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남이 성지 호남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전주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전주 쪽으로 가다 보면 ''동정 부부 생가 터''라는 안내 돌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5km 정도를 더 가면 ''류항검(아우구스티노)의 생가 터'' 사적지가 나온다. 1754년에 류 아우구스티노가 탄생한 곳이자 동정 부부로 유명한 류중철(요한)과 이순이(누갈다)가 살다가 체포된 곳이다. 이후 전주 일대에 널리 신앙을 전함으로써 ''호남의 사도''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집안의 부를 바탕으로 교회일을 열심히 뒷받침해 주었다. 그러다가 1791년의 박해로 이종 사촌이 체포되어 순교하자 잠시 몸을 피하기도 하였으나, 다음해에는 감영에 자수하여 신앙을 벌겠다고 다짐한 뒤 석방되었다. 이때 류항검의 장남 류중철이 주 신부에게 세례를 받게 되었다. 류중철은 이내 훌륭한 하느님의 종이 되었다. 초기의 신자 이윤하(마태오)의 딸인 이순이(누갈다)가 그녀였다. 이러한 사실은 곧 주문모 신부의 귀에 들어갔고, 신부의 주선으로 1797년에는 초남리에서 전대미문의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바로 이들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동정 부부였다.
현재는 20여 가구중 2가구만이 교우답니다
성당 외관(사인물에는 경당이라 쓰였음)
성당내부 개인적으로 너무 천정과 벽체가 인위적이라 한국적 전통미를 살리지 못한듯
동정부부가 사셨던 집
몽마르뜨 몽마르뜨르는 불란서 파리 북동쪽에 있는 표고 130m의 작은 언덕으로 순교의 언덕(mons martyrum)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실은 유서깊은 천주교 순교성지요 파리를 지켜주는 축복인 언덕인 것이다.
천주교 순교성지 ''치명자산'' - 동정부부가 묻혀계신 치명자산 성지 치명자산 혹은 루갈다산으로 더많이 불려지고 있다.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처 신희, 동정부부로 순교한 큰 아들 유중철(요한),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마태오)일곱분이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다. 이분들은 1801년(순조1년) 신유박해 때, 9월부터 4개월 여에 걸쳐 전주 남문밖(현 전동성당), 전주옥, 숲정이에서 처형되어 멸족되었다. 묻히지 못하고들 건너 재남리 바위백이에 가매장 되었다.
순결한 신심과 고매한 덕행, 그리고 숭고한 순교정신을 높이 기리고 그 님들이 전주를 수호해 주기를 기원함이었다. 그 아래 왼편에는 가파른 산길을 걸으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오른편에는 전주교구 성직자 묘지가 조성되어있다. 순교신앙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이산은 진리의 뜻을 세운 사람과
순교자 성지 가는 들머리 길목
눈이 시리도록 빨간 동백이 길 양?에 피어있다
전주교구 성직자 묘역
드뎌 산길을 20여분 걸어서 도착한 성당입구
동정부부의 삶만큼이나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
순교자 묘역은 성당옥상을 통해서
옥상에서 바라본 건너편산의 산벗꽃
동정부부의 묘역
묘역에서 바라본 전주시내 풍경 흐린날씨에 선명한 풍경은 볼수 없었으나 분명 똑 같은 전주의 풍결일텐데 우리도 아직 분명하게 주님의 얼굴을 보지못해 이런 흐림에 주님과 우리의 신앙을 때때로 묻어버리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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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황소처럼느리게 원문보기 글쓴이: 황소
첫댓글 넘 감사! 대학생때 전주 전동성당을 시작으로 1주일간 도보 순례가 생각나네요 감사
전라북도에서는 아름다운 순례길을 9코스로 구분하여 개발했는데
그 모델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네요
우리가족이 시간허락하면 첫번째로 가고 싶은곳이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성 야곱성인의 길을 따라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Km의 중세 순례길을 걷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