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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장 : 유다의 멸망
본장은 유다 나라 멸망기에 통치했던 네 명의 왕에 대해 증거한다.
[1-4절] 국민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세워 그 부친을 대신하여 예루살렘에서 왕을 삼으니 여호아하스가 위(位)에 나아갈 때에 나이 23세더라. 저가 예루살렘에서 치리한 지 석달에 애굽 왕이 예루살렘에서 그 위(位)를 폐하고 또 그 나라로 은 1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며 애굽 왕 느고가 또 그 형제 엘리아김을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을 삼고 그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그 형제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잡아갔더라.
요시야가 죽은 후 왕이 되었던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23세에 왕이 되어 단지 석달 동안 통치하였다.
열왕기하 23:32는 여호아하스가 그 열조들처럼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고 증거한다.
[5-8절] 여호야김이 위(位)에 나아갈 때에 나이 25세라. 예루살렘에서 11년을 치리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치고 저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느부갓네살이 또 여호와의 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바벨론에 있는 자기 신당에 두었더라.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그 행한 모든 가증한 일과 그 심술[그를 대적한 것(NASB, NIV), 그에게 해가 된 것]이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그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애굽 왕 느고에 의해 세움을 받았던 여호야김은 왕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가 25세이었고 예루살렘에서 11년을 다스리며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그 당시에는 바벨론 제국의 세력이 강해지고 확장되었고 애굽의 세력은 약화된 상태이었다.
열왕기하 24:7은, “애굽 왕이 다시는 그 나라에서 나오지 못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이 애굽 하수에서부터 유브라데 하수까지 애굽 왕에게 속한 땅을 다 취하였음이더라”고 말하였다.
그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유다 나라를 쳤고 유다 왕 여호야김을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갔고 느부갓네살은 또 성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그의 신당에 두었다.
이때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끌려갔다(단 1:1-7).
[9-10절] 여호야긴이 위(位)에 나아갈 때에 나이 8세라. 예루살렘에서 석달 열흘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세초에 느부갓네살이 보내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여호와의 전의 귀한 기구도 함께 가져가고 그 아자비 시드기야를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을 삼았더라.
본문은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나아갈 때 나이 8세이었다고 말하나, 열왕기하 24:8은 여호야긴이 왕이 된 나이가 18세이었다고 기록하였다.
사본 필사와 전달 상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아마 18세가 맞을 것 같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석달 열흘을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그런데 연초에 느부갓네살은 군대를 보내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여호와의 전의 귀한 기구도 함께 가져가고 그 아자비 시드기야를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을 삼았다.
‘아자비’라는 원어(아키우)는 ‘그의 형제’나 ‘그의 친척’이라는 뜻이지만(BDB), 열왕기하 24:17은 시드기야를 그의 ‘아자비(도도)[삼촌]’이며 그의 본래의 이름이 맛다니야라고 증거했고, 또 예레미야 37:1은 그를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라고 증거했다.
[11-21절] 시드기야가 위(位)에 나아갈 때에 나이 21세라. 예루살렘에서 11년을 치리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의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였으며 느부갓네살 왕이 저로 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케 하였으나 저가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본받아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 백성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로 그 백성에게 미쳐서 만회[교정]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저희를 다 붙이시매 저가 와서 그 성전에서 칼로 청년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백발노옹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기명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을 헐며 그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 모든 귀한 기명을 훼파하고 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종들]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70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요시야의 아들이며 여호야긴의 삼촌인 시드기야는 왕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21세이었고 예루살렘에서 11년을 다스리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의 앞에서 겸비치 않았고 느부갓네살 왕이 그로 그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케 했으나 그가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마침내 바벨론에게 패망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죽고 성전과 궁궐은 불탔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이것이 유다의 멸망이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은 노예 생활이었다. 포로 생활은 다 그러할 것이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이 네 명의 왕들은 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들이었다.
특히, 여호야김과 여호야긴과 시드기야는 전왕이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보고서도 깨닫지 못하고 악을 행하였다.
그들의 악은 시드기야 때에 가장 심했다.
시드기야 때는 제사장의 어른들과 백성이 크게 범죄하여 이방인들의 가증한 일들을 본받고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고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의 말을 멸시하고 들으려 하지 않았고 도리어 그들을 욕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왕들을 이방 나라에 잡혀가게 하셨다. 시드기야는 자기의 눈 앞에서 자기의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아야 했고 그 자신의 두 눈이 뽑혔고 사슬로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갇혔다(왕하 24:7; 렘 52:11).
[22-23절]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고레스는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허락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징벌하셨지만, 그런 중에서도 그의 긍휼을 버리지 않으셨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로만 가능하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유다의 왕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게 행하다가(5, 9, 12절)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는데 멸망의 이유는 하나뿐 곧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치 말고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에 대해 참으로 진노하시고 징벌하신다.
물론,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것이지만, 회개는 사람이 언제나 하고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지 않으시면 회개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바사 왕 고레스를 감동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셨고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다.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는 사람의 전적 부패와 무능력을 보여준다.
온 인류는 영적으로 죽은 상태이며 죄 가운데 살고 있고 하나님의 긍휼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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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1) Matthew Poole의 성경주석, 2권, 774-775쪽.
