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신인공통점 / 마태복음 5:8
사람의 특권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은 이러한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포기하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때로는 인간의 모습조차 잊어버리고 스스로를 짐승과 같은 존재로 전락시킨다.
진정한 사람은 이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를 찾지 못하면 타락하고 만다. 이 가치를 찾는 사람만이 진정한 집, 나라, 그리고 온전한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이 가치를 잃으면 자신의 존재 자체마저 잃어버린다.
신과 인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과 같은 모습을 가졌다는 것이다. 모든 이가 이 모습을 처음에는 공유했지만, 어떤 이는 이를 잃고 어떤 이는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를 잃은 사람들은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있으며, 쉽게 말해 더러워진 상태다.
불교에서는 이를 걱정하여 팔만사천 마귀의 존재를 말하고, 유교에서는 '극기복례'라고 표현했다. 과거의 성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기는 어려웠다. 그들의 신은 진정한 생명의 신이 아니라 육체에 국한된 존재였다. 육체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은 육체일 뿐, 영혼은 아니다. 근본적인 성품의 변화나 피와 살의 근본적인 재창조는 불가능했다.
모세, 이사야, 다니엘이 아무리 거룩하고 좋은 가르침을 주었어도 진정한 구원은 제공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단지 인간일 뿐, 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셨고, 자신의 생명을 버리고 돌아가셨다. 우리가 공자나 석가보다는 예수를 영접함으로써 마음속의 더러움과 가려진 것들이 사라진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과 인간의 진정한 공통점이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의 가치를 잃은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 나라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나라의 소중함을 알았듯이, 신앙은 신과 인간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해주며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한다. 탕자의 예시처럼, 아무리 모습이 초라하고 인격을 잃었다고 해도, 근본으로 돌아가면 다시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마치 떨어졌던 독수리가 다시 하늘높이 날아오르듯이, 죄의 길에서 벗어나 주님을 따를 수 있다.
타락했을 때 더러워진 심령은 주님을 만나는 순간 모두 씻겨 사라진다. 불교의 청심지범이나 명경대 같은 방법은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주님을 만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많은 세상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려 노력하지 않는다. 삭개오처럼 뽕나무에 올라가는 간절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주님을 배척하고, 그의 존재를 방해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