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음악: Nini Rosso - Flee As a Bird To Your Mountain, 追憶 ♬
원심동(도전리) 이야기
수원교구는 순교자들의 땅 입니다.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께서 교구장 퇴임시에
“수원교구의 정체성을 잊지 말자”고 하시며
수원교구는 한국교회사에
순교자들의 순교와 신심이 면면히 스며있는 교구라 하셨습니다.
수원교구는 많은 성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1784년 이승훈 성조의 세례와 함께
천진암, 주어사에서 이벽. 이승훈. 권일신. 권철신. 정약전 등의 성조들이
강학회를 열면서 서학인 천주학을 받아들임으로서
선교사 파견없이 한국의 천주교가 태동하게 됩니다. (천진암 성지)
최초의 성직자인 주문모 신부님의 영입(1794년) 이전에
양근 출신의 권철신. 권일신 형제, 마재 출신의 정약전, 이승훈 등이
많은 선교를 하고 지도자로서 활동합니다.(양근 성지)
1801년 신유박해를 비롯,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때 수많은 선조들이 순교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된 성지로는 어농, 요당리, 구산, 단내, 수리산, 은이, 미리내,
수원, 남양성모, 죽산, 손골, 골배마실 등이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곧 순교자들의 신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지를 순례하며
순교자들의 신심을 본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참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우리의 내적복음화가 이루어질 때,
외적 복음화가 이루어지고 새복음화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지를 순례할 때
진지한 마음으로 순례해야겠습니다.
제가 사는 마을에도 순교의 정신이 배어있는 곳으로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배출된 곳이지만
많이 알려져 있지않아 소개하려합니다.
원심동 이야기
여주읍에서 원주방면으로 15Km에 위치한
경기도와 강원도 도계(경계)마을이며
천혜의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보건복지부가 장수촌으로 지정하였습니다.
특히 조선말 천주교 박해시 교인들이 은신하면서
마을의 터전을 잡은 두메산골 청정마을이기도 합니다.
마을의 주산인 당산을 중심으로 기가 많다고 하며
전국 10대 장수촌의 하나(보건복지부발표)로 길지이며 경기도3대 오지마을인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도전3리 원심동 마을을 소개합니다.
마을 터전을 잡은 조상들이 사람은 모름지기
원심대로 살아야 하느니라 하여 원심동이라 불리며
주산인 당산 중턱 치마바위 주변에 천년 묵은 산삼 꽃이
여주고을 여강나루 한강 물 속에 간간히 비추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도전리의 지명은 도성촌.탑전동.원심이.전거론리로 불리는 4개의 자연부락 중
도성촌과 전거론리의 앞 글자를 따온 것 입니다.
옛날 천주교 박해시대 때부터 무명순교자들에 의해 형성된 작은 마을이
오늘날까지 신앙이 이어져
유서 깊은 200년 공소로 남아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우리마을을 한국의 스위스라고 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골골마다 파티마의 성모 프란치스코수녀회 피정의 집,
스승예수의 제자수녀회 피정의 집,
성 바오로딸 사도모후의 집,
장애인들의 쉼터인 라파엘의 집 등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영혼의 피난처, 구원의 기도처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1801년 이른바 신유박해가 한창이던 때, 조정의 관리로 있던 정도마가
동생과 처 그리고 두 아들 등의 식솔을 거느리고,
양평 양동을 거쳐 원주 구제(지정면 판대리)에 정착했습니다.
화전을 일구며 생활하던 정도마 형제는 어느 날 장에 다녀오던 길에
천주교도를 밀고하는 밀정을 만나 부득이 형제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해 여름에 나졸들이 정도마를 잡으러 나타나자
정도마는 급히 산으로 피신하였으나
집에 남아있던 그의 처 임가타리나는
“내가 천주학을 하니 나를 잡아가라”며 남편대신 붙잡혀 순교했습니다.
겨우 목숨을 건진 정도마는 작은 아들만을 데리고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원심이로 숨어들었습니다.
원심이에서의 첫날, 정도마는 바위 위에서 기도를 했는데
이를 본 사람들은 둥글게 이어진 줄처럼 생긴 묵주를 쥐고 기도했다고 하여
그 바위를 ‘줄바위’라고 불렀고
지금껏 그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정도마의 작은 아들은 성장해 3형제를 두었으며 관원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외가의 성을 따라 전주 이씨로 변성명을 하고 살았습니다.
이들 3형제 중 재영(아오스딩)이 천주교 신자들의 공동체인
원심이 공소 초대 회장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성품이 너그러웠고 겸손했던 그는
항상 마을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으며
농토 개간과 농사짓는 법을 보급하여 추앙을 받았습니다.
이재영 회장이 죽자 강천면에서는 원심이 개발공로자인 그에게
장례지를 제공하고 9일장을 치르게 했습니다.
이 회장 임종 당시 허리에 새끼를 두른 것이 발견되었는데
예수의 생애를 상징하듯
33마디로 매듭지어진 새끼줄이었습니다.
이 새끼줄을 평생토록 맨 허리에 두르고 지낸 탓에
반들반들 윤이 나도록 길이 들어있었으므로
보는 이마다 그의 놀라운 신심에 깊이 감격하였다고 합니다.
현재 원심이.중평동.도성촌 주민의 90% 이상이
천주교 신자인 까닭도 이런 힘에서 유래했을 것입니다.
어제는 종일 내리는 눈을 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 세상이 눈이 부실정도로 깨끗한 모습을 보면서
그냥 집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진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냥 카메라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긴 장화를 신어도 거의 빠질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지만
이곳 저곳 그리고 스승예수상까기 올라갔습니다.
하얗게 뒤덮인 도전리의 모습을 감상하며
선조들의 신앙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글은 서울을 떠나 5년 째인
2010년 여주에서 생활할 즈음 썼던 글입니다.
첫댓글 늘 감명 깊은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세잎 클로버 님
잘 읽었습니다.
여주 집인가 봐요~
천짐암은 가끔 들리는데 발전이 없더라고요.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양떼님, 체칠리아님, 감사합니다.
여주 집은 팔고 제주에서 3막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여주는 제 2막 인생을 산 곳입니다.
제 고향은 용인입니다.
이사를 많이 다녀서 정을 준 곳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마친 용인,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서울,
반려자를 만나고 2번 근무한 부산, 은퇴후 10년 여주, 그리고 제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