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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유 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 유 1: 2 긍휼과 평강과 사랑
유다서
개 요
서 론
유다서의 저자는 열두 사도 중 하나인 유다(눅 6:16)이거나 혹은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막 6:3)라고 본다. 그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라고 말하였다(1절).
유다는 17절에서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이 말은 자신을 사도들과 구별시키는 것 같다. 그러면 후자가 더 타당할 것이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였고 사도적 권위를 가진 인물이었으므로(행 15:13; 갈 1:19; 2:9) 그의 동생 유다가 본 서신의 저자라면 그는 자신을 '야고보의 형제'라고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주후 2세기경에 벌써 허마와 폴리갑은 본 서신을 인용하였다.
초대교회는 본 서신을 영감된 책으로 받아들였다. 본 서신의 9절과 14절에 인용된 말들이 모세의 승천이나 에녹서 같은 가경서(假經書)를 인용했으므로 영감 된 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있지만, 그것들이 어떤 공통적 원천인 구전(口傳)에서 인용된 것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본 서신의 저작 연대는 베드로후서가 기록된 지 여러 해 후일 것이다.
디이슨은 그것을 주후 75년경으로 본다. 본서의 특징적 주제는 '진리를 위한 싸움'이다. 3절,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공통적 구원에 관하여]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유다는 이단들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였다(4-19절).
본서의 교훈은 마지막 때를 당하여 배교와 타협과 혼란이 극심한 오늘날 매우 적절하고 요긴하다. 우리는 우리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을 위해 이단들을 대항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
영지주의에 대한 경계
1. 인사말 ( 1: 1 - 2 )
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②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유 1: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
본 절은 저자와 수신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유다는 두 가지 칭호를 사용하여 수신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유다'는 8명이 등장하나 본서의 저자는 예수와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를 의미한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라고 부른다. '야고보의 형제'라는 말은 야고보가 당시에 유력한 인물이었음을 암시한다. 그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신앙과 순종을 나타낸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다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고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곧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도 그러하시다.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주님으로 믿으며 그에게 절대 순종하기를 원한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종'(둘로스)는 오직 주인의 뜻대로만 행해야하는 소유물로서 주인의 재산에 불과한 존재를 가리킨다(Cranfield).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노예와 포로 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을 자신의 핏값으로 사셔서 현재 자신의 종으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 고전 7: 23 -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단순히 모든 그리스도인을 지칭할 수도 있지만 그리스도인 사역자인 '사도'를 지칭할 때도 사용되었다.
* 롬 1: 1 -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 벧후 1: 1 -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본 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유다가 주와 한 가족으로서의 권위보다는 주께 봉사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역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Bauckham).
유다는 육신적인 혈연관계로 보면 예수님의 친동생으로서 우월감을 가질 수 있으나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것은 유다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구속주로 믿은 증거이다. 유다는 자기를 바로 알고, 신앙 안에서 겸손하였으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영적으로 바로 깨달았다.
(1) 종의 특징
① 소유권이 없다.
모든 것이 주인의 소유이다.
② 주권이 없다.
모든 것을 주인의 뜻대로만 해야 한다.
③ 자기를 위하지 않고 주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
2]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형제'(아델포스)가 혈연적인 형제를 의미하지 않고 동역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여 본서의 저자가 '유다 바사바'(Jude Barsabbas)라고 주장한다. (Ellis).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아델포스'는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정도이지 그 이상, 즉 사역자를 지칭하지는 않는다. (Barsabbas).
그러기에 본문의 '야고보의 형제'를 '야고보의 동역자 중의 한사람'으로 해석하는 것이 부당하며 혈연적인 형제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유다'와 '야고보'가 혈연적인 한 형제로 나타나는 곳은 신약 성경 막 6: 3뿐이다.
* 막 6: 3 -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저자인 '유다'가 주의 형제인 '야고보'의 형제임을 강조한 것은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주의 형제로서 잘 알려져 있는 '야고보'와 혈연적인 형제임을 드러냄으로 자신의 정체(正體)에 대해서 밝히기 위함이다.
