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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껍데기
전창수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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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출판사와 계약을 한 것이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소설을 쓰겠다고 하면서 나의 생활은 온통 엉망이 되어 있었다. 일단, 계약을 하고 나니, 나는 어떻게 소설을 시작해야 할 지 몰랐다. 방안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겨우 몇구절 끄적거린 것은 내 아득한 과거 속에 어떤 남자를 떠올린 것뿐이다. 나는 이 소설을 회고록 형식으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회고록이 되어서는 안된다. 처음에 출판사에선 회고록을 써달라고 했었다. 나는 그것만은 안 되겠다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랬더니, 출판사에선 그럼 소설을 쓰되 되도록이면 회고록의 형식을 빌어서 써달라고 했다. 나는 사형장에 끌려가는 참담한 심정으로 소설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 그 남자를 만난 것은 내가 대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때였다. 나는 그 당시, 공부보다는 나이트와 술집, 혹은 당구장을 다니던 이른바 킹카라고 불리우는 잘 나가는 여자였다. 절대로 하룻밤을 허락하진 않았다. 언제나 열두시 이전에 귀가를 했으며, 그것만이 나를 유일하게 지탱해주던 경제력의 원천이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통금시간이 열한시 반이었지만, 열두시까지만 들어오면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그것은 학교가 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동네는 밤중에도 그리 한산한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어떤 것이 나를 그곳으로 몰아넣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날은 비가 몹시 내렸지만, 무척 더웠다. 더운 날씨에 소나기가 오면, 모기들은 실내로 들어가 평소보다 더욱 더 날뛰고, 에어컨이 없는 곳에 들어가면, 땀은 삐질삐질 쏟아난다. 나는 친구들에게 그들이 아는 허름한 술집으로 나를 인도해 주기를 바랐고, 그들은 친절하게 나를 그 허름한 술집에 내려다 놓았다. 그 술집엔 에어컨도 없이, 선풍기 몇 대만이 공중에서 돌아가고 있을 뿐이고, 낡은 탁자 주위로는 나무의자가 공원의 벤치처럼 서너 사람이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도록 길게 뻗어서, 그런 나무의자에 익숙하지 않은 나에겐 약간의 경악마저 일으키게 해주었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언제나, 요즘 유행하는 패션이나, 연예인들 이야기, 아니면, 화장품 이야기 등등 주로 그런 대화들이다. 그런 이야기들엔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내가 지루해 하는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열한시가 아직 못될 무렵, 나는 친구들에게 먼저 가봐야겠다고 하며, 오늘 즐거웠다고 하며, 일어섰다. 나는 잊었다는 듯이 술값을 치르고, 더 놀다 가라며 몇 만원을 쥐어주었다. 친구들은 친절하게 웃으며 고맙다고 하며 나에게 잘가라고 하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는 그 가게를 나왔다.
비는 아직도 많이 오고 있었다. 내가 우산을 펴려고, 가게 문을 서성거릴 때, 어떤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앞머리를 길게 늘어뜨려 왼쪽 눈을 가린, 우수에 찬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그 남자가 내게 말했다.
“현실을 믿나요?”
나는 이건 분명 이단종교이겠니 하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려는데 그 남자는 다시 나의 어깨를 붙잡고 물었다.
“현실을 믿으세요?”
이제 보니, 그 남자는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이렇게 억수같이 내리는 비를 마냥 맞고만 있었다.
“아저씨, 무슨 말 하려는지 모르지만, 전 지금 바빠요.”
그 남자가 굽히지 않고 나의 눈동자를 응시하는 것이 느껴졌다.
“전 아저씨가 아니에요, 전 당신과 같은 학생이죠. 지금은 재적 당했지만.”
그 말이 나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어머, 어쩌다가요?”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운동권 학생이거나, 아니면 폭력집단의 조직원일 것이다.
