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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페스 글입니다. 취향이 아니라면 주의해 주세요.
2. 세 커플을 한번에 데리고 온 이유는... 사실 내가 생각한 걸 다 쓰려면 줄글을 써야 하는데 그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어서..... 일단 썰체로 가져왔어.... 응......
3. 하지만 156개의 커플링 중 단 세 개.... 조금 떨리네.... 댓글에 언급된 커플링이 몇 개 있었는데..... 그걸 다 쓰면.... 사랑과 전쟁 되겠더라...... 양해 부탁.....
그럼.... 시작해 볼게....♡
다이내믹한 고등학교 생활 3년 무사히 마치고 눈물의 졸업식을 끝으로 더이상 선생님들 때문에 놀랄 일은 없을 줄 알았던 세봉고 졸업생들.
정확히 2년 후에 새롭게 뒤집어질 일 생김.
"야. 너 그거 들었냐?"
"뭐."
"경제랑 화학 결혼한대."
1.
민규 X 원우
뜬금 없는 결혼 소식 들으면 애들 다 놀라지도 못하고
"왜...? 아니, 어쩌다가....?"
소리만 반복하게 됨.
그럴 만도 한 게 민규쌤 원래 사람 좋아 인간이라 여기저기 선생님들한테 붙어 있는 모습 자주 봤지만 원우쌤한테?
글쎄....
둘이 같이 있는 걸 본 기억도 별로 없는데.
애들이 기억하는 한 과학실 출입 금지 당했다는 소문이 둘 사이의 유일한 접점이었단 말임.
근데 둘이 결혼을 한다고?
손 잡고 딴딴따단~ 딴딴따단~ 한 다음에 저희 잘 살게요 하면서 하와이 몰디브 보라보라 이런 데로 신혼 여행도 가고 그럴 거라고?
아 예.. 그러세요....
이쯤 되면 애들이 지침.
어쨌든 민규 원우쌤이랑 연락하고 지내던 애들 결혼식 초대 받아서 가면 엘리베이터 내려서부터 쭉 전시된 웨딩 사진 보고 그제서야 둘이 진짜 결혼을 하는구나 싶음.
사진 구경하면서 식장 앞까지 가면 훤칠하게 빼입은 민규쌤 사람 좋은 얼굴로 싹싹하게 하객들이랑 인사 중인데,
애들 발견하고는 달려오더니 표정 싹 변하면서
"어떡해...? 나 진짜 너무 떨려... 청심환 세 개 먹었어...."
이럼.
그럼 애들 중에 하나가 농담한다고
"아, 선생님. 원우쌤이 제 첫사랑인데 홀랑 데려가시면 어떡해요~"
하는데 그 말 듣자마자 민규쌤 픽 웃으면서
"너 입학하기도 전부터 형 내 거였어."
해서 애들 또 뒤집어짐.
입학하기 전이 뭐야.
둘이 올해로 8년 됐대.
말 도 안 돼
ㄴㄴ 말 됨.
김민규 전원우 대학 때 연합 동아리인
힙합 동아리에서 만났는데 처음엔 서로 별 관심 없다가 축제 때 공연하고 눈 맞았음.
당연함.
그날 둘 비주얼
이랬음.
일기 예보에도 없던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이미 임박한 공연 취소도 못하고 그냥 올라갔던 날.
이날 찍힌 영상 당시 대학가에서 꽤 유명했음.
덕분에 나름 팬도 생겼었는데 정작 둘은 저 무대를 마지막으로 동아리 뒷방으로 물러나 있다가 돌연 나란히 군대 감.
사실 세봉고 학생들도 느낄 정도로 성격 다른 두 사람.
주변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해서 금방 헤어질 줄 알았지만 의외로 결혼 전에 딱 한 번 싸워 봤을 정도로 조용하고 평탄하게 연애했음.
그 단 한 번의 싸움으로 둘은 본인들이 싸움의 시간을 견딜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그 길로 결혼을 결심함.
더 크게 깨달은 쪽은 전원우.
그래서 냅다 프로포즈 하고 날짜 잡았음.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홀랑 데려간 쪽은 김민규 아니고 전원우.
이런 내막 모르는 애들은 정작 원우쌤이 안 보여서 민규쌤한테 원우쌤은 어디 갔냐고 물어봄.
근데 민규쌤 대답은 안 하고 갑자기 다른 데 보면서 헤벌레 웃어.
......?
'...뭐야.... 청심환 세 개 먹었다더니 부작용 생겼나...'
