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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8:22-66) 귀소본능의 오작동
오늘 읽은 말씀 중심으로 <귀소본능의 오작동> 이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는 것을 다 아실것입니다. 사람이 술이 만취해서 거의 의식불명의 상태, 판단력이 거의 무력화된 상태에서조차도 이상하게 집 앞까지 와서 대문에서 자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술이 취했어도 대문 옆에 있는 전봇대가 장롱인줄로 알고 옷을 벗어서 대문 앞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고 대문간이 화장실인 줄 알고 소변도 보고 그래도 집엔 찾아옵니다.
귀소본능은 이렇게 의식과 판단력이 흐려짐에도 불구하고 너무너무 머릿속에 깊이깊이 집으로 가는 길에 대한 기억이 박혀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움직여서 간다는 것이지요. 사람의 경우 이런 예를 들 수 있습니다마는, 제일 유명한 연어이야기 자기가 태어난 모천이 아주 실개천인데, 그 광활한 바다에서 살다가 이미 기억이 다 잊혀 질 것이고 바다도 강도 물이 계속 흘러가므로 자취가 남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돌아온다는 것이에요. 귀소본능입니다.
심지어는 조개도 하루 종일 밖에 나가 놀다가 저녁때가 되면 자기가 머물고 있는 그 바위 밑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자기가 정한 바위 밑으로. 이런 것을 귀소본능이라고 하는데, 영적으로 사람이 죄인으로 사는 게 이 귀소본능의 오작동입니다. 귀소본능이 작동을 하지 않아요.
에덴에서 선악과가 있었다는 것은 뭘 말하는 겁니까? 선악과, 선악판단,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이게 내게 일어나서 괜찮은지 아닌지,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다른 모든 사람들은 다 판단해요. 이건 안 된다. 된다. 그런데 나는 모르겠어요. 그게 뭘 말하는 겁니까?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은 언제나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일에 부딪치고 문제에 부딪치고 분별을 해야 되고 판단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언제나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라고 하는 이런 노래가사 있지 않습니까? 언제나 돌아가는데 어디로 돌아가느냐?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귀소본능이에요. 올바른 귀소본능입니다. 바르게 작동하고 있는 귀소본능. 그런데 사람들이 죄를 짓고 나서 완전히 귀소본능이 깨져버렸어요. 마음이 난관에 부딪치고 실의에 빠지고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면 술을 찾습니다. 술을 같이 먹을 친구를 찾습니다. 술을 같이 먹을 애인을 찾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성적에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마음 붙일 곳을 찾습니다. 사람의 귀소본능은 어디에 마음 붙일 곳을 찾는데 그게 이상하게 오작동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제 성전을 준공해 놓고 솔로몬이 봉헌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를 하는데 주기도문이 7소절로 되어 있는 것처럼 7개의 주제를 나열하면서 솔로몬이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 기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틀이 있습니다.
성전이 하나님의 이름을 둔 곳이므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할 때 하늘에서 들으시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눈이 성전을 향해 계시므로 늘 거기를 보고 계시고 하나님이 귀를 거기에 기울이고 계시므로 성전을 향하여 기도합니다.
그러면 어떨 때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느냐? 우리가 읽은 것은 두 가지 주제만 읽었습니다마는, 31-53절까지 보면 7가지 주제가 나오는데 제일 먼저 '사람의 결단 맹세와 연관 지어서 그 결단과 맹세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시고 갚아주시기를 바라는 기도가 있고, 그 다음부터는 전부 포로로 잡혀갔을 때, 가뭄이 닥쳤을 때, 또 무슨 곤충의 해악이라든지 전염병이라든지 재앙이 닥쳤을 때, 또 이방인들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전쟁에 나갈 때, 포로 된 상태에서 또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모든 삶의 경우를 다 부분부분 열거하면서 난관과 재앙과 시련을 다 열거하면서, 이럴 때마다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사해주시고 들어주시옵소서.’라는 봉헌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성전을 보고 계시고, 성전을 향해 귀를 기울이고 계시고, 사람들은 나가서 살다가 재앙이 닥치거나 난관에 부딪치거나 포로로 잡혀가거나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마음을 성전으로 향하고 기도할 때 죄를 사해주시고 기도를 들어주시옵소서.’라고 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예루살렘성전을 향하여 문을 열어놓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는데 그런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으로 바른 귀소본능입니다. 마음을 두어야 할 곳에 바르게 마음을 두는 그런 마음가짐이에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어디로 마음이 돌아가야 되느냐? 바로 성전을 향해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 때 이 솔로몬의 기도를 한 마디로 말하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어떤 문제에 부딪치든지 간에 성전이 고향인 것을 알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합니다. 하늘이 고향인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호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그곳에 있어야 될 텐데. 사방팔방 돌아다녔습니다. 하늘을 떠나서 살았습니다. 내가 하면 될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문제에 부딪칩니다. 그러면 빨리 하늘로 돌아가는데 하늘로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 돌아갈 길이 없잖아요.
