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믿는 자의 경주(競走)
히브리서 11:1-끝 또 12:1, 빌립보서 3:14
허엽(許燁)
중곡교회
觀此福音有三大條, 信者必受贐物, 贐物卽救援也. 隨事役之虛實而受賞試而後與之者, 고前五章十-十五節. 其功力, 或如金銀, 或如藁艸, 由此觀之, 不試而賞者未之有也. 今欲言者在主內之人也. 運動者當在場內, 無關之人不能入運動場內, 金銀不變故受賞, 藁艸燒盡則不受賞也. 故信者之前進如競走也. ◇一.競走之方向, 或東或西, 無方向則終日行之而不逢目的地, 故定方向而走, 向主信而完者예수, 而走以十架爲標, 望架而走. 左右有强盜二, 一嘲一禱, 嘲我流汗胸喘. 而指爲無用曰, 爾如是走得何賞也? 一禱我不顧後, 不休息健脚而走, 期於得賞也. 一進一退皆不顧而走, 若無方向, 則如擊空無得徒勞無益也. 矢失鵠則不中, 信者無方向則如失鵠也. 今世之人悲嘆窮廬, 白首唏噫者, 皆失鵠者也. 終歲流汗而不得一粒之穀者, 亦失鵠者也. 多經學校而不得卒業證者, 亦失鵠者也. 故無方向而如風葦者, 主責之甚, 數十年朝鮮信者有多此等, 信耶蘇者不信救主, 而爲他目的, 或爲政治運動而入敎, 其後時勢一變. 爲求職而信者, 其外有爲人而信者, 此皆無方向者走, 當定方而走. ◇二, 競走之方法, 經言有二方, 有碍物則不可, 信者之碍物何也? 或飮酒或吸煙, 不可謂之罪惡, 而有碍於信, 當絶去此等碍物可也. 某敎會事務室有燻坮, 又有賭博之具, 此不可謂之敎會, 當絶去而後, 可治敎會, 又有束縛, 信者之束縛何也? 信前或發詤言, 不改舊習而信, 信後亦發詤言, 此爲束縛也. 信前負債金不報, 此爲習慣, 予授甚不良, 故人皆忌之, 而信後亦不能改悛, 一得債金以不報爲主. 人索債金則反責其甚督, 己有俸於人則最大督促, 此等束縛不可不去, 走之得達. ◇三, 競走之目的爲得賞也. 信者之目的何也? 以得永生之冕, 生活目的必要, 無的而發矢者甚危險, 不過亂矢, 亂矢無獲物也. 又如空駕之馬, 馬若空駕則橫奔逸馳, 不傷人則必害物也. 故馬必有駕而後走, 始能制用也. 故競走者有目的, 以得賞故也. 信者亦然, 朝朝禮拜祈禱讀經, 是何故也? 皆欲得賞而已也. 保羅曰今生有賞, 來生亦有大賞也. 知此而信者, 必忍耐必勇敢, 進進不已, 達目的乃已也.
이 복음을 보면 세 가지 큰 조건이 있으니 신자는 반드시 노자로 주는 선물[贐物]을 받습니다. 선물은 곧 구원입니다. 일하는 역사의 허실을 따라 상을 받는데 이것은 그 공력을 시험해 본 뒤에 주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5:10-15). 그 상은 혹 금은(金銀) 같은 것도 있고, 혹은 마른 풀[藁艸] 같은 것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가지고 볼 것 같으면 시험해 보지 않고 상을 주는 일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은 주님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운동할 사람은 마땅히 운동장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운동과 관련이 없는 사람은 운동장 안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금은은 변하지 않는 물건이므로 상으로 받게 됩니다. 마른 풀은 불에 타서 없어지니 상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일은 경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첫째, 경주의 방향을 동으로 하든지 서로 하든지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방향이 없으면 종일 가도 목적지를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방향을 정하고 달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완전하게 믿은 자는 예수이고, 십자가를 목표로 삼고 달려갔으니 십자가를 바라보며 달리자, 좌우에 강도 두 명이 있어서 한 사람은 비웃는데 한 사람은 기도를 했습니다.
