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는 야훼다:자유
탈출 서막
-끝과 시작:
창세기 마지막에 요셉은 이런 말을 남긴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끌어내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창세 50,24). 이 말은 언젠가 여기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탈출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렇듯 이집트로 들어오는 이야기는 요셉이 이끌었고 이집트에서 나가는 이야기는 이제 모세가 주도한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은 땅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었다면 그들은 민족적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센 정착 400년 후:
이집트로 들어갈 때 그들은 다 합해야 70여 병밖에 안 되었다. 그러나 고센 땅에 정착하면서이 가족 공동체는 부족 공동체를 넘어 민족 공동체로 성장하게 된다. 역사학자들은 이곳의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큐베이터 역할을 했다고 해석한다.
히브리인들은 왜 이집트의 반대 받는 표징과 박해를 받게 되었을까?
이집트에 팔아넘겨진 요셉은 일약 통치자 다음가는 권력을 가졌다. 그 배경으로 가족들은 성공적인 이집트 이민을 하였고 유대인 보호구역 고센 땅 정착하여 안정과 평화를 누렸다.(창세기 41,37~50장). 요셉과 그 형제들 즉 그 세대 사람들이 죽은 뒤에도, 그들은 번성하고 더욱 더 강해서 그 땅이 이스라엘로 가득 찼다. 권력과 세력(자손, 땅, 재산)의 증대와 풍요는 반대와 박해를 초래하게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 파라오와 이집트는 그들을 쓰디쓰게 만들었다.
-하늘이 낸 인물 모세
모세는 탈출기 2장부터 신명기 끝 34장까지 등장하는 구약의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제2 모세라고 한다.
-예비하심:
이집트 궁중에서 40년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모세는 이집트 관리가 자기 동포를 때리는 것을 보고 그를 살해한다. 이 일이 탄로 나자, 그는 미디안으로 도망쳐 40년간 양을 치는 목자로 생활한다. 하느님은 이렇게 모세를 40년간 광야에서 목자로 지내게 하신 것은 다 쓰임새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 길을 가야 했기 때문에 그 노하우가 필요했던 것이다.
탈출
-나는 야훼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이끌어내라고 명령하셨다. 표징을 요구하는 모세에게, “함께 있겠다”라고 하시며 야훼라는 이름을 가르쳐주셨다. 야훼란 “있는 나”란 뜻이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인격적인 신의 존재를 강력히 부정하면서 신은 인간의 나약함과 진화적 산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계시종교인 가톨릭은 하느님(신)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진화적 산물도 아니며, 영원히 살아계시며 분명히 존재하시는 분이며 언제 어디서나 항상 임재하시는 분임을 믿고 선포한다.
야훼란 히브리어로 ‘존재하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하여 하느님 존재와 임재의 의미를 담고 있다.
1. 존재存在:
구약성경 탈출기 3장 14절에서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을 물었을 때, 하느님은 히브리어로 "에흐예 아셰르 에흐예(Ehyeh Asher Ehyeh)"라고 답하셨다. 문자적 의미: "나는 스스로 있는 나다(I AM WHO I AM)" 또는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하느님은 창조주로서 이 세상 모든 만물을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하지만 하느님은 아무런 기원 없이 자력 즉 스스로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다.
2. 임재臨在:
야훼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은 자유를 유린당하고 억압과 고통을 당하는 당신의 백성을 자유와 해방으로 이끄는 임마누엘 임재臨在의 하느님이시다.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이 드러나는 가장 강력한 역사적 사건으로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 사건(탈출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임재의 하느님은 창세기 첫 장부터 드러나며 특히 원죄 사건이후 즉시 구원을 시작하시는 모습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3.“내 이름은 ‘나는 있는 나다’”:
나는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네가 과거로 살아갈 때
과거의 실수와 후회 속에서 살아갈 때
너의 삶은 참으로 힘들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었던 나다(I was )가 아니기 때문이다.
네가 미래로 살아갈 때
미래의 문제와 두려움으로 살아갈 때
네 삶은 참으로 힘들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을 나다’(I will be)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때
네 삶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내가 여기 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나는 있는 나다’(I am) 이기 때문이다.
- 헬렌 말리코트-
-모세의 협조자들:
어머니 요케벳은 이집트 파라오의 명령인 아들을 낳거든 죽이거나 나일 강에 던져버리라고 한 명령에 불복하고 석 달을 숨겨 기른다. 집에서 더 이상 기를 수 없게 되자, 딸인 미르얌을 시켜 나일강 갈대 숲에 아기를 두고 이집트 공주가 발견하도록 하고 자신을 유모로 되도록 주도면밀하게 계획하고 성공시킨다. 요케벳은 일관되게 모세의 생모와 유모로 아들 모세를 철저히 히브리인으로 만들었다. 그러기에 그보다 10배가 넘은 40년간의 이집트 왕궁 교육도 그를 이집트인으로 만들지 못했다.
모세의 누이 미르얌이 있다. 모세는 용맹하고 지혜로운 어머니와 누이 덕분에 죽음의 강에서 건져지고 생모를 젖어미로 다시 상봉하게 된다. ‘미르얌(높아진 자, 비방하다)란 뜻이다. 성경은 아무나 그 이름을 기록해주지 않고 아주 특별한 인물들만 기록한다. 그녀의 이름은 탈출기에 먼저 제시 되는데(탈출 15,20) 아론과 모세와 같이 맹활약하여 ‘예언자’로 지칭된다. 이집트 탈출 전후 여성 지도자로 맹활약한 업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민수기에 이르러선, 아론과 함께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문둥병에 걸리게 되었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 하시지 않았느냐?” 주님께서 이 말씀을 들으시고 매우 진노하셨다. 주님은 아론 모세 미르얌을 만남의 천막으로 부르시어 일장 훈계를 내리신 다음, 모세의 권위를 가일층 세워주신다. 그리고 미르얌은 문둥병의 벌을 내리신다. 아론과 함께 사고를 쳤고, 심지어 아론이 ‘우리가 같이 했다“라고 공모를 자인했지만(민 12,11), 아론은 무탈하고 미르얌만 처벌되었다. 행간에 숨은 뜻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또 하나의 여인은 또 하나의 여인은 파라오의 공주이다. 그녀는 어느 날 목욕하러 강으로 나왔다가 왕골 상자에 담겨 떠내려가던 한 아이를 발견하고 모세를 건져내어 양자로 삼는다.
그녀는 히브리 사내아이를 모두 죽이라니 아버지 파라오의 명령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잔혹한 명령보다, 연민과 동정의 인간애, 막연한 하느님 경외심에 더 기울어져 아버지를 설득하여 히브리인 사내 아이 모세를 양자로 삼아 길렀다.
다른 또 하나의 인물은 그의 장인 이트로다. 그는 이트로, 르우엘, 호밥 세 가지 이름이 있다. 르우엘은 미디안 사제임을, 이트로는 모세의 장인임을 강조할 때 쓴 것 같다. 장인은 모세에게 미디안에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 길 안내자가 되어 주었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송사를 홀로 불감당하자, 행정조직을 편제하도록 조언한다. 이를테면 고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60714/pm 23:28
출처:차동엽, 행복코드 1 (꿈의 성취를 통하여); 위즈앤 비즈,164-181p
<덧붙임: 고딕체 부분: 편집입니다. 원문은 직접 책을 통해서 보세요!>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