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2003.10.20)
욕심은 화를 부른다
-이재창(편집부국장 겸 문화체육부장)
욕심은 화를 부른다. 적당한 욕심은 삶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과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매일 매일 신문과 방송에 오르고 내리는 대형비리의 뉴스거리를 볼 때마다 그 본질적인 원인은 사람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 태반이다.
정치권의 정치자금이든, 일반 서민을 사기쳐 먹은 사기꾼이든, 아니면 남의 집을 터는 도둑놈이든 모두 욕심이란 개인의 사리사욕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회적 신분의 높고 낮음만 있을 뿐 한통속이란 생각이 든다.
모든 사회지도층의 비리나 권력투쟁도 이 욕심에서 비롯된 이익집단의 산물이나 다름없다.
광해군 때의 권신이었던 이이첨(李爾瞻)은 젊었을 때 주위로부터 정말 선비답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성현의 말씀대로 이익을 탐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끼니를 잇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하루는 이이첨이 글을 읽다가 너무 허기가 지자 잠으로나 달래볼까 하고 안방으로 들어가는데, 아내가 벽에 붙어 있는 흙을 뜯어먹고 있지 않는가. 아내 역시 배고픔을 참다 못해 흙 속에 있는 마른 풀을 뜯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이첨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 출세해서 가난을 면하자. 이게 어디 사람 사는 꼴이란 말인가?’
그 후로 이이첨은 사람이 달라졌다. 그는 가난을 면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과거공부를 해서 조정에 들어갔다. 그는 광해군에게 접근해 폭정을 돕는 무리에 가담해서 그야말로 부귀를 하루아침에 얻었다. 그러나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야반도주하다 경기도 광주에서 잡혀 참형을 당했고, 그 세 아들도 처형당해 그야말로 패가망신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렇게 푸념했다고 전한다.
“배고픔을 조금만 참았더라면…”
우리가 이 세상을 각박하게 좌충우돌하며 사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내 배를 채우기 위함이다. 사람은 배를 채우지 않으면 살수 없게 된다. 내가 살 수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기 살기로 양보하지 않고 싸우려 든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지상명령이나 다름없기에 이 명분 아래서라면 그 어떤 행위도 용납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일까.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해치는 일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우리들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대답일 뿐 실제로 생사의 갈림길과도 같은 곤경에 처하면 생각이 변하고 만다.
최근 수 년간 한국과 미국의 경기가 그다지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인사회에서는 부동산시장과 금융기관 등에 거액의 뭉칫돈이 유입된 흔적이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미국 한인사회는 최근 안대희 대검중수부장의 “정치자금 명목으로 돈을 받아 축재하고 외국에 빌딩을 산 경우도 있다”는 말과 연관지어 이와 같은 뭉칫돈 유입을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다.
뉴욕 유엔본부 앞 `트럼프 월드타워'에만 한국인 소유자가 200여명에 이를 정도고, 맨해튼 전체에 한국인들이 소유한 고급 아파트가 250채는 넘는다고 한다. 평형에 따라 가격이 수십만달러에서 수백만달러에 달하고 최고층은 1천만달러를 넘어서는 최고급 아파트인데 한국 외환위기 직후 일부 한국인들이 현찰로 아파트를 구입할 정도라니 돈 있는 사회지도층은 국내에서 눈 먼 돈을 모아 이를 외국에 숨겨 놓는 일을 서슴치 않는다.
지금 정치권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대선자금의 100억 수수설이나 10억, 또는 20억 수수설도 정당화되지 못한 자금임에 틀림없다. 개인이나 이익집단의 생존을 위해서 공공연한 비밀처럼 행해지고 있는 불법 자금은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한다.
또한 정치권에 빌붙어서 회사의 운명을 내맡기는 기업인의 왜곡된 기업경영 윤리도 이번에 바르게 고쳐져야 한다. 한마디로 정치인과 기업인의 불합리한 욕심구조가 맞아 떨어진 내 배를 채우기 위해 행해진 비리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