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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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억과 소설가 염상섭, 김동인. 1930년대 초반, 이 세 문인 사이에 벌어진 조선판 소설 디스전. 염상섭의 『질투와 밥』,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로 펼쳐진 이 디스전을 두고, 시인 이해문이 쓴 만평 「소설가와 시인」을 읽기 편하도록 조금 편집하였습니다. 예, 놀랍게도 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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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 변사(辯士)처럼 능청스럽고, 약간은 익살스럽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억양이나 어미 모두 입에 붙는 쪽으로 편하게 해주세요. 사이사이에 자연스러운 추임새도 넣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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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https://youtu.be/IOADqXlwdtY?si=r6TaMyWD2Uq6s9Bx
(BGM in, 잠시후 아주 작아지고 계속 유지)
소설가란 무엇이냐, 또는 시인이란 무엇이냐.
나는 이에 대하여 아무런 새로운 의견을 말하려 함이 아니외다. 다만 조선의 현 문단에서 이름이 있는 소설가 염상섭, 김동인과 시인인 김억 씨와의 세 분 사이에 일어난 조그만 사건을 중심으로 그들 문예가 서로의 인격을 간단히 논해 보고자는 것이외다.
자, 그러면 그 세 분 사이에 일어난 조그마한 사건이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께서도 벌써 잘 아실 것이지만은, 시인 김억이 돈 있는 첩을 얻었다가 억센 큰마누라의-.. 아니, 그의 부인의 야단 통에 그 첩이 나가버렸고, 그러한 사실이 있은 후에 상섭은 「질투와 밥」이라는 소설을 어떤 잡지에 내었던 바. 그 소설을 읽은 김억은 이것이 자기의 사살이라고 상섭에게 야단을 쳤었으며, 그런 후에 김억의 동향 사람인 김동인은 또 다른 잡지에 「발가락이 닮았다」라는 이상한 제목으로 한 편의 소설을 발표한 것입니다.
그런데, 김억이 소가를 얻어 실패하였거나 말았거나, 그의 친구인 상섭이 이것을 소설의 모델로 하여 묘한 말로써 세상에 발표치나 말았으면 좋았으련마는.. 기어이 그리되어 김억은 세상에 대하여 남이 부끄럽고 상섭이 별로 자미스럽지 못한 글을 쓴 사람쯤 된 것이었던 모양입니다. 이것이 이만큼 되고 말았어도 좋을 것을, 김억은 이 상섭에 대한 분함을 참지 못하고 그의 죽마고우인 김동인의 수고를 빌어 이에 보복하는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를 쓰게 하였다 하니-... 이 얼마나 그들의 얌전한 장난입니까.
김억이 첩을 얻었다함은 인생의 하나인 그로서 그렇게 허물할 수 없는 일이외다. 그리고 염상섭의 소설 「질투와 밥」을 읽고 그의 미묘한 수법에는 저윽이 감탄할 바 있다 생각하였으며,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는 재기 있는 소설가의 그럴듯한 구상과 표현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음이외다. 헌데, 사람으로서 첩을 얻었고 소설가로 소설을 썼으면야 이상타 할 누구도 없겠지마는, 시인 김억은 첩을 얻고서 너무 주변 없이 방정을 피웠으며, 또한 자기 일을 마음껏 보아주는 친구의 마음을 되리어 의심한 까닭에 상섭의 눈꼴을 들었다. 그리하여 허다한 재료를 두고서 김억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자기의 본심을 피력하는 동시에 사람으로서의 김억을 공개함이었고 동인은 친구의 청에 못 이겨, 또는 받아주는 술잔에 바람이 나서, 상섭과 김억이 반목하는 사이에 한 몫 끼워보자고 뛰어든 것이외다.
이것이 이야기로 하면 가장 재미있게 되었으나, 그들의 사회적 인격상으로 보건대는 딱하다 할만치 안 된 일일 것이외다.
그러면 그들 세 사람 소설가와 시인을 논하려 하는 필자의 마지막 결론이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합니다.
첫째, 상섭 씨는 인정미가 적다.
둘째, 김억 씨는 주책이 없다.
셋째, 동인 씨는 값싼 소설가다.
이렇게 짤막하게 그들 세 분을 평할 수 있을까 합니다. 그러나 누가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그래도 나으냐?' 묻는다면-, 나는 상섭이라 대답하려 함이외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냐 하면, 염상섭은 다만 인정미가 없을 뿐, 엄정한 붓으로써 허울 좋은 인생의 이면을 해부비판한 것이었고, 김억은 분수에 없는 낙을 탐하다가 미끄러지매 남이 웃음으로 그 웃는 사람에게 침을 뱉기 위하여 다른 한 사람을 붙들고 일어났음이니, 한 비겁자에 불과하며, 김동인은 남의 청을 들어 다른 문인의 아내를 욕 하는 불의의 붓을 든 것이니, 한 소설가로서의 신망할 가치가 없음으로써이외다.
(목을 한번 가다듬고)하여튼, 문단의 한 추태였음을 한탄하고 세 분의 금후 자중 빌며 이만 그칩니다.
(BGM 잠시 천천히 커졌다가 천천히 F.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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