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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도행전 2:33)
싱클레어 퍼거슨은 이 구절을 기독론의 관점에서 탁월하게 조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과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만유의 주(Lord)로 대관식을 치르셨을 때, 성부 하나님은 그 구속 사역의 완성을 기뻐하시며 승리의 전리품으로 '약속하신 성령'을 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만유의 통치자가 되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 된 교회를 향해 그 성령을 아낌없이 부어주신 우주적 하사(下賜) 사건이 바로 오순절입니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 강림은 '그리스도께서 현재 우주의 왕으로 통치하고 계신다'는 가장 확실하고도 영광스러운 증거입니다.
3. 성령의 '탐조등(Floodlight)' 사역: 오직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기적을 행하거나 교회의 외적 규모를 팽창시키는 것입니까? J.I. 패커는 『성령을 아는 지식』에서 현대 성령론에 길이 남을 탁월한 비유를 제시합니다. 바로 성령의 '탐조등(Floodlight) 사역'입니다.
어두운 밤, 웅장한 건축물을 비추는 탐조등을 생각해 보십시오. 탐조등의 목적은 빛 그 자체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 빛을 숨긴 채 건물 전체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드러내는 데 있습니다. 성령의 사역이 이와 같습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요한복음 16:14)
성령은 결코 자신을 스스로 조명하거나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십니다. 철저히 자신을 감추시고, 오직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과 구원의 완전성'만을 온 교회가 주목하도록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십니다. 따라서 참된 오순절의 영이 임한 교회의 표지는 성령 자체에 대한 열광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압도적인 찬양과 십자가 복음의 선명한 선포에 있습니다.
4. 바벨탑의 저주 역전과 새 언약 교회의 탄생
구속사적 관점에서 오순절 사건은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심판에 대한 완벽한 신학적 역전(Reversal)입니다.
인간의 교만으로 언어가 혼잡해지고 민족이 흩어졌던 바벨탑의 저주가, 오순절 날 마가 다락방에서 각기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복음)을 알아듣게 되는 기적을 통해 치유되었습니다. 이는 성령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종과 자유인의 장벽이 무너지고, 모든 민족을 하나의 새로운 인류(New Humanity) 즉, '그리스도의 보편 교회(Catholic Church)'로 재창조하시는 위대한 사역의 출발이었습니다.
또한,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했던 바, 돌판에 새겼던 율법을 이제는 성도들의 부드러운 마음비에 직접 새겨 주시는 '새 언약의 내면화'가 오순절을 기점으로 영구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5. 제10강 결론: 기독론적 성령론의 완성
성령론의 전반부인 제1, 2부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명확한 결론을 내려야 합니다.
성령은 삼위일체의 완전한 하나님이시며(1부), 성육신부터 십자가, 부활, 그리고 보좌 우편의 통치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구속사를 성취하셨습니다(2부). 이제 오순절 강림을 통해 성령은 하늘의 영광을 이 땅의 교회 안으로 가져오셨습니다.
이 거대한 구속사적 기초가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개개인의 내면에 일어나는 구원과 성화의 신비를 다루는 '구원론적 성령론(3부)'으로 안전하게 진입할 수 있습니다. 참된 부흥과 영적 권능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령을 끌어내리는 데 있지 않고, 성령의 탐조등이 비추는 십자가의 영광 앞에 내 전 존재를 온전히 굴복시키는 데 있습니다.
(다음 제11강부터는 제3부: 구원론적 성령론과 중생의 신비 - '전적 타락의 교리: 인간의 영적 무능력과 성령의 불가항력적 은혜'로 새롭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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