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계명에 두 가지가 있다(誡有兩者)
골로새서 3:1-17
3월 24일 (저녁)
誡有兩者, 爲與不爲而已也. 主創造世, 卽有形世與無形世, 無形界天軍與天使俱在也. 余前於梨花敎授時, 生徒問有天堂乎. 我答曰天堂卽無形也. 無形界有天堂與地獄, 神造人甚異, 亦如此合有形無形而造成, 余呼人則答唯唯, 運動肉體, 卽內的人也. 神造世分有形無形而各造也. 然人則合而成之也. 保羅曰惟望上去, 人蹴球則上于空中, 而反下于地. 飛機雖上必下于地. 老人上山則 脚痛者何也? 卽地有吸力故也. 在下者必在下, 在上者必在上. 上則上有吸力, 下則下有吸力, 信者合上下而爲生活. 主曰非但以飯生, 亦以神言而生云者, 合上下而生也. 彼富豪之言言必稱土地土地, 其心只在土地也. 其上則不知也. 余在仁川見海邊採蛤之人, 終日斗立而只向地而立不望天. 曾往稷山金鑛, 鑛夫終日以鐵管試地, 朝鮮銀行人亦只望地, 望地者必以地爲生也. 猶人之法, 不能賣地, 若或賣之, 五十年後必還退, 神造地有限, 人種無限繁殖, 賣地少故也. 吾朝鮮昏喪, 必賣地以成, 人終歲見地, 終日見地, 而地無老新, 余母曾敎余曰 行必不伏地云, 故余終歲不得錢也. 只望地者, 身不能長也. 終日在塵臼中, 精神必爽快. 經云三層天, 保羅言之, 天有三層, 第一層雨露必降, 使潤萬物使養萬民, 余昨夏往金剛, 上萬物相, 金剛萬相盡入于目中, 有時白雲, 萬相恍惚, 如是覽景而復下旅舍, 則旅舍近處雨已降矣. 此第一層天也. 第二層有何物? 日月星辰. 此中諸科學由而起. 慶州瞻星臺者, 羅時工天文學者, 由星象而得也. 第三層天有何物也? 此處聖神位焉, 卽靈界也, 吾主在焉. 諸光明之恩賜自天而降也. 此三層天中, 恩賜豊富, 吾信者俱得此異恩也. 蒙上恩者多變化, 某雜誌有貌象學者云, 吾能骨相諸人就焉. 一人往焉問之, 相一人曰 心有悍强云. 他人證之曰 此人甚賢, 一人曰 不是, 我信前有此心, 望地者不如是也. 某敎會有富者, 善祈禱善傳道, 而囊不能獻, 有捐補時必捫囊久, 而囊不無金錢, 而索銅錢故也. 牧師欲敎之, 往其家携往一處登山, 而久後下山, 訪一貧敎友, 買餠而給其貧子女, 他日又携往, 又買往如前日, 每日如是, 老人乃善心發, 買餠而往, 日日如是, 其後小作人亦以信者爲之, 此老人不但望地, 而亦望天故也. 蓮洞敎會, 如是旺盛者何故? 古有高長老, 見貧飯乎, 同飯及給錢. 來主日守禮拜可也.他日往壁瓦之場, 負壁瓦得錢而救貧敎友, 少年心發羞恥曰 老人如是勞働助我, 我遊手甚羞,夫婦出爲勞働. 元山敎會內有兩班老人心驕, 一日讀經, 至人子來世非奉事乃事人, 乃感曰 我平生不能事人, 乃早起入廚炊火汲水, 其老妻晩後入廚, 則已炊火溫水. 一日見老母負孫, 曰我則不早死負此兒也, 一日乃抱兒而出, 散步而歸老母起. 老人一日如是家內有和. 此事家族之故入敎會, 敎會蕭瑟, 此老人熱心傳道, 使敎會復興. 余往一敎會, 有一農夫而看證曰, 一日鷄卵誕子, 使在奧內, 日日鷄子盡死矣. 我抱鷄以綿, 食鷄以食, 何故盡死也? 乃覺曰 我不作母鷄之聲誠然, 孤兒浣之, 兒但以物喜之而無母之愛也. 今望地者, 雖豊物而無天上之思, 無大恩者何也? 無天來之恩也. 余氷家信前甚富, 丈母不出而促事供饋, 乃怨曰速亡我, 後日果亡滅, 生女果給我貧者(敎訓?)
