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는 문경 새재에 다녀오기로 했다.
생각해보니 3월은 주말마다 집에 붙어있지를 않은 것 같다.
첫주에는 용인 애버랜드에
둘째 주에는 도고온천과 덕산온천을
셋째 주에는 백암온천을
그리고 넷째 주이자 마지막 주인 이번에는 문경새재를 다른 때에는 매주 성당 제대 꽃꽂이를 해야하는 집사람 때문에 엄두를 낼 수 없었지만 사순 시기에는 성당 꽃꽂이에서 해방되기에 그 기회를 이용해서 성당 주일 미사 참석도 땡땡이를 치고 매주 싸돌아 다녔다.
집에서 12시 20분 정도에 출발하여 태백을 거쳐 넛재를 넘어 명산 휴게소(지금은 무진 휴게소로 이름이 바뀌었다.)에서 능이 된장찌개로 점심을 먹은 시간은 두시를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버섯 가운데 제일 맛있는 버섯이 능이 버섯이다.생김새는 별로인데, 절말 광고의 카피처럼 “못생겨도 맛은 좋아.” 였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현동 - 봉화 – 영주 – 예천을 거처 문경에 도착한 시간은 네시를 지나 있었다. 다시 충주 방향으로 가다가 문경새재에 도착해서 숙소를
문경관광 호텔로 정하고 방에서 조금 쉬다가 저녁시간이 되어호텔 내에 있는 한식당 주흘관에서 해결할까 아니면 단지내 식당가로 나가볼까를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주흘관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더덕구이를 주문했는데 의외로 맛이 있었다.짜지도 않고 더덕 향이 제대로 살아있어 근래에 먹어본 더덕구이 중에는 가장 맛이 있었다. 저녁식사 후 방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시청하며 시간을 보내다가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청량한 공기에 숲의 향이 제대로 나고 있었다. 모닝커피를 한잔 즐기고 대충 세면을 하고 주흘관으로 내려가 나는 사골 우거지 국을 집사람은 전복죽으로 아침을 먹었는데전복죽은 별로 맛이 없엇다는 게 집사람의 평가였다. 하긴 내륙 산중에서 전복죽을 제맛을 내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침식사 후 체크 아웃을 하고 나와 차를 주차장에 세우고 문경새재로 갔다. 문경새재는 부산과 한양을 연결하는 영남대로에 있는 중요한 관문으로 1관이 주흘관, 2관이 조곡관, 3관이 조령관으로 이곳을 넘지 않고는 한양으로 갈수 없는 곳이기에 교통의 요충지이며 천혜의 군사적 요새이다. 임진왜란 당시 신립 장군이 이곳을 근거로 방어선을 폈으면 부산으로 상륙한 왜군의 북상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신립 장군은 어떤 연유인지(오합지졸인 조선 군대가 겁을 먹고 제대로 싸우기도 전에 도주하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서라고 짐작은 가지만)천혜의 요새인 조령을 포기하고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강을 등지고 친 진으로 결사 항쟁의 의지를 나타낸다.)을 쳤다가 패하여 신립은 전사하고 조선군은 거의 전멸하였다. 이후 한양까지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한양이 함락되고 임금인 선조는 북쪽으로 몽진(임금이 전란을 피하여 도성을 떠나 피신하는 것)하게 된다. 그런데 한양성은 왜군에게 함락되기 전에 선조의 몽진 소식을 듣고 분노한 민중과 자신의 노비문서를 없애기 위한 노비들에 의해 불타게 된다(노비문서를 보관하고 노비의 범죄나 도망 등 관련 사건을 전담하는 관청인 장예원이 먼저 불탔다.
문경새재는 주흘관에서 조령관으로 넘어가는 길은 급경사는 아니지만 오르막길이 계속되기 때문에 조금 힘이 들고 조령관 쪽에서 주흘관 쪽으로 가는 것이 쉽다. 게다가 조령관 쪽에는 조령관 자연휴양림이 있어 운치있는 통나무집에서 숙박이 가능하기에 미리 인터넷을 통해서 예약을 한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관인 주흘관을 지나면 부근에 한국방송공사에서 10여년 전에 방영한 대하 역사 드라마 태조 왕건을 촬영하기 위해 제작한 세트장이 있는데 이 곳은 그 이후에도 여러 편의 사극을 제작한 곳으로 온길에 들러 사진을 찍기에 좋은 장소이다.
특히 문경새재는 영남지방의 사람들이 서울로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으로 청운의 꿈을 품은 유생들이 서울로 과거 시험에 응시하려 가는 길에 거쳐가는 곳이기도하다.
첫댓글 무열이 봄바람 제대로 낫네~!
앞으로 북중 11회 친구들은 여행갈 때엔 무열에게 자문을 구해야겠다.
부부의 표정이 밝아 보기 좋네.
조금만 힘을 내면 아주좋아 지겠는데 용기 잃지 말고 더 열심히 운동해서
다음에 더 보기 좋은 모습 보여 줘. 무열 친구는 할수 있을 거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