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나, 다음 주 월요일이 촤이니스 뉴 위어라는데 ... 우리 대이케어에서 어떤 것을 하면 좋을까?"
매주 화요일에는 우리 교실 교사들이 모여서 다음 주 주간계획을 만드는 날인데, 매니저인 캐롤이 우리 미팅에 참석해서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캐롤은 그 날 대이케어 점심 메뉴를 중국 스타일로 하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젓가락을 사용해서 식사를 하면 어떻겠는 지 물어왔고 나는 우리 고유 의상인 한복을 입을 것이고 한국 전래 놀이를 소개하고 싶다는 계획을 이야기 하였다.
대이케어에서는 아이들에게 다민족 문화 즉 "모자익 멀티 컬쳐(mozaic multi culture)를 늘 강조한다.
아이들이 즐겨하는 소꿉놀이 인형들도 다양한 색깔로 되어있고 음악놀이를 할 때에도 전 세계 여러나라의 음악과 악기를 제공하여준다.
계획안을 함께 만들면서 동료 웬디가 갖고 있는 중국 관련 자료들과 그녀의 해박한 지식에 여러번 놀라웠다.
열두 마리의 동물로 묘사되는 십이 간지와 각 동물에 해당되는 띠별 설명서는 물론이고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지내는 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적힌 책자도 갖고 있었다.
그야말로 다음 주는 "중국에 대하여 배우는 주"가 될 것이다.
첫 날에는 우리 반 아이들이 드래곤 댄스를 하고 다른 반 아이들이 붉은 색 종이로 만든 부채를 가져와서 "부채 댄스"를 하자고 하였다.
이렇게 하다가는 아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알려주려는 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래서 웬디에게 이렇게 나의 생각을 말하였다.
"웬디, 여기서는 사람들이 "촤이니스 뉴 위어"라고 하는데 우리 나라 한국에서도"루너 뉴 위어(luner new year)라고 해서 전통 명절로 즐기지... 그리고 윷놀이라고 부르는 막대놀이도 있고. 참, 전통 의상인 한복도 있고 ..."
웬디는 그 동안 몰랐던 사실이라며 나의 설명에 무척이나 고마워하였다.
드디어 월요일 아침, 중국인 교사 엠마가 빨간 부채를 들고 아이들과 함께 우리 교실로 들어왔다. 부채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는지 간단하게 설명을 한 뒤 중국 음악을 틀었다.
엠마가 하는 동작대로 우리 교사들 몇 명이 따라하자 아이들이 눈을 반짝거리며 쳐다본다.
한국에서 보던 부채춤과는 전혀 다른 아주 느린 동작의 연속이었다.
다음은 "드래곤 댄스" 차례이다.
한복에 관심을 보이던 웬디는 체구가 아주 작아서 딸아이가 입었던 핑크색 한복이 아주 잘맞는다.
아이들에게 기차놀이를 하듯 줄을 세우고 음악에 맞추어 용이 움직이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다.
용이 하늘을 나는 모습,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오르는 모습 등...
가끔 중국인들의 결혼식이나 행사에서 보는 용춤은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 하는 것이서서 힘이 넘치고 약동적인 모습이다.
힘들어하는 웬디에게 용 가면을 돌려 받아서 나는 좀 더 신나게 몸을 움직여보게한다.
달려보게도 하고 점프하는 흉내도 내어본다.
카메라를 들고 온 캐롤이 "나이스"를 연발하며 셔터를 눌러댄다.
에정대로라면 우리는 오늘 대이 케어 아이들을 데리고 촤이니스 컬쳐 쎈타(chinese culture centre)에 가서 여러 가지 중국에 관련 된 것들을 보려하였는데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탓에 +15 (빌딩과 빌딩을 서로 연결하여 만든 15피트 되는 다리)으로 걸어서 아시안 빌딩에 있는 TD은행에 가기로 하였다.
중국 자본이 많이 투자되었다는 은행이니 아마도 여러 장식들을 볼 수 있으리라.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내석에서는 여직원들이 붉은 봉투에 무엇인가를 넣고 있었고 은행 천정에는 여러 가지 붉은 색으로 된 장신구들을 매달아놓았다. 구멍이 뚫린 커다란 옛날 동전에 붉은 실을 매달기도하고 불꽃 놀이에 쓰이는 깡통 모양들도 달아놓았다.
온통 붉은 색으로 장식을 해놓아서 마치 어렸을 적에 보았던 무당의 집 분위기가 연상되었다.
