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독방
-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을 읽고 -
2018. 5. 22. 백란주
E.M.포스터는 플롯을 “인과관계에 중점을 둔 사건의 서술”, 스토리를 “시간의 순서에 따라 정리된 사건의 서술”이라고 보았다.
플롯의 수법은 작품의 소재나 작가의 예술적 의도에 따라 달라지고 소설의 내용도 기본적으로 일상적인 삶에서 직접 취하기는 하나 그것을 소설화하는 방법은 삶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플롯이 “스토리가 낯설게 되고 창조적으로 뒤틀려지고 소외되게끔 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단편소설에 대해 최초로 의견을 제시한 사람은 J.W.괴테로서, 그는 단편소설에는 반드시 ‘새로운 것’과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뒤이어 독일의 낭만주의 학자들도 단편 소설의 이론에 많은 주의를 기울였는데, 특히 F.슐레겔은 “단편소설은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어야 하므로 경이적인 모멘트라든가 매혹적인 모멘트를 내포하고 약속할 수 있음직한 형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단편소설의 이론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던 학자는 독일의 P.J.L.하이제로서, 단편소설에서는 행동의 통일, 상황의 예리함, 묘사의 명료함이 필수적이므로 “하나의 갈등이 하나의 범위 속에 있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언급했다.
다음 백과 중에서 -
김영하의 소설 오직 두 사람, 제목에 붙은 ‘오직’이란 부사어에 잠시 머물렀다. ‘여러 가지 가운데서 다른 것은 있을 수 없고 다만’ 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떠올리며 두 사람만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를 생각했다. 상황 속에서 현재를 쫓아가는 것일까, 상황 속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과거를 회상하는 것일까, 책 표지화에 설핏 보이는 두 사람의 형상은 마주함일까, 나란히 바라봄일까, 어떤 기억에 대해 공유일까, 서로 다른 관점으로 남아버린 관계에 대한 원망일까. 책표지에 드러난 작은 그림하나와 ‘오직’이란 부사어 하나만으로도 궁금증은 충분했다. 내겐 일곱 편의 단편들을 묶을 수 있는 것이 오직 두 사람의 제목으로 이해되었다.
사회와 나, 타인과 나, 애인과 나, 아이와 나…….
결과론적으로 세상은 여럿과 나의 모습이 아니다. 언제나 여럿 속에 포함된 나와 그 상황에 맞서는 어떤 대상과 마주하는 현상이므로 ‘오직‘이라는 부사어가 나의 상대가 될 수밖에 없음을 먼저 인정하며 들어갔다.
작가는 ‘이십 년을 함께해 온 아내 은수에게, 사랑과 경의를 담아’라는 글귀를 목차 앞에 두어 꽤 괜찮은 남편이자 마주하는 아니,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말했다. ‘좋겠다, 부럽다’라는 엷은 미소로 시작한 책읽기는 ‘새로운 것’과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괴테의 주장처럼 새로운 것과 일상적이지 않은 것이 섞인 느낌이었다. 늘 부딪칠 수 있는 일상 속에서 한번쯤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반면 사회 뉴스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 조금은 지나친 심리묘사에 나의 시선과 뇌선이 따라가지 못하는 듯함도 있었다. 긴 서사가 아님에도 나의 호흡이 자유롭지 못한 것은 작가의 의도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을 것이다.
희귀언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 출신으로 이 언어를 쓰는 사람이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 그런데 최후의 두 사람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의절을 하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결국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언어가 모국어인 사람의 고독에 대해서 나는 생각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하는 설정에서 나는 현대사회의 무거움이 깊게 들어왔다.
대중사회 속에서 타인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내면의 고립감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성격을 이르는 말이었던 ‘군중 속의 고독’을 말하기 위함은 아닐까 하는 섣부른 추측을 해 보았다. 매일 만나는 현실의 다양함 속에서 나를 이해해 주는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쩌면 희귀언어를 사용하는 최후의 두 사람이 되는 기회일지도 모른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를 이해하는, 공감하는 감정을 갖게 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애써 나의 상황을 설명해야 하고, 증명해야 하며 설득시켜야 인정받는 언어의 박물관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반 언어와 비언어의 형태만으로도 짐작이 가능한 모국어를 사용하는 나의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희열. 그런데 현실에서 그 희열은 찰나였고 나는 다시 고독해 진다. 반 언어와 비언어는 정확성이 아니고 느낌으로 전해지기에 오해를 부르게 될 수 있다. 화자의 말처럼 이제 그만 화해하지 그래, 라고 참견할 사람도 없는 외로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인 말다툼, 만약 제가 사용하는 언어의 사용자가 오직 두 사람만 남았다면 말조심을 해야겠어요. 수십 년 동안 언어의 독방에 갇힐 수도 있을 테니까. 그치만 사소한 언쟁조차 할 수 없는 모국어라니, 그게 웬 사치품이에요?
