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직 공의를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 5:2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요한 웨슬리, 논문 《노예제도에 대한 고찰(Thoughts upon Slavery)》 (1774)
요한 웨슬리,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에게 보낸 최후의 서간 (1791년 2월 24일)
요한 웨슬리, 표준 설교 제98편 〈누가복음 16장 19-31절 강해: 부자와 나사로에 관하여(On the Education of Children / Dives and Lazarus)〉
서론: 골방의 은혜에서 역사의 현장으로
요한 웨슬리의 영성을 이야기할 때 가장 흔히 저지르는 치명적인 오류는, 그를 단지 '개인의 내면적 성결'과 '영혼 구원'에만 몰두한 종교인으로 축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성결은 골방의 명상에 갇힌 관념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올더스게이트에서 경험한 '마음의 이상한 뜨거움'과 제9강의 '완전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18세기 대영제국의 가장 어둡고 썩어 문드러진 사회적 모순의 한복판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웨슬리는 자신의 설교집과 일기에서 부흥 운동의 근본 정체성을 단 한 문장으로 천명했습니다.
"성경은 ‘사회적 종교(Social Religion)’ 외에 다른 종교를 알지 못하며,
‘사회적 성결(Social Holiness)’ 외에 다른 어떤 성결도 인정하지 않는다."
(The Gospel of Christ knows of no religion but social; no holiness but social holiness.)
제10강은 내면의 거룩한 사랑이 어떻게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했던 노예무역을 타격하고, 지옥 같던 교도소를 개혁하며, 버림받은 도시 빈민들을 살려내는 거대한 사회 변혁의 뇌관이 되었는지를 다룹니다.
1. "모든 악행의 수괴": 대서양 노예무역과의 영적 전면전
18세기 대영제국의 경제적 번영 이면에는 매년 수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들을 납치하여 짐승처럼 쇠사슬에 묶어 바다를 건너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팔아넘기던 삼각 노예무역(Transatlantic Slave Trade)의 피비린내 나는 착취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당시 국가 경제의 핵심 젖줄이었기에, 귀족은 물론 국교회 성직자들조차 노예무역을 묵인하거나 성경을 왜곡하여 정당화했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1774년, 온 유럽을 뒤흔든 명저 《노예제도에 대한 고찰(Thoughts upon Slavery)》을 출간하며 제국의 심장을 정면으로 겨누었습니다.
인종적 편견의 타파: 웨슬리는 흑인들이 백인보다 열등하다는 주장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문명과 인격을 가진 하나님의 존귀한 피조물이며, 아프리카인들의 도덕성이 그들을 잔혹하게 사냥한 기독교 백인들보다 훨씬 더 순결하다고 질타했습니다.
불법성과 잔혹성의 폭로: 노예선(Slave ship)의 끔찍한 실상, 쇠사슬에 묶여 질식사하고 바다에 던져지는 참상을 생생하게 폭로하며, 노예 소유주와 상인들을 향해 사자처럼 포효했습니다.
"이 피 묻은 장사를 하는 자들이여! 당신들의 손에서 죄 없는 이들의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법이 허용한다 해서 그것이 정당한가? 인간의 법이 아무리 당신들을 비호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정에서 당신들은 살인자요, 영혼을 훔치는 약탈자다!"
윌리엄 윌버포스에게 남긴 최후의 유언 (1791)
웨슬리가 88세의 일기로 눈을 감기 불과 일주일 전(1791년 2월 24일), 떨리는 손으로 펜을 들어 영국 의회에서 외로운 노예폐지 법안 투쟁을 벌이던 젊은 하원의원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에게 보낸 편지는 웨슬리 인생의 마지막 서간이 되었습니다.
┌─────────────────────────────────────────────────────────────┐
│ 웨슬리의 마지막 서간 (1791. 2. 24) │
├─────────────────────────────────────────────────────────────┤
│ "지극히 사랑하는 형제여, │
│ 하나님께서 특별한 권능으로 형제를 일으키지 않으셨다면, │
│ 형제는 지옥의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반대에 부딪혀 │
│ 이미 지쳐 쓰러졌을 것입니다. │
│ │
│ 노예무역이라는 이 극악무도한 악행은 │
│ 종교와 영국과 인간성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
│ **‘모든 악행 중의 가장 사악한 수괴(The scandal of religion, │
│ of England, and of human nature)’**입니다. │
│ │
│ 형제여, 지치지 마십시오! │
│ 하나님이 형제와 함께하시는데 누가 형제를 대적하겠습니까? │
│ 태양 아래서 이 흉측한 아메리카 노예제도가 완전히 뿌리 뽑힐 때 │
│ 까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끝까지 전진하십시오!" │
└──────────────────────────────────────────
이 편지는 낙심해 있던 윌버포스의 영혼에 거룩한 불을 질렀고, 결국 1807년 영국 노예무역 폐지와 1833년 대영제국 영토 내 모든 노예해방이라는 기념비적 승리로 귀결되었습니다. 그 배후에는 반세기에 걸쳐 노예제의 죄악성을 영국 민중의 양심에 각인시킨 웨슬리의 가르침이 있었습니다.
2. 버림받은 자들의 친구: 교도소 개혁과 사형수 전도
웨슬리의 부흥 운동은 화려한 응접실이 아니라, 쥐와 오물이 들끓던 18세기 영국의 참혹한 감옥에서 시작되어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감옥 사역의 지속성: 옥스퍼드 신성회 시절(1730년대)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웨슬리는 뉴게이트(Newgate) 교도소와 각지의 감옥을 정기적으로 방문했습니다. 당시 영국의 교도소는 죄수들이 질병으로 굶어 죽어가고, 교도관들이 돈을 뜯어내며 고문하던 생지옥이었습니다.