“전, 당신을 처음 본 순간 느꼈죠. 제 자신이 더없이 비참해지는 것을. 전 아직도 수양을 더 쌓아야 하고, 그리고 나서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결코 당신의 동정심을 사고 싶어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저 그 말을 믿어달라는 것뿐입니다. 당신은 더없이 맑고 순수해보여요. 그저, 단 한 달만이라도 당신을 알고 지낸다면, 그것으로 저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부탁입니다. 저에게 허락된 단 한순간의 시간, 이 순간을 저에게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 사람 무슨 완벽주의자인가, 아니면 신앙에 미친 사람인가. 그의 말을 들으면서 차츰 느낀 건, 그의 눈빛 속에 내가 빨려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남자는 참 순수해 보였다. 또, 우울해 보였다. 단지, 그것뿐이었는데도, 나는 그와 만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운명적 느낌에 끌려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감상에 젖은 낭만적 환상주의라고 비방할지도 모를 그런 운명의 순간 말이다. -
다행이다. 여기까지라도 소설을 전개해 나갔으니 말이다. 도무지 현실과 소설의 사소하고 미묘한 틈을 찾을 수가 없다. 소설은 사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허구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이 허구는 다시 현실이 된다. 도무지 이 현실에서는 소설적인 필연적 구조를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도대체가 현실에서 권선징악의 뚜렷한 성격이 규명되는가? 실체와 허구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현실은 철저하게 현실이고, 허구는 철저하게 허구이어야 한다는 명백한 흑백논리가 아니면 무엇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이런 질문은 애당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고, 이 소설은 나의 회고를 바탕으로 한 소설임이 분명하다. 그것만 분명하다면, 이것은 회고록을 빙자한 소설이 될 것이다. 아니, 소설을 빙자로 한 회고록이 되기도 한다. 그 경계는 분명치 않다. 다만,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이니까.
- “인간의 모습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죠. 모두들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데, 그것은 근본을 뿌리치고 하는 말입니다. 인간의 역사를 보고, 인간의 근본을 보세요. 여성해방운동이라고 하는데, 여성해방운동은 언제든지 전개되어 왔습니다.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 부딪치면, 여성들은 그 운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죠.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건 여자뿐입니다. 그것은 신이 창조한 역사의 우둔함이죠. 신이 과연 있었을까요? 신이 있다면, 이따위 근본적인 편견 따윈 없었을 것이 아닙니까? 문제는 현실에 있습니다. 지금 현실이 어떤지 아세요? 모든 우둔한 남자들은 댁과 같이 잘빠지고 예쁜 여자를 원하죠. 그것은 여자들도 마찬가지죠. 여자들이나 남자들이나 마찬가지로 그들의 대부분은 일단 상대방의 겉모습을 보고, 자신의 순결을 바치고 싶어 하죠. 순결이란 단어는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동일하게 씌어져야 합니다. 아니, 그렇지 않지 않아요. 예를 들어, 겉이 아주 더러운 사과가 있습니다. 그 사과는 껍질 몇 군데가 벗겨져서 길바닥에 굴러 떨어져 있죠. 이 사과는 금방 떨어뜨린 사과인데도, 사람들은 그걸 알면서 그걸 먹으려 하지 않고, 대부분은 쓰레기통에 쳐 박아 버리죠. 그 겉껍질만 벗기면 먹음직스런 싱싱한 사과의 속이 있는데도 말이죠. 그것은 사물에게 통하는 이치가 인간에게도 통한다는 거죠.
겉은 아주 깨끗한 사과가 있답니다. 사람들은 아무 의심 없이 그걸 베어 먹죠. 그러다가, 속이 썩은 걸 알면 그 사과를 버립니다. 그리고 사과에게 속은 기분이 들어 욕을 하며 쓰레기통에 쳐 박습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어차피, 모든 열매는 겉과 속이 동일하지 않으면 버려지게 되어 있다는 거죠. 제 말이 틀렸나요?”