나와 공감하지 않는 감정은 다른 언어가 된다. 나를 함께한 경험만이 가질 수 있는 언어, 나와 상대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때로는 두 사람만의 희귀언어가 된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혼자 독방에 갇힐 수도 있다.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라는 현주에게 아빠는 모국어였다. 엄마나 현정이와 나누는 밝고 따뜻한 대화, 논리적이고 명쾌한 현정이는 외국어 같다는 말에 공감했다. 나 또한 나와 이질적인 그 무엇들은 언제나 외국어 같지만 내게 익숙한 것은 모국어처럼 느껴진다.
다들 충고들을 하지요. 인생의 바른 길을 자신만은 알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서요. 친구여, 내가 가는 길에 미친놈이 있다니 조심하라. 그런데 알고 보면 그 전화를 받는 친구가 바로 그 미친놈일 수 있는 거예요. 인생을 역주행하는 미친놈이 있다는데 너만은 아닐 줄로 믿는다며, 그 농담의 말미처럼 인생에서 맞닥뜨리는 미친놈은 아마 한둘이 아닐 거고 저 역시 그중 하나였을 거예요.
살면서 내가 믿었던 것들이 무너질 때 그때서야 내가 역주행을 한 미친놈이 된 것인지에 대해 의심을 할 때가 있다. 상대의 배신에 미처 감지되지 않은 믿음을 아직도 나 아닌 그는 바른 길이라 믿고 있는 시점이기에 먼저 나를 돌아본다. 나는 모국어에 익숙한 사람인지라 외국어가 들어올 때는 속도가 떨어지고 방향 감을 잃게 되어 길을 헤매게 된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아주 큰일이고 대단한 일인 것 같다. 가까이 있는 가족들끼리도 나의 모국어에 익숙해 있는 가족들 사이에도 때로는 외국어가 우선인 감정이 될 수 있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서로 공감하지 않는 대화는 늘 외국어의 산란이다.
공허와 권태는 둘 중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어느 쪽이 더 치명적인가 묻는다. 아직도 나는 답을 찾고 있다.
오직 두 사람, 아이를 찾습니다, 인생의 원점, 옥수와 나, 슈트, 최은지와 박인수, 신의 장난.
결국 나와 마주한 그 한 사람의 언어인 모국어를 인정하게 되어야만 알 수 있는 미로 찾기 같았다. 상대에 대한 공감, 상대방이 가진 아픔에 대해 인지하고 같이 느껴줄 때 그가 사회의 군중 속에 있던 그 누구였더라도 내게는 나와 마주하는 오직 두 사람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가장하는 사물, 시간, 타인들은 늘 나를 두 사람의 관계에 초대할 수 있지만 나와 함께할 수 있는 오직 두 사람은 진실함에 함께 서명해야 해독할 수 있는 관계가 증명서로 남게 된다.
공허와 권태. 나와 나누었던 모국어의 감정들이 소멸되고 사라질 때 이 세상에 나만이 유일한 생존자가 되며 나와 대화 나누던 그 사람도 소멸하게 된다. 결국 나는 또다시 오직 두 사람이 존재하지 못할 때 다시 공허와 권태가 느껴진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가지고 간다.
달리 말해, 내 모든 것이 나와 더불어 간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가지고 갔다. 사실 내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애초의 용도와는 거리가 멀거나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사랑에도 철이 있었다고 말하는 헤르타 뮐러의 글이 새삼 나와 마주하는 한 사람이 된다.
가족을 사랑하는 일, 타인을 사랑하는 일, 사회를 사랑하는 일. 모든 사랑에는 철이 있다는 가르침으로 나를 이끈다. 또한 헤르타 뮐러는 하늘이 시간을 움직인다고 그의 글에서 표현했다. 하늘이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늘 나는 나와 마주한 그 무엇들과 진실로, 진심으로 마주해야 ‘오직’ 두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이 공허와 권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