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창세기 50 : 15 – 21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려 하셨나니”(19,20)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열한 번째 아들로서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이며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여러 아들들보다 더 사랑하였습니다.(창37:3)
어린 요셉에게 장차 형들과 아버지 어머니까지도 구해 주게 될 것을 여호와께서 꿈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창37:5-11) 요셉은 ‘형들의 곡식단이 내 곡식단을 둘러서 절하며,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라’는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했습니다.(창37:7,9)
그러나 형들은 요셉의 꿈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자고 하며 어린 요셉을 팔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끌려가서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었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므로 거짓 누명을 둘러쓰고 옥에 갇혀 죄수가 되어 13년 동안을 고난을 당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고난 당하는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인 보디발은 종인 요셉에게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다’고 말하며 가정 총무로 삼았습니다.(창39:3,4) 옥에 갇혔을 때 간수장도 ‘여호와께서 요셉에게 함께 하심으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말했습니다.(창39:23)
요셉은 17살에 애굽으로 팔려가서 30살이 되기까지 13년은 가장 혈기 왕성한 청년의 때를 인간적으로 허무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13년은 요셉에게 허무한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금강석을 용광로에 넣고 연단하여 순금을 찾는 것처럼, 혹독한 시련기였습니다. 요셉의 13년은 모든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30살을 전후로 13여 년은 일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심을 받으면 그의 일생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 방향을 잃게 되면 그의 남은 생은 어려운 삶이 됩니다.
때가 되어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은 해석하지 못한 바로 왕의 꿈을 요셉에게 하나님의 영이 감동하셔서 해석하게 하셨습니다.
바로 왕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라고 하며 요셉에게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 뿐이라’고 하며 애굽의 총리로 임명했습니다.(창42:37-41)
요셉의 13년은 앞이 보지 않는 캄캄한 밤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요셉을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셨습니다. 고난 없는 성공은 없습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아버지의 사랑만 받았다면 요셉은 이름 없는 사람으로 살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이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의 섭리로 알았습니다.
요셉은 형들 때문에 자신이 고난 당한다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형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했다는 말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요셉이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의 섭리로 알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셔서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창39:3,4;39:23)
고난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며 위로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큰 손해를 보았다든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누구를 탓하거나 미워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알고 하나님만을 믿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셉이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함께하신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고난 중에도 형통하게 도와주십니다.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요셉의 형들도 이 진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 아니할까’하고 크게 염려했습니다.(15)
여기서 우리는 죄인의 일반적인 심리를 알 수 있습니다. 죄의 기억은 사람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늘 불안하게 만듭니다. 보복을 두려워한 것은 잘못을 솔직히 시인한 점은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죄란 용서를 받았을지라도 항상 마음을 두렵게 만듭니다.
형제들 모두가 요셉에게 가지 않고 한 사람을 보내어 그들의 뜻을 전달하게 한 것을 보면 과거에 저질렀던 일에 대한 보복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형들을 대표로 한 사람은 가서 요셉에게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유언과 같은 말을 하면서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16)
요셉은 형들을 이미 용서하였음에도(창45:4-8) 형들이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서 슬피 울었습니다.
요셉이 울었다는 말을 듣고 형제 모두는 두려움을 버리고 친히 요셉에게 와서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18)라고 말했습니다. 형들은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요셉이 어렸을 때 꿈이 성취된 것을 의미합니다.(37:5-11)
요셉은 형들에게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19)라고 한 말은 구속사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주께서 원수를 갚는 것은 내게 있다’(롬12:19)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심판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갚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요셉은 ‘당신들은 나를 행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다’(20) 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형들을 통해서 자신을 팔았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을 판 죄를 묻고 잡아 가두고 죽였다면,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내가 복수하고 갚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형들은 나를 팔았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나를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시고, 애굽 백성을 흉년에 굶어 죽지 않게 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형제들의 가족을 살리게 하셨다’는 말은 요셉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요 신앙고백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고 말했습니다.
요셉으로부터 신앙적인 고백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형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다시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21)라고 말하며 형들을 안심시켜주었습니다.
죄인은 이처럼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가는 법입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잠28:1)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겠다’고 말하며 간곡한 말로 위로했습니다.(21)
요셉은 심한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있는 형제들에게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형들의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까지 양육하겠다는 자비를 보여 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셉의 말은 새롭게 한 말이 아닙니다. 이미 형제들에게 애굽으로 내려오라고 했을 때 약속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내가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의 좋은 땅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오고 너희 아버지를 모셔오라’(창45:11, 18,19)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이미 형들의 죄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양육하며 안전하게 보살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오히려 선으로 되돌려 주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참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그냥 해 본 말이 아닙니다. ‘간곡한’이란 ‘심장’이란 뜻으로 거짓이 없는 개인의 깊숙한 감정이나 의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용서는 물론이고 마음과 정성을 다해 속 깊은 위로까지 했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성도는 원수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도 가질 뿐 아니라 자비를 베풀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성인들 가운데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저는 요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윗도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잘 섬겼고 믿음으로 자랐습니다. 다윗이 고난당 할 때도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고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쟁에 나간 충신의 아내와 동침하고 그의 남편을 죽였습니다. 나단 선지자로부터 크게 책망을 듣고 회개를 하였지만 그로 인하여 그의 가정에 많은 화를 당하게 된 것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실수나 잘못을 범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음에도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39:9)라고 거절했습니다. 오히려 악한 여인으로하여금 거짓 누명을 둘러쓰고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무죄를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요셉도 자신의 무죄함을 말하지 않고 수년 동안 죄수로서 옥사리를 한 것도 하나님의 뜻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아야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과 언약 맺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으로서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물며 자신을 판 형들까지도 용서하며 자비를 베풀어 준 것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의 용서와 사랑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공동체를 탄생시키는 중요한 촉매가 되었습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의 결속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중심으로 이스라엘 나라가 형성되었습니다.
요셉의 고난으로 인하여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였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가나안 땅을 분배받은 것은, 우리가 들어가서 영생할 새예루살렘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상징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삽시다. 그리고 주님 오시는 날 우리 모두 새예루살렘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합시다.
출처: ╋예수님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허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