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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谷池蓮
사행시운 한시
삼행시 이행시처럼 새로운 한시의 장르를 말하고져한다. 2022.11.28. 진허 권오철 고안
스캐너 (삼행시) 전운 삼행시
스/ 스스로 일어나 학문을 연구하니
캐/ 캐도 캐도 또 나오는 의문이여
너/ 너는 아느냐 먹물들의 고뇌를..
스캐너 (후운)
이것은 매우 어렵고 한글 문장은 거의 안된다. 전부 다,음,것 등으로 끝나니 (생략)
官谷池蓮 (4행 5언절구) 전운 – 운과 평측이 맞아야 하고
官臨見 白紅 관인이 나와보니 흰꽃 끝에 붉은 색
谷中花 麗窪 골짝안 봉오리, 웅덩이 속 아름답네
池下藕 泥黑 연못아래 연뿌리, 진흙속에서 검지만
蓮示衆 拈華 연을 본 중생들 들어보인 뜻 알겠네
官谷池蓮 (4행 5언절구) 전운 – 운과 평측이 무시
姜權丈婿 名官 강씨권씨, 장인사위는 명관이니
始興錢紅 遺谷 처음 전당홍을 심어서 남겼구나
後世二權 竣池 후세의 두권씨가 못을 준설하여
百代子孫 樂蓮 백대자손들이 연꽃을 즐기게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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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조선 말에 변한 한글 짬뽕 한시...
우리말과 한자를 뒤섞어 쓰는 시는 구한말에 오면 다음과 같이 진전된다.
舍廊곗집處女在 사랑 문간에 처녀가 있는데
무던顔色가는腰 무던한 얼굴에다 가녀린 허리.
사람一見얼는隱 사람을 한 번 보고 얼른 숨으니
마치雲間月明消 마치 구름 사이 달이 숨는 듯.
이기(李沂, 1848~1909)가 『대한자강회월보』에 소개한 것이다. 앞에서는 구절마다 한글이 2자씩 일정한 위치에 들어갔는데, 여기서는 2자 또는 4자까지 들어가 좀 더 복잡한 방식으로 구문을 만들어낸다.
매월당 김시습의 시(詩)중에 욕으로 된 한시(漢詩)
해체의 詩學 : 파격시의 세계
"절대적 진리도,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 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
- 김준오 《도시시와 해체시》 중에서 -
요로원(要路院)의 두 선비
〈要路院夜話記〉는 숙종조의 한 시골 선비가 서울서 과거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충남 아산 어름의 요로원에 잠자리를 찾아 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병든 말에 초췌 남루한 행색의 나그네는 가는 곳마다 홀대와 업신여김을 받았다. 한 숫막에서 서울의 행세하는 집안의 끌끌한 선비와 함께 묵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 소설의 기본 줄거리이다.
자신의 꾀죄죄한 행색을 보고 갖은 수모와 비아냥거림을 던지는 서울 선비에게 시골 선비는 아예 작정을 하고 세상 물정을 전혀 모르는 촌놈 행세를 한다. 이에 더욱 기가 난 서울 선비는 숫제 아래 것 다루듯 시골 선비를 희롱하며 놀다가 완전히 기를 죽여 놓으려고 肉談風月 짓기 시합을 제의하였다. 육담풍월이 무엇인고 하니, 다섯 자 일곱 자로 언문진서를 섞어 짓는 문자 놀음이다. 다음은 서울 선비가 먼저 던진 풍월이다.
내가 시골 '내기'를 보니
몸 '가짐'을 괴상히 하는 도다.
언문 '쓸' 줄도 알지 못하니
眞書 '못'함을 어찌 괴상타 하리.
我觀鄕之賭
怪底形體條
不知諺文辛
何怪眞書沼
원문과 번역을 대조해 보면 갸우뚱 하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각 구의 끝 글자는 한자의 의미로 새긴 것이 아니라, 훈으로 읽은 것이기 때문이다. '賭'는 '내기'이니 '鄕之賭'는 섞어 讀을 하여 '시골내기'가 되고, '條'는 '가지'라서 '形體條'를 '몸가짐'으로 읽는다. '辛'은 맛이 '쓰다'는 뜻으로, '諺文辛'이라 해 놓고서 '언문을 쓴다'고 읽고, '沼'는 '못'이니 '眞書沼'는 '眞書를 못함' 즉 한문을 모른다는 뜻이 되는 것이다.
서울 선비는 제깟 것이 뜻인들 알랴 하는 마음으로 풍월을 읊고는 득의양양 했겠다. 그리하여 화답을 재촉하니 시골 선비는 짐짓 못하겠노라고 사양을 한다. 더욱 기세가 오른 서울 선비는 화답치 않음은 나를 업신여김이니 이 방에서 몰아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에 시골 선비 풍월을 읊조려 가로되,
내가 서울 '것'을 보니
과연 거동이 '되'도다.
대저 인물을 '꾸'었으나
의관을 '꾸민' 것에 불과하도다.
我觀京之表
果然擧動戎
大抵人物貸
不過衣冠夢
라 하였다. '表'가 '것(겉)'이 되고, '戎'은 뙤놈이란 뜻을 '되다'로 읽었다. '貸'는 '꾸다'로, '夢'은 '꿈'이니 이를 '꾸미다'로 읽었다. '시골내기'를 업수이 보다가 '서울 것'이 된통 당한 형국이다. 네까짓 것이 언문도 쓸 줄 모른다니 진서야 일러 무엇하겠느냐고 얕보았던 서울 것에게, 그래 너는 겉만 번드르르 했지 잘난 게 무에냐는 반격이다. 내용으로만 보자면 시랄 것도 없는 시답잖은 말장난이지만, 순발력과 재치가 돋보인다.