생각하면서 민규쌤 시선 따라가면 거기에
웨딩 수트 차려 입은 원우쌤 있음.
고딩 때 가죽 바지 입은 원우쌤 본 이후로 또 저렇게 꾸민 거 보니까 그때 만큼이나 비주얼 충격적이라 애들도 말을 잃음.
그러거나 말거나 정작 당사자는 담담한 얼굴로 와 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당연히 자기 자리라는 듯이 민규쌤 옆에 서는데
나란히 서 있는 두 사람 그림처럼 잘 어울려서 원우쌤이 자기 첫사랑이라고 농담했던 친구도 더는 아무 소리 안 함.
그러고 보면 문득 둘 다 멀쩡하게 생겨선 수시로 아무 말이나 하고 실없는 드립 날리던 게 생각나서 왜 결혼하는지 알 것 같기도.
그날 결혼식 사회는 윤정한이 봄.
축가는 조슈아의 선데이 모닝.
"야. 슈아쌤 노래 왜 이렇게 잘 부르시냐."
"쌤 미국에 있을 때 성가대였대."
"....넌 그런 걸 어디서 들었어?"
"정한쌤이 그러시던데."
졸업하고도 윤정한은 이야기 보따리임.
아무튼 순서 다 끝나고 행진하기 전에 신랑들 미션은 국룰이라 가벼운 미션 시키던 정한쌤.
갑자기 대본에 없는 말을 하기 시작함.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원우 선생님이 정말 다재다능하신 분이거든요. 저희 학교 축제 때 선생님께서 멋진 무대를 보여주신 적이 있으신데 제가 그걸 참 감명 깊게 봤습니다."
"......??"
그 무대가 어떤 무대였는지 아는 애들 다 '????" 하는 얼굴로 설마하고 있는데 윤정한 대뜸
"그런 원우 선생님의 짝이 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민규 선생님이 프리스타일 랩을 한번 보여주시면....."
해서 김민규 결국 소리지름.
"선생님 제발요!! 내 결혼식이 장난 같애??!"
그제서야 아하하 웃은 윤정한 만족스러운 얼굴로 행진 시켜줌.
행진하는 거 보면서 박수치던 애들 두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하는데 맞는 건 진짜 없음.
"이제 민규쌤 부엌도 출입 금지 당하는 거 아니야?"
"ㅋㅋㅋ 부엌은 아무래도 좀 그렇지. 거긴 깰 게 많으니까."
"ㅋㅋㅋㅋㅋ 그래도 만약에 애기 생기면 민규쌤이 엄청 잘 놀아 주긴 하겠다."
딩크인 민규 원우 부부 결혼한 지 일주일 만에 전원우가 접시 세 장 깨 먹고 김민규한테 부엌 출입 금지 당했음.
어쨌든 음식을 제일 중요한 기준으로 두고 식장 고른 민규쌤 덕분에 배까지 만족스럽게 채운 애들.
그나마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젠 정말 끝이겠지 했던 예상마저 딱 6개월 후 보기 좋게 빗나감.
"야. 그 얘기 들었어?"
"뭐가."
"윤리랑 국어 결혼한대."
2.
한솔 X 승관
둘 결혼 소식 들으면 민규 원우 때랑 달리 애들 잠깐 놀라다가 이내 고개 끄덕임.
왜냐면 둘은 그 시절에도 제법 친해 보였고 무엇보다 승관쌤이 한솔쌤 잘생겼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으니까.
다들 승관쌤이 한솔쌤 그렇게 좋아하더니 결국 낚아챘구나 생각하는데 실상은 최한솔이 고백 세 번 하고 겨우 연애 시작해서 7개월 만에 결혼 준비 시작했음.
진짜 얘네 맞히는 게 하나도 없어.
게다가 고백을 세 번 했댔지 세 번째에 받아 줬다는 말은 안 했다.
정확히 세 번 다 까임.
....ㅎ
우선 우연히 들어간 애들 단톡방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인간인 최한솔.
물 흐르듯이 사는 게 인생 모토인데 물 흐르듯이 부승관한테 스며들어 버렸음.
그것도 그럴 게, 동갑인데도 1년 먼저 들어와 있었다고 선배 노릇 제대로 하면서 이것저것 챙겨주던 부승관, 모든 행동에서 사랑스러움이 뚝뚝 떨어지는데 그게 안 예뻐 보일 수는 없는 거임.
