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되었던
봄날이 무르익어갑니다
햇살이 보드라우면
예전과는 달리
요즈음 나는 먼저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제 막 19개월째 접어든
우리 준우에게
걸음마 연습도 시킬 겸
바람 쐬는 나들이를
선물 해 주는 것이죠
그래서 요즘 하루 한 차례
간단한 간식, 기저귀,
물티슈 넣은 가방을 챙겨
준우와 할머니 둘이
느리게 걷기 산책을 합니다
녀석의 걸음 템포도
맞춰야 하고
온 세상 구경이
더 없이 신기한
장난감인 터라
세월아 네월아
해찰 하는 것 맞추다 보면
소풍시간은 언제나
지척이 천리지요
사내 녀석이라 그런지
장난감 중에서 자동차를
제일 좋아하는데
산책길 도로에
자기가 좋아하는
갖가지 자동차들이
달리는 것을 보면
흠뻑 빠져들어
''붕~!붕 '' 환호성을 지르며
자동차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제 갈 길을 잃어버린답니다
내가 아무리 가자고
어르고 재촉해도 아랑곳 않고
녀석은 교통경찰 아저씨를 흉내내는지
자동차들에게 고사리 손으로
이리가라 저리 가는거다
수신호를 보내주고
아직 말이 서투르니
뭐라 뭐라 뜻 모를 말로
차를 향해 가르치며
교통정리를 해댄답니다
정작 자동차들은
조그만해서
보이지도 않을 녀석을
알아줄리 없을텐데요
녀석만 저 혼자 신이 나서
차들을 제 마음대로 정리하는데
열심히입니다
나들이 할 때 난감한 것은
이제 꾀가 말짱해져
걷기를 내키지 않아 하죠.
그럴땐 할머니를 조르면
안아준다는 것을 알아요
녀석이 13키로그램이라는걸
알리가 없고
할머니의 오십견을
더더욱 알리가 없으니
무조건 막무가내 작전으로 나간답니다
그러면 언제나 지고마는
할머니는 사랑의 힘으로
믿을 수 없는 먼거리를
안고 간답니다
팔이야 아프든지 말든지
토실토실하고 향긋한
녀석의 볼에 뽀뽀까지 해 가면서
준우는 누구에게나
인사를 잘 한답니다
요즘 인사법은
만날 때나 헤어질 때나
똑같이''안녕~!''하며
손을 흔드는건가 봅니다
지나가는 아줌마께도 인사하고
특히 제 또래 아기들에게
친구라 반가운지
시키지 않아도
손 흔들어 줍니다
인사성이 너무 밝은 나머지
녀석은 기저귀에 응가도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리면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매번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제 응가에게 잘가라
빠이빠이 손 흔들어 주며
안녕을 한다니까요
경비아저씨에게는 경례를 하는데
전에는 이마에 손을 정성스레
갖다 부치며 성실히 하더니
요즘에는 손을 갖다 데는둥 마는둥
벌써 성의없는 병장 경례를 합니다
눈 뜨면 조그만 주먹에
검지를 펴서 이것 저것
지시하는 권력자
'이거 줘라' ' 저거 해 달라'
제 성에 안 차면
뗑깡으로 응징을 하니
전전긍긍하게 됩니다
그래도 이렇 듯 녀석에 대한
사랑이 무한히 샘솟는 것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겠지요
처음 며느리에게 임신 소식을 듣고
그렇다면 곧 내가 할머니라고?
그 직책(?)이 또래보다
이른 편이라 그런지 익숙지 않아 충격이었어요
그동안 '아줌마'라고 불려도
공연히 기분 상하고 낯설었는데
앞으로는 그 호칭이라도
불러주면 어딘가 해야겠네요
작년 손자와 함께 하는
요가를 배우는데 강사가 내게
준우 할머니 허리 더 올리세요""
할머니 옆으로 하세요" 할머니 왼쪽예요"
그놈에 할머니 정말이지 거슬리고
스멀스멀 서운한 마음도 올라왔어요
할머니를 할머니라 부르지 말지.....
예전에 손자가 보고 싶어
아들 집에 가서 벨을 누르면
아기 보는 도우미 아줌마가 "누구세요?"
그럼 영락없이 나는 현관에서
"할머니예요"라고 할 수밖에요
하지만 할머니라고 불러 주는 데
희열을 느끼게 하는 존재도 있지요
얼마 전 녀석에게 '할머니' 해보라 가르쳤지요
작은 입으로 '하모니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며 탄성을 질렀어요
요즘 나는 일하는 제 어미를 대신해
손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손자가 이쁘다고 하는 것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내가 겪어보기 전에는 다소 말하는 이의
과장이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당해보니 이런 종류의 사랑도
있다는 것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것 같습니다
해봐야 알 수 있겠네요
하지만 주위에서 '아기 보지 말라'' 아무 소용없다' 안쓰러워 말리는 것도 부득 우겨가며
힘든 육아에 몰입하느라 잃어버린
나 자신에게 스스로 미안하기도 합니다
언제나 할머니를 쥐락펴락하면서
어쩌다 무심코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하고 내가 노래를 시작하면
녀석은 대 놓고 불만스러운 눈빛으로
손사래를 치며 하지 말라 해요
그럼 '곰 세 마리?'하고 물으면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지요
노래도 제 마음에 드는 걸로 하라는 거죠
내가 컴퓨터 앞에 앉을라치면
녀석이 열광하는 뽀로로 봐야 한다 해서
자리를 비켜줘야 하고
신문 보면 돋보기 쓴 할머니가 낮설은지
자꾸만 안경을 벗겨 버려 볼수 없게 방해해도
녀석이 날려주는 윙크에,
엄지손가락 치켜세워 주는 최고 사인에.
돼지코 개인기 애교에 반해 녹아납니다
제 집에 돌아가 녀석을 못 보는 시간이면
삼삼하게 그리워 혼자 그 애 이름을
불러보곤 한답니다
어디서 솟아나는 사랑인지 신비로워요
생에 가장 생소하고
거북한 호칭을 새로 얻게 해준 녀석을
할머니는 사랑합니다.
카페 게시글
육아일기
새로 얻은 호칭
산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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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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