 연기, 연기가 끼다, 그을음. |
| 深 | 깊을 심 ➙ 깊다, 깊게 하다, 깊이, 매우. |
陳澕(진화)
본관은 여양(驪陽 : 지금의 홍성). 호는 매호(梅湖).
여양군(驪陽君) 진총후(陳寵厚)의 증손이다.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에
문신을 보호해 주었던 참지정사(參知政事)·판병부사(判兵部事) 진준(陳俊)의 손자이다.
병부상서 진광수(陳光脩)의 아들이며 진식(陳湜)의 아우이고, 진온(陳溫)의 형이다.
생애
출생연도는 기록에 없으나 그의 문집에 있는 「매호공소전(梅湖公小傳)」에 의하면
1200년(신종 3)에 아직 혼인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대략 118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진화는 어려서부터 글재주가 있었고 명종이 신하들에게
「소상팔경(瀟湘八景)」 시를 짓도록 하였을 때에
어린 나이로 장편을 지어 이인로(李仁老)와 더불어 절창이라는 평을 받았다.
1198년 사마시에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1200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다음해에 내시(內侍)에 보직되였다. 1209년(희종 5) 학정(學正)으로 전직하였다.
1212년(강종 1)에 제과시험(制科試驗)에 참여하여 조서(詔書)를 짓는 일을 맡아보았다.
1213년에는 설화(舌禍)로 벼슬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한원(翰苑)에 들어갔다.
1215년(고종 2)에 관각제공(館閣諸公)에게 부시(賦詩) 40여운(韻)을 시험하였는데,
이규보(李奎報)가 수석을 차지하고 진화는 차석이었다. 서장관(書狀官)으로
금나라에 다녀온 뒤에 옥당(玉堂)으로 옮겨 지제고(知制誥)를 겸직하였다.
정언(正言)에서 보궐(補闕)을 거쳐 우사간이 되어 지공주사(知公州事)에 보직되었다가
재직 중에 별세하였다. 「한림별곡(翰林別曲)」 제1장에서
“이정언 진한림 쌍운주필(李正言 陳翰林 雙韻走筆)”이라고 하였듯이
진화는 주필(글씨를 흘려서 빨리 씀)로 이름난 시인이다.
원문=梅湖遺稿 / 詩○七言絶句
柳
鳳城西畔萬條金,句引春愁作瞑陰。
無限狂風吹不斷,惹烟和雨到秋深。
李益齋 齊賢《櫟翁稗說》曰:
“陳正言澕咏《柳》云:
‘鳳城西畔萬條金,句引春愁作瞑陰。
無限光風吹不斷,惹烟和雨到秋深
’ 唐 李商隱《柳》詩云:‘曾共春風拂舞筵,樂遊晴苑斷腸天。
如何肯到淸秋節?已帶斜陽更帶蟬。’ 陳蓋擬此而作。
山谷有言‘隨人作計終後人,自成一家乃逼眞’,信哉。”
ⓒ 한국고전번역원 | 2014
버들〔柳〕
봉성 서쪽 두둑 위에 노오랗던 수만 가지 / 鳳城西畔萬條金
봄 시름을 끌어안고 흐린 그늘 지은 채로 / 句引春愁作瞑陰
끝도 없는 미친 바람 쉬지 않고 부는 속에 / 無限狂風吹不斷
안개 끼고 비 어울려 깊은 가을 맞게 됐네 / 惹煙和雨到秋深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역옹패설(櫟翁稗說)》에
“정언(正言) 진화가 읊은 시 〈버들〉에
‘봉성 서쪽 두둑 위에 노오랗던 수만 가지,
봄 시름을 끌어안고 흐린 그늘 지은 채로,
끝도 없는 미친 바람 쉬지 않고 부는 속에,
안개 끼고 비 어울려 깊은 가을 맞게 됐네.’라고 했는데,
당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시 〈버들〉에
‘일찍이 봄바람과 춤 자리를 쓸었고,
맑은 정원에서 즐겨 놀며 애끓기도 했었지.
어쩌다가 맑은 가을 이날까지 왔는가,
이미 석양 되었는데 여기다 매미까지 우니
.〔曾共春風拂舞筵 樂遊晴苑斷腸天
如何肯到淸秋節 已帶斜陽更帶蟬〕’라고 했는데,
진화가 아마 이 시를 본떠 지은 듯하다.
산곡(山谷)의 시에
‘남을 좇아 계책 세우면 끝내 남에게 뒤지는 것,
스스로 일가 이루어야 그래야 핍진해지네.
〔隨人作計終後人 自成一家乃逼眞〕’라고 하였으니 믿을 만한 것이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