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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8:13-18) 무림고수들과의 대결
오늘 함께 읽은 말씀중심으로 <무림고수들과의 대결>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무협소설 중에 "절대 검, 절정 검"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1,2,3권으로 돼 있습니다. 제가 다 읽지는 않았고 일부분 인터넷에서 소개되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절대 검’은 모든 상대를 다 이기는 칼을 말하고 ‘절정 검’은 나 자신을 부인하는 자아를 이기는 검을 말합니다. 여기에 '애절영'이라는 주인공이 나오는데 소림사에서 '산해정승'이라고 하는 스님으로부터 '산해36결'이라는 비법을 배우고 하산을 해서 무림강호의 고수들을 찾아다니면서 전승을 하는 이야기가 중간에 나와요. 무림고수들을 찾아서 대결을 신청하는데 무림의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킵니다. 85전 85승을 거두면서 무림의 최강자임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에는 초막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전을 재건하고 예루살렘성벽을 재건하고 모든 백성들이 모여서 에스라의 율법강독, 율법을 읽고 율법을 해석하고 그 해석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깨달음이 있게 되고 광대하신 하나님께 발을 들여놓습니다. 하나님을 더 알고 싶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에요. 그래서 에스라에게 찾아와서 모세의 율법에 대한 갈급함이 생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게 되었습니다.
에스라가 말씀을 가르치다보니 바로 7월 1일은 모세의 율법에는 초막절을 지내도록 기록을 해 놓았습니다. 초막절은 광야40년 동안 광야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의 3대 절기중의 하나이지요.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확인하고 들에 나가서 아니면 마을에 있는 나무와 잎사귀 가지들을 다 베어서 초막을 짓고 일주일을 지내게 됩니다. 일주일을 지나면서 회중이 너무 기뻐했다는 것이에요. 17절에 “이같이 행한 일이 없었으므로 이에 크게 기뻐하며”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초막절의 의미예요. ‘크게 기뻐했다.’라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광야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확실하게 주어져 있는 무엇이 있었다면 그것은 하나님밖에 없었던 것이에요.
그 광야40년을 기념한다는 뜻이 무엇이냐? 물 한 모금, 풀 한포기 없는 광야에서 주어져 있는 유일한 대상인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사는 것을 연마한 것인데 그것을 확인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이면 광야에서도 살 수 있다. 찬송가 495장(438) 같은 경우에는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찬송이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광야에는 돈이 없습니다. 다녀야 될 학교도 없습니다. 직장도 없습니다. 광야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광야에서 주어져 있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살 수 있는 마음의 사랑을 키우는 장소가 바로 광야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한 분만으로 행복하게 기쁘게 살 수 있는 마음상태가 되는 것을 매년 확인하기 위해서 초막절을 지냈습니다.
이 초막절의 의미는 이렇게만 알면 절반을 아는 것이에요. 진정한 초막절의 의미가 나타나려면 가나안 복지와의 연관성 안에서 나타납니다. 이제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 한 분만으로 온전히 기뻐하며 행복한 마음이 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복지를 허락하시려고 계획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복지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겁니다. 복지를 허락하시기 전에 왜 초막절이 앞서 있어야 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사랑을 키운 사람들에게 복지를 주시는 이유가 바로 무림고수들과의 대결을 위한 것입니다. 무림고수는 무엇이고 대결은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복지를 주시는데 그 속에 들어가서 잘 먹고 풍요롭게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복지는 대결 장소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얼마나 강한가를 대결을 통하여 확인시키는 장소로 무림의 세계였다는 겁니다.
애절영이 산해정승에게 산해36결을 배우고 소림사에서 하산합니다. 소림사에서 하산해서 이 무림의 세계에서 고수로 이름이 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찾아가서 대결을 요청하면서 산해36결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검법이라는 것을 확인해 갑니다. 그리고 대결을 하는 중에 점점 더 이 산해 36결에 검법의 진수가 몸에 체득이 돼 가는 것이에요. 마찬가지입니다.