'서울 것'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감쪽같이 속았던 자신이 부끄럽고, 깜찍하게 속였던 '시골내기'가 맹랑했다. 이에 본격적으로 서울 것과 시골내기는 시 짓기 시합을 벌이는데, 여기에 동원된 詩體라는 것이 앞서 소개한 바 있던 잡체시들이다. 人名을 넣어 짓는 人名詩로 겨루고, 聯句로 주거니 받거니 시합하고, 다시 六言으로 실갱이를 하다가, 종내 3 5 7言의 層詩로 옮겨 가고, 藥名體로 승부를 결하였다. 서울 것은 시골내기에게 끝내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참패를 하기에 이른다. 그러자 이번엔 거꾸로 시골내기가 五行詩로 겨룰 것을 제안하고 나섰다. 짓는 방법은 첫 구 첫 자에 '木'자를 넣고, 끝 자에는 '土'로 맺으며, 둘째 구 첫 자는 '水'자로 열어 끝 자는 '火'자로 닫으며, 그 가운데에 '金'자를 넣어 五行의 구색을 갖추는 것이다. 시골내기가 먼저 짓기를,
부평 같은 자취 어드메서 이르렀나
꽃 달만 빈 집에 가득하도다.
萍犠何處至
花月滿虛堂
라 하였다. 두 구절의 첫 자 '萍'과 '花'는 머리에 '艸'를 얻었으니, '木'에 속하고, '至'와 '堂'은 破字하여 아래 반을 취하면 '土'가 된다. 그러자 서울 것이 한참을 끙끙대다가, 겨우 흐르는 그림자 금술잔에 어리니 流影金樽照란 한 구절을 맞추고는 4구를 마저 채우지 못하고 손을 들었다. '流'는 '水'에 속하고 '照'는 '火'로 받쳐져, 그 가운데 '金'을 얹은 것이다. 그러자 시골내기는 즉시
맑게 흰빛을 마시는도다. 瀅然飮白光
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시골내기의 완전한 KO승이 확정되는 순간이다.
〈요로원야화기〉는 단순하게는 갖은 詩體를 놓고 두 선비가 각축을 벌인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거들먹거리는 서울 것을 KO시킬 만큼의 詩才를 지녔으면서도 정작 시골내기는 靑雲의 벼슬길에 명함 한번 내밀어 보지 못했고, 전전하는 여관마다 천덕꾸러기 신세였을 뿐이었다. 모처럼 서울 것 하나가 제대로 걸려 분풀이는 했지만, 뒷맛은 언제나 씁쓸하다.
눈물이 석 줄
한시의 어조는 조선 후기에 이르러 과거처럼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인 목소리에서 벗어나 모순되고 복잡한 양태를 연출하였다. 그들은 성리학적 세계관이 규정하는 제반 사회조건에 길들여져 있었으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려 하였다. 이런 가운데 시인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희극적 양상을 나타내게 되는데, 그 결과 시는 진지성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이른 바 戱作化의 경향은 이 시기에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론 이전의 詩話에도 희작의 양상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요로원야화기>부터 김삿갓의 시에 이르러 극에 달하는 파격의 희작시들이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집단적 양상을 띠고 등장하는 것은 주목되는 한 양상이 아닐 수 없다.
이들 희작시의 작가들이 창작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시정신은 탈중심주의, 탈이데올로기의 현대 해체시가 표방하고 있는 세계와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비시적 대상의 시화를 통해 이미 용도 폐기되어버린 공허한 언어의 일상성을 파괴하고 당대 현실의 삶에 뿌리 내림으로써 이들은 구체성과 정직성을 획득하고 있다. 80년대 해체주의가 전통적 시 양식에 대한 전면적이고 과격한 파괴를 통해 관습적 시관에 도전장을 던졌다면, 김삿갓을 비롯한 일군의 시인들은 전통 한시의 기교지상주의적 관념 시단에 대해 비아냥거림과 조소의 태도를 통해 야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조선후기《禦睡新話》란 책에 실려 있는 17자시는 바로 그러한 예 가운데 하나다. 제목 그대로 이 책에는 졸음을 단번에 씻어가 줄 수 있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말하자면 당대의 개그 笑話集인 셈이다. 17자 시는 세 수의 연작이다.
어느 해 가뭄이 몹시 심했다. 원님이 단을 쌓아 놓고 기우제를 지내는데, 그 齋를 올리는 곳이 기생집 근처였다. 말이 기우제이지, 원님은 잿밥에 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한 선비가 그 꼴을 보고 시를 지었다.
원님이 몸소 비를 비는데
그 정성 뼈에 사무치더라.
한 밤중에 창을 열고 내어다 보니
밝은 달.
太守親祈雨
精誠貫人骨
夜半推窓看
明月
정성을 다해 드려도 시원찮을 기우제를 온통 잿밥에 마음이 쏠려 지냈으니, 기우제에 대한 하늘의 응답은 明月이었다. 원님이 이를 듣고 대로하여 선비를 매질하였다. 곤장을 실컷 맞고 나온 선비가 또 가만 있지 못하고,
열일곱 자의 시를 지었다가
곤장 스물여덟 대를 맞았네.
만약 만언의 상소를 지었더라면
죽었을 거야.