그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다른 친구들에게선 전혀 듣지 못하던 이야기였다. 하기야, 공부엔 문외한이던 내가 그 남자의 영향을 받으면서 얼마나 공부에 몰두했던가. 나는 그때 아무런 반박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고, 그런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였다. 그 남자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장본인이었다. -
나는 여기까지 쓰고,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무엇보다 논문준비로 바빴을 뿐만 아니라, 그가 처음에 내게 한 말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현실을 믿으세요? 거기엔 모방과 역설의 미학이 숨어있었다. 대개의 경우는 운명을 믿으세요? 라고 믿는데 반해 그는 현실을 믿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내게 말한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에 의해 나는 이렇게 내 운명이 바뀌게 되었는데, 그는 처음에 현실을 믿냐고 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내 소설에 어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내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그에게 매혹되었고, 그를 만나면서 내 운명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우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떡하랴? 이것은 내가 처한 나의 현실이다. 그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고, 현실적인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더 큰 문제는, 내가 그에게 매혹되기는 했지만, 나는 결코 그를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애시당초 소설을 쓰겠다고 나선 것이 크게 잘못한 것이다. 나는 단지 내 인생의 회고록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 남자의 말도 마찬가지다. 기억나는 대로 적다 보니, 말의 앞뒤가 맞지 않고, 뭔가가 텅 빈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재고의 여지가 있다. 소설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내가 여기까지 쓰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쓰라고 한다면…… 나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상황이다. 나는 다시 내가 쓴 소설을 차근차근 훑어나가기 시작했다.
- 무엇보다 그 남자에겐 신비로운 곳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 신비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 남자는 자신의 이름도 연락처도 남기지 않았다. 우리의 약속은 항상 전날에 이루어졌고, 그날 둘 중 하나가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영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서로의 연락처나 이름 따위는 묻지 않기로 되어 있었다. 서로의 사적인 대화는 절대 묻지 않기로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왜 재적되었는지 그것만은 알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필연성에 대해서 나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단지 당신이 왜 재적되었는지 그것이 궁금해서 만났을 뿐이라고 말했으며,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그때 그렇게 말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는 날이 우리의 마지막임을 언급했다.
그렇다. 무미건조했다. 그러나 색다르다. 그와 나의 대화는 언제나 일방적으로 내가 듣는 쪽이었으며, 그는 경제나 정치, 혹은 그날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나 본 영화 등에 대한 평을 늘어놓았으며, 나는 그의 유창한 말놀이에 진력을 하면서도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매일매일 그런 만남이 계속되었을 뿐, 그는 내게 키스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아니, 내 몸과의 접촉을 오히려 두려워했다는 것이 더 옳은 말일런지도 모른다. -
그래,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내가 내 소설을 검토하는 일도 진력이 난다. 이 소설을 쓰게 되면서 나는 그 남자와 다시 만나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소설의 속도도 그 남자를 만나는 날마다 일기를 쓰듯 그런 진전속도가 유지된다. 놀라운 조화다.
출판사에선 자주 전화가 걸려온다. 계약상 초고를 갖다 주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난 아직도 이렇게 낑낑대고 있으니, 아무래도, 난 소설에는 자질이 없나보다. 계약금을 다시 돌려주고 안 쓴다고 할까? 그럼,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지?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이미 계약한 건 다시 되돌릴 수가 없는 거다. 난 어쩌자구 이런 계약을 승낙했을까? 차라리, 그냥 회고록이나 쓰겠다고 그럴걸. 왜 내가 소설을 쓰겠다고 빡빡 우겼을까? 그때는 왜 그랬을까? 그저 내 수치스런 과거를 밝히고 싶지 않았을 뿐인가?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한번쯤은 수치스러운 기억들을 갖고 있고, 그것들을 지워버리고 싶어 한다. 그 수치스러운 과거는 지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더 머릿속을 부여잡고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심해질수록 사람들의 스트레스는 쌓여가고 간혹, 정신분열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 수치스러운 과거는 누군가가 안아주지 않으면 영영 지울 수 없기 마련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이 수치스러운 과거를 지우려 하고 있다. 지우기 위해 영영 기억될 소설을 쓰고 싶은 것이다. 지우려 하면 할수록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들을 아예 소설이란 허구를 통해 완전히 날려버리고 싶은 것이다.