초막절의 의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복지로 들어갑니다. 복지로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집을 주십니다. 풍요로운 곡식을 주십니다. 그러면 그 아름다운 집과 풍요로움과 다산을 누리고 쫓아가라는 것이 아니고 그것들과 하나님 사랑을 대결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강하냐? 아니면 풍요와 다산에 마음이 끌려가느냐의 대결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고정된 무슨 물건 같은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확인하고 끊임없이 표현해 나가는 가운데, 점점 더 하나님의 사랑이 강화되어지고 점점 더 하나님과 친해지고 마치 목마른 사람이 냉수를 들이킬 때 속이 시원한 것처럼, 실제로 하나님을 실감하고 우리 지난 주일날 말한 대로 광부가 곡괭이로 땅을 파고 지층을 파 내려가서 실제로 손에 보석이 들어있는 원석을 받아들 때, 그 때의 기쁨과 같이 진짜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대결을 통해서 확인되고 표현되고 내 마음속에 더 절절한 하나님 사랑과 하나님 실감이 강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복지는 무림의 세계였어요. 대결을 해야 하는 무림의 세계. 그전에 소림사는 바로 초막을 짓고 장막을 짓고 살던 광야생활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초막절의 의미는 대결을 하기 전에 소림사에서 무술을 연마하는 그런 기간이었고 하나님 사랑을 마음속에 느끼고 체득해 가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막절을 지키는데 오기까지 일어난 일들이 다 뭡니까?
성전을 재건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릴 수 있는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는 장소를 만든 것이에요. 그리고 성벽을 재건합니다. 이 세상을 향하여 시야를 끊은 것이에요. 등져버린 겁니다. 세상을 향하여 등을 돌린 겁니다. 이렇게 하고 성전에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하나님 사랑을 준비했을 때 초막절이 임한 것이에요. 온전히 하나님께 빠지는 겁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빠지고 하나님 맛을 알고 김치 맛을 알고 냉면 맛을 알고 불고기 맛을 알듯이 하나님 맛을 아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 맛을 알아요? 저는 냉면 맛도 알고 불고기 맛도 알고 김치 맛도 압니다. 그런 것처럼 하나님 맛도 알아요. 돈 맛도 압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맛도 알아요. 여러분 하나님 맛을 알아요? 하나님이 돈 주셨습니까? 돈 맛 아는 것이지요.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풍성한 음식을 주셨다면 음식 맛을 아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를 좋은 성적으로 시험을 보게 하셨다면 성적 맛을 아는 것이고 일류대학 맛을 아는 것이지 하나님 맛을 아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 맛을 안다는 것이 뭡니까? ‘돈도 대학도 음식도 인기도 이 세상에서 명예도 하나님 맛보다 전혀 맛이 없다.’라는 말을 할 때 하나님 맛을 아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 맛을 아는 기간이 초막절이라는 거예요. 그 어떤 맛도 아닌 이 세상에 살면서 필요한 어떤 소원의 맛도 아닌 하나님 맛을 아는 것이 초막절이고,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가 초막절이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 맛을 안 다음에 무림고수들을 찾아가 대결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기간이었다는 겁니다.
자, 무림고수 중에 누가 있습니까? 계속 언급되고 있습니다마는 가장 강한 고수 중의 하나가 돈이에요. 돈이라는 고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돈 맛도 만만치 않거든요. 자, 하나님 맛과 돈 맛 하나님 사랑과 돈 사랑 대결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 사랑이 돈 사랑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이기는 겁니까? 또 돈 뿐만이 아니에요. 어떻게 이기는 가는 한꺼번에 얘기하지요. 그 다음에 무림고수 중에 누가 있습니까? 배우자가 있습니다. 내가 남편을 더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아내를 더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더 사랑하느냐? 엄청난 고수입니다. 그리고 자식이 있어요. 이게 아마 최강고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강한 고수 그래서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그 하나님 사랑은 이제 인정받는 하나님 사랑 최절정에 달한 하나님의 사랑일수가 있습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 사랑이 뭡니까? 돈 사랑이 뭡니까? 그리고 배우자 사랑이 뭐고 그리고 자녀사랑이 뭐고 그리고 내 자존심사랑 자기사랑 인기사랑 이게 다 뭡니까?