계명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해야 하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창조한 것은 곧 유형(有形)세계와 무형(無形)세계입니다. 무형세계에는 천군과 천사가 있습니다. 내가 전에 이화(梨花)의 교수로 있을 때 생도가 천당이 있느냐고 묻기에, 내가 ‘천당은 곧 형체가 없는 무형이라’고 하였습니다. 무형의 세계는 천당과 지옥이 있지만 인간세계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역시 이와 같이 유형과 무형을 합쳐 조성한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부르면 예! 하고 답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할 때 유형과 무형으로 구분하여 각각 만들었습니다. 바울이 이르기를 ‘위의 것을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공을 차면 공중으로 올라갔다가 도로 땅으로 내려옵니다. 비행기가 비록 올라가지만 반드시 땅으로 내려옵니다. 노인이 산에 오르면 다리가 아픈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곧 땅에는 잡아당기는 흡력(吸力)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 있는 자는 반드시 아래 있어야 하고, 위에 있는 자는 반드시 위에 있어야 합니다. 위에는 위에 흡력이 있고, 아래에는 아래 흡력이 있습니다. 신자는 아래 위를 합쳐서 생활해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밥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고 하신 것은 아래 위를 합쳐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떵떵거리며 사는 부자는 말할 때마다, ‘토지! 토지!’라고 합니다. 그 마음은 단지 토지에 있습니다. 그 위에 있는 것은 모릅니다.
내가 인천에 있을 때 바닷가에서 조개를 채취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종일 동안 서 있는데 다만 땅만 내려다보고 하늘은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직산(稷山)에 있는 금광에 가 본 일이 있습니다. 그곳 광부는 종일 동안 철대롱[鐵管]을 가지고 땅을 파서 시험을 해보고 있었습니다. 조선은행에 다니는 직원들도 땅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땅을 바라보는 것은 땅을 저당 잡아 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법에는 땅을 팔 수가 없습니다. 만일 혹시 팔더라도 50년 뒤에는 돌려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만든 땅에는 한정이 있고 인종은 한없이 번식하므로 팔 땅이 적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선은 혼인과 장사 치르는 상사도 반드시 땅을 팔아서 합니다. 사람들은 한 평생 땅을 보고 삽니다. 온 종일 땅을 보아도 땅은 늙든지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나의 어머니가 일찍이 나를 가르치며 말하기를 ‘다닐 때 땅을 내려다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 평생 동안 돈을 못 벌었습니다. 다만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몸이 자라지 못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종일토록 티끌 세상에 살아도 정신은 반드시 상쾌할 것입니다.
<성경>에 ‘삼층천(三層天)을 말했습니다.’ 바울이 ‘하늘에 삼층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첫째 층 하늘은 비와 이슬이 반드시 내려 만물을 윤택하게 하고, 만백성을 길러내도록 합니다. 내가 지난여름에 금강산에 갔다가 만물상(萬物相)에 올랐는데 금강산 만 가지 모양이 눈 안에 들어왔습니다. 때때로 흰 구름이 덮여 온갖 모양이 황홀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구경을 끝내고 다시 여관[旅舍]으로 돌아오니 내렸습니다. 이곳이 제일 층 하늘입니다.
둘째 층 하늘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해와 달과 별, 일월성신이 있는 곳 입니다. 이 가운데서 과학이 생겨났습니다. 경주의 첨성대라고 하는 것은 신라시대에 천문학을 공부하던 것입니다. 별에 관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삼층천(三層天)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곳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곧 영계(靈界)입니다. 그곳에는 우리 주님이 계시므로 모든 은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이 삼층천에는 은혜로운 선물이 풍성하므로 우리 신자들은 이 남 다른 은혜를 골고루 갖추어 받습니다.