그래도 그네들의 전통과 문화를 이 곳, 캐나다에서도 고이 간직하는 그들의 모습은 존경스럽기만하다.
은행을 돌아 나오는 곳에 자그마한 상점이 있었는데 유리창에 한자글씨가 쓰여져있다.
기쁠 희, 즐거울 락, 그리고 건강할 건.
아마도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바라는 새해 소망이리라. 아니 중국인 뿐만이 아니고 우리 모든 인류의 꿈이리라.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대이케어 문을 열자 중국 요리 냄새가 강하게 풍겨져 나온다.
오늘의 메뉴인 쌀밥, 닭고기 야채 볶음, 그리고 볶음 국수. 벌써 누군가 아이들 테이블에 젓가락을 올려놓고 식사 준비를 해놓았다.
몇 명의 여자 아이들이 젓가락을 이리저리 굴려보더니 스푼을 달란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 국수 , 어느 사이 빈 접시만 남아 겸연쩍게 웃고 있고 아이들은 마치 젓가락 써커스를 하는 광대처럼 이리저리 기울이며 그래도 곧잘 식사를 한다.
끈기가 하나도 없는 쌀밥이 책상 위로, 바닥으로 날아다니는 가운데 어느 덧 점심시간이 끝나간다.
주방에서 오늘의 요리를 도와 주던 엠마가 아주 매운 국수라며 가져와서 먹어보란다.
한 젓가락 입에 넣자 마구 불이 난다. 아마도 아주 맵다는 "핫 소스"를 넣은 모양이다.
여러 가지 게임이 실린 책을 보다가 우연히 한국의 "윷놀이"를 소개한 페이지를 발견하였다.
그렇지않아도 아이들에게 우리의 전통놀이를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지 고민을 하였는데...
그 게임 책에는 윷놀이에 대하여 아주 쉽고 간단하게 설명을 해 놓았는데 우리처럼 도, 개, 걸 윷, 모의 이름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단지 한 걸음, 두 걸음 하면서 숫자놀이를 하듯이 설명을 해놓았다.
어찌보면 이 곳 케네디언 아이들에게 도, 게, 걸, ...이라는 이름 자체도 어려울 것이다.
마침 곁에 있던 탐슨에게 책을 보여주며 간단히 알려주었다.
나이에 비해 언제나 조숙하고 자기가 아기였을 적에 돌보아준 사람은 "애나"라며 늘 고마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이이다.
오색으로 그려져있는 말판을 보여주며 이 게임판을 그려줄테니 색칠을 해보겠느냐고 했더니 단번에 "OK"를 한다.
그리고 간단하게 게임의 규칙도 알려주었다.
팀슨은 그 날 오후부터 나에게 재촉을 해댄다.
"애나, 우리 그 코리안 게임 언제 시작해요?"
다행이도 구정이 시작되는 주일 저녁 가족들과 함께 윷놀이를 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평이하게 진행되는 게임이 지루하였던 지
조카 녀석들의 아이디어로 우리는 말판에 "우물"이라는 것도 만들고 "빽 도"라는 것도 만들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었다.
다음 날 아침, 탐슨이 기다렸다는 듯이 윷놀이 게임을 받아 건네서 아주 숙달된 조교처럼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준다.
5 칸을 갈 수 있는 "모"가 나오면 둘러섰던 아이들까지 소리를 질러대며 좋아한다.
"굳 럭(good luck), 굳 럭"
앞장서던 탐슨이 마침내 "우물"에 빠지고 뒤쫓아가던 브레이크가 한 점을 이긴다. 윷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찌나 평화로운 지 마치 고향집 마당에 와있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이 하는 윷놀이를 곁에서 바라보던 동료 매리언이 아이들 곁으로 다가온다.
"애나, 이 게임은 참 단순하면서도 재미있어 보이네."
그러더니 윷놀이 막대를 높이 올려 던지니 4 칸을 갈 수 있는 "윷"이 나오자 두 팔을 높이 올려 환호한다.
말판에 있던 동물인형을 보더니 자기는 쥐띠니까 쥐인형을 써야겠다나...
매리안은 윷놀이 게임에 재미를 느끼는 지 한동안 아이들과 웃어가며 게임에 빠져든다.
태평양 바다 건너, 로키 산맥을 넘어서 온 이 곳 캘거리.
다운 타운 한복판, 페트로 캐나다 빌딩 3층에서 우리는 한국의 전래 놀이인 윷놀이를 즐기고 있다.
상상이나 했을까? 파란 눈, 노란 머리의 아이들이 윷놀이를 이렇게 잘하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