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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3:1-3
오원선(吳元善) 씨
8월 1일 (수요)
人情有俗愛有眞愛, 吾信後學愛人. 愛中諸罪消滅, 母養子不顧勞苦, 主愛人亦如是, 故吾亦欲愛人焉. 人能讀經, 然或無愛情, 外面施愛多, 而內無愛心耳.
인정에는 속된 사랑인 속애(俗愛)가 있고, 참된 사랑인 참 사랑(眞愛)이 있습니다. 나는 신앙을 가진 뒤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랑 가운데는 모든 죄가 소멸됩니다. 어머니가 자식을 기르는데 수고로움과 괴로움을 돌아보지 않는 것처럼 주님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역시 이와 같이 사람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사람이 능히 <경서>를 읽을 수 있어도 혹시 애정이 없으면 외면치례로 사랑을 많이 베풀지만 내면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4-6
박장희(朴彰熙) 씨
吾行事不能誇者, 吾行事雖大, 不能大於主也. 吾人當念主救贖之恩, 而
내가 하는 일을 자랑할 수 없는 것은 내가 하는 행사가 비록 크더라도 주님보다 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주님께서 구원해 주기 위하여 속죄해준 은혜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7절
이수경(李壽敬) 씨
此聖句, 凡事忍信, 則凡事可成, 而不能如此, 故家庭之內, 不能忍, 故
이 <성경> 구절은 ‘모든 일을 참으며 믿으면 다 이루어질 수 있다’라고 하였으나 이와 같이 하지 못 하기 때문에 가정 안에서도 능히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8-10
조명환(曺明桓) 씨
此人間之內, 有刹那之愛, 有甲乙二人, 互相仇視, 一日甲至某處, 絶壁有人幾死請救, 視之則乃乙也. 甲力救之, 此境遇之愛也.
인간 사이에는 찰나의 사랑이 있습니다. 갑이라는 사람과 을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서로 원수처럼 미워했습니다. 어느 날 갑이 어떤 곳에 갔더니 절벽에 떨어져서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 구원을 청하였습니다. 가서 보니 바로 을이었습니다. 갑은 힘을 다하여 을을 구하였는데 이런 경우가 찰나의 사랑입니다.
11-12
김엔나 씨
吾初信時如嬰兒, 父母念慮, 其兒或沒水, 或燒火, 吾信仰稍稍長成, 則父母喜悅而信之, 父亦喜悅, 愛人無差別, 而或人愛人有差別, 使人發怒, 是非全愛?
내가 처음으로 믿을 때는 마치 어린아이 같아서 부모가 염려해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때로 물에 빠지고 때로 불에 데었습니다. 나의 신앙이 점점 장성하여 지자 부모도 기뻐하며 믿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기뻐하니 남을 사랑하는데 차별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차별을 두어, 사람을 시켜 노(怒)를 발하게 하면, 이것이 온전한 사랑이 아닙니까?
13절
이환구(李煥九)
此愛爲人之土臺, 而土臺不實, 則建物難美.
이 사랑은 사람의 토대가 되는데, 토대가 부실하면 건물은 아름답기가 어렵습니다.
로마서 6:1-14
김명성(金明性) 선생
8월 5일 (주일)
余向鄕, 歷各處敎會, 或艱難, 或興旺, 背主之人, 心甚强愎, 逼主無已. 此何故也? 或吾以無金錢, 無勢力故云. 然甚不然, 心無純眞之信故耳. 今日信徒多偏信, 或福信, 此禍福之信, 或意識的信, 此學者或僧侶等是也. 此懷疑者也, 或意或的信也, 內無感覺, 只外形而已也. 以上皆死信也. 而此保羅之純信, 殺過起我者, 是眞信也, 卽殺罪之身也. 一殺虛榮之身. 요셥之信, 卽殺虛榮之心, 故不犯其試, 此世如文明之埃及, 虛榮易動, 故僉位殺虛榮之身. 二殺血氣之身, 聖書學院內, 有盟休之, 理事會議發復興會, 數三日經過, 生徒猶不自服, 一夜有一生起言曰, 汝先生乎先悔改云, 更於一室之內, 招諸生問理由, 一一問招, 一生卒皆言私嫌, 一生言純眞之道, 於是瀜和交通, 諸人之血氣已死也. 其後學生甚多, 又盟休起焉, 諸生猛烈起焉. 摩西在西乃山, 四十年, 乃殺血氣之年也. 程明道被招, 其弟又被招, 明道笑伊川, 至明朝弟責其兄, 兄曰 今日書齋汝心中尙有妓, 半死之人, 必更生也. 余之廊舍, 恒漢夫妻爭鬪, 一朝又爭妻死之, 夫惶急請醫試之卽生, 信者如是, 舊身半死則必更生, 十二節過去我已死, 而現在之我則生也. 現在之身, 必獻于主, 學識則獻, 有力則獻, 已二十二節, 又有未來, 我永生于天國矣. 人無所望則死, 我勸人信則, 曰我信則不能行罪也. 此無所吾者也.