3] 부르심을 받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저자인 유다는 수신자들이 사는 지역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갖는 특징을 세 가지 호칭으로 설명하고 있다.
1절 하 반절을 다시 번역하면,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거룩해졌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키심을 얻었고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이다.
(1) 유다는 이 편지를 받는 자들을 세 마디로 표현한다.
①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거룩해졌다(헤기아스메노이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들의 죄를 씻으셨고 그들을 거룩케 하셨다.
②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키심을 입었다.
세상이 비록 험하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키심을 입었다. 요한복음 10:28에 보면, 주 예수께서는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③ 그들은 부르심을 입었다.
그것은 죄인들의 마음을 감동하셔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와 믿게 하신 것을 말한다. 로마서 1: 6-7,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2) 부르심을 입은 자
이것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을 가리키던 것이 그리스도에게 전이된 호칭이다.
* 사 41: 9 -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 사 42: 6 -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 사 48: 12, 15 - ⑫ 야곱아 내가 부른 이스라엘아 내게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나는 마지막이라. ⑮ 나 곧 내가 말하였고 또 내가 그를 부르며 그를 인도하였나니 그 길이 형통하리라.
* 사 49: 1 - 섬들아 내게 들으라. 먼 곳 백성들아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으며
* 사 54: 6 -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 호 11: 1 -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이 호칭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과정을 나타내는 용어로 그리스도인과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Kelly).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며 하나님의 새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생활과 모습을 통해 나타내야 한다.
* 롬 1: 7 -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 고전 1: 2 -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 빌 3: 12-13 - ⑫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⑬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 벧전 1: 15 -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 벧후 1: 10 -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 계 17: 14 -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3)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엔 데오 파트리)는 해석상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유다가 본 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행한 자신의 사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의 하나님의 사랑을 진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에서'(엔)은 도구격으로 사용된 것으로 '하나님에 의해 사랑을 받는'이란 의미를 지닌다.
'사랑을 얻고'(토이스 에가페메노이스)는 완료 시상이다. 이는 이전에 주어졌던 하나님의 사랑이 지속적으로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호칭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 신 7: 7-8 - ⑦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⑧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 대하 20: 7 - 우리 하나님이시여1 전에 이 땅 주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을 주께서 사랑하시는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원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 사 5: 1 -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 사 43: 4 -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 렘 31: 3 -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 호 11: 1 -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 호 14: 4 -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신약에 와서 새 이스라엘이 된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칭호가 되었다.
* 골 3: 12 -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 살전 1: 4 -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 살후 2: 13 -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4)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
앞서 언급된 수신자들에 대한 두 가지 칭호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간을 나타내는 반면 본문의 칭호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을 드러낸다(Cranfield).
'지키심을 입은 자들'(테테레메노이스)는 완료 시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안전한 상태에 있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다.
* 요 17: 11, 15 - ⑪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⑮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 살전 5: 23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벧전 1: 4-5 - ④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유다가 이 칭호를 사용한 것은 당시 수신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거짓 교사들의 영향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수신자들을 보호하심을 분명히 밝히고 위로하기 위함이었다(Bauckham).
유 1: 2 긍휼과 평강과 사랑 -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
본 절은 수신자들을 위한 유다의 기원이다.
유다는 이 편지를 받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평안과 사랑이 더욱 많기를 기원한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사랑을 입어 구원을 받은 자들이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주시는 영육의 평안을 소유하고 누리는 자들이다.
그렇지만 세상이 너무 악하고 우리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긍휼과 평안과 사랑은 날마다 시간마다 우리에게 더욱 많이 요구되는 것이다.
1]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긍휼'은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친절한 태도와 동정을 의미하며,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고 그를 의지하는 가운데 주어지는 안녕을 의미하고,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호의와 관대함을 가리킨다(Blum).
'긍휼'과 '평강'은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하는 유대인들의 인사법이었다. 유다는 비록 '긍휼' 속에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을 더 첨가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기원하는 초대교회의 독특한 인사를 하고 있다(Bauckh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