作詩十七字
受笞二十八
若作萬言疏
必殺
라고 근질대는 입을 놀렸겠다. 원님은 한층 격노하여 그를 멀리 귀양 보냈다. 떠나는 날 그 외삼촌이 술과 안주를 차려 전송을 해 주었다. 그 정성이 느꺼워 선비는 다시 붓을 들었다.
저물녘 단풍든 언덕길에서
나를 전송하는 외삼촌의 마음.
서로 떨구는 이별의 눈물은
석 줄.
斜陽楓岸路
舅氏送我情
相垂離別淚
三行
선비의 외삼촌은 애꾸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시는 사실 우리나라 사람의 작품은 아니고 중국 명나라 때의 무명씨의 작이다. 중국의 《秋水涉筆》에 위 17자 시가 실려 있는데, 대개 두 가지 줄거리를 가진 5수의 17자 시가 하나로 뭉뚱그려져 《어면신화》에 변개 수용된 것이다. 글자의 출입도 상당하다. 이 책에는 16자 시도 실려 있다.
달님이 버들가지 끝에 떠오니
해 진 뒤에 만나기로 약속합시다.
부모님 모두 곤히 잠들면
몰래.
月上柳梢頭
人約黃昏後
父母俱睡熟
偸
아쉬운 데이트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 가버려 어느덧 달이 늘어진 버들잎 새로 떠올랐다. 그러나 뜨거운 청춘 남녀는 그것으로 만남을 끝내기엔 아쉽기만 하다. 그래서 부모님께 들통 나지 않게 한밤중에 다시 만나 밀회를 나누자는 약속을 주고받는 것이다.
마음은 말없는 가운데 있어
고개를 푹 숙이고 눈웃음 짓네.
오늘 오지 못하게 되면
난 몰라.
意在不言中
低頭중眼風
今日來不得
紅
다정한 님의 소곤거림에 그녀는 더욱 두근대는 가슴을 달랠 길 없었다. 혹시 부모님이 늦게 주무셔서 약속을 못 지키게 되면 어떻게 하나. 벌써 그녀의 두 볼은 붉게 물들고 말았다.
대개 이런 시들은 형식미의 굳건함을 고수하던 전통 한시에 대해 풍자와 해학의 효과를 발휘하기에 충분하다. 내용의 희화화 뿐 아니라 형식도 더불어 와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삿갓은 없다
희작시의 특징은 파격과 해학, 민중성과 익명성으로 대표된다. 특정 작가가 없을 뿐 아니라, 있다 하더라도 의미 없는 가탁이 대부분이다. 또 이들 희작시들은 기존 한시의 문법을 과감히 깨뜨리고 있고, 시의 소재 또한 당시 사설시조가 평시조에 대해 그랬듯이 非詩的 대상을 詩의 소재로 끌어들이고 있다. 또한 그럴듯한 표면 진술의 糖衣를 입혀, 이면에서 풍자와 해학을 겨냥하는 언문풍월도 다양하게 발달하였다. 전통 한시의 기준에서 본다면 이들 희작의 파격시들은 시랄 것도 없는 희학질에 불과하다. 도대체 점잖은 선비가 할 짓은 못되는 것이다.
희작시는 보통 전승의 과정에서 복수성을 띠면서 부연 확장된다. 예를 들어 김삿갓이 어느 늙은이의 부고장에 '柳柳花花'라고 넉 자를 써 주었는데, 그 뜻은 훈으로 새겨 '버들버들(柳柳) 떨다가 꼿꼿(花花)이 죽었다'의 의미가 된다. 그러면 이것이 그 다음에 가면 '柳柳井井花花'로 부연된다. 즉 '버들버들 떨다가 우물우물 하더니 꼿꼿이 죽었다'는 것이다. 〈흥부전〉에서 놀부의 심술 가지 수가 이본에 따라 한없이 늘어나는 양태와 방불하다. 이런 말장난이 좀 더 세련된 시의 모양을 갖추면 새로운 한편의 희작시가 탄생된다.
세상 일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남들은 모두 다 활활 가는데,
내 마음 벌벌 떨기만 하며
나 홀로 살살 오가는구나.
말들은 비록 풀풀 뱉지만
세상일은 데데하기 그지없도다.
마음을 꼿꼿이 지키면
앞길이 솔솔 열리리라.
世事熊熊思
人皆弓弓去
我心蜂蜂戰
我獨矢矢來
言雖草草出
世事竹竹爲
心則花花守
前路松松開
참으로 절묘한 말장난이다. '熊熊'이 '곰곰'이 되고, '弓弓'은 '활활'로 읽는다. '蜂蜂'이 '벌벌'로, '矢矢'가 '살살'이 된다. 대개 장난도 이쯤 되려면 이전부터 쌓여진 노하우가 있지 않고서는 안 된다. 김삿갓의 부고장이 극단에까지 이른 양상이다.
김삿갓은 없다. 언필칭 그의 시로 일컬어지는 시들은 김삿갓이 아니고서야 누가 이런 시를 지으랴 싶은 것을 모두 주워 모아놓은 것이라고 보면 거의 실상에 가깝다. TV 광고에서 김삿갓이 죽장을 짚고 근엄하게 외치는 "백년도 못되는 인생을 살면서, 천년의 근심을 지닌 채 살아가는 중생들아. 生年不滿百, 常懷千歲憂"도 사실은 그의 시가 아니라 중국의 유명한 古詩十九首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응수에 의해 김삿갓의 시집이 처음 간행된 것은 그가 세상을 뜬지 근 70년 뒤인 1939년의 일이다. 이응수는 이곳저곳에서 구전되던 김삿갓의 시 183편을 모아 상재하였다. 대부분이 傳聞에 의한 기록이고 보면, 그 眞僞를 헤아려 따진다는 것은 애초에 무망한 일이다. 최불암 시리즈가 그렇고 덩달이 시리즈가 그렇듯이 극단적으로 말하면, 김삿갓의 시 또한 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불특정 다수의 희작시들이 모두 그의 이름 아래 모인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옳음 아니고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옳지 않음 아닐세.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 그름이 아닐진대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로구나.
