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의 생명책 5부. 최종회.
저는 "생명책"에 대해서 여기 지면을 통해서 많은 부분 다루었는데, 얼마나 이해들을 하시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것은 지적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계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특별한 성령의 계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계시록3장5절에서 "이기는 자는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할 것이며, 또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할 것이니라."
이 주제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이제 시대들을 거치는 교회의 견지에서 그것을
접근하는 게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개인들의 이름이 지워지는 면에서 생각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들이 아니라, 교회로 대표되는 무리들을 고려해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시대들을 거치는 교회를 밀 식물에 비유하겠습니다.
밀알은 그 알갱이 하나가 특정 시기동안 특정한 과정을 통과해 번식하고 증식하도록 하기
위해서 심겨집니다. 그 밀 알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을 통해서, 그 안에 있던 생명이 올라와 증식된 형태로 처음 상태로 돌아갈
그 생명의 보유 체 또는 전달 체가 될 식물 안에 들어갈 것입니다.
요한복음12장:24절에서,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위대한 왕의 씨인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 교회의 생명 되신 그 비할 수 없는 분은 자기 생명이 부활 때 그의 몸과 똑같은 몸으로 재현되게 하기 위하여 교회에게 그의 생명을 주시면서(전달 체 또는 보유 체), 모든 일곱 교회 시대 동안에 교회의 중앙에 서 계십니다.
부활 때에 그 왕의 씨는 자기와 같은 많은 왕의 씨들을 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과 같은 모습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우리가 그와 같으리라."하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침례 요한이 예수께서 알곡은 곡간에 들이시리라 말했을 때 언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는 영원한 생명에 택함을 받은 구속받은 자들이 들어오는 부활 때였습니다.
이 밀 식물의 결말은 증식된 형태로 원(元) 종자를 생산하는 것인데 그 기록은 생명책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이 밀 식물의 역사 또는 기록은 생명책이고 생명책의 일부는 영생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생명책의 한 부분입니다.
밀 식물을 조사해 보면 이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밀알이 하나 심겨졌습니다.
곧 잎이 보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밀이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줄기로 성장합니다.
이것도 아직은 밀이 아닙니다. 생명이 거기에 있긴 하지만 아직은 밀은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그 줄기의 끝에 가서 술을 내보내는 작은 이삭이 나옵니다.
아직도 밀 식물이지 밀은 아닙니다. 그리고 나서 그 식물은 수분과정을 거치고 그리고 나서
우리는 겨가 자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정말로 밀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씨가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껍데기 안에 밀이 형성됩니다. 이제는 처음 상태로 돌아갑니다.
이제 다 익은 밀은 추수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었습니다. 그는 자기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생명은 교회에 돌아와서 많은 아들들이 자기와 같게 되어 부활의 영광에 이르게 할 겁니다. 그러나 밀 씨가 증식된 밀 씨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전달 체를 가져야 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생명의 전달 체가 될 교회가 있어야 했습니다. 잎과 줄기와 술과 껍데기가 씨를 위한 전달
체이고 씨 자체는 아닌 것처럼, 모든 시대를 거치는 교회 전체도 씨 자체는 아니더라도
참된 씨의 전달 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책은 밀 식물 전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기에 심겨졌던 그 원 씨가 있습니다. 그것은 잎을 내었습니다.
아직 그것은 씨가 아니었습니다. 줄기를 내었습니다.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술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꽃가루가 그 암술들에 떨어집니다. 그 식물의 일부가 소생됩니다.
그 식물의 나머지를 통과해 올라온 그 원 씨의 뭔가가 씨로 변합니다.
왜 식물 전체가 씨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 목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식물의 일부만이 씨로 돌아갈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 밀 식물의 일부만이 영원한 생명이
되는 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에서 그것의 완벽한 예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백만이나 되는 강한 나라로 나왔습니다.
모두 다 희생 제물의 피를 통해서 탈출했습니다.
모두 홍해에서 침례를 받았습니다. 모두 성령의 표명과 축복을 즐기면서 물에서 올라왔습니다. 모두 천사의 양식을 먹었습니다. 모두 다 그들을 따르는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소수를 제외하고 그들은 그들을 따라와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녀들을 위한 전달 체에
불과했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진짜 이스라엘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주 적은 소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졌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에서 똑같은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들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름들은 영원한 생명의 책에서는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명책에 포함되어 있다 할지라도 또 다른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영원한 생명)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그리고 그 생명을 가진 자들은 창세전에 그 안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창세전에 그 안에서 선택되었습니다. 그 위대한 왕의 씨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심겨졌고(그는 죽었습니다.) 그 안에 있던 그 생명은 밀 식물을 통해 올라왔고, 그들 안에 동일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영으로 그들이 원 씨이기 때문에 처음 씨와 같은 무수한 밀 씨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왜 구속받은 (원 소유자에 의해 다시 사온) 신부가(그녀는 이브가 아담 안에 있었듯이 그분 안에 있었습니다.) 그 기록에서 신부의 "일원인 이름들"이 지워질 수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부는 그분의 일부입니다. 그녀는 보좌에 그분과 함께 앉아 있습니다.