2) 히브리어 전통본문은 디밧으로 되어 있으나(BH3)(NASB), 약 30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헬라어 70인역과 창세기 10:3은 ‘리밧’이라고 되어 있다(KJV, NIV는 이 본문을 따름).
3) 땅이 나뉘었다는 말은 바벨탑 사건으로 인해 인류의 분산되었음을 뜻한다고 보나, 혹 지구의 대륙들이 분리되었음을 뜻할지도 모른다.
4)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예언에 관해서는,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야곱에게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다(창 35:11). 또 신명기 17:14에서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거할 때 그들 주위의 열국같이 그들 위에 왕을 세우려는 뜻이 날 것을 예견하며 말했다. 모세 당시에 주변국들에는 왕이 있었다.
5) 사무엘상 17:12, 14는, 이새에게 여덟 아들이 있었고 다윗은 말째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형들 중 하나는 아마 양자(養子)이었을 것이다.
6) 23절은 원문에 주동사(와익카크)가 3인칭단수이기 때문에 옛날 영어성경(KJV)은, “또 그는[야일을 가리킬 것임] 야일의 성들과 함께 그술과 아람과, 또 그들로부터 그낫과 그 성들, 모두 60을 취하였으며”라고 번역하였다. 근래의 영어성경들(NASB, NIV)은 한글개역과 같다.
7) 본장에는 ‘게르손’이 원문에서 1절에서만 기르숀으로 표기되었고 16, 17, 43, 62, 71절에서는 게르숌으로 표기되었다(KJV, NASB). 창세기 46:11; 출애굽기 6:16; 민수기 26:57 등에는 다 기르숀이다.
8) 헬라어 70인역은 oJ prwtovtoko Sani;, kai; !Abiav(그 맏아들 사니와 아비아이며)이고, 라틴어 벌게이트역은 filii Samuhel primogenitus Vasseni et Abia(사무엘의 아들들은 맏아들 바세니와 아비야이며)이다.
9) 어떤 영어번역들은 ‘사자들’을 보냈다고 번역하였다(NASB, NIV).
10) 사무엘하 2:10의 ‘두 해 동안’이라는 표현은 이스보셋의 총 통치기간을 말하지 않고 그가 통치한 지 2년 되는 때에 그의 신하들과 다윗의 신하들의 싸움이 있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Poole).
11) 그때가 약 20세 전후라고 가정할 때 다윗은 10년 동안 사울의 칼을 피하여 유랑생활을 하였고, 사울이 죽은 후 유다에서 7년 6개월을 유다의 왕으로 통치하였기 때문이다.
12) 이 구절은 마소라 학자들이 로쉬 핫솰리쉼 (장교들의 두목)(KJV, NIV)이라고 읽으라고 제안하지만(케레), 원문은 로쉬 핫쉘로쉼 (삼십인의 두목)(NASB)이라고 쓰여져 있다(케딥).
13) 원문에서 5절에 “내가 만든”이라는 말(아시시)을 보면, 4-5절의 내용은 다윗의 말로 볼 수 있다(NIV; KJV은 5절을 다윗의 말로 번역함).
14) 10-31절에서, ‘형제와’라는 구절은 모두 ‘형제가’로 고쳐야 한다(KJV, NASB, NIV). 각 반은 열두 명씩이며, 모두 합쳐서 288명이다(7절).
15) 콜 아쉐르 하야 바루아크 임모라는 구절을 어떤 영어성경들(KJV, NASB)은 “심령으로 가진”이라고 번역하지만, 19절에 비추어 볼 때 “성령의 가르치신 모든”이라는 번역(NIV)이 타당하다.
16) 그룹 천사를 ‘수레’(메르카바)라고 표현한 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사용하셔서 이동하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7) 성경학자들은 대체로 유다 왕 아사의 통치연대를 주전 910년-869년경으로 보고, 이스라엘 왕 바아사의 통치연대는 주전 908년-886년으로 보기 때문에, 아사 왕 36년은 주전 874년으로 바아사 이후 오므리 때(주전 885- 874년)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아사의 통치연대가 바아사와 많이 중첩되기 때문에 북방 이스라엘을 바아사의 왕국이라고 부른 것일 것이다.
18) 42세는 열왕기하 8:26대로 22세라고 수정해야 할 것이다(NASB, NIV). 역대하 21: 20은 여호람이 32세에 즉위하여 8년간 다스렸다고 증거하므로 그가 죽을 때 나이가 40세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째 아들 아하시야는 42세에 왕위에 오를 수 없다. 이것은 성경사본을 필사하는 자의 오류이었을 것이다. 만일 20이라는 히브리어(에스림)가 원본에 히브리어 카프(כ)라는 말로 표기되었고, 40이라는 히브리어(아르바임)가 멤(מ)이라는 말로 표기되었다면, 필사자가 그 두 글자를 착각하기 쉬웠을 것이다.
19) 웃시야는 주전 790년-739년경에(52년간) 통치했다고 보인다. 이 중, 주전 790년-767년은 부왕 아마샤를 대신하여 통치했고, 주전 751년-739년은 아들 요담이 그를 대신하여 통치하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