- 그 남자와의 마지막 날은 그와 만난 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날도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그의 얼굴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수척해 보였다. 그런 얼굴은 그 이후 처음으로 보인 얼굴이었기에, 나는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그걸 알았다. 그는 그때 아무 말도 안하더니, 나를 여관으로 끌고 갔다.
“미안해요. 죽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어요.”
여관방에 들어서며 그는 그렇게 말했다. 이제 죽음이 가까워졌나보다.
그리고 난, 나의 몸을 그에게 맡겼다.
빗소리가 거세게 들려왔다.
한참 후, 침대 위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한 그는 다소 당황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으나,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미안해요. 난 당신이……”
난 그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가끔 남자들은 여자들의 고통을 모르곤 하죠. 그렇게 억지로 하면 이렇게 돼요. 그보다 오늘이 마지막 날 아닌가요?”
“그렇죠. 그 이야기를 해 드리죠.”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왔다. -
나는 또 소설쓰기를 한동안 멈췄다. 이번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부분을 어떻게 극적으로 요리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출판사에서는 원고독촉이 심해졌다. 나는 정신이 사나워졌다. 내 인생의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 이 부분을 어떻게 극적으로 말할 것인가. 그때, 그 남자는 사람을 죽였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행히도 과실치사로 판명되어 몇 년 만에 퇴소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그것은 과실치사는 아니었다고 한다. 누구를 죽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주 태연하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처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난 잠시 머리가 멍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왜 죽였냐고 물었다. 두 번째 물음 역시 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여관으로 들어가려 하자, 그녀가 거부하길래 몇대 패줬다고 한다. 우습지만, 진짜 같다. 그 남자가 거짓말하는 것 같진 않다. 멍해져 있는 나를, 그 우수에 찬 눈빛으로 잠시 바라보더니 여관방을 슬그머니 나가버린 것이다. 그 후로 그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소설을 이렇게 우습게 끝낼 순 없었다. 좀 더 극적인 장면과 그럴싸한 연극이 필요하다. 그에게 있어 난 결국 무슨 존재였을까? 우습다. 소설을 이렇게 허망하게 끝맺을 순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나아지지도 않을 소설을 붙잡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어치고 싶다. 빨리 끝내야 한다. 나를 압박하는 순간순간들이 섬찟하게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 남자의 환영이 떠오른다. 그가 나를 본다.
- 당신은 오로지 동정심으로만 날 대했지? 내가 그걸 모를 줄 알았나? 사람을 진정 사랑하는 여자라면 그렇게 쉽게 자신의 몸을 내주지 않지.
아아, 그렇다. 난 그를 사랑한 적이 없다. 단 한번도. 아니, 그뿐만이 아니고, 난 아직까지 누구도 사랑해 본적은 없다. 우연히 그를 만나 처음으로 한 것이었고, 그것 역시 사랑과는 무관하다. 모든 것이 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쓰는 이 소설을 나는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뚜렷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소설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내 삶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다……
오랜만에 꿈에서 깨었다. 소설을 쓰던 꿈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또 한편의 소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소설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 다른 꿈이었다. 그 꿈은 그가 꾼 꿈이었고, 거기에 애당초 “나”의 존재는 속해 있지 않았다. 거기엔 한 “여자”만이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못 견디게 했다.