나는 시골로 가서 여러 곳의 교회를 들러보았는데 어떤 곳은 어려움이 많고, 어떤 곳은 번창하게 발전하였습니다. 주님을 배신한 사람은 마음이 매우 괴팍하여 주님을 핍박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이는 무슨 까닭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신이 돈도 없고 권력도 없어서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 된 말입니다. 순진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 신도들은 치우친 신앙을 가진 이가 많습니다. 혹은 복을 믿는 이가 있는데, 이는 화복에 대한 신앙입니다. 혹은 의식적인 믿음이 있는데 이는 학자들이나 승려들이 그렇게 하는 것으로써 이는 의심을 품은 자입니다. 혹은 의도적이거나 혹은 목적적인 신앙이 있는데 이는 마음속에 감각이 없고 다만 외형적인 것뿐입니다. 이상은 모두 죽은 믿음(死信)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순수한 신앙은‘허물을 죽이고 나를 일으키는 것’이니, 이것이 진신(眞信)입니다. 이는 곧 죄의 몸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첫째, 허영의 몸을 죽여야 합니다.
요셉의 신앙은 바로 허영의 마음을 죽였으므로 그는 시험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상은 문명의 애굽과 같습니다. 허영이 마음을 움직이기 쉽기 때문에 여러분은 허영의 몸을 죽이십시오.
둘째, 혈기의 몸을 죽이는 것입니다.
성서학원 안에서 휴학을 맹세한 일이 있었는데, 이사(理事)회의에서 부흥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수삼일이 지났으나 생도들은 오히려 자복(自服)하지 않았습니다. 하룻밤에는 어떤 생도가 일어나 말하기를 ‘선생들부터 먼저 회개 하십시오’ 하였습니다. 다시 교실 안 생도들을 불러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하나하나 문초를 하였더니, 한 생도가 마침내 사사로운 혐의를 다 말하였고, 또 한 생도는 순진하게 말했습니다. 마침내, 모두가 한데 녹아들어 서로 의견이 교통되니 여러 사람의 혈기가 이미 죽었습니다. 그 뒤 학생들이 매우 많아졌고, 또 휴학을 맹세하는 일이 있었지만, 여러 생도들이 맹렬하게 일어섰습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4십 년 간 혈기의 나이를 죽였습니다.
중국 송나라의 대유학자 정명도(程明道)는 친구의 잔치자리에 초대를 받았고, 그 아우 정이천(程伊川)도 또한 초대를 받고, 잔치 자리에서 정이천이 기생을 바라보는 것을 웃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우 이천이 형 명도를 향하여 나무라기를 ‘친구의 성의를 무시하고 기생을 바라보지도 않으면 되느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형이 ‘오늘 서재에 있는 자네의 마음에는 아직도 기생이 들어앉았네.’하였답니다.
반쯤 죽은 사람은 반드시 다시 살아납니다. 나의 행랑집에 있는 부부는 항상 다투고 싸웠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또 다투다가 아내가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자, 남편이 황급히 의원을 불러 주사를 놓아 곧바로 살렸습니다.
신자도 이와 같습니다. 예부터 가진 몸은 반쯤 죽어도 반드시 다시 살아납니다. 로마서 6장 12절에 ‘과거의 나는 이미 죽었으나 현재의 나는 살았다’라고 하였습니다. 현재의 몸은 반드시 주님에게 바칩니다. 학식도 바치고 힘도 이미 로마서 6장 22절에 바치었습니다. 또 미래의 나는 천국에서 영생합니다. 사람이 소망이 없으면 죽습니다. 내가 남을 권유하여 믿게 하기를 ‘내가 믿음으로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하였으나, 이는 나에게 없는 바입니다.
