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옥신각신합니다. 특히, 하느님을 믿는 이들 안에서 그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에 그것의 판단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되는 것이 바로 "거룩함"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세상의 지식이나 상식"이 옳고 그름의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신앙인들에게 있어서는 반드시 "거룩함"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참으로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일어난 모든 일에 있어서 "거룩함"을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세상의 상식"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그 사람은 결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을 그저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뿐 입니다. "여러분은 현세에 동화되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하여 여러분 자신이 변화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하느님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 분별할 수 있게 하십시오." (로마12,2) 그러면 "거룩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거룩하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테살4,3) 거룩함이란 우리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사는 것"일뿐 다른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뜻"을 우리 인간이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의 뜻에는 "명시(밝을明,보일示) 의지"와 "임의(맡길任,뜻意) 의지"가 있습니다. "명시(분명하게 가르킴,밝힘)의지"란 성경이나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의 오랜 역사를 통해 이미 밝게 드러난 하느님의 가르침을 말하며, 여기에는 십계명, 교회법등이 있습니다. "임의(자기 뜻대로 하는 일)의지"란 말 그대로, 하느님께 맡겨진 하느님의 의지를 말하며, 임의의지를 더 쉽게 표현하면 "엿장사 맘대로, 하느님 맘대로" 입니다.
엿장사가 엿을 어디서 끊어 줄지 손님은 엿장사의 맘을 잘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우리를 어떻게 이끌어 가실지 우리는 하느님 맘(뜻)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란, 하느님의 뜻대로 거룩하게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임의의지는 모든 시대, 모든 사람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지만 그 결과는 오직 한가지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善"입니다. 거룩한 사람은 절대로 "惡"하지 않고 "善"합니다. 그 선함이 생각으로, 말로, 행동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사람은 하느님의 가르침, 하느님의 법, 하느님의 규범, 교회의 법을 잘 지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가르침은 사람을 속박하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참자유"를 줍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에 속박감을 느끼는 사람은 다른 것에 속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른 것이란 바로 "죄"인데 죄의 주인은 사탄 마귀입니다. 사탄 마귀에 속박된 사람은 자유를 잃게 됩니다. 사탄 마귀는 사람을 기기묘묘하게 잘도 속입니다. 자기의 뜻을 따르면(유혹),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자유"를 주겠다고 말입니다. 40일 단식 후에 예수님 앞에 나타난 사탄 마귀가 말한 그대로 입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참자유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 것"이 "참자유"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을 수 있어도 주인이 따먹지 말라고 하셨기에 따먹지 않는 것이 참자유입니다. 담배를 필 수 있어도 건강에 좋지 않으니 피지 않는 것이 참자유입니다. 마약을, 도박을, 도색을 다 할 수 있어도 하느님이 싫어 하시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진정 참자유인입니다. 참자유를 얻은 사람은 감옥 속에서도 자유를 느낍니다. 죽음도 고통도 그 사람을 속박할 수 없습니다. 자기 생명만을 살리려 다른 생명을 몰라라 하는 비굴한 짓을 하지 않습니다. 참자유인은 참으로 죽음 앞에 의연한 모습을 취합니다. 참자유인을 속박할 수 있는 분은 오직 단 한 분! 그에게 자유를 허락하신 그를 있게끔하신 그의 주인 되시는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은 자유자재(自有自在)하신 분이시라 그분의 속박은 오히려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그분께 자신의 모든 것을 속박(내맡김)시킬 때, 오히려 사람은 "참자유인"이 됩니다. 참자유인이 된 사람은 사람을 진짜로 속박하는 "죄"로부터 멀어집니다. 아직도 많이많이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그렇게 해 주십니다. "하느님께 내맡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입니다. 부족한 그 사람들의 지혜를 열어 주시어 뛰어난 "사리분별력"을 주십니다. 거룩한 생활을 하는 사람의 공통된 특징은 무엇보다 "분별력의 탁월함"입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거룩해지기 위해서는 죄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게 사는 사람은 뛰어난 지혜의 소유자인 사탄 마귀의 지혜를 넘어섭니다. 하느님께 속박(내맡김)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래서 사람의 거룩함의 정도에 따라 분별력이 크게 다른 것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의 분별력을 받은 이는 결코 사람을 분별하여 "차별"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지식의 높고 낮음이나 직업의 귀천이나 재물의 있고 없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모든 이가 다 같은 존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단 한가지 분별하여 따지는 것이 있다면 사람의 "거룩함"입니다. 거룩하게 사는 사람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너무너무 사랑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차별하게 됩니다. 죄와 거룩함은 천차만별하기 때문입니다. 사탄 마귀의 조종을 받는 사람은 분별력을 잃게 됩니다. 사탄 마귀의 지혜가 그를 그의 보잘 것없는 지식을 잡아 먹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지혜의 우두머리, 사탄 마귀의 지혜에 그의 알량한 지식이 잡혀 먹혀 사탄 마귀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 있어서의 일어난 모든 일의 판단의 기준은 "거룩함"뿐입니다. 하느님이 보실 때, 어느 것이 더 하느님의 마음(뜻)에 드시겠는가를 따져야합니다. 세상의 상식과 지식을 앞세우거나, 어떤 사람을 내세우거나, 과거를 들먹이지 맙시다. 하느님의 지혜가 담긴 성경말씀을 앞세우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아간 성인을 앞세우고, 지금 현재를 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나간 과거를 들먹이지 않습니다. 과거에 자신이 엄청나게 거룩히 잘 살았어도 지금 현재 그렇지 못하면 꽝입니다. 과거에 자신이 하느님 앞에 엄청난 죄인이었어도 지금 현재 거룩히 잘 살면 끝입니다. 자신의 모든 과거를 자신의 주인이신 한없이 자비하신 하느님께서 이미 다 용서해 주셨는데 누가 감히 하느님이 용서한 이를 또 판단합니까? 하느님은 시작도 마침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잠시 지나가는 현세에서 인간끼리 서로 잘 잘못을 너무 따지지 맙시다. 우리가 따져야 할 것은 오직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느님처럼 과거, 현재, 미래 등의 시간이 없는 "영원"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영원을 기다리는 이들답게 과거를 묻지 말고 오직 영원을 허락받을 수 있는 조건인 "거룩함"만을 생각하며 이 세상을 지나가는 "나그네"로 살아 갑시다! 나그네는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소유주께 내맡깁니다. 그날그날 필요한 것만을 소유합니다. 그날그날 필요한 것은 그날의 주인께서 채워 주십니다. "존재의 가벼움"을 하루하루 느끼며 이 세상에서부터 "존재의 근원"과 함께 "참존재"되어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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