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외국 비단과 흰옷을 금함
왕이 국민의 사치를 나라가 빈약하여질까 염려하여 청국에서 사오는 비단을 금하다. 조선의 재물이 한이 있는데 조선 사절이 한번 북경에 왕복하면 은 십만을 허비하여 왕궁과 경대부와 백성들까지 모두 비단을 입고 궁촌벽지까지 사치의 풍속이 있으니 사절왕래에 이것을 금하고 또 이덕형의 상소로 인하여 흰옷을 감하다.
만물은 동쪽에서 시작하고 서쪽에서 이루어지나니 동은 푸르고 서는 백색이라 동방사람이 서방사람의 빛을 숭상하니 시작은 버리고 그치는 데부터 힘쓰니 시종의 순서가 아니요 또 동방에서 오랫동안 흰빛을 숭상함은 역사에 많이 기록되었으나 이제 이것을 고침이 가하오이다 하고 이덕형이 아뢰이니 왕이 가로되 우리나라는 청구(靑邱)에 있어 인(仁)으로 새 나라를 세웠으니 그 빛이 푸르고 또 인(仁)을 좇음이라 하시고 또 근래에 세속이 각박하고 인후의 풍속을 듣지 못하였으니 가석하다 하시고 이에 조신들에게 푸른빛이 가하냐 흰빛이 가하냐 물으시고 이제 후론 흰옷을 일절 금하였다.
우리 국민이 항상 흰옷을 입는 고로 심지어 백의인(白衣人)이란 이름까지 있으니 우리 백족들이 흰옷 입는 것이 정신상 불가함이 아니로되 국민 경제상 손해가 있다 한다.
근본 백족이라 흰옷을 입는 것이 아니로되 숙종이후 국상이면 백관과 백성이 다 흰옷으로 삼년동안 상을 입게 되는 고로 연거푸 국상이 내서 백성들이 흰옷 벗을 사이가 없고 여러 해 습관이 되어 고치기 어려운 고로 그만 백의인(白衣人)이 된 듯하다.
우리 역사상으로 보면 고려에서는 백성들이 푸른 옷을 입었고 조선에서는 귀인들만 혹 홍(紅) 혹 록(綠)의 옷을 입었고 명종이후에 국상이 잦으면서부터 흰옷을 입은 듯한데 이것이 옳지 못하다 하여 선조 때에 흰옷을 금하여 현종 숙종 양 대까지 여행하여 특히 선배와 지식층이 모두 청색을 입었으나 그러나 한번 물든 습관을 고치기 심히 어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