그런데 그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마음을 둔 곳이 있으신데 성전입니다. 성전은 하늘의 지점과 같은 곳입니다. 이 땅에 있는 지점과 같은 곳이어서 하늘의 기운을 느낄 수 있고, 하늘의 능력을 느낄 수 있고 하늘 아버지를 느낄 수 있는 성전으로 우리 마음이 돌아가게 해달라는 기도의 내용이 그런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마는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 마음이 성전을 향하여 돌아올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미군부대 있었을 때의 얘기를 종종 합니다. 제가 근무할 때 미군부대 근처의 기지촌 아가씨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미군들의 의사로 건강문제를 염려한 것이 아니라, 미군들의 사회적 생활의 측면에서 건강문제도 제가 다뤄야 할 하나의 항목이었기에, 아가씨들의 성병 같은 것을 늘 체크하고 아가씨들의 정신상태 상담도 하고 그랬는데, 그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거의 모든 아가씨들이 동일하게 하는 얘기가 그겁니다. 거기에서의 삶이 비참하잖아요? 자기들이 생각할 때도 그것이 자랑스러워서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요. 이런저런 일로 묶여있고 할 수 없어서 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미군하고 사귀고 있어요. 그러면 많은 경우 미군들이 버리고 갑니다. 그 아가씨들의 소원은 미군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에요. 결혼이 쉽게 됩니까? 미군들이 여기에 있는 동안만 자기의 편익을 위해서 아가씨들을 사귀었다가 버리고 갑니다. 그렇게 마음을 주고 사랑하다가 버림받으면 어떻게 되느냐? 고충을 얘기하다가 꼭 나오는 얘기가 어머니 얘기입니다.
경상도 어디에, 전라도 끄트머리에, 충정도 산골짜기에 지금도 살고 계시는 어머니 얘기를 꼭 합니다. 어머니에게 얼굴을 들고 찾아갈 수도 없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걸 알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가지도 못하는데 언제나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내게도 어머니가 있다. 내게도 정 힘들면 돌아갈 어머니가 계신다. 내가 부끄러운 것이지 어머니가 나를 내치지는 않으시고 어머니가 날 받아주신다고 하는 것을 마음속에 기억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예요. 삶의 힘을 주는 마지막 보루. 거기서 그 고단하고 비참하고 참으로 오욕이 가득한 삶을 살아가면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이겨가며 살고 있는 것이에요. 그런 곳이 바로 고향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가 힘든 이유는 돌아갈 고향에 대한 정확한 포커스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내 고향인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짜 우리 육신의 어머니를 찾아간다고 생애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 순간적인 위로는 될 수는 있지만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생애문제의 해결이 되겠느냐는 겁니다. 그게 오작동이라는 겁니다.
난관에 부딪치고 힘이 들면 오늘 솔로몬이 기도하잖아요.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어떤 분야의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성전으로 마음을 돌이키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 초점이 있는 것이지요. 재앙이 있을 때 그 재앙을 없애주시는 것에 초점이 있는 게 아닙니다. 재앙이 왜 임하느냐? 이 솔로몬의 기도를 쭉 읽다보면 재앙이 임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난관과 문제에 봉착하는 이유가 고향을 떠나서 살고 있는 마음에 하나님이 깨우침을 주시는 거예요. 그것을 솔로몬은 죄로 보고 있는 겁니다.
‘사해주시고, 사해주시고’라고 계속 나오는 겁니다. 성전에서부터 마음이 멀어져서 성전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하늘의 기운이 내려오시는 성전을 잊어버리고 이 땅에서 살다가 재앙이 임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다시금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시는 곳이 성전이 아니겠습니까? 그곳이 고향이 아니겠습니까? 그곳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기도의 틀을 마련해 주는 것이에요.
너희가 분명히 이 세상에 살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무엇이냐? 문제로 느끼도록 하는 일이 38절에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라고 하는데 ‘각자가 재앙으로 느껴서’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서 내가 마음을 이 땅에 붙이고 있으니까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재앙을 주시는구나. 내가 마음에 근심이 생긴다. 걱정이 생긴다. 그러면 걱정꺼리와 근심꺼리를 해결하라고 주시는 게 아니라, 걱정과 근심이 생기면 걱정과 근심을 주는 문제를 끌어안고 있으라는 게 아니라, 그 문제로부터 마음을 귀소시켜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겁니다. 그 문제를 버리라는 겁니다. 마음이 돌아서서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겁니다.
