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 허찬욱
노(老)수녀님은 오늘도 밖으로 나가십니다.
작열한 태양도, 거센 비바람도 수녀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진 못합니다.
고공 농성 노동자가 있는 굴뚝 아래로, 이태원 참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거리로….
일면식도 없는 그들 곁으로 가십니다.
수녀님을 따라 길을 나선 적이 있습니다.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내려서도 한참을 걸었습니다.
겨우 도착한 그곳에는 피켓을 들고 군데군데 홀로 앉아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쭈뼛대며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데, 수녀님은 한 분 한 분 에게 빵을 건네시며 인사합니다.
억울함을 해결 해 줄 힘도 없는 수녀님 앞에서 어둡고 무표정했던 그들의 얼굴이 이내 환해지고,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무엇이 꽁꽁언 그들의 마음을 녹인 걸까요?
소셜 미디어와 통신 기기의 발달로 온 세계가 촘촘히 연결되어 누구에게라도
언제든지 연락하고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멀어지고 서로의 아픔을 온전히 ‘공감’하기는 더 어려워진 듯합니다.
슬픔과 고통은 누구나 겪게 되는 감정이라는 일종의 보편성 때문에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은 얼굴 생김새만큼이나 다르고 고유한 것이기에 가볍게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담긴 『원래 그런 슬픔 은 없다』의 저자이자
종교 철학자인 허찬욱 신부 (대구대교구)는 자세히 들여다봐야 보이는 삶의 주름 같은 것,
가만히 숨죽이고 봐야 겨우 보이는 그런 작은 떨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며,
슬픔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공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가 들려주는 작은 이야기들에서는 예수님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기에,
쉽사리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하고 한참을 머물러 있게 됩니다.
슬픔에 대한 성찰은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지만
문학과 음악, 영화와 미술이라는 다양한 우물에서 길어 올린 22편의 에세이는
나의 이야기이자 모두의 사연이기에 어렵지 않게 다가와 아픈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아니 에르노의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케테 콜비츠의 판화를 통해 인간의 슬픔에는 얼마나 다양한 층위가 있는지 읽어 내고,
비틀스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에서는 신앙 언어의 문제를,
아바와 쳇 베이커의 음악에서는 삶의 태도를 성찰하며,
셀린 시아마의 영화 『쁘띠 마 망』,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환상의 빛』에서는 서로 어긋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 냅니다.
너무 작아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들을 저자는 예리한 눈길로 바라보고
그 의미를 밝히며 예수님 마음을 닮은 뭉클한 위로를 건넵니다.
유난히도 아픈 일들이 많았던 여름이었지요.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 바로 곁에 있습니다.
우리들의 슬픔 안에서 예수님은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 하시면서….
정은영 바르톨로메오 수녀 생활성서사 단행본 편집자
연중 제23주일 주보 발췌
|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허찬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