반면 거절한 쪽도 나름대로 사정은 있었음.
제주도에서 올라온 청년 부승관 어릴 때부터 워낙 야무지고 책임감도 강한 사람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성격 때문에 마음 속에 걱정을 쌓아 놓고 사는 걱정 인형이었던 것.
그런 부승관에게 같은 학교 선생님과 사내 연애?
그것도 저렇게 잘생긴 놈이랑?
이건 백퍼 내가 속앓이 할 각이다 싶어서 거절했던 건데 설마 세 번이나 고백할 줄은 몰랐음.
처음 수학 여행 답사로 제주도 갔을 때 둘만 남은 타이밍에 들었던 고백 거절할 때만 해도 불편해질 각오 단단히 했던 부승관.
생각보다 전혀 어색하지 않게 평소처럼 구는 최한솔 덕분에 두 번째 세 번째 고백도 어렵지 않게 거절했는데, 사실 그 고백이란 게 '고백'이라고 부르기도 거창하다 싶을 만큼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말들이라 나중엔 신기한 마음까지 생김.
왜냐면 본인 같으면 첫 번째 거절 이후로 매일 밤을 이불 차며 지샜을 텐데 최한솔은 "알겠어요." 한 마디를 끝으로 매번 아무렇지 않아 보이니까.
또 한편으로는 좀 의심스럽기도 함.
진짜 나 좋아하는 거 맞아?
아니 진짜로 좋아하는데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다고?
자기가 거절하긴 했지만 사람이 싫어서 거절했던 건 아닌데다가 솔직히 나는 점점 흔들리는데 정작 저쪽은 태평해 보이는 게 이상하게 속상했던 부승관.
결국 어느 날 야자 끝나고 태워다 주겠다는 말에 냉큼 얻어 탄 차 안에서 충동적으로 먼저 말 꺼냈음.
"선생님은 제가 불편하진 않으세요?"
"제가 선생님을 왜 불편해 해요?"
"....제가... 선생님 마음 거절했잖아요. 근데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셔서."
막상 말 꺼내고 보니 거절한 입장에서 하기엔 질문이 조금 너무했나 싶긴 했음.
근데 정말 궁금해.
왜냐면 난 그렇게 못 한단 말이야.
나한텐 모든 일이 너무 어렵고 복잡한데.
하지만 만약에 여기서 '뭐 어때요. 아니면 마는 거지.' 같은 대답이 돌아오면?
그럼 또 마음이 너무..... 슬플 것 같은데.
결국 혼자 대답해 아니 대답하지 마 네 맘을 보여 줘 아니 보여 주지 마 하고 있을 때 최한솔이 그랬음.
제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잖아요. 사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요. 그냥 좋아하는 것 뿐인데."
그 말 듣고 밤새 한숨도 못 잔 부승관 고민 끝에 처음으로 먼저 주말에 만나자고 연락했음.
그리고 그날 네 번째 고백은 본인이 함.
"만약에 저도 선생님이 좋다고 말하면, 그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진 않겠죠. 그냥 우리가 서로 좋아하게 되는 것 뿐이니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부승관 그 대답을 들은 순간 자기가 평생 찾던 무언가를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음.
그리고 연애 시작해서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평화롭게 지내던 두 사람 별로 특별한 계기도 없이 자연스럽게 결혼 준비함.
처음 집안에 결혼 소식 알렸을 때 제일 먼저 연락 온 건 윤정한.
전화 받자마자
"나!! 내가 사회 봐 줄게!!"
했는데
"........."
되겠냐?
사회는 이지훈이 보고 축가는 이석민 권순영이 해 줬음.
졸업생들이랑 연락도 자주 하고 만나기도 자주 만나는 부승관 덕에 애들도 초대 받아서 가면
입구에서 정한쌤이 외숙모~ 삼촌~ 하고 있어서 둘이 사촌인 거 잊고 있던 애들도 '아, 맞다. 둘이 사촌이었지.' 함.
식 시작하면 제법 의젓한 신랑처럼 구는 부승관.
부 빠진 석순의 거침 없는 선곡 덕분에 끝내 흥을 참지 못하고 거침 없이 튀어나가서 한 몫 거들며 결혼식장 뒤집어 놓음.
그럼 최한솔은 그 옆에서 "오.... 와우....." 하면서 박수침.
그거 보면 최한솔 측 하객들 속으로 '쟤는 앞으로 결혼 생활이 심심하진 않겠네.' 생각하는데 막상 신혼 때 골때리는 짓은 최한솔이 다 함.