- 그 여자를 만난 것은 비가 몹시도 많이 내리던 어느 날 허름한 술집 앞에서였다. 나는 여느 때처럼 그 여자에게 말을 건다. 특별한 감정이 실린 것은 아니다. 무미건조한 말이었지만, 한번 시도라도 해보고 싶었다. 수십 번 같은 말을 반복하다 보면, 그 중 한 여자는 나의 이 어설픈 작전에 먹혀 들어간다. 그리고 이 여자도 그 중 하나 걸린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 만났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과는 달랐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만난 다른 여자하고는 달랐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여자는 내가 하는 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느 쪽으로 기울지 않았다. 나는 이 여자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알지 않아도 좋다. 어쨌든, 나는 이 여자의 몸을 갖고 싶다. 그 외에 다른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한 달 째 되는 날, 나는 마음먹고 그 여자를 따먹으리라 생각했고, 그 여자는 의외로 쉽게 응해주었다. 운 좋게도 숫처녀다. 나는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 여자는 아무 감정도 없이 나를 만났고, 아무 감정도 없이 일을 치루어 낸 것이다. 그 여자는 내게 처음으로 두려움을 준 존재다. 여자는 내게 매달리지도 않았고, 나를 차버린 것도 아니다. 그 여자는 감정 그 자체가 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재빨리 그 여관방을 빠져나왔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렸다. 그것이 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그녀에게로 향하게 했다. 나는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내 감정을 되돌리기엔 그녀에게 너무 많은 거짓말을 해 버렸고, 그녀는 너무 메말라 있었다. 그것은 동정심도 아니었다. 차라리, 동정심이라도 있는 여자라면 낳았을지 모른다. 그녀는 그저 호기심으로 나를 대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오히려 내가 당한 기분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
대체 누구의 소설에 이따위 말이 전개되는가? 이건 내 소설이다. 내 소설에서 나오는 그의 독백이다. 가능할까? 나는 그에 대한 내 상상력을 동원해, 그의 일기장을 들춰본다. 그렇다면, 나는 그렇게 메말라 있는 여자였을까? 둘 중에 누가 누구를 속였고, 누가 당한 것인가? 나인가, 그 남자인가? 나는 다시 머릿속이 혼란해짐을 느꼈다. 일단, 둘 다 속였고, 둘 다 속은 것은 틀림없다. 나는 그 남자의 말이 모두 거짓말임을 알았었고, 단 한 가지, 여자를 죽인 것만이 진실임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남자는 아직도 죽지 않고, 어딘가에서 다른 여자에게 또 다른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겠지? 문득, 나의 껍데기가 궁금해진다. 인간의 복제기술은 이미 옛날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아기의 복제까지도 가능하다. 복제가 아닌 것은 없다. 나란 인간도 복제인간이다. 다만, 나는 복제할 때 유전인자의 결핍으로 탄생한 기형아인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 남자가 죽인 것이 또 다른 나였다는 것을 그는 알까? 만약, 이것이 소설이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와 내가 만난 필연적이고 유기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가 그를 그렇게 만났다는 사실조차 말도 안 되거니와, 그로 인해 내가 이토록 성공할 기반이 다져졌다는 것은 더욱 더 어설프고 억지스런 구성이리라. 그래서 나는 회고록을 쓰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의심이 많은 사람들은 분명, 그것이 사실이냐며,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느냐고 따져 물을 것이고, 나는 그것이 정말이며, 일체의 허구도 허용되지 않았다며 이런저런 변명을 늘어놓느라 바쁠 것이다. 그렇게 시달릴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한 것이다. 소설의 형식을 빌면, 그런 사실을 떠벌리지 않아도 좋을 터였다. 꼭 사실을 그대로 쓸 필요는 없다. 필연적 구조로 따져서 적당히 조합하면 아무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 형식엔 사실도 있지만, 유기적인 구조를 필요로 하는 필연적인 사건을 집어넣어야 한다. 그것이 소설의 장점이다.
소설을 쓰다 보니, 나는 이 소설은 시작할 때부터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와 나의 만남에서부터 그와 내가 이별하기까지의 구조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우연적일 뿐만 아니라, 그 남자와의 재회, 또 소설의 뒤끝을 매끄럽게 할 수 없는 단점, 그 밖에도 여러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세상에는 모든 것이 다 가능하다. 특히, 그것이 소설에서라면, 더욱더 실현가능한 현실이 될 것이다. 문제는 소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은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은 소설에서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은 소설에서도 없어야 한다. 그 한계란 결코 깨뜨려지지 않을 것만 같다.