사랑이 뭐예요? 눈물의 씨앗이에요?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사랑이 눈물의 씨앗입니까? 맞아요. 눈물의 씨앗이에요. 어쩌면 그렇게 대중가요가 정확하게 답을 주는지 몰라요. 사랑이 뭐냐? 눈물의 씨앗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왜 울어요? 왜 근심합니까? 사랑 때문에. 왜 웃어요? 사랑 때문에. 여러분이 울고 여러분이 웃고 여러분이 근심하고 걱정하는 그것이 바로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돈 때문에 걱정하며 기도합니다. 그것은 이미 돈이라는 고수에게 패배를 당한 것이에요.
그러면 어떤 것이 하나님 사랑을 이기는 겁니까? 하나님 때문에 기뻐합니다. 초막절을 지내면서. 아니 웃기잖아요? 멀쩡한 집 다 놔두고 그 불편한 초막 속에서 기뻐했다고 합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예수님 함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합니다. 하나님 한 분의 맛을 보고 기뻐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뭘 주셨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맛을 보고 기뻐하는 겁니다.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사업이 망해가고 있는데 하나님으로 웃고 사업장으로 나가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 사랑이 이긴 겁니다. 또 거꾸로 사업이 잘 됩니다. 하나님 때문에 울며 사업장에 나가는 겁니다. 사업이 번창하고 집안의 돈과 모든 것이 풍요롭게 되자 자식들이 하나님을 멀리 합니다. 하나님을 보니까 하나님이 울고 계세요. 하나님이 우니까 나도 우는 거예요. 사업이 안 됩니다. 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웃고 계세요. 하나님 맛을 보면서 나도 웃습니다. 웃으면서 가는 거예요. 이게 이긴 겁니다.
여러분! 아브라함 75세에 하나님이 명령하시잖아요. '떠나라.' 그런데 '영광의 하나님을 뵙고 떠났다'고 합니다. '영광의 하나님'이란 이미 아브라함 속에 하나님의 조명을 받아서 아브라함의 마음속에서 하나님만 보인 것이고 이미 초막절이 경험되는 겁니다. 앞에서 뭐라고 말씀드렸지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성문을 열지 마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정오의 해같이 내 마음에 확실하게 보일 때까지는 성문을 열지 말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초막절로 옮겨오는 겁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어요.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 무림고수들과 싸우는 겁니다.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삶의 터전이라는 고수와 싸우는 것입니다. 떠났어요. 아내 버렸어요. 아내인 사라를 버릴 생각을 안했다면 떠날 수가 없지요. (떠나면 망할 텐데. 그때 그 당시의 치안부재의 상태에서.) 그리고 결국 이삭까지 버립니다. 마음에서 이삭까지 버립니다.
결국 하나님 사랑은 간단해요. 하나님 때문에 웃습니까? 하나님 때문에 웁니까? 하나님의 걱정을 내 걱정으로 삼고 걱정합니까? 그러면 하나님 사랑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왜 지금 찡그리고 있습니까? 자식 때문에. 요번에 성적이 안 나와서. 돈이 안 벌려서.직장상사에게 밉게 보여서. 그래서 지금 걱정하고 그래서 울고 있고 아니면 그래서 웃고 있습니까? 직장상사가 칭찬해 줬다고 그러면 여러분은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고, 결국은 여러분의 하나님 사랑은 패배한 것이에요.
