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다닌다. “와 예뻐 엄마! 나도 나비가 될래!”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하는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서윤아, 너도 어른이 되면 날개를 달고 어디든 날아갈 수 있을거야.” 아이를 보며 웃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이와 대조적으로, 집 안에는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있는 채원이 있다. 온몸에 이불을 감은 채 침대 위에서 꿈틀거리는 채원은 꼭 번데기같다. ‘그렇게 그레고리 잠자는 몸이 뒤집어진 채로 버둥거리다 숨을 거두었다’ 채원은 이 대목에서 눈물을 흘렸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리가 가족들에게 외면받다가 결국 쓸쓸하게 숨을 거두는 것이 꼭 자신과 같았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자신에게 특정한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승진, 결혼, 완전한 독립’ 만약 이 퀘스트들을 하나하나 깨지 못하면 채원은 방구석 히키코모리로 살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짐은 많아지지만, 꿈은 사라져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면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해서 어느 회사에든 진출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지만, 실제로 채원의 변신은 ‘유충’에서 ‘성충’에 이르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탈피는 나비로 변하는 환골탈태가 아닌, 해묵은 껍데기인 동심을 버려야 하는 것에 그쳤다.
“채원씨, 오늘 끝나고 회식 고?” 부장은 채원에게 뜻밖의 짐을 던진다. 오늘은 밀려둔 집안일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또 야근이다. 장소만 삼겹살집으로 바뀐다뿐이지 회식은 업무의 연장선이다. 채원은 변신하기로 결심한다. “저, 부장님...오늘은 집에 경조사가 있어서...” 집을 사랑하는 집벌레로 변신한다. 실제로 채원이 본가에 내려간지는 6달이 흘렀다. 그렇지만, 이 순간에 집은 최고의 핑계다. ‘어제 <변신>을 읽고 자길 잘했어’ 채원의 몸이 순식간에 벌레로 변한다. 샤샤샤삭. 채원은 일이 끝남과 동시에 벌레로 변해 회사에서 사라진다.
“채원씨, 혹시 취미가 어떻게 되시나요?” 불편하다. 서른을 넘어가니 지인들이 자꾸 소개팅을 권한다. 그렇게 나온 자리에서는 채원과 똑닮은 벌레가 앉아있다. 벌레끼리의 소개팅. 채원은 사실, 나비로 변신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비를 만나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싶었다. ‘역시, 요즘엔 나비가 희귀종이라니까’ 자신의 꿈을 이뤄 당당한 사람. 이미 고치에서 벗어나 완전한 독립을 이룬 사람. 그런 사람을 찾기에는 하늘의 별따기였다.
“채원아, 요즘 어떻게 지내? 사실, 나...돈이 조금 필요한데...” 떨쳐내기도 어려운 모기가 달라붙었다. 나의 언니, 원래는 제약회사에 들어가서 나름 나비같은 인생을 살았다. 어느 정도의 경력을 쌓고 어느 회사에든 발들일 수 있는 자유로운 나비. 그런데 갑자기 일이 안맞다며 뛰쳐나오더니 프리랜서 일을 전전하고 있다. 채원은 자신의 수중에 있는 피 같은 잔고를 확인한다. “언니, 나 200은 빌려줄 수 있어. 그 이상은 힘들어.” “그거라도 좋아. 채원아, 고마워.” 모기가 떨어져나간다. 채원은 숨을 내쉰다. ‘벌써 여름이 다가왔구나’ 가벼워진 옷차림만큼, 가벼운 자신의 잔고가 못내 서운하다.
“채원아, 밥이랑 잘 챙겨먹고 건강해야돼.” 엄마의 전화에 채원은 눈시울을 붉힌다. 엄마 매미는 땅속에서 자신을 기르고 보살피다가 이제야 세상 밖으로 나왔다. 평생을 땅속에 살다가 고작 한 달 동안만 밖에서 살 수 있는 매미. ‘앞으로 엄마에게는 황혼의 인생만 남았구나’ 이제야 엄마는 자신의 세상을 마주하지만, 청춘을 다 써버린 후였다. 엄마는 사실상 채원이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는 이유기도 하다. ‘평생 고생만 하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엄마의 다 바스러진 몸이 자신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채원은 <변신>을 다시 한번 읽기로 결심한다. ‘그레고리는 벌레로 변해버렸다’ 채원은 이 대목을 읽으며, 매일같이 벌레로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언젠가 나도 날갯짓을 하는 순간이 오려나’ 채원은 생각한다. 그렇게 채원은 일본어 회화책을 집어든다. ‘적어도 제2외국어라도 할 줄 알면 기회가 열리겠지.’ 채원은 나비가 되어 일본으로 날아가는 상상을 하며, 일본어 단어 ちょう[쵸-] (뜻: 나비)를 발음한다.
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소설적인 글을 통해, 딱딱하고 단순명료한 글이 주는 무미건조함을 벗어난 부분이 되게 좋았습니다. 오히려 내용적 상상력, 그리고 제 자신을 "'변신"이라는 주제를 통해 반추해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대인이 한번 정도 가지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 그리고 막연한 생각을 "변신"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리저리 다녀가는 서사가 되게 흥미로웠습니다. 우리 세대가 가지는 사회가 주는 불편함과 혐오감,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비판적으로 그러나 부드럽게 다가오는 점이 오히려 저에게 또렷한 주제의식으로 다가오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벌레와 정신적인 여유과 경제적인 조건까지 갖추어 완전한 독립을 이룬 나비 그리고 주위를 어지럽히는 모기 고생 끝에 짧은 환기의 시간을 갖는 매미까지 . 사회적으로 우러러볼 지위를 향해 나아가는 단계 뿐 아니라 인물의 개인적인 삶까지 엮어 디테일하게 묘사한 점이 인상깊게 다가옵니다. 개인적인 서사를 아직 만개하지 못한 '벌레'라는 개념에 연결하여 전개가 되는 글을 읽으니 되려 각자의 위치에서 더 나은 위치라는 꿈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벌레' 의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이 고귀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