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데 들에 가랴
사립 닫고 소먹여라
마이(장마가) 매양이랴
쟁기 연장 다스려라
쉬다가 개는 날 보아
사래긴 밭 갈아라
<윤선도 산중신곡 中 하우요>
연중 장마기간이 걷기에는 어려움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습기로 몸은 끈적끈적하고...
우산은 한손으로 들고...
안경에는 성에가 껴서 뿌옇게 보이고...
정자에 앉아서 시조한수 하려고 하면 모기들 달려들고...
하지만 걷고 나서 샤워 후의 상쾌함을 생각하며 오늘도 걸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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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걷기는
중구청역에서 시작이다.
일요일 오전에 걷기하면서 애로사항 중 하나는 화장실 문제...ㅋㅋ
요즈음은 지하철이나 공원 등 공공화장실이 깨끗하게 잘 유지되는 편이어서
예민해서 아무 곳에서나 볼일 보기 힘든 나도 별 어려움 없이 근심을 풀 수 있다는...ㅎㅎ
걷기시간이 딱 그 시간인지라...
요즈음 대전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볼일 보게 되는데...
강아지들이 영역표시(?)하며 찔금 찔금 싸고 다니는 모습이 오버랩 된다는...ㅋㅋ
오늘도 근심을 풀고나니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ㅎ
2번 출구로 나와서 성모병원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성모병원을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한다.
십년전 30대 아홉수를 넘기면서
왼쪽으로 풍이 와서 저승문턱까지 다녀올 때
나를 구해준 고마운 인연들이 있었던 곳.
그 시절의 괴로운 기억 때문에
한 동안은 이 근처를 지날 때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었는데...
요즈음은 그때의 고마운 인연들에 대한 생각들이 먼저 드는 걸 보면
몸이 어느 정도 돌아오긴 했나보다.
병원 옆 성모여고 정문 옆길로 들어섰다.
난생 처음 걷는 길이다.
참 묘한 건물이다.
학교 건물인 듯한데...
이 학교 출신인 아내에게 이 건물이 교실이냐고 물어보니
처음본다고... 원래는 담장에 개나리가 심어져 있었다고...(하기야 30년 전이니...)
이 건물을 보면서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떠오르며
창살을 두른 감옥이 연상되는 건...?ㅠㅠ
성모병원과 성모여고, 성모초등학교를 빙 둘러서 걷다보니
새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 건물들과 대조되어서
거의 근대건축물로 지정될 만한 오래된 주택들도 보였다.
살구나무가 정감 있게 다가온다.
골목길을 나와서 언덕길을 조금 오르니
벌써 오늘 걷기의 터닝포인트인 테미공원에 도착이다.
오늘 걷기코스는 최대한 짧게 잡았다.
지난번 걷기 후부터 며칠 허리가 좀 아팠다가 거의 회복은 됐는데...
아직은 좀 조심스러워서...
그래서 오늘은 걷기를 좀 줄이고
풍류를 좀 더 오래 했다.
오늘 풍류장소는 공원 동쪽에 숨은 듯 자리한 조그마한 정자이다.
비에 젖은 등산로가 생기가 넘친다.
테미공원은 규모는 작아도 무척 아기자기한 곳이다.
이곳 수도산 정상부에 있는 정수장관리소 건물에 이원복만화관이 들어선다하니
한층 재미가 더해질 것 같고...
이원복씨는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세계기행을 소재로 한 유명만화의 작가이다.
또한 이곳은 대전시내의 벚꽃명소로도 유명하다.
꽃피는 시기에 공원 입구에 자리한 예술창작센터에서는
입주작가들의 작업공간도 개방하고
센터 옥상에서 음악회도 진행한다고 하니 기억했다가 참석해보길...
우리 풍류인들도 이런 곳에서 풍류할 기회도 마련해보는 것도 좋겠고...
테미공원을 나와 충남도지사 관사촌으로 향하는데 빗줄기가 거세진다.
걷기 시작해서 비를 요리조리 피해서 다녔는데 여기서 만났다.
빗줄기가 하도 거세져서 잠시 처마밑으로 피했는데...
그 비 맞으며 앞집 담장 너머로 무궁화꽃이 활짝...
도지사 관사에 도착하니 문은 닫혀있고
내년 6월까지는 개방하지 않는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ㅠㅠ
도지사 관사를 비롯한 이곳 관사촌에 대한 활용방안을 찾느라
시에서 고민들이 많다고 하더니...
현수막에 <문화예술인촌>건립이라는 말이 써 있는 걸 보니
어느 정도 방향은 잡힌 것 같고...
우리같이 풍류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인연이 닿기는 쉽지 않겠지만...ㅠㅠ
이왕 세금 갖고 하는 사업 잘 좀 해서
우리 지역의 문화예술이 좀 더 풍성해질 수 있는
좋은 자산으로 자리잡길 간절히 바란다. 제발...!!!
지난번 방문했을 때에 찍어 두었던 도지사 관사의 응접실 공간 사진인데...
풍류한번 꼭 해보고 싶은 곳이다.
관사 입구를 지나 플라타너스 길을 걸어 내려오다가 뒤돌아서 한 컷...
다시 성모병원 옆길로 걸어서 중구청역에 도착했다.
10시 반이다.
보통때 같으면 구.충남도청을 한바퀴 도는 걸로 걷기 마무리를 했을텐데...
겨우 회복한 몸 생각해서 그냥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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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걷기풍류는
7월 16일(일)로 신흥역에서부터 황학산, 판암근린공원쪽으로 걸어 볼 예정입니다.
모기와 친한(?) 분들은 준비를 단단히 해서 참석해주세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