교도소 개혁가 존 하워드(John Howard)와의 연대: 웨슬리의 헌신에 감화받은 감리교도들과 신앙 동지들은 영국의 비인도적인 감옥 실태를 조사하고, 수감자들의 위생과 처우를 개선하는 역사적인 교도소 개혁 운동을 촉발했습니다.
형장으로 가는 사형수들과의 동행: 당시 영국은 빵 한 조각을 훔쳐도 교수형에 처할 만큼 가혹한 형벌 체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웨슬리와 순회 설교자들은 수레에 실려 타이번(Tyburn)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들의 곁을 지키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형수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직전 눈물로 회개하고 천국의 평안을 얻어 죽음을 맞이하는 기적이 연일 일어났습니다.
3. 총체적 빈민 구제와 자립 시스템: 구걸하게 하지 말고 일어서게 하라
웨슬리는 가난을 단순히 '개인의 게으름' 탓으로 돌리던 당대 부르주아들의 냉혹한 도덕주의를 혐오했습니다. 산업혁명 기계화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병든 빈민들의 구조적 고통을 직시했습니다.
웨슬리는 일방적 시혜를 넘어, 체계적이고 자립적인 빈민 구제 인프라를 손수 구축했습니다.
1) 소액 대출 펀드 (Lending Stock): 현대 마이크로크레디트의 효시
웨슬리는 가난한 이들이 고리대금업자의 덫에 걸려 파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1746년 기금을 조성했습니다.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에게 최대 1파운드(당시 적지 않은 돈)를 무이자로 빌려주고, 자립하여 소규모 장사를 시작하게 한 뒤 3개월에 걸쳐 조금씩 갚아나가도록 했습니다.
수많은 가족이 이 소액 대출 제도를 통해 극단적 파산과 노숙자 신세에서 벗어났습니다.
2) 무료 진료소와 의학 혁신: 《원시 의학(Primitive Physick)》
가난한 노동자들은 병원에 갈 돈이 없어 병에 걸리면 죽어야 했습니다.
웨슬리는 런던과 브리스톨에 영국 최초의 무료 진료소(Free Dispensary)를 열고 상주 의사를 배치했습니다.
웨슬리 스스로 방대한 의학 지식을 연구하여, 민간 약초와 위생법, 식이요법 등을 알기 쉽게 정리한 가정 의학 백과사전 《원시 의학(Primitive Physick)》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어 수만 명의 가난한 이들의 생명을 질병으로부터 건져냈습니다.
3) 노동 창출과 무료 학교
런던 파운더리(Foundery) 본부에 작업장을 만들어, 버려진 과부들과 빈민들에게 털실을 잣고 옷을 깁는 일거리를 제공하여 정당한 임금을 받게 했습니다.
거리의 방치된 아이들을 모아 글과 셈을 가르치고 성경을 먹이는 무료 학교를 세웠습니다. (훗날 로버트 레이크스가 발전시킨 '주일학교(Sunday School)' 운동의 결정적 토양이 됨.)
4. 프랑스식 유혈 혁명을 막아낸 '성결의 방파제'
역사학자 에리 브루스(Élie Halévy)를 비롯한 근현대 세속 역사가들은 18세기 유럽 역사를 연구하며 하나의 거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18세기 말, 프랑스는 피비린내 나는 폭력 혁명(프랑스 대혁명)으로 왕과 귀족의 목을 단두대에서 자르고 국가 전체가 유혈 사태에 휩싸였다.
왜 똑같이 극심한 산업화의 빈부격차와 사회적 모순을 겪고 있던 영국에서는 유혈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세계 역사가들이 내린 일치된 결론은 바로 '요한 웨슬리와 메소디즘(Methodism) 부흥 운동'이었습니다.
소외 계층의 분노를 치유한 복음: 사회 밑바닥 광부들과 노동자들이 폭력 혁명의 주동자가 되는 대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고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습니다. 그들의 내면에서 증오와 살의가 사라지고 사랑과 거룩이 자리 잡았습니다.
평화적 사회 개혁의 동력 제공: 감리교 속회와 평신도 리더십 훈련을 통해 단련된 노동자들은, 폭동을 일으키는 대신 영국의 초대 노동조합(Trade Union)을 평화적으로 결성하고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 건전한 민주 시민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했습니다.
가장 흉포했던 세대를 가장 도덕적인 세대로 변혁: 술주정과 도박, 투견으로 날을 지새우던 영국의 탄광촌과 도시들이 밤마다 찬양 소리와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거룩한 마을로 완전히 탈바꿈했습니다.
제10강의 결론: 오늘 우리를 향한 부흥의 원리
오늘날 교회는 '영혼 구원'과 '사회 정의'라는 두 진영으로 갈라져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웨슬리의 부흥은 이 치명적인 분열을 단칼에 베어냅니다.
골방의 거룩은 반드시 광장의 공의로 증명되어야 한다:
아무리 눈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찬양해도, 세상의 불의와 소외된 자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면 그것은 바리새인의 위선입니다. 참된 성령 충만은 고통받는 이웃을 향해 하나님의 심장으로 달려가게 합니다.
제도적 악과 타협하지 않는 영적 야성을 회복하라:
웨슬리는 시대의 주류 경제 시스템이었던 노예무역을 향해 타협 없이 '지옥의 악행'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기득권과 권력에 영합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의 잣대로 시대의 불의를 고발하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구체적인 사랑의 손과 발을 내밀어라: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은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다. 무료 진료소를 열고, 펀드를 만들어 빈민의 자립을 돕고, 감옥을 찾아갔던 웨슬리처럼, 교회는 세상의 가장 어두운 사각지대를 찾아가 하나님의 사랑을 땀과 눈물로 번역해 내야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