로마서 12:1-2
함(咸) 에스더 씨
8월 8일 (수요)
活祭甚難, 世人皆死祭, 父母生前子行不孝, 死而後則祭, 甚不可. 一不信者曰, 敎人不祭, 故我不信云, 我答而吾等活祭矣.
산제사(活祭)를 드리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세상 사람은 다 죽은 사람에게 제사지내지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불효하다가도 죽으면 제사를 드리는 것은 매우 옳지 못합니다. 신앙을 가지지 않은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교인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자기는 믿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나는 ‘우리는 산제사를 드립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로마서 12:3-5
윤길손(尹吉孫) 씨
余在此心戰不能言, 人有欲心, 故欲高矣. 然人皆不願欲高者矣, 吾信者爲一體, 則誰高誰低.
나는 여기서 마음이 떨려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욕심이 있기 때문에 높아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다 높아지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신자는 모두 한 몸인데, 누가 높고 누가 낮겠습니까?
로마서 12:6-8
오윤경(吳允卿) 씨
此聖句內, 有各職相異也. 吾等皆有聖職, 皆以愛傳, 則矜恤而信.
이 <성경> 구절에는 각각의 직분이 다르지만, 우리는 다 성직(聖職)을 가졌으니 모두 사랑으로 전하여 긍휼함으로 믿읍시다.
로마서 12:9-11
이익녕(李翊寧) 씨
吾等之感覺甚鈍, 彼有惡對我, 我不知其眞情, 而惟主知之. 有罪知之, 而吾有善則喜而納之, 此僞善者, 主已知之, 余靈於審判之日, 必愛審矣. 吾有惡則惡之而後可行善, 爲世人皆兄弟, 互相友愛.
우리의 감각은 매우 둔하여 저들이 나를 악으로 대하여도 나는 그 진정을 모르지만, 오직 주님만은 알고 계십니다. 죄가 있으면 알지마는 내게 선(善)이 있으면 기뻐서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여기 위선자를 주님은 아십니다. 내 영혼은 심판의 날에 반드시 사랑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내게 악이 있음을 미워하게 되면 뒷날 선을 행할 수 있으니, 세상 사람은 모두 다 서로 우애해야 합니다.
로마서 12:12-16
이덕래(李德來) 씨
로마서 12:17-21
오학근(吳學根) 씨
吾人生世, 万惡攻我, 我易失敗. 摩西以惡報惡, 故殺埃及人, 而神報其惡, 在西乃山四十年苦楚.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만 가지 악이 우리를 공격하여 내가 실패하기 쉽습니다. 모세는 악으로써 악을 보답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 악에 대한 보답으로 시내산에서 4십 년 동안 고초를 받게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6:1-끝
전석규(全錫奎) 씨
8월 12일 (주일)
此黙示錄, 使徒요한所記也, 聖神所感也. 「災殃이甚大」, 余嘗言危險, 而人或厭聞. 曾聞平壤神學校, 崔牧師之祈禱, 則天旱祈雨, 而崔則曰 人不可祈雨, 神任意與之云, 故人皆議之, 今在座者, 或如是也. 人生罪世不可免, 末世之災 未知, 明日之事, 以肉眼不可視之, 然以靈眼視之, 則可明視也. 末世之災不可免也, 此天殃何可避也? 惟信主言者免之也. 埃及之人民七災時, 一不可免也. 末世亦然, 노아時代人, 亦不免洪水也. 神終以災滅之. 古모라소돈 兩城亦然, 此三處之災, 以何免災也? 古有一王, 又有王之友, 王欲留之, 然拘私乃封于他地, 方爲王封王, 後乃旺盛, 而反野心叛王, 叛王之國 逢凶年, 請于王, 王議于朝, 諸臣曰 不可應, 而一老臣曰 不可. 與穀非爲王也, 乃爲民也, 與穀不可不爲也. 王乃主之與穀. 與穀之國反凶, 故反請穀于封王之國, 乃發驕發兵伐之, 甚不義也. 王乃發悲, 祈于天, 一日靑年 約三百名, 投石抗敵, 勝戰復讎也. 余隣家之人, 有小作人來訪, 主借房與助過冬, 小作人反舍之, 發覺其主之葉煙罪, 已三年前事也, 主怒逐出其小作, 而昨日又來, 主又逐出, 何故也? 乃自作之孼也.
이 묵시록(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기록한 것입니다. 성신이 감동하시어「재앙이 매우 크도다」라고 한 것을 나는 일찍이 위험한 일이라고 말하였는데 사람들은 듣기를 싫어했습니다.
