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5
천하에
두려워할 대상은 오직 백성(百姓)뿐이다.
백성은
홍수나 화재 또는 호랑이나 표범보다도 더 두려워해야 한다.
그런데도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업신여기면서 가혹하게 부려먹는데 어째서 그러한가?
이미 이루어진 것을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고 늘 보아 오던 것에 익숙하여 그냥 순순하게 법을 받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은 항민(恒民)이다.
이러한 항민(恒民)은 두려워할 것이 없다.
모질게
착취당하여 살가죽이 벗겨지고 뼈가 부서지면서도 집안의 수입과
땅에서 산출되는 것을 다 바쳐서 한없는 요구에 이바지하느라
혀를 차고 탄식하면서 윗사람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원민(怨民)이다.
이러한 원민(怨民)도 굳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마음을 품고서 세상을 흘겨보다가
혹시 그때에 어떤 큰일이라도 일어나면 자기의
소원(所願)을 실행해 보려는 사람들은 호민(豪民)이다.
이 호민(豪民)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존재이다.
호민(豪民)이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일의 형편을 이용할 만 한때를 노리다가
팔을 떨치며 밭두렁 위에서 한번 소리를 지르게 되면,
원민(怨民)은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모의하지 않고서도 소리를 지르고,
항민(恒民)도
또한 제 살 길을 찾느라 호미, 고무레, 창, 창자루를
가지고 쫓아가서 무도한 놈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허균의 호민론 중 일부(一部)>
상기(上記)는
허 균(許 筠)의 호민론(豪民論)의 원본의 서두를 번역한 일부를 옮긴 글이다.
다시 간단히 시쳇말(時體)로 요약하면,
항민(恒民)은 이래도 할수없고 저래도 할수없는 세상사에 무지 또는 정치에 별로 무관심한 나약한 백성,
원민(怨民)은 세상의 불합리(不合理)를 깨닫고는 있지만 그것을 감히 탈피할 방법을 모르거나 용기가 부족한 백성,
호민(豪民)은 세상의 불합리를 깨닫고 행동유형화하여 자기의 권리를 추구하고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고자 하는 백성
또는 필요시 데모(Demonstration)를 할 수 있다는 백성,
이라고 풀어 얘기할 수 있겠다.
그런데,
허 균이 살았던 16세기 후반은 중세 봉건주의 왕조시대로서
허 균이 주창(主唱)한 호민론(豪民論)은 위험한 발상의 정도를 넘고도 넘은 것 아닌가!
허 균이 살던 세상 이전에는
조선시대 3대 도적의 하나인
연산군시절의 '홍길동'(*연산군시절의 홍길동은 실존인물이고 허 균 소설의 홍길동과는 서로 다르다)
명종시절의 '임꺽정'이 있었고,
허 균이 살던 세상 이후에는
숙종시절의 '장길산'이 있었지만 이들 3명은 모두 도적(盜賊)의 형태였고
허 균은 세상을 제대로 바꾸기 위하여 진실로 벼슬이 필요했던 개혁사상가는 아니었을까!?
그 이후 근대(近代)
불미(不美)한 고종시절, 1894년 대대적 국민 봉기인 '갑오동학농민전쟁'이 있었잖은가.
그 이후 현대(現代)
1960년 4.19 혁명,
1987년 민주항쟁,
2016년 촛불항쟁,
우리나라
16대 대통령인 노대께서도 2,000년대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그 분도 21세기에,
500년 전에 허 균이 주창한
호민(豪民)이 되라고 하신 말씀과 맥(脈)을 같이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