是是非非非是是
是非非是非非是
是非非是是非非
是是非非是是非
라고 한 김삿갓의 〈是是非非詩〉는 이미 김시습이 지은 것으로 홍만종의 《소화시평》에 소개되고 있다. 한마디로 是非에 대한 분별력을 상실한 개판의 세상을 향한 야유다. 뿐만 아니라 김시습은 아예 한수 더 떠서,
다른 것 같다 하고 같은 것 다르다 하니, 같고 다름이 다르고
같은 것 다르다 하고 다른 것 같다 하니, 다르고 같음이 같구나.
同異異同同異異
異同同異異同同
라는 구절도 남기고 있다. 許厚도 그의 〈是非吟〉에서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참 옳은 것 시비하면 옳음도 그름 되니
물결 따라 억지로 시비할 것 아닐세.
시비를 문득 잊고 눈을 높이 두어야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할 수 있으리.
是非眞是是還非
不必隨波强是非
却忘是非高着眼
方能是是又非非
다 비슷한 발상에서 나온 말 장난들이다. 또 김삿갓이 문전축객 하는 주인을 풍자해서 지었다는 〈人到人家〉에,
사람이 사람 집에 왔는데 사람 대접 않으니
주인의 인사가 사람 되기 어렵도다.
人到人家不待人
主人人事難爲人
라 한 것은, 역시 奇遵의 시에,
사람 밖에서 사람 찾으니 사람이 어찌 다를 것이며
세간에서 세상을 찾으니 세상을 같이하기 어렵겠네.
人外覓人人豈異
世間求世難同世
라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정조 때 정승을 지낸 李書九가 만년에 은퇴하여 향리에 물러나 있을 때 일이다. 그가 허름한 베잠방이 차림으로 냇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경망한 선비 하나가 시내를 건너려다, "여보. 늙은이! 나를 좀 업고 건네게." 했겠다. "그러시지요." 하고는 젊은 것을 업고 시내를 건너는데, 이 친구 늙은이 등에 업혀 까닥까닥 냇물을 건너다 보니 아뿔싸! 늙은이가 정승이나 할 수 있는 玉貫子가 하고 있지 않은가. 시골 무지랭이 늙은인 줄 알았다가 큰 경을 치르게 생겼다. 어쩔 줄 몰라 부들부들 떨다가 창졸간에 시내를 건넜는데, 경망한 선비는 좀 전의 서슬은 간 데 없이 납짝 꿇어앉아 이마를 땅에 짓찧으며 죽을 죄를 빌었다. 그러자 이 의뭉스런 늙은이는 시를 한 수 읊어주고는 다시 건너가 모른 척 낚시질이다. 그 시에 일렀으되,
吾看世시옷
是非在미음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이라 하였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굳이 해석을 해 보면,
내가 세상의 '시옷'을 보니
是非가 '미음'에 있더라.
집에 돌아가 '리을'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디귿'에 점찍으리라.
吾看世시옷
是非在미음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가 된다. 점점 알 수 없는 오리무중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시옷은 '人'이요, 미음은 '口'의 모양이다. 리을은 '己'요, 디귿에 점을 찍으면 망할 '亡'자가 된다. 이렇게 풀고서 다시 시를 읽으면,
내가 세상 '사람'을 보니
是非가 '입'에 있더라.
집에 돌아가 '몸'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망'하리라.
吾看世人
是非在口
歸家修己
不然則亡
가 된다. 경망한 선비에게는 活訓이 아닌가. 그런데 이것이 김삿갓의 시로 둔갑이 되면서는 처음 1, 2구가 슬쩍 바뀌고, 전후 이야기도 달리 윤색되었다.
허리 아래엔 '기역'을 차고
소 코에는 '이응'을 뚫었네.
집에 돌아가 '리을'을 닦아라
그렇지 않으면 '디귿'에 점찍으리.
腰下佩기역
牛鼻穿이응
歸家修리을
不然点디귿
1구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무색하다. 소의 코뚜레를 잡고 허리에 낫을 차고 지나가는 떠꺼머리총각을 묘사한 것이 1, 2구라면, 3, 4구는 박절하게 나그네를 타박하는 주인에게 쏘아붙인 독설이다. 자! 어느 것이 진짜 김삿갓이 지은 것인가?
현재 김삿갓의 시로 수록된 작품 속에서 역대 야담집이나 시화에 다른 사람의 시로 이미 소개된 것은 위의 예들 말고도 얼마든지 더 있다. 이러한 예를 통해서도 오늘날 김삿갓의 시로 믿고 있는 것이 어떤 경로로 정착되었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영월 소재 김삿갓 묘를 발견하여 보고한 바 있는 朴泳國 선생이 1987년 김삿갓의 三回甲을 기념하여 전국에 김삿갓 遺詩를 공모했던 바, 무려 690수의 시가 제보되었는데 앞서 본 "세상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는 시도 이때 김삿갓의 시라고 제보된 것 중 하나이다. 이렇듯 김삿갓의 시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고 보면, 종내는 조선조에 노래된 모든 희작시가 김삿갓의 이름 아래 야권통합(?)을 이루고야 말 모양이다.