그날 부케 던진 사람 부승관.
사유: 둘 중에 아무나 던져도 되는데 구기 종목에 자부심 있는 부승관이 자기가 던지겠다고 했음.
하지만 선생님. 부케는 공이 아니잖아요.
각종 에피소드 대량 생산한 한솔 승관 부부 결혼식.
부케마저 잘못 날아가는 바람에 가만 있던 최승철이 받아서 끝까지 웃음 줌.
그 와중에 또 체육 선생님이라고 완전 나이스 캐치 해서 더 웃긴데 그거 보고 안 웃는 사람 딱 한 명 있는 거 부승관만 봤지.
식 시작하기 전부터 집안 어른들이
"동생도 가는데 너도 이제 슬슬 가야지."
하면 그저 웃으면서
"그래야죠~"
하던 윤정한.
그 옆에서 조용히 볼만 씹을 때는 언제고 이제는 부케 잘 받았다고 좋다고 웃고 있는 최승철이랑, 그런 최승철 보면서 웃음기 싹 가신 윤정한 보고 있자니
일부러 실수인 척 부케 그쪽으로 던진 부승관만 한숨이 절로 나옴.
저 형들 진짜 뭐 하냐.
3.
승철 X 정한
최승철한테 윤정한은 말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진 놈이었음.
실제로 첫만남 때 하늘에서 떨어지기도 했지만 운동 관두고 우울해 할 때 억지로 끌고 다니면서 정신 차리게 해 준 사람이 윤정한이었으니까.
물론 윤정한에게도 죄책감이나 책임감이 있었다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알지도 못하던 사이에, 그것도 그렇게 쌀쌀맞게 굴었는데도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사람 만들어 놓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
그게 고마워서 평생 져 주겠다고 다짐했던 게 독이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내가 너무 지쳐 있었으니까.
너무 힘들었고 외로웠으니까.
그럴 때 옆에 있어 준 친구에게 특별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은 전부 착각이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스무 살.
신입생이라 불려 다니기 바쁘다며 드문드문 보던 때에 어쩐지 윤정한 볼 때마다 머리카락이 자라 있어서 너 그거 기르는 거냐 물었더니 그냥 그래 보고 싶어서 기르는 중이라기에 대충 고개나 끄덕이고 말았는데.
두 달 만에 만났던 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웃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순간,
더이상 헷갈릴 여지도 없이 명확한 감정은 꼭 발 아래로 땅이 푹 꺼져 버리는 기분이었음.
문제는 그날 이후로 아직까지 거기서 나오질 못하고 갇혀 있다는 건데,
그건 최승철이 뭘 하기도 전에 눈치 빠른 윤정한이 그 땅을 아주 메워 버렸기 때문임.
윤정한은 처음부터 최승철이라는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 너무 버거웠음.
처음 만난 날 병원에서 수술해야 한다는 말 들었을 때 그 열여덟 살의 최승철 얼굴이 자다가도 꿈에 나와서 지금도 가끔 새벽에 깨.
공부 가르쳐주겠다며 따라다닐 때 최승철은 차가운 얼굴로 너 때문에 운동 관둔 거 아니니까 제발 이러지 말라고 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윤정한은 너무 잘 알았음.
너 그거 아니잖아. 당장이라도 다시 뛰고 싶은데 내가 다 망쳐 놓은 거잖아.
하지만 최승철과 똑같이 고작 열여덟이었던 윤정한.
차마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어서 너 대학 가서 잘 살아야 나도 쓰레기 신세 면한다는 헛소리만 늘어놨음.
그리고 내심 그때는 정말 최승철이 잘 사는 거 보면 자기도 마음의 짐 덜어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일상 되찾고 밝게 지내는 최승철 보면 볼수록 오히려 마음만 더 복잡해짐.
왜냐면 자기가 알던 최승철은 저렇게... 밝은 사람이 아니었는데.
꿈에 나오는 고등학교 시절의 최승철은 언제나 무표정한데 실제로 만나면 너무 잘 웃어.
시간이 지날수록 저렇게 잘 웃는 애가 나 때문에 그런 시기를 보냈다는 게 절감돼서 일부러 신입생이라 바쁘다는 핑계 대고 만남도 줄여 봤는데
어느 순간 최승철이 자기를 대하는 게 달라졌다는 느낌 받은 윤정한 덜컥 겁이 나서 아예 잠수 탔음.
근데 잠수를 타면 뭐 해?