이 세상에서 내게 배우자를 주십니다. 그러면 배우자를 사랑해서 오순도순 잘 살라고 배우자를 주셨습니까? 이 세상의 의미는 초막이에요. 근본적으로 초막이에요. 그런데 배우자를 주신 이유는 배우자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배우자를 주신 것이지. 배우자를 사랑하면서 오순도순 잘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에요. 자식을 주셨습니다. 왜 자식을 주십니까? 자식을 잘 키워서 영화를 보라는 뜻이 아니라, 자식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을 확인해 나가라고 자식을 주신 것이지. 자식을 사랑하고 잘 키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왜 사업을 주십니까? 사업을 잘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사업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주신 것이에요. 왜 제게 선교회를 주시고 목사님들에게 교회를 허락하십니까? 목회를 잘 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목회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주신 것이지요. 왜 이 기본이 되는 의미를 우리는 이제까지 모르고 있었을까요? 지금도 교인 중에 100명이면 거의 99명이 모두가 다 주신 자식을 사랑하고, 주신 사업을 사랑하고, 목사님들도 주신 목회를 사랑하고 왜 이렇게 무지몽매한 영적현실에 갇혀서 살아갑니까? 답답하지요.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의 의미가 어디 있어요? 이 세상에서의 모든 무림의 고수들, 내 마음을 뺏어 갈 수 있는 무림의 고수들이 있어요. 자녀, 배우자, 돈, 부모님, 사업, 목회, 등등 모든 무림의 고수들과 맞서 싸우며 하나님 사랑을 지키며 나갈 수 있는 길은 십자가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 세상의 삶의 의미는 주시는 모든 것보다 그것이 있어야 대결을 하고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고 확인하고 해 나갈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시고 이삭을 바치라고 합니다. 왜 그래요? 아내를 주시고 아내를 바치라고 그럽니다. 왜 그래요? 고향과 친척과 본토 아비 집 안정된 생활을 주시고 버리라고 그래요? 왜 그래요? 왜 주시고 뺏습니까? 치사하게. 하나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 이 세상살이의 의미예요. 다른 의미가 없는 거예요. 높아지고 잘 되는 게 아닙니다.
그럼 이제 내 마누라하고 어떻게 사나? 여러분! 마누라에 매여서 마누라가 좋아하면 나도 좋고, 마누라가 투정을 부리면 나도 투정이 나고,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으면 내가 짜증이 나고 이런 상태에서 마누라를 대하는 것과 마누라 상관없이 하나님으로 기쁘고 하나님으로 슬프고 하나님으로 채운 상태에서 마누라를 대하는 것과 마누라에게 어느 것이 유익하겠습니까?
자식을 대할 때 자식의 성적이 안 좋으면 인상을 쓰고 자식이 잘 되면 좋아하고 세상기준으로 안 되는 것 같으면 짜증내고 하는 것보다, 하나님으로 기쁘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면서 그 마음으로 자식을 만나는 것 어느 것이 자식에게 유익하겠습니까? 왜 신경질 내요? 왜 자식 때문에 짜증냅니까? 뻔- 합니다. 정말 궁색해 빠져서 자식 놈 잡아서 내 속에 채워서 만족하겠다는 거예요. 정말 애들 말로 쪽 팔리지도 않아요? 나이가 몇인데 지금 마누라 덕보고 남편 덕 보겠다고 하는 겁니까? 남편이 이렇게 해서. 마누라가 이렇게 해서. 나이가 지금 몇이예요? 말이 안 되잖아요. 예수 믿은 지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타령입니까? '누구 때문에 누구 때문에'라고 하면서.
하나님으로 웃고 하나님으로 울고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하나님으로 감사하면서 그리고 주어지는 모든 것들은 그 하나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한 대결을 해야 되는 무림의 고수들입니다. 싸워 이기세요.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권법이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내가 그들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에 대해서만 살아있다.’라는 고백을 끊임없이 해 나가는 가운데 하나님께 몰입하는 겁니다. 초막절처럼. 소림사에서 연마기간처럼.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 끝내자. 이 세상에서 더 얻을 것이 없다.’라는 마음으로 몰입하고 하나님 맛을 느끼고 나가서, 허락하시는 모든 고수들과 대결을 하며 그들의 상황과 그것이 어떻게 변하든지 간에 하나님으로의 기쁨, 하나님으로의 평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영적고수인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이 세상은 무림의 세계입니다. 내가 이기지 않으면 질 수밖에 없는 대결의 세계인 것을 기억하게 하시고 주님의 십자가 이진법 권법을 마음에 익히고 내게 주어지는 모든 고수들을 향하여 하나님 사랑의 승리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복된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아! 기가 막히는 말씀아닙니까? 이 세상 무림고수와의 대결이 오늘도 펼쳐집니다.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권법인 주님의 십자가에서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싸워주시는, 이미 십자가에서 이기셨고 때를 따라 베푸시는 은혜에 참여하게 하시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오늘 내게 주시는 모든 문제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절호의 찬스임을 잊지맙시다.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는 제로원의 모든 식구들 화이팅!
오늘도 십자가권법으로 세상의 무림고수와의 대결에서 승리하시기를 ...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