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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성지순례 스크랩 초남이성지,치명자산성지
황소 추천 0 조회 812 13.04.28 21:2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초남이 성지

호남 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가 전주 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전주 쪽으로 가다 보면

''동정 부부 생가 터''라는 안내 돌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5km 정도를 더 가면 ''류항검(아우구스티노)의 생가 터'' 사적지가 나온다.
지금의 형정 구역으로는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의 초남 마을이다.

1754년에 류 아우구스티노가 탄생한 곳이자 동정 부부로 유명한 류중철(요한)과 이순이(누갈다)가 살다가 체포된 곳이다.
현재 이 지역을 관할 구역으로 하고 있는 동산동 본당에서는 1987년에 그 일대를 매입하여 사적지로 조성한 뒤 축복식을 했다.

류항검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윤지충과는 이종 사촌간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창설 직후에 입교하였으며,

 이후 전주 일대에 널리 신앙을 전함으로써 ''호남의 사도''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그는 초기 신자들이 임의로 마련한 가성직제(假聖職制) 아래에서 신부로 활동하기도 하였고,

집안의 부를 바탕으로 교회일을 열심히 뒷받침해 주었다.

그러다가 1791년의 박해로 이종 사촌이 체포되어 순교하자 잠시 몸을 피하기도 하였으나,

다음해에는 감영에 자수하여 신앙을 벌겠다고 다짐한 뒤 석방되었다.
물론 이것은 본심이 아니었다. 류항검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켰을 뿐만 아니라 이전보다 더 활발하게 복음을 전하였다.

1795년에 류항검은 주문모 신부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다 성사를 받고 교리를 배웠는데,

이때 류항검의 장남 류중철이 주 신부에게 세례를 받게 되었다. 류중철은 이내 훌륭한 하느님의 종이 되었다.
게다가 부친에게 허락을 받고 평생을 동정으로 살기로 작정하였다.
그 무렵 서울에서도 한 유명한 신자 집안의 딸이 동정을 맹세하고 있었다.

 초기의 신자 이윤하(마태오)의 딸인 이순이(누갈다)가 그녀였다.

이러한 사실은 곧 주문모 신부의 귀에 들어갔고, 신부의 주선으로 1797년에는 초남리에서 전대미문의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류 요한과 이 누갈다가 ''평생을 오누이처럼 살면서 동정을 지키겠다''는 동정 서원을 하면서 혼례를 올린 것이다.

바로 이들이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동정 부부였다.

 

현재는 20여 가구중 2가구만이 교우답니다

 

 

성당 외관(사인물에는 경당이라 쓰였음)

 

성당내부

개인적으로 너무 천정과 벽체가 인위적이라 한국적 전통미를 살리지 못한듯

 

 

 

 

 

 

 

 

동정부부가 사셨던 집

 

 

 

 

 

 

 

 

 

 

 

 

 

 

 

 

 

 

 

 

 

몽마르뜨

몽마르뜨르는 불란서 파리 북동쪽에 있는 표고 130m의 작은 언덕으로 순교의 언덕(mons martyrum)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파리의 초대 주교였던 성인 디오니시오가 이산에서 순교하여 「순교자의 산」이란 뜻으로 「몽 데 마르뜨르」 라고
불려 오다가 후에 「몽마르뜨르」로 불리게 된 것이다.
이곳에는 1870년 독일과의 교전으로 시련을 격게된 프랑스 국민들이 거국적으로 성금을 모아 건립(1910년)한 거대한
백악(白堊)의 아름다운 예수성심 대성당이 정산에 세워져 파리의 명소가 되었지만,

실은 유서깊은 천주교 순교성지요 파리를 지켜주는 축복인 언덕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치명자산」또한 「전주의 몽마르뜨」라 부르는 것이다.

 

 

 

천주교 순교성지 ''치명자산'' - 동정부부가 묻혀계신 치명자산 성지

이 산은 옛부터 승암산(중바위산)이라 불렸는데 산정에 천주교 순교자들이 묻힌 이후로는

치명자산 혹은 루갈다산으로 더많이 불려지고 있다.
이 산에는 1784(정조 8년)년 호남에 처음복음을 전하고 선교사 영입과 서양 선진 문화 수용을 하다가

국사범으로 처형된 유항검(아우구스티노)과 그의 처 신희, 동정부부로 순교한 큰 아들 유중철(요한),

제수 이육희, 조카 유중성(마태오)일곱분이 하나의 유택에 모셔져 있다.

이분들은 1801년(순조1년) 신유박해 때, 9월부터 4개월 여에 걸쳐 전주 남문밖(현 전동성당),

전주옥, 숲정이에서 처형되어 멸족되었다.
살아 남은 노복과 친지들이 은밀하게 시체를 거두었으나 고향인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 초남땅에

묻히지 못하고들 건너 재남리 바위백이에 가매장 되었다.
그 후 1914년 4월 19일 전동 성당 보두네신부와 신도들이 이 산정에 모셨다.


선인들이 해발 300미터의 산정에 님들을 모신 뜻은 세계교회가 ‘진주중의 진주’라고 찬탄하는 동정부부순교자의

순결한 신심과 고매한 덕행, 그리고 숭고한 순교정신을 높이 기리고 그 님들이 전주를 수호해 주기를 기원함이었다.
지방 기념물 제 68호로 지정된 순교자 묘 바로 밑에는 님들의 순교정신을 기리기 위해 1994년 5월 9일 건립된 기념 성당이 있고,

그 아래 왼편에는 가파른 산길을 걸으며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십자가의 길이 있다.

오른편에는 전주교구 성직자 묘지가 조성되어있다.

순교신앙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이산은 진리의 뜻을 세운 사람과
순교자들을 흠모하는 순례자들에게는 믿음의 고향이며, 기도 공원으로 사랑 받는 한국의 몽마르뜨르(순교자산)이다.

 

순교자 성지 가는 들머리 길목

 

 

 

 

눈이 시리도록 빨간 동백이 길 양?에 피어있다

 

 

 

 

 

 

 

 

전주교구 성직자 묘역

 

 

 

 

드뎌 산길을 20여분 걸어서 도착한 성당입구

 

 

 

 

동정부부의 삶만큼이나 아름다운 스테인글라스

 

 

 

 

 

 

 

 

 

 

순교자 묘역은 성당옥상을 통해서

 

 

옥상에서 바라본 건너편산의 산벗꽃

 

 

동정부부의 묘역

 

 

 

 

 

 

 

 

 

 

 

 

묘역에서 바라본 전주시내 풍경

흐린날씨에 선명한 풍경은 볼수 없었으나 분명 똑 같은 전주의 풍결일텐데

우리도 아직 분명하게 주님의 얼굴을 보지못해 이런 흐림에 주님과 우리의 신앙을 때때로 묻어버리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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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4.28 23:34

    첫댓글 넘 감사! 대학생때 전주 전동성당을 시작으로 1주일간 도보 순례가 생각나네요 감사

  • 작성자 13.04.29 08:50

    전라북도에서는 아름다운 순례길을 9코스로 구분하여 개발했는데
    그 모델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네요
    우리가족이 시간허락하면 첫번째로 가고 싶은곳이 프랑스에서 시작하여 성 야곱성인의 길을 따라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800Km의 중세 순례길을 걷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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