- 박사님, 아직 원고 멀었습니까? 이거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마감날짜가 벌써 지났는데, 저희 입장도 좀 생각해 주셔야지요? 위에서는 빨리 받아오라고 난리치고. 예? 예, 내일까지 꼭 좀 부탁합니다. 내일은 정말 갖고 나오셔야 합니다. 예, 내일 어디요? 아, 직접 오시려구요? 예, 그럼 오후 2시 안에 꼭 가져오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나는 이미 죽어있는 상태다. 오늘은 밤을 새워서라도 원고를 완성시켜야 한다. 할 수 없다. 소설이 형편없더라도, 일단은 내고 보자. 지금으로선 별 방법이 없다.
- 어머니는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었다. 임무가 완수된 것이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진학하게 되자, 어머니는 사형대에서 돌아가셨다. 22년 동안 미루어왔던 사형을 집행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죽였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은 것이다. 아버지를 죽인 이유는 단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펴, 아기를 갖게 했다는 것이고, 그 아기의 복제인간이 나다. 내가 복제되었을 때에는 그 아기는 이미 성장해가고 있었으니, 아버지가 바람을 핀 것이 언제인지는 잘 모른다. 어머니는 몇 년이나 그 사실을 몰랐었고,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그때 마침, 복제기술이 개발되었을 때다. 어머니는 이어, 그 여자를 죽였다. 그러나 그 아이만은 죽이지 않았다. 그 아이를 죽이기 전에 체포되었다. 경찰은 의외로 타협을 원했다. 그것이 나를 탄생시킨 원인이다. 나는 그 사실을 어머니가 사형대에 끌려가기 전에야 알았다. 내가 복제인간이었다는 사실조차도 말이다. -
소설을 쓰다 보니,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소설인지 이제는 구분이 가지 않는다. 내가 소설 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하면, 현실에서도 정말 그렇게 된 거였군, 하고 생각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이 버릇이라고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버릇이 가장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드디어 소설을 마쳤다. 나는 더 이상 이 소설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았다. 소설의 필연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현실성이 결여되었다면 결여된 대로, 그것은 내가 실제 겪었던 일이라고 하면 된다. 만약, 현실적으로 그것이 정말 가능한 일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그건 소설이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면 되는 것이다.
날이 밝았다. 이제는 출판사에 원고만 갖다 주면 된다. 나는 아주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판사로 갔다. 날은 밝은데, 몹시 피곤하다. 그 피곤함은 별거 아니다. 적어도 그 뒤에 내가 겪은 피곤함에 비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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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님, 의문이 가는 부분이요, 대학 3학년 때에 말이죠, 어머니 수입이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을 텐데, 그렇게 여유가 많았던가요? 그것이 주 수입원이란 말씀은 사창가를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박사님, 복제인간이란 것을 아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박사님, 어머님께서 사형이 늦어지신 건 박사님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그 계약이 옳은 것이었을까요? 거기에 대해서, 박사님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예를 들어 말이죠, 이미 22년이나 지난 후에야 사형을 집행한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어머님께서 당신에게 고마워하셔야 한다고 생각은 안하시는지요?”
“박사님, 아기를 낳으실 수 있다고 하는데, 박사님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게 사실인가요? 그리고 그걸 어떻게 아셨죠?”