일찍이 평양신학교의 최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니 날씨가 가물어 비를 오게 해 달라고 비는 것에 대해, 최 목사님은 ‘사람이 비를 달라고 빌 수가 없다. 하나님이 뜻대로 주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에 대하여 비평하였는데 지금 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에는 간혹 그 말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죄 많은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면할 수 없습니다. 말세의 재앙은 누구도 모른다고 하지만, 내일의 일에 대하여서는 육안(肉眼)으로는 비록 보지 못하더라도 영안(靈眼)으로는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말세의 재앙은 면할 수 없습니다. 이는 하늘에서 내린 재앙이니 어찌 면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주님의 말씀을 믿는 자는 면하게 됩니다. 애굽의 인민들은 일곱 재앙이 났을 때 하나도 면할 수 없었습니다. 말세도 또한 그러하니 노아세대 사람도 역시 홍수를 면하지 못하였으니 하나님이 마침내 재앙으로 멸망시킨 것입니다. 고모라와 소돔 두 성도 또한 그러했으니 이 세 곳의 재앙을 어찌 면하겠습니까?
옛날에 왕이 있고 또 왕의 친구가 있었는데 왕이 그 친구를 같이 살자고 머물러 두려고 하였으나 사적(私的)인 일로 구애되어 다른 지방에 왕으로 봉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왕으로서 왕을 봉해 주었던 왕은 뒤에 왕성하여져서 도리어 자기를 봉해준 왕에게 반역을 하려는 야심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반역을 도모하던 왕국에 흉년이 들어 왕에게 구제하는 곡식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조정에서 의논하니 모든 신하들이 다 주지 말자고 하였으나 노신(老臣) 한 사람이 곡식을 주는 일은 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하는 것이므로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여 왕은 결국 구제할 곡식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왕의 나라에 흉년이 들어 왕으로 봉해준 나라에 곡식을 청하니 그들은 도리어 군대를 일으켜 침공하여 왔습니다. 매우 의롭지 못한 일입니다. 왕이 슬퍼서 하늘에 기도하였더니 그날로 청년 약 3백 명이 돌을 던지며 적과 마주 싸워 전쟁에 이기고 복수를 하여 주었습니다.
나의 이웃집 사람은 소작인을 두었는데 주인이 방을 빌려주어 겨울을 나게 했더니 소작인이 집을 빼앗기 위하여 그 주인이 이미 3년 전에 잎담배[엽연초葉煙草]의 문제로 죄에 연루된 것을 발각하고 고발한다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성이 나서 그 소작인을 내쫓았는데 그 사람이 어제 또 와서 주인은 다시 내어 쫓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스스로 지은 죄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1-5
박대희(朴大熙) 씨
8월 15일 (수요)
主曰 以刀害人者, 反受其害云, 我貶人, 則反受其貶. 吾等處競爭之中, 而有欲心, 故欲受愛於人, 而反害人, 故反不受愛也, 互相受貶也.
주님은 ‘칼로 남을 해친 자는 도리어 그 해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남을 깎아내리면 도리어 그 사람으로부터 깎아내림을 받습니다. 우리는 경쟁하는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욕심이 있기 때문에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남을 해치므로 도리어 남으로부터 사랑을 못 받습니다. 서로 서로 깎임을 받습니다.
마태복음 7:6-12
임상신(林相信) 씨
主曰於求者, 無不與之云.
주께서 ‘구하라. 구하는 자에게는 주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13-14
백명철(白明哲) 씨
險路莫避, 余擇此題, 人誰行險路哉! 然主訓人死生之道, 而自古偉人, 無行順路, 皆入險狹之路, 鐵從熱火中來 而後爲名金, 然金不入熱火者, 爲無用之金也. 人亦如是, 若不經險害之路, 則不能成大功也.
‘험한 길을 피하지 말자.’ 내가 이 제목을 택한 것은 사람들은 누구나 험한 길을 가려고 하지 않으나, 주님께서 가르치신 죽고 사는 길 중에 자고로 위대한 사람은 순하고 편리한 길을 가지 않고 모두 험하고 좁은 길로 갔습니다. 쇠붙이는 뜨거운 불 속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이름난 쇠붙이가 되나, 쇠붙이가 뜨거운 불에 들어가지 않으면 쓸모없는 쇠붙이가 됩니다.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만약 험하고 어려운 길을 경험하지 않으면 큰 성공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7:15-20
백영옥白榮玉씨
此言主訓人之言, 余不信之, 於荊棘多焉, 而爲無用之人矣. 信後受善心, 故爲善果矣.