학교도 알고 집도 아는데.
잠수 탄 지 일주일 지나던 날 집 앞으로 찾아와서 왜 전화를 안 받냐고 따지는 최승철한테 윤정한 딱 한 마디 함.
"승철아. 친구끼리는 전화 좀 못 받은 거 가지고 이렇게 화 안 내."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들은 최승철도 애꿎은 입술만 씹다가 겨우 한 마디밖에 못 했음.
"우리가 정말 친구면 너도 나 피하지 마."
그날 이후로 친구 이상의 감정은 한 톨도 내보일 수가 없는 최승철과 그럼에도 마음 다 아는데 정작 피할 수가 없는 윤정한.
최승철은 윤정한한테 이길 수가 없어서.
윤정한은 최승철한테 등을 보일 수가 없어서.
부르기도 옹색한 친구라는 이름으로 꾸역꾸역 여기까지 왔음.
달라진 게 있다면 그 세월 동안 최승철은 윤정한이 똥차를 만나든 걸레짝을 만나든 손도 못 대고 지켜만 보느라 꽤 많이 무뎌졌다는 거.
반대로 윤정한은 자기가 무슨 짓을 해도 도망가지 않고 옆에 붙어 있는 최승철한테 생기는 마음을 감당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
그래서 부승관이 던진 부케 받고 좋다고 웃는 최승철 보면서 도저히 웃음이 안 나왔음.
그래도 동생 결혼식인데 똥 씹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간신히 웃으며 사진까지 찍고 식당 내려오면 선생님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최승철 보임.
윤정한은 가족들 다 있으니까 가족들이랑 같이 앉았는데 테이블이 멀어서 무슨 말을 하는지는 하나도 안 들려.
근데 언뜻 보면 연신 웃고 있는 얼굴에 괜히 배알이 꼴리는 건 무슨 심보인지 자기도 모르겠음.
한편 그때 최승철은 다른 게 아니라 나이 많은 선생님들 사이에서 사회 생활 중이었음.
ㅎ....
부케 받았으니 장가가는 거냐, 만나는 사람은 있냐...
무례한 질문들 속에서 그동안 쌓은 사회 생활 짬 탈탈 털어 웃는 얼굴로 맞춰 주다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음식 흡입하고 더 가져오겠다는 핑계로 일어나는 순간 겨우 한숨 돌렸음.
그렇게 간신히 빠져나온 터라 최대한 천천히 돌아가려고 음식 앞에서 남들한테 순서 다 양보해주고 있으면 언제 왔는지 옆에 윤정한이 서 있네.
근데 대뜸
"너 부케 열심히 받더라?"
하는 말에 좀 멋쩍어서
"그냥 내 앞으로 날아오니까 받은 거지."
했는데 돌아오는 말이
"이제 6개월 안에 결혼 못하면 3년 동안 못해, 너."
잖아.
이걸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내 마음 뻔히 알면서.
그래서 덩달아 고운 목소리가 안 나가고 좀 더 낮은 목소리로
"....혹시 모르지. 인연은 어디서 만날지 모른다는데. 나도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하고 싶은 사람 생길 수도 있잖아."
했더니 도리어 놀란 얼굴로 쳐다보는 윤정한.
진짜 어이가 없는데 또 그 얼굴 보면 더는 세게 나갈 수가 없어서
"......못하면 마는 거고."
덧붙이니까 그제야 그래, 하고서 자기 테이블로 돌아가는 뒷모습에 방금 급하게 먹은 음식이 벌써 얹힌 것 같아.
정한아. 내가 요즘 너 때문에 잠을 못 자.
학교에서 애들이 "선생님 첫사랑 얘기 해 주세요!" 하면
"무슨 첫사랑이야~"
하면서 공 던져 주는 체육 선생님이랑
"아휴. 내가 초등학교로 잘못 출근한 줄 알았네~"
하는 수학 선생님.
진짜 6개월 안에 결판 못 내서 3년 꽉 채운 후에야 청첩장 날리며 세봉고 마지막 사내 부부 됐음.
**
+) TMI
* 체육 대회 때 원우쌤 도시락 싸 준 사람 민규쌤.
* 제주도에서 승관쌤이 민규쌤 말에 시큰둥하게 대답한 이유 한솔쌤 때문에 심란해서.
* 정한쌤이 만우절에 교실 들어오자마자 승철쌤 발견하고도 모른 척한 이유 교복 입고 웃는 얼굴 좀 더 보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