슬픈 웃음, 解體의 詩學
"절대적 진리도, 선도 없다는 해체주의는 세상 일에 집착하지 않는 일종의 허무주의다. 왜곡된 현실을 왜곡되게 표현하는 해체시에서 온갖 비속어, 욕설 등이 서슴없이 구사되는 언어의 테러리즘을 보게 된다. 해체시의 어조는 진지하지 않고 너무나 유희적이고 거칠다."(김준오,《도시시와 해체시》(문학과비평사, 1992) p.17). "해체주의는 자명한 이치와 질서와 도덕을 근본적으로 회의한다. 세계를 가변적이고 일상적이며 부조리한 것으로 인식한다. 자아도 더 이상 일관되게 세계와 교섭하고 대결하는 심리적 통일체나 종합적 기능으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해체시는 무질서한 세계를, 파편화된 세계를 그대로 수용한다."(p.152) 80년대의 해체시를 두고 한 이 언술들은 필자가 읽기에 마치 김삿갓의 시를 두고 한 말처럼 여겨진다. (이하 본문 중의 따옴표는 이 책의 구절들을 끼워 넣은 것이다.)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이대로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부치는 저대로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시정 매매는 세월대로
온갖 일 내 마음대로 함만 못하니
그렇고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지내세.
此竹彼竹化去竹
風打之竹浪打竹
飯飯粥粥生此竹
是是非非付彼竹
賓客接待家勢竹
市井賣買歲月竹
萬事不如吾心竹
然然然世過然竹
〈竹〉이란 작품이다. 脫絶凡俗한 자태로 세속을 초월한 고고한 선비의 절개를 표상하던 대나무는 이 시에서는 급전직하 '될대로 되라'는 '대'로 전락하고 있다. 원문을 중국사람에게 읽힌다면 무슨 암호문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이른 바 이두의 원리를 이용한 '낯설게 만들기'가 시도되고 있는 해체의 현장이다. 이 시만 해도 조선 후기 시화집인 《夢遊野談》에는 세사에 달관한 어느 정승의 일화 속에 포함되어 실려 있다. 글자에도 다소간 출입이 있다.
예전 鄭澈이 관동부사로 있을 때 일이다. 강릉 사람 全義民이 시를 잘 지었는데, 송강이 그에게 말하기를, "내가 전에 平昌에 갔을 때 藥水라는 지명이 있길래 한 구절을 지었는데 그 바깥 짝을 얻지 못했다" 하고 읊조리기를,
땅 이름 藥水인데 병 고치기 어렵고 地名藥水難醫疾
라 하였다. 그러자 全이 말하기를, "그 대구가 있지만 감히 여쭙지 못하겠습니다."하였다. 송강이 억지로 말하기 하니, 그가 말하였다.
역 이름 餘粮인데 주림 구하지 못하네. 驛號餘粮未救飢
餘粮은 강원도 정선 땅에 있던 역 이름이었다. 송강이 낯빛을 고치고 그를 대하였다. 대개 시 속에 풍자의 뜻이 담겼던 것이다. 《詩評補遺》에 보인다. 두 구절이 모두 지명을 가지고 훈으로 풀어 유희한 것이지만, 담긴 뜻은 진지하다. 그러나 김삿갓이 함경도 일대를 떠돌다 지었다는 〈無題〉를 보면,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한 고장 아니요
허가 허가 해봐도 허가하지 않는구나.
명천 명천 하건만 사람은 현명찮코
어전 어전 하여도 식탁엔 고기 없네.
吉州吉州不吉州
許可許可不許可
明川明川人不明
漁佃漁佃食無魚
라 하였다. 같이 땅 이름을 가지고 장난쳤지만 진지함을 찾기 어렵고 가벼운 말장난에 뿌리를 대고 있다. 꼴에 운자는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이 아니 얄미우랴. 교묘한 말장난 외에는 따로 건질 것이 없다.
고을 이름 開城인데 어찌 문을 닫으며
산 이름 松嶽인데 어이 땔감 없느뇨.
황혼의 逐客은 사람 인사 아닐래라
예의 동방 이 나라에 그대 홀로 오랑캐라.
邑號開城何閉門
山名松嶽豈無薪
黃昏逐客非人事
禮義東方自獨秦
이것은 개성에서 땔감이 없어 냉골에서 재울 수 없다는 핑계로 逐客을 당하고서 그 집 대문에 써 붙이고 갔다는 시다.
작년 9월에 구월산을 지났는데
금년 9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누나.
해마다 9월이면 구월산을 지나노니
구월산의 빛깔은 노상 9월이로세.
昨年九月過九月
今年九月過九月
年年九月過九月
九月山光長九月
김삿갓의 〈九月山〉이다. 무려 '九月'이란 어휘가 여덟번 되풀이 된다. 시인은 이렇게 하고서도 말이 되지 않느냐고 쾌재를 불렀을 것이다. 유희적 태도가 행간에 넘쳐난다. 이런 말장난뿐이 아니다. 예전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벼룩이나 이, 아니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도 그의 시에서는 서슴없이 등장한다. 먼저 이(柕)를 읊은 시를 보자.
주리면 피 빨고 배부르면 떨어지니
온갖 벌레 중에 가장 하등이라.
먼 길손 품속에서 낮 햇볕을 근심하고
주린 이 배 위에서 새벽 우레를 듣는다.