이것은 주님께서 사람을 훈계하기 위하여 한 말입니다. 내가 믿지 않으면 가시나무가 많으며 쓸모없는 사람이 됩니다. 믿고 난 뒤에는 선(善)한 마음이 많아서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마태복음 7:21-23
이찬구(李燦九) 씨
十字架之武士也, 其資格何如? 處此不平之世, 能平和也. 其職分使此惡世, 變爲善世可也. 而使我自爲犧牲, 而與戰奮發也. 徒爲禮拜, 純眞無僞而後, 爲眞信.
십자가 군병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자격은 어떠합니까? 이 불평 많은 세상에 살며 평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 직분은 이 악한 세상으로 하여금 선한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 자신을 희생하여 죄악과의 싸움에 참여하도록 분발하는 것입니다. 오직 예배를 거짓 없이 순진하게 드리는 것이 참 신앙입니다.
마태복음 7:24-29
전(全) 엘리사벳 씨
主之眞理, 不入根者, 如沙上之屋, 有堅信, 而有便居者逢酷試, 然不能搖動.
주님의 진리가 뿌리에 들어가지 않은 자는 마치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사는 자는 혹독한 시련을 받아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로마서 11:33-36
박동완(朴東完) 씨
8월 19일 (주일)
余生長于敎會已三十餘年, 而多有接觸及經驗故言, 其所經歷者, 保羅時代 文明已開, 而學識甚富, 而至其神觀, 多有硏究, 今日倡無神論者, 又否認宗敎, 然吾等處此時代, 不必盲從時人可也. 主降之初, 自爲救主, 而又說天國之理, 時人皆不認救主, 當時信主者, 非學者, 非位高者, 而皆賤卑之人, 非稅吏則皆漁父也. 時人認主者, 認吾主以必降于高位之家, 나사롓에主何降也. 今日亦然, 此何故也? 皆不能知主也. 時代變遷亦無常, 以印信亦然, 古代信手決又印章, 又信名銜. 信用亦如是也, 時人之信仰, 亦變遷, 主義者主物質, 宗敎者主靈的也. 今日人生生活, 不能離此兩方, 故彼惟物 自何而來也? 經言皆自神生也, 而人不能離此, 而不能生存者甚明矣. 彼否認者, 而不知神故也, 保羅始則反主甚强, 而被感後乃發此言.
내가 교회에서 생장한 지가 이미 30여 년 동안 접촉한 일과 경험한 일이 많이 있으므로 말하는 바입니다. 여기서 경력이라고 하는 바는 바울 시대에는 이미 문명이 개화되고, 학문도 매우 풍부하였지만 신관(神觀)에 관하여는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무신론을 앞장서서 부르짖는 자는 또한 종교도 부인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대에 살면서 이 시대 사람들의 의견을 무턱대고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이 탄생하신 초기에는 구세주라고 하고, 또한 천국의 이치를 설명하였으나 당시의 사람들은 구주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주님을 믿은 자는 학자도 아니고, 높은 지위에 있는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지위가 낮고 천한 사람으로 세리가 아니면 다 어부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주님을 인정하는 자는 우리 주님이 반드시 고관대작의 집에 오실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사렛에 주님이 왜 내려 오셨을까요? 오늘날도 역시 왜 내려 오셨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이는 다 주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변천도 역시 무상하여 인(印) 치는 것을 믿게 하는 것도 그렇게 변천하였습니다. 고대에는 오늘날의 싸인과 같은 수결(手決)이나 또는 인장(印章) 또는 명함(名銜)을 믿는데 신용(信用)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시대에 따라 신앙도 역시 변천하였는데 주의(主義)라고 하는 것은 물질을 중심으로 한 것이고, 종교라고 하는 것은 영적(靈的)인 것을 중심으로 한 것입니다.
오늘 날 인생의 생활은 이 두 가지 방면을 떠날 수 없습니다. 유물론(惟物論)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성경>에 이르기를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생겨났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 유물론을 떠나서 생존할 수 없는 것이 매우 명백합니다. 이것을 부인하는 저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애초에는 주님을 반대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였으나 주님의 감동을 받은 뒤에는 바로 이 말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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