그런데 걱정꺼리와 근심꺼리가 생기면 그저 마음 붙일 곳이 없어서 친구 찾아가고 상담가 찾아가고 전문가 찾아가고 돈 빌리려고 하고 계속 마음이 방황하며 돌아갑니다. 이게 귀소본능의 오작동입니다.
여러분!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우리의 고향은 어디인지 아십니까?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진짜 고향인 하늘을 느낄 수 있는 장소, 성전, 그 성전이 고향이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살게 된 내가 죽는 곳이 고향이에요. 태어난 곳이 고향이 아니라 죽는 곳이 고향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땅의 노예가 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적 가치관에 노예가 돼 있기 때문에.
어떻게 고향을 찾아가느냐? 죽어야 고향을 찾아갑니다. 그러면 성전이 왜 고향이냐? 번제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의 죄 된 모습이 죽는 곳이에요. 그러므로 거기가 고향인 곳입니다. 태어난 곳이 고향이 아니라 죽는 곳이 고향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마음에 지니고 있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끊임없이 마음속에 생각하는 돌아가야 될 우리의 고향이 어디냐?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에서 주님이 나 대신 죽었다. 그게 바로 내 고향입니다. 진짜 고향인 하늘나라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내가 태어난 곳이 고향이 아니라 죽는 그곳이 고향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물든 내가 죽는 그곳에서 곧 내가 또다시 거듭 태어나는 것 아닙니까? 이게 신앙의 비밀이지요.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이북에서 태어나신 분들은 이북이 고향이라고 하십니다. 영락교회 있을 때 ‘우리가 태어난 땅 이북에 산천과 동포들을 긍휼히 여기시사’라고 기도를 하는데 거기가 왜 고향이에요? 태어난 곳이 고향이 아니에요.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 먹혀버렸던 내가 죽는 곳이 고향이지요.
내가 어디서 죽었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었지요. 이 세상에 물든 내가 하나님아버지로부터 멀리멀리 간 내가 그래서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회개를 뭐라고 해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 그런데 우리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려면 십자가에서 죽어야 되니까. 죽었음을 인정해야 되니까. 십자가가 고향의 관문이고 죽는 곳이 고향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도 하루 사실 때 남편과 문제가 생겼다면 그 문제를 깊이깊이 대화로 푸는 것에 속지마세요. 대화로 푼다고 하는 것 하지 마시고, 남편과 좀 갈등이 생기면 고향으로 돌아가세요. 여러분의 고향이 어디입니까? 주님의 십자가가 고향의 관문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돌아가요. 아버지께로. 자꾸 객지에 나와서 남편이라는 문제를 놓고 내가 해결을 하겠다고 하지 말고 그러다 죽어요. 그러다가 심령이 죽는 게 뭡니까? 꽈당 부딪치는 것이지요. 평강이 깨지지요. 싸움이 일어나지요. 근심이 생기지요. 자녀와도 마찬가지에요. 요만큼이라도 내 마음에 걸림이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걸림에서부터 시작해서 자녀의 영역으로 빠져 들어가지 말고 돌아가요. 얼른 고향으로 돌아가세요. 어디가 고향입니까? 내가 죽은 곳이 고향입니다. 주님의 십자가가 고향입니다. 언제나 마음을 그쪽으로 갖다 붙이는 겁니다. 마음을 어디에 갖다 붙이실래요?
어저께 어느 모임을 불쑥 찾아갔었는데 거기 당신들끼리 하시는 얘기 중에 재미있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어떤 분이 다른 모임에 갔다가 신앙적인 토론을 하다가 마음이 상해서 어저께 모인 그 모임에 같은 동료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 위로가 필요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다고 해요. ‘나는 위로가 필요합니다.’라는 말 그 말만 딱 보면 요즘 이상한 문자 많이 오잖아요. 괴상한 아가씨들이 이상한 문자를 보내잖아요. ‘오빠, 외로워요. 지금 저 혼자 있어요.’라는 문자가 오지 않습니까? 그런 문자인 줄 알고 ‘아이고, 별 돈 여자가 다 있네.’라고 문자를 씹었다고 합니다.
요즘 문자를 받고 답장을 안 하면 문자를 씹었다고 한대요.