모습 비록 보리알 같으나 누룩되긴 어렵고
글자 風字 못되니 매화꽃도 못 떨구리.
묻노니 능히 仙骨도 범하려는가
麻姑 할미 머리 긁으며 天台山에 앉았는데.
飢而橪血飽而熿
三百昆蟲最下才
遠客懷中愁午日
窮人腹上聽晨雷
形雖似麥難爲麴
字不成風未落梅
問爾能侵仙骨否
麻姑搔首坐天台
역시 운자는 지켰다. 이(柕)를 시적 대상으로 노래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파격인데, 그 발상 또한 흥미롭다. 먼 길손의 품속에서 낮 햇볕을 근심한다는 3구는 무슨 말인가? 길 가던 나그네는 햇살이 따뜻하면 양지녁에 쭈그리고 앉아 저고리를 홀랑 뒤집어 놓고 이른바 이 사냥을 하게 마련이다. 4구의 우레소리는 주린 창자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다름 아니다. 보리알처럼 생겼음에도 누룩은 될 수 없고, '柕'자는 '風'에서 한 획을 뺀 것이니 헛김이 샐 밖에. 仙骨은 자신을 이름일 테고, 마고할미는 '麻姑搔痒'이란 말이 있듯 새처럼 긴 손톱을 지녔다는 전설 속 선녀의 이름이다. 그러니 7 8구는 긴 손톱으로 어디든 가려운 곳을 긁어내는 마고할미가 천태성에 앉아 仙骨인 나를 지키고 있으니 감히 내게 붙을 생각도 하지 말라는 경고인 셈이다. 삿갓 쓰고 떠도는 인생, 사방 어디 걸리는 것 없어도, 이나 벼룩 따위의 괴로움만은 면할 수 없어 해학으로 풀어본 것이다. 그러니까 주제는 '이야! 제발 내게서 떨어져 다오.'이다.
이러한 "풍자정신 앞에 신성한 것, 숭고한 것, 초월적인 것은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생각해 보았는가'하는 세계에 대한 지적 반응이다. 지적 반응은 희극적 태도다. 희극적 태도는 한마디로 세상을 '우습게' 보는 태도다."(p.21)
서당을 진작부터 알고 있나니
방 가운덴 모두 다 존귀한 물건뿐.
생도는 모두 열 살도 안 되어
선생이 와도 인사할 줄 모른다.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김삿갓이 고약한 시골 훈장을 기롱한 시로 전한다. 겉보기에는 심상한 시골 서당의 풍경을 노래한 듯하지만 각 구절 뒤의 세 글자를 독음으로 읽으면 흉칙한 욕설이 된다. 다섯 글자로 시 흉내만 낸 것이지 정말 고약한 장난이다. 김삿갓의 세상을 향한 비뚤어진 욕설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동글동글 중 머리통 땀난 말 불알 같고
뾰족한 선비 대가리는 앉은 개좆같구나.
목소리는 구리방울로 구리 솥을 치는 듯
눈깔은 검은 후추 흰 죽에 떨어진 듯.
僧首團團汗馬崇
儒頭尖尖坐狗腎
聲令銅鈴零銅鼎
目若黑椒落白粥
아마도 변성기를 거치지 않은 듯 쨍알쨍알하는 목소리의 중과, 어디 박혔는지 한참 찾아야 할 지경으로 눈이 작은 선비가 합세해서 김삿갓을 구박했던 모양이다. 위 시는 이 때 김삿갓의 반격으로 전해지는데, 僧俗을 불문하고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는 형국이다. 경박하기 그지없고, 언어에 대한 일말의 애정도 찾아 볼 수 없다. 이게 무슨 시인가?
"시인은 현실의 온갖 추악한 모습을 비정하게 들추어낼 뿐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p.147) "해체시에서 세계는 온갖 추악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해체주의 시인들은 절대적 진리도 선도 가치도 믿지 않는다. 김병익의 기술을 빌리면 그들에게 '믿을 수 있는 것, 전할 수 있는 것,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 욕설과 요설의 비틀린 언어는 이런 허무주의적 공허의식의 산물이다."(p.152)
사정이 이렇고 보니, 일찍이 홍기문은 김삿갓의 시를 두고 비천한 재담이지 시가 아니라고 혹평한 바 있고, 근세의 한학자 呂圭亨은 이런 시풍이 유행하여 정통의 한시가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이 소문이 이웃나라에 알려질까 봐 걱정이라는 시를 남기기까지 했다.
"풍자 일변도는 悲歌的 세계관으로 연결된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비가적 세계관은 불만을 삶의 완벽한 기교로 채용한다. 그래서 비가적 시인에게는 계속 짖어야 될 부정의 세계를 언제나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존재 근거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세계가 바뀌면 그 바뀐 세계의 불만의 요소를 또 발견해야 한다. 비가적 세계관은 상황의 거대함과 자아의 왜소함 사이의 그 엄청난 불균형을 과장한다. 그것은 넋두리와 하소연의 무기력한 어조를 띤다."(p.21)
대체로 김삿갓의 장난시를 대할 때마다 필자가 느끼게 되는 감정은 서글픔과 씁쓸함이다. 經國濟世에의 포부를 품고 배우고 익힌 학문과 지식을 고작 이깟 희학질에 썼더란 말인가? 그인들 이런 시를 짓고 싶었으랴만, 그로 하여금 이런 장난질에 몰두하게끔 강요한 현실이 역으로 희대의 민중시인을 낳았다는 이 역사의 아이러니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의 시에서 이나 벼룩, 욕설과 섹스 등 비시적 대상의 시화가 지배적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비록 김삿갓의 경우 조부의 훼절에 말미암은 개인적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는 하나, 김삿갓의 시정신은 당대 조선사회가 처했던 제반 역사환경의 변모에 의해 안받침 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회적 성격을 부여받고 있다. 시는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인 까닭이다.
