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명(明)이 새로 일어남
원실이 점점 쇠미하여지고 중원 각 처에 군웅이 일어나 지방을 웅거하니 원에서는 수습할 능력이 없었다. 그 중에 금능에 근거를 둔 주원장이 각처 유민을 모아 군대를 조직하여 각처의 군도를 토벌하고 연경으로 달려들어 원을 쫓아내고 북중원 일대에 원의 세력을 밟고 구축하니 백여 년 간이나 두고 이족에게 압박을 받고 빼앗긴 연경을 일조에 찾고 보니 오랫동안 굴욕을 받은 한족들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군세가 자못 떨치었다.
원장은 그 후에 남북 각 지방을 평정하고 금능에서 군신의 추대로 황제위에 오르고 나라 이름을 명이라 칭하니 중원 천지가 온통 원장의 손에 들어갔다. 무섭게도 천하를 호령하던 원은 쫓겨 상도(上都)로 갔다가 다시 내몽고 달리하(達里河)로 옮기니 이것을 가르쳐 북원(北元)이라 한다.
때가 마침 공민이 죽고 우(禑)왕이 서던 때라. 이때 고려에서는 원실의 소망하는 틈을 타서 압록 두만 양강 남북의 땅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은 국내에 우왕 문제로 두 파로 갈라져 그런 척지 문제는 꿈에도 없고 다만 서로 권리를 차지하려는 야심뿐이었다. 그리하여 아무 성공이 없이 도로 남의 나라에 모욕을 사게 되니 한심한 일이다. 최영 정몽주 같은 위인이 있어도 모두 이성계의 위협으로 아무 성공이 없었다. 이성계는 이때부터 다른 뜻을 품고 요언(謠言)을 만들어 전파하였으니 목자득국(木子得國)이란 말이 사방에 돌아 인심이 날로 소요하여졌다.
그뿐 아니라 꿈에도 연(楝)을 졌다 하여 왕자로 해석하고 또 방아절구 우는 소리는 어건등(御建登)으로 해석하고 거오이(鶋嗚瑋?)로 해석하고 또 화락경파(花落鏡破)는 화(花)는 떨어지면 열매 있고 거울이 깨어지면 소리가 있다는 동설로 유포하여 미신을 좋아하는 백성들이 많이 붙이다. 고려에는 이성계가 일어나고 중원에는 주원장이 일어나 동양 대국이 모두 흔들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