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宿安洞魯菴丈書齋 안동 노암 어르신 서재에서 묵다.
(3)
愁日相隨客日來
근심의 날들이 이어져 날마다 손님 몰려도
襟懷落落向誰開
낙심의 회포는 그 누구에게 펼쳐나 볼까요?
今世何人恢宇宙
지금의 세상 어느 누가 본래대로 회복하나?
我家無地起樓臺
우리 집엔 누대를 세울 땅조차도 없었다네! 1)
月色偏從秋後滿
달빛이 가을을 뒤쫓아 만월이 다 되었는데
鐘聲似欲夜中催
종소리는 한밤중이 되길 재촉하는 것 같네.
風雲浩蕩三千里
세상변화의 조짐이 삼천리강산에 엄청나니 2)
幾倒新亭痛哭杯
몇 번씩이나 통곡의 술잔을 엎질러야 하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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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지기루대(無地起樓臺): 송(宋)나라에 30년이나 재상(宰相)을 지낸 구준(寇準/ 961-1023)에게 처사(處士)인 위야(魏野)가 지어준 시구(詩句)다, “재상이 되어 조정에 살지만 누각을 세울 땅은 없었네(有官居鼎鼐 無地起樓臺).” 북송(北宋)의 서울 변경(汴京)에 거란(契丹)에서 온 사신이 연회석에서 송나라 대신들을 일일이 살펴본 후에 ‘누대 세울 땅조차 없었다는 그 재상이 누구요?’ 라고 물었으나 대답하는 이가 없었으니, 이미 구준은 무고를 당하여 지금의 광동성(廣東省)인 뇌주(雷州)로 만년에 좌천되었을 때였기 때문이다. 구준은 그토록 청렴 정직하게 자신의 집 한 채도 짓지 않으면서 백성만 귀중히 여긴 정치인이었다는 것이다.
2) 풍운호탕삼천리(風雲浩蕩三千里): 풍운은 역경(易經 乾卦)에서 나왔는데,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을 호랑이를 좇으니 성인이 일어나 만물을 가린다(睹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睹)” 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 사물을 감각하여 때를 만난다는 비유이다. 이 구절은 곧 세상의 기운이 크게 변하는 때가 되었으니 영웅호걸이 일어나 세상에 두각을 나타낼 기회가 삼천리강산에 가득하다는 뜻이다.
3) 기도신정통곡배(幾倒新亭痛哭杯): 두보(杜甫/ 712-770)의 등고(登高) 시의 마지막 구(句)인 “늙은 몸 신정(新亭)에서 탁주잔을 멈추었네(燎倒新停濁酒杯).”와 흡사하다. 두보가 나라를 걱정하다가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멈추었다는 상황과 여기 지금 시인의 심정이 통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