그렇다고 김삿갓이 '비천한 재담'만을 일삼았던 광대였던 것은 아니다. 만일 그가 천박한 재담만으로 일관했다면 애초에 그의 시는 문자로 기록되어 보지도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네 다리 소반에다 죽이 한 그릇
하늘 빛에 구름이 함께 떠도네.
주인아 면목 없다 말하지 마오
얼비쳐 오는 청산 내사 좋으니.
四脚松盤粥一器
天光雲影共徘徊
主人莫道無顔色
吾愛靑山倒水來
가난한 살림에 지나는 과객에게 먹다 남은 묽은 죽 한 그릇을 내오는 것을 보고 지었다는 시이다. 죽이 얼마나 묽었으면 앞산의 그림자가 얼비쳤을까. 이런 시도 점잖은 체면에서 보면 되잖케 보이기 마련이어도, 자신의 인생을 물끄러미 관조하는 잔잔한 서글픔이 있어 좋다.
천황씨가 죽었느냐 인황씨가 죽었느냐
푸른 산 나무마다 온통 소복 입었네.
밝는 날 햇님보고 조문하게 한다면
집집 처마 마다 눈물이 뚝뚝.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明日若使陽來弔
家家畯前淚滴滴
눈을 노래한 〈雪〉이란 작품이다. 소담스런 서설이 내려 온 세상은 하얀 素服으로 갈아 입었다. 하얀 소복을 입고 흰 눈이 내린 날 아침에는 아이들을 울리지도 말자던 노천명과는 달리, 시인은 엉뚱하게 흰 눈에서 주재자의 죽음을 떠올리고, 햇볕에 녹아 떨어지는 낙수를 눈물로 환치시켜 버린다. 시상을 전개하는 시적 발상도 참신하려니와, 그의 무기력한 나른함과 뿌리 깊은 비애의 정조가 가슴을 씁쓸히 적신다. 그는 뒷날 자신의 평생을 돌아보며 34구의 蘭嗸平生詩〉를 남겼다. 그 끝 네 구절은 이렇다.
궁한 신세 속인들의 白眼視만 받았고
세월 가며 터럭만이 시들었구나.
돌아가기도 어렵고 머물기도 어려워
몇 날을 길 가에서 서성였던고.
身窮每遇俗眼白
歲去偏傷撖髮蒼
歸兮亦難佇亦難
幾日彷徨中路傍
김삿갓의 해학의 뒤안에는 이럴 수도 저러지도 못하는 체념의 悲感이 감돌고 있다. 연구자들은 김삿갓이 특히 科體詩에 능하여 200여수를 남긴 것을 특기한다. 과체시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과거 시험장에서 요구하는 형식이 지극히 까다로운 詩體이다. 김삿갓이 장난질의 와중에서도 그 많은 과체시를 남기고 있다면 그 속에 담긴 숨은 뜻은 무엇일까? 나도 마음만 먹으면 體制가 요구하는 교과서적인 시 쓰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는 절규는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의 웃음은 슬프다. 그 슬픈 웃음의 뒤안은 외면한 채, 자꾸 가십적인 살을 붙여 그를 봉이 김선달류의 '비천한 재담가'로 만드는 것은 이즘 사람들의 악취미다.
漢詩 최후의 광경
"해체시는 전통미학과 기존문화를 해체하고 기존의 인간관도 해체시키려는 일종의 무규범성으로서의 소외 양상이었다. 해체시는 언어에 대한 불신으로 세계에 대한 불신을 효과적으로 표명했다. 욕설, 야유, 아이러니의 비틀린 언어도 소외의 주목할 만한 시적 양상이다."(p.115)
슬프다 문벌은 모두 훌륭한 집안으로
세월에 헛되이 늙으니 홀로 구슬프도다.
오로봉 아래에서 이치 논하며 앉았자니
세상 사람 모두 도를 안다 일컫네.
可憐門閥皆佳族
虛老風塵獨可悲
五老峯下論理坐
世人皆稱道也知
위 시는 《閒中記聞》에 실려 있다. 한 사람이 시덥잖은 제 집안과 학문을 지나치게 뽐내므로 林悌가 조롱하여 지었다는 설명이 붙어 있다. 五老峯 아래에서 理를 논하며 앉아 있는 늙은이가 있다. 훌륭한 문벌의 자손으로, 이제는 영락해서 늙고 고단한 인생이다. 이야기야 예전 좋은 시절 조상 자랑이거나, 그렇고 그런 道學 이야기일 테지만, 영문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道人으로 일컬으며 높이고 있다는 이야기다. 몰락한 양반님네의 안쓰러운 허세를 풍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시는 독음으로 읽어야만 본뜻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슬프다 문벌은 모두 개가죽이요
세월에 헛되이 늙은 도깨비로다.
오로봉 아래에 노루가 앉았는데
세상사람 모두들 도야지라 일컫네.
