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변주시과제물
옷을 짓다
차경환
배고픈 발을 신고 서울로 가자
새하얀 캔버스가 채색하기 전 문을 열고
바람이 불어도 비가 와도 좋아
돌아온다는 생각일랑 꼬깃꼬깃 구겨 쓰레기 소각장에 던져주고
발목이 춤추고 싶은 곳으로
하늘에 따닥따닥 숙부쟁이꽃 돋기 전에 도착해야 해
민들레꽃 씨가 북극성을 불어 귓전에 내리면 맑은 종소리 발등에 굴리자
발이 세든 골목이 비릿한 발바닥을 핥는 동안
가지는 아픈 칼점을 찢고 눈을 뜨고
시퍼렇게 목청을 태우던 매미 하나둘 땅 속에 지면 부끄러워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들 뚝뚝 땅 위에 떨구네
바람을 씨실로 묶고 시간을 날실로 엮어 비단을 짜고
빵 굽는 마을 지나
앞 선 발이 벗어 둔 발자국에 아득히 잠들지는 마
길 위에 널브러진 발자국은 돼지에게 진주 같은 것이라고
어긋난 길은 바늘이 엮어줄 것이라고
부릅 뜬 무덤이 말해주네
세상은 언제나 가고 오지 않는 것
덕수궁 돌담길은 혼자 걷는 길
그기 길이 끝난 곳에 당도하면
길과 길을 잇는 바늘이 돋을 거야
한 벌의 옷을 짓고 몸을 넣으면
하늘에 환하게 꽃이 필 거야
2024년 강원일보
길을 짜다/황영기
몸살 난 집을 데리고 경주로가자
빈 노트가 스케치하기 전 살며시 문을 열어
비에 젖어도 바람에 옷이 날려도 좋아, 아무렴 어때
나갈 때 맞지 말고 우산을 챙겨줘
돌아온다는 생각은 깊은 장롱 속에 넣어두고
먹다 만 밥은 냉동실에 혼자 두고
머리는 세탁기에, TV는 버리고 발가락이 듣고 싶은 곳으로
실선으로 그려진 옷소매에 손을 넣고 버스에 올라
별이 기웃거리기 전에 도착해야 해
능소화 꽃잎 같은 사연을
페달에 담아 바람에 날리자
친구가 필요할 거야 그럴 때는 친구를 잊어
무덤 속 주인이 말했다
지퍼처럼 잎을 내렸다 올리고
꽃은 단추처럼 피었다 떨궈줘
발자국이 세든 골목이 비릿한 바닥을 핥을 때
날실 머리는 잡고 씨실 허리를 감으며 하나, 둘 잘라줘
촉촉한 파스타에 울던 사람, 발을 만져봐 배가 고플 거야
바늘로 빵을 자르는 제빵사의 손길
먹줄 실 뽑아 바닥을 튕기는거미의 솜씨
어긋난 선을 바늘이 엮어주면
옷이 한눈에 주인을 찾아, 보란 듯이 걸쳐 줄래, 그러면 흥분할 거야
버스는 늘 먼저 떠나
박물관 뒷길은 혼자된 연인만 걸어가지
거기 길이 끝난 곳에 당도하면
길과 길을 잇는 재봉틀이 떠오를 거야
한 벌의 옷을 짓고 거기에다 누군가 몸을 넣는다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머리끝에 꽃이 달리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