“박사님의 인생은 대학 3학년 때 만난 낯선 남자에서 바뀌게 되는데, 정말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쓴 겁니까? 아니면, 직접 체험하신 걸 그대로 옮긴 건지요? 정말 그 남자가 그렇게 박사님을 대하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그리운 껍데기”는 작품의 제목 그대로 “껍데기를 그리워”하는 한 성공한 여자박사의 개인적인 체험을 소재로 한 형편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언뜻 보면, 그럴 듯하게 비춰지는 구석이 많아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이 부분적으로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이 소설의 흠은 눈에 띄게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그 부분을 일부러 드러낸 듯 보이나, 그러나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작가의 무성의함이 부각되는 부분들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과 운명의 남자가 만나는 순간부터 인위적이고 필연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으며, 시종일관 이 소설은 회고록을 빙자로 한 우연성을 남발하고 있다. 』
『이 소설은 비록, 우연성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긴 하지만, 인간의 내면을 성실하게 포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이 소설의 묘미는 오히려, 그 우연성에 있다. 우연이 우연을 낳으면, 그것은 자동적으로 필연이 된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그 우연성을 주인공의 심리로 내비치는 데 성공했다는 데에 높은 평가를 살 만하다.』
-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그리운 껍데기”의 작가 모모 박사는 일체의 질문을 모두 거부하며, 가해자의 최대권리인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그 스스로 죄인인 것처럼 발표했습니다. 이에, 기존 문인들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종전까지, 찬반양론에만 치우치던 기존 문인들은 모모 박사의 최근 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각자 저마다의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모모 박사가 발언한 “가해자의 최대권리인 묵비권”이란 말에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M 뉴스 특별기획 코너에서는 모모박사의 발언이 그리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결론이 이르러, 이만 줄이겠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가해자의 최대권리인 묵비권?”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럼, 모모 박사가 가해자란 말인가?”
“여태 모르셨어요?”
“뭘 말인가?”
“뉴스에서 쉬쉬하는 이유는 뻔하잖아요.?”
“뭔데 그러나? 말 해보게.”
“조만간, 모모 박사도 처형될 거래요.”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인가?”
“모모박사의 뉴스가 안 나오는 건, 국민적 반감을 우려해서구요,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그 정도는 짐작이 가는 거지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구요. 반란죄인가가 적용된다던데요?”
“반란죄? 정말 엉뚱한 말이군. 소설 하나 썼다구, 반란죄로 사형을? 좀 심한데. 뭔가가 있긴 있는 것 같은데, 궁금해 죽겠군.”
그러나 아무도 모를 것이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낳을 때도 있고, 알아서는 안 되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감추면 감출수록, 알려고 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껍데기를 벗어버리면 이제는 그 사람을 알았다고 하고 더 이상 알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오만이다.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이 두렵다. 이것 또한 오만으로 비춰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정확하게 말하면, 반란죄의 누명을 쓴 것이다. 나의 운명을 바꾸어놓았던 그 남자가 나의 운명을 또다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는 거대한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수놓았던 그 수많은 여자들이 모두 반란죄의 혐의로 체포되었다. 그 중 대부분은 풀려났지만, 몇 명은 정식으로 자백을 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은 소설에 불과하다. 그것을 현실과 연관 지을 순 없다. 현실은 그렇게 냉혹한 것이다. 경찰은 나를 핵심간부로 지목한다. 어쩌면, 그것이 진실인지도 모른다. 아니, 진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기도 하다. 아니, 정부를 바꾸자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게 질문을 해댄다. 그것 또한 권력의 남용이다. 비평가라는 권위 아래서 내게 질문을 하고, 기자라는 이름하에 질문을 한다. 경찰은 경찰이라는 권리 때문에 질문을 한다. 또 나는, 내 소설에 대해서 질문을 한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답하고, 질문하고 답하고……
그러면서, 나는 껍데기가 그립다는 생각을 한다. 차라리, 내가 알맹이를 보여주지 않았던들, 그 수많은 질문들이 내게 부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편의 글이라는 것이, 이렇게 내 자신을 뒤흔들어 놓을 줄은 몰랐다. 나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낙엽이 떨어지고, 내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사형 날만을 기다리면서 난, 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한다.
- 대학교 3학년 때 나는 사창가에서 일하지 않았다. 나는 권위 있는 사람과 권력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것이 나의 수입원이었다. 그 중에는 권력이 높으신 양반도, 돈이 많은 양반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그들은 나를 좋아했다. 술, 담배, 당구, 춤, 대화, 안마, 섹스. 이 일곱 가지 모두에 능한 나에게 누구든 녹아들었다. 어느 날은 두 세 번씩 상대를 바꾸어야 할 때도 있었다. 체력은 자신 있었기에 덕분에 나는 많은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 모든 돈이 권력과 재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나는 전혀 부끄러움 없이 그런 돈을 벌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아기를 낳을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 가능했다.
나는 지금, 그 아이가 누군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