可憐門閥개가죽
虛老風塵도깨비
五老峯下노루坐
世人皆稱도야지
'모두 훌륭한 족속(皆佳族)'이 사실은 '개가죽'이었고, '홀로 구슬프도다(獨可悲)'를 독음으로 읽으니 '도깨비'가 되었다. '이치를 논함(論理)'는 들짐승 '노루'가 되고, '도를 안다(道也知)'는 기실 '도야지' 즉 돼지였을 뿐이다. 도대체 문벌이니 도학이니 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개가죽이요 도깨비 같이 허상만 있고 실상은 아무 것도 없는 빈껍데기가 아니던가. 노루를 보고 도야지라 하는 세상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또 어떠한가. 시인은 기실 그를 아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운 것이 아니라 돼지 같은 놈이라고 욕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또 《俚諺叢林》에는 오성 이항복이 지었다는 시가 실려 있다.
오늘 아침 남의 수레를 빌려 타다
홀연이 떨어져서 뒤꼭지가 깨졌네.
장안 큰 길에서 에고에고 울자니
세상 사람 모두다 미치광이라 하더라.
今朝借乘남의襄
忽然落地꼭뒤傷
長安大道에에哭
世人皆稱미치狂
언문진서 섞어作으로 칠언절구를 지었다. 내용이야 뭐 대단한 것이 있을 리 없고, 다만 말을 씹는 재미가 있을 뿐이다. 이것이 구한말에 오면
사랑 문간에 처녀가 있는데
무던한 얼굴에다 가녀린 허리.
사람을 한번 보고 얼른 숨으니
마치 구름 사이 달이 숨는듯.
舍廊곗집處女在
무던顔色가는腰
사람一見얼는隱
마치雲間月明消
로 진전된다. 李沂가 《대한자강회월보》에 소개한 것이다. 그 사이에 김삿갓의 "데걱데걱登南山, 씨근벌떡息氣散. 醉眼朦朧굽어觀, 울긋불긋花爛漫"이나, "靑松등성듬성立, 人間여기저기有. 所謂엇뚝빗뚝客, 平生쓰나다나酒"와 같은 작품들이 또 있으니, 대개 이러한 파격시도 어느 순간 평지돌출 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의 집적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한시의 해체가 종당에 가면 아예 한글로 한시를 짓는 이른바 '언문풍월'로까지 발전한다. 언문풍월은 예전 주로 궁녀들이 한시의 작법을 응용하여 나름의 규칙을 세워 짓던 일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다. 김삿갓의 시에도 '타'를 운자로 해서 "사방기둥붉어타, 석양행객시장타. 네절인심고약타"와 처럼 3구가 낙구된 채로 전해지는 언문풍월이 있다. 그러나 언문풍월이 본격적인 창작을 보게 된 것은 개화기에 와서인데, 1900년대에는 거의 시조문학과 경쟁관계를 유지할 만큼 기세를 떨쳤다. 여러 잡지에서는 운자와 제목을 주고 현상공모를 하고, 응모작 중에 가작 수백 편을 모아 《諺文風月》이란 책을 출판하는 성황을 이루기까지 했던 것이다. 언문풍월은 쉽게 말해 기존 한시의 작법을 패러디하여 만든 국문시가이다. 다음은 대한매일신보에 실렸던 작품이다. 제목은 〈자명종〉이고, 운자는 '가나다'이다.
두개바늘놀아가
글자마다치노나.
땅땅치는그소리
늙을로자부른다.
큰 바늘 작은 바늘이 쉬지 않고 돌면서 정시마다 종을 쳐댄다. 그 소리는 마치 늙음을 재촉하는 소리로만 들린다는 재치다. 1.2.4구의 끝에 운자를 차례대로 달았다.
참대붙인종이가
흔들면은바람나
몹시더운여름에
친한벗이네로다
제목은 〈부채〉과 운자는 역시 '가나다'이다. 운자가 언제나 '가나다'인 것은 아니다.
명주비단고운올
요리조리가는골
어김없는네로다
좋은솜씨지은솔
제목은 〈바늘〉이고, 운자는 '올골솔'이다. 올이 고운 명주비단에 요리조리 골을 내어 바느질을 하고 나니 솔기마다 솜씨가 정갈하다는 내용이다. 이렇듯 언문풍월은 일상적인 여러 소재들을 가지고 운자에 있어서도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까지 다양하게 창장되고 있다. 특히 이것은 한시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없이 재치만으로도 창작이 가능했으므로, 특정계층에 국한되지 않고 폭넓은 작가층을 가졌다는데서 또 다른 의의를 갖는다. 이 시기에 와서 한시는 이제 더 이상 감당해 낼 역할을 잃고 말았던 것이다.
의식의 변화는 내용의 변모를 가져오고, 내용의 변모로도 의식의 변화를 감당할 수 없을 때 형식이 변한다. 기존 한시의 굳건한 문법은 개화기의 발랄한 실험정신 아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해체의 양식들을 선보였다. 다만 그것이 치열한 시정신에 의해 안받침 되지 못한 결과, 새로운 형식들은 일과성의 장난기로 그치고 말았지만, 이러한 실험들이 시사하는 바는 심장하다. 해체주의의 80년대를 넘어, 포스트모더니즘이 공룡처럼 다가와 있는 오늘의 시단에서도 새로운 담론의 방식에 대한 모색은 활발히 계속되고 있다. 기존 언어에 대한 회의와 불신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시의 문법을 찾아 나서려는 노력도 힘차다. 그러나 시의 새로운 말하기 방식이 그 실험적 의도의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인식하는 시대정신이나, 치열한 시정신에 의해 안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희필의 붙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잡체시나 파격시가 오늘의 시단에 던지는 정신사적 연관이 있다면 이 또한 아마도 이러한 언저리에 놓여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