내가 땀을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것을 보고 소용없다는 뜻으로 비웃으며 말하기를 ‘당신이 그렇게 달려간다고 무슨 상을 타겠소’ 하였습니다. 한 사람은 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장한 다리로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을 보며 꼭 상을 타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한번 나아가고 한번 물러서더라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나아가야 합니다. 만일 가야할 방향이 없다면 마치 막대기로 허공을 치는 것 같아 피로할 뿐 이익이 없습니다. 화살로 과녁을 조준하지 않으면 적중하지 않는 것처럼, 신자가 방향이 없으면 화살이 과녁을 잃은 것이나 마찬 가지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사람 중에 궁벽한 집안에 틀어박혀 슬프게 한탄하고 흰 머리 날리며 한숨짓는 자들은 다 과녁을 잃은 화살과 같은 자들입니다. 한해가 다가도록 땀만 흘리고 곡식 한 톨도 못 얻는 것도 과녁을 잃은 것입니다. 이 학교 저 학교 많이 돌아 다녀도 졸업증서 하나 못 얻는 것도 과녁을 잃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향 없이 마치 바람에 날리는 갈대 같은 자를 주님께서는 책망하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조선의 신자들 중에는 이러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가 구주를 믿지 않고, 다른 목적을 위해 다녔습니다. 애초에는 간혹 정치를 위해 교당에 들어왔으나 그 뒤에는시세가 크게 변하여 직장을 구하려고 믿었습니다. 그 밖에도 사람을위하여 믿는 자가 있는데 이들은 다 방향이 없이 달린 것이니 마땅히 방향을 정하여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둘째, 경주의 방법입니다.
<성경>에는 두 개의 방향이 있다고 말했는데 장애물이 있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신자의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혹은 음주한다든지 흡연하는 것을 죄악이라고 이를 수 없다고 하나, 신앙에 장애가 되니 마땅히 이러한 장애물을 끊어버려야 됩니다. 어떤 교회 사무실에는 담배통이 있고, 또 도박기구가 있는데 이런 곳은 교회라고 이를 수 없습니다. 마땅히 끊어버린 뒤에 교회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
또 속박이 있는데 신자의 속박은 무엇입니까?
신앙 전에 간혹 황당한 말을 하다가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한 채 믿기 시작하고 믿은 후에도 황당한 말을 하게 되면 이것이 속박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 전에 빚진 돈을 갚지 않아 이것이 습관이 되면 주고받는 셈이 대단히 불량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다 그와 사귀기를 꺼리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을 가진 뒤에도 고치지 못하여 한번 부채를 가지게 되면 갚지 않는 것이 버릇이 되어 사람들이 돈을 갚으라고 하면 도리어 독촉한다고 나무랍니다. 반대로 자기가 남에게 빚을 주게 되면 최대한 빨리 갚으라고 독촉을 합니다. 이러한 속박들은 불가불 제거하여야 달리는 목적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셋째, 경주의 목적은 상을 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영생의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생활에는 목적이 필요합니다. 목적이 없이 화살을 쏘는 자는 매우 위험합니다. 함부로 쏘는 화살은 얻는 물건이 없습니다.
또 말을 제어하는 멍에가 없는 말과 같습니다. 말이 만일 멍에가 없다면 가로 세로 마음대로 달려 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다치지 않으면 다른 물자를 해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에게는 반드시 멍에가 있은 뒤에 달려 나가도록 해야 비로소 말을 제압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주를 하는 자는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상을 타기 위함입니다. 신자도 그러합니다. 이른 아침에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상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르기를 ‘오늘날의 생애에도 상이 있고, 내세의 생애에도 역시 대상(大賞)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알고 신앙을 가진 자는 반드시 인내하고, 반드시 용감하게 나아가고 나아가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목적에 도달하고 끝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