그녀는 결코 심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부 속에 속해 있는 모든 이들은 그의 일원이고 그는 그들 중 아무도 잃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있는 "모든 자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는 기록에 속해 있지만 나중에 이름이 지워지는 유다와 같은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에, 훌륭한 일들을 행한 후에 오는 자들을 보는데,
예수님은 그들을 절대로 모른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7장:22-23절에서, 예수님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의 전지하심은 그것을 배제합니다. 그들은 신부 안에 있는 자들로 미리 아신바 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부활의 의인들 가운데에서도 미리 아신바 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말씀 밖에 있었고--말씀 안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했고,
그러므로 그들은 죽음의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앞에서도 보여드렸듯이 신부를 위해 앞장서고 신부에게 도움과 위안이 되었던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생명책에 그들의 이름이 남아 있었고 영생으로 들어갑니다.
마지막으로 절대로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았던 바로와 같은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역시 불 못에 던져집니다.
그래서 수확을 위해 식물이 되었던 밀알은 교회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밀 식물 전체가 밀 씨가 아니듯이, 그리고 모든 식물이 수확 때 사용되지 않듯이,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교회가 신부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영원한 생명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오로지 그 가운데서 일부분만 하나님의 곡간에 들여집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부만이 천년 왕국 동안 간직되어 둘째 부활 때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고,
겨로 간주되는 그 나머지 모두는 불 못에서 태워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은 침례 요한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밀은 모아 곡간에 들여지고, 겨는 불태워지리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라지들을 묶어라, 그리고 나서 밀을 거둬들여라,"하셨습니다.
가라지들은 반드시 먼저 묶여야하기 때문에, 에큐메니칼 운동(세계일치운동)은 가라지 교회들을 먼저 묶을 것입니다, 그들의 결국은 불에 태워지는 것이 된다 해도, 그들은 처음에는 불태워지지 않고 나중을 위해, 천 년이 찬 후 또는 둘째 부활 때까지, 보존됩니다.
그러나 일단 가라지가 묶이고, 그 세력이 이 땅을 지배할 때는, 휴거가 일어나게 되는데,
휴거는 가라지가 묶을 때와 적그리스도가 계시되는 때 사이에 일어납니다.
그 다음에는 다니엘에 보았던 대로 모든 자들이 함께 서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왕은 신부와 함께 거기에 있을 것이고 그들 앞에는 심판 받게 될 무리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자들이 거기에 있습니다. 모든 책들이 펴집니다.
모든 것의 마지막 배치가 이루어집니다. 추수는 정말로 끝났습니다.
한 때 열렸던 책들은 닫히게 됩니다. 이제 이 주제의 결론을 내리면서,
제가 처음에 주님이 현재 이름들의 기록을 집계하고 계시고 있다고 말한 성경구절은 한군데도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그걸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집계하실 것에 대해 지적하는 성경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시편 87편)에 있습니다. 이 시는 주님이 시온에서 난 모든 자들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때라도 하나님이 시대들의 끝이나 어느 누가 시온에서 날지 알기
위해서 시온을 다루는 그 시기의 끝까지 기다리셔야 한다고 가정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시, 그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막는 것이 될 테니까요. 분명히 하나님은 어느 누가 그 수를 채울지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그저 둘째 부활 후에 남아 시온에 속한 그 이름들을 새 기록에 기록하신 개정판 기록부가 아닙니까?
물론, 그것은 개정판 기록부입니다.
"내가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하늘에서 이름을 부르는
겁니다! "사람이 죽으면 어찌 다시 살리이까? 내가 내 변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나이다.
당신이 나를 부르시겠고 나는 대답하겠나이다. 당신은 당신 손으로 지으신 것을 아껴 보시겠나이다." 대(大) 목자가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창조적인 음성은 땅에서
그들을 부르고 계시고 또는 그들이 잠들지 않았다 해도 그들의 원자들을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그것이 휴거입니다. 그것은 어린양과 그의 신부의 위대한 혼인 만찬입니다.
그런데 휴거는 유일한 마지막 점호는 아닙니다. 거기 둘째 부활에서, 대 백 보좌 심판 때에도,
아버지와 그의 천사들 앞에서 이름들이 시인될 것입니다.
저는 인간의 귀에 가장 달콤한 소리는 자기의 이름이 불리는 소리라는 것을 사람들에게서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대중 앞에 자들의 이름을 내기를 얼마나 좋아합니까.?
사람들이 갈채를 얼마나 좋아합니까. 그러나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고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시인되려고 거기에 남아 있다면 하나님의 음성처럼 여러분의 이름을 달콤하게 부를
소리는 이 땅에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아버지, 그들은 지상에 사는 동안 사람들 앞에서 내 이름을 시인했습니다. 이제 저는 당신과 하늘에 있는 모든 천사들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고백합니다,"하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게 될 그 날은 얼마나 좋은 날일까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다시 한 번 성령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성령이 또 다른 시대에게 말씀하신 기록을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록이 정확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시대가 지나갔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마지막 시대 신부가 되기를 원하는 우리에게 그것은 얼마나 큰 위로와 위안이 되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그가 하신 모든 약속을 이행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으며, 그 사실로 우리 마음이 기뻐 뛰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분이 사데 시대의 사람들에게 신실하시고 진실하셨다면, 우리 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똑같이 진실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인해 그에게 영접 받고 칭찬 받을
거라면, 우리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벽함에 나아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와 함께 영원히 삽시다. 아멘.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