위로부터 은혜를 받는 자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어느 잡지에 관상을 보는 모상학자(貌象學者)가 있어서 이르기를 ‘나는 골상을 볼 수 있으니 여러분은 내게로 오시오’ 하였더니, 한 사람이 가서 상을 봐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상을 보고 ‘마음이 너무 사납고 강하다’고 하였습니다. 곁에 있던 다른 사람이 그 사람에 대하여 증명하기를 ‘그 사람은 매우 착하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당사자가 말하기를 ‘아니오. 그렇지 않아요. 나는 신앙을 가지기 전에는 사나운 마음을 가졌었소.’ 하였습니다.
땅만 바라보는 사람은 이와 같이 되지 않습니다. 어느 교회에 부자가 있었는데 기도도 잘하고, 전도도 잘하였으나 돈[囊(주머니) 돈]을 낼 줄 몰랐습니다. 연보를 낼 때마다 주머니를 오래도록 만지작거리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지 않았지만 잔돈인 동전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목사님이 그를 가르쳐주기 위하여 그의 집에 가서 그를 데리고 등산을 갔습니다. 한참 뒤에, 산을 내려오다가 떡을 사 가지고 어느 가난한 교우의 집을 심방하여 그 집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도 그를 데리고 등산을 갔다가 똑 같이 떡을 사 가지고 그 가난한 집을 찾아갔습니다. 갈 때마다 이렇게 하니까 그 노인이 선심이 생겨 자기가 떡을 사가지고 가게 되고 그렇게 한 것이 일과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그 집의 소작인까지도 신자가 되었는데 이는 그 노인이 마침내 땅만 바라보고 산 것만이 아니고, 하늘을 바라보며 산 것입니다.
연동(蓮洞)교회가 이와 같이 왕성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옛날에 고(高) 장로가 있었는데 가난한 사람을 보면 밥을 먹이고 또 돈도 주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와서 예배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는 어느 날 벽돌공장에 가서 벽돌을 등에 져서 날라주고 돈을 벌어 가난한 교우를 도와주었는데 도움을 받은 젊은이가 그 모습을 보고 부끄러운 마음이 생겨 ‘노인도 저와 같이 노동을 하여 나를 도와주는데 내가 그냥 논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고, 부부가 나가서 노동을 하였습니다.
원산(元山)교회 안에 교만한 양반집 노인이 있었는데,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남의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고 남을 섬기기 위해서이다’라고 한 구절에 이르러 마침내 감동했습니다. ‘나는 평생에 남을 섬겨보지 못했습니다.’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부엌에 들어가서 불을 때고 물을 길러 왔습니다. 그의 늙은 아내가 뒤늦게 부엌에 들어오니 남편이 불을 때고 물을 데워 놓았더라는 것입니다.
어느 날 노모가 손자를 업고 혼자말로 이르기를 ‘내가 일찍 죽지 않아서 이 아이를 업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날부터 아침 일찍이 아이를 안고 밖에 나가서 산보를 하고 돌아오니 노모가 일어나 있었습니다. 이리하여 이 양반 노인은 매일을 이와 같이 행하여 집안이 화평해졌다고 합니다. 이는 가족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교회에 들어갔습니다. 그가 들어가 본 교회는 매우 쓸쓸하였습니다. 그 노인은 열심히 전도하여 교회도 부흥시켰습니다.
내가 어느 교회에 갔더니 어느 농부가 간증하기를‘어느 날 달걀에서 병아리가 생겨났기에 그 병아리들을 따뜻한 방 아랫목에 두고 길렀습니다. 그런데 날마다 병아리는 죽어 나갔습니다. 나는 병아리를 솜에 싸고 또 밥도 먹였지마는 왜 다 죽었을까? 고심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이는 내가 어미닭 소리를 못 내어서 그런 것이라고 말입니다. 사실로 그렇습니다. 고아를 데려 와서 씻겨 주면 그 아이는 다만 물건처럼 기쁨을 주기는 하지마는 어머니와 같은 사랑은 줄 수 없습니다.’
지금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아무리 물건이 풍부하여도 하늘에 가려는 생각이 없으면 큰 은혜도 받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늘에서 내려주는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처가는 신앙을 가지기 전에 매우 부자였습니다. 장모께서는 밖에 나가지 않고 음식을 장만하는데 일이 바쁘면 원망하기를 ‘내가 빨리 죽어야지’하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뒷날 과연 빨리 죽고, 그의 딸은 과연 나와 같은 가난한 사람에게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