그 얘기를 하면서 당신들끼리 웃으면서 하는 중에 제가 들어가서 대화를 하고 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에서 위로를 받겠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마음에 상처를 받았으면 돌아가셔야지요. 어디로? 십자가로 돌아가셔야지요. 우리 주님이 달려 돌아가신 그 십자가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말을 하다 보니 그러네요. 주님이 돌아가신 십자가로 돌아가는 겁니다. 어디로 돌아갑니까? 날마다 돌아가셔야지요. 어디 가십니까? 돌아가십니다.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사도바울의 날마다 죽는다는 말인 것 같아요. 사람이 죽었을 때 그러잖아요? 돌아가셨네. 날마다 돌아가셔야지요. 주님께로 turn back 해서 돌아가고 주님의 십자가와 연합해서 또 죽고 날마다 돌아가는 겁니다. 조그만 문제가 생기고 근심과 걱정꺼리가 생겨도 얼른 돌아가는 겁니다. 시간이 없어서 자세하게 말씀을 못 드리겠는데 오늘 보면 정치, 경제, 외교, 군사, 심지어는 보건까지 모든 영역의 왕으로서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을 관여하는 왕으로서 그 모든 영역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 가지의 답을 제시합니다. '성전으로 돌아가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여호와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으로 돌아가자.'
저는 이명박대통령이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해결이 미국에 있는 게 아니고 파업하는 노조연대를 설득하는데 있는 게 아니고 촛불시위를 설득시키는데 있는 게 아니고 돌아가는 겁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요. 그렇게 힘들게 내가 짐을 지고 이 나라를 어떻게 해보겠다고 그러지 마시고 여호와 하나님 하늘의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거예요. ‘아버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라고 하고 돌아와야 돼요. 그러면 이 나라 순식간에 평강할 수 있습니다. 저는 확신할 수 있어요. 그저 여러분들이 우리 이명박대통령을 위해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해 주세요. 옛날에 뭐, 사업할 때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다는데 이것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때 된 게 그분에게는 불행입니다. 그때 그게 된 게 불행이라니까요. 아버지께로 돌아와야지요. 그렇게 큰 나라문제가 아니더라도 고향으로 돌아오면, 십자가로 돌아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고 하나님께서 해나가십니다. 무조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하여간 요만한 걸림이 있어도 대화를 하는 중이라도 확 처박고 싶으면 참아요. 그리고 돌아가요. 그쪽으로 처박지 말고 뒤로 아버지께로 돌아가 버려요. '주님! 십자가에서 내가 죽었는데.'라고 하면 하늘이 임하면서 하늘의 기운으로 처박을 수도 있고 하늘의 기운으로 떠나게 하실 수도 있고 어떻게 하실지 모르지요. 하늘의 기운이 임할 때 주님이 채찍으로 성전을 정화하시지 않았습니까? 싸우게 하실지 돌아서게 하실지 그냥 참고 그 자리에 있게 하실지 모르지요. 그러나 그 순간 대화 중에도 주님께로 돌아가는 겁니다.
‘귀소본능의 오작동’
주님의 십자가로 돌아가지 않고 엉뚱한 곳을 찾아가고 엉뚱한 사람에게 전화하고 술 마시려고 찾고 애인 찾고 친구 찾고 하는 모든 것이 다 오작동입니다. 괴로워하는 중에, 기도하는 중에 예를 들어 ‘태 목사를 찾아가 봐라. 김 권사님에게 전화해 봐라.’라고 하는 것은 또 하나님의 지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찾기 이전에 냅다 누구를 찾고 어디를 가고 하는 것은 다 귀소본능의 오작동입니다. 잘못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실 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내가 돌아가야 된다.' '죽어야 된다와 돌아가야 된다'가 같은 말입니다. '주님께로 돌아가자. 주님께 연합해서 돌아가자. 하늘로 돌아가자.' 하늘의 기운이 유일하게 내려오고 있는 주님의 십자가가 성전의 법궤 아닙니까? 그곳으로 끊임없이 마음을 돌리시면서 살아보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작은 일에서도 큰 정도로 민감하게 깜짝깜짝 놀라며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을 제일 무서워하며 아버지께로 돌아가기 위해 십자가를 기억해낼 수 있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말씀을 대하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하나 제대로 산 것이 없음을 보게 하십니다.
다 거꾸로 살았고 아버지의 진노만 쌓으며 나이만 먹었습니다.
이제 십자가를 통하여 죽게 하시고 바른 신앙생활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돌아갈 내 고향 십자가가 있으니 감사합니다.
그곳에서 쉼을 얻게 하시니 찬양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