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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3월 17일 주일 메시지 (설교안)
시리즈 주제: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네 번째 설교
제목: 바른 말세신앙과 그릇된 휴거신앙
사도행전 2:14~18, 데살로니가전서 4:16~18
아래 그림을 클릭하면 동영상 설교를 볼 수 있습니다!
설교 목적
성경이 제시하는 말세의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며 바른 말세신앙을 가지도록 도우며, 휴거신학이 어떻게 성경을 오독(誤讀)했는지와 그 해악(害惡)을 명확하게 하는데 이 설교의 목적이 있다.
설교 개요
1.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무엇인가?
2. 성경이 말하는 말세는 무엇인가?
3. 왜 초기교회는 자신들이 말세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가?
4. 말세신앙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본보기
5. 휴거신학에 대한 반성적 비판
6. 두 가지 신앙형태: 말세신앙과 휴거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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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경이 말하는 천국은 무엇인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지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가운데 임하였느니라!
적은 자들아 두려워 말라.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하소서!
이 모든 성경구절은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 나라 곧 천국은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사후에 들어갈 영혼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으며,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는 삶이며, 이 땅에 오는 하늘의 삶입니다. 그래서 톰 라이트라는 신학자는 천국을 정의하기를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라고 했습니다.
상식이 뒤집어질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상식에 이의를 제기할 때 새 길이 열립니다. 아니 이미 새 길을 보았기 때문에 상식에 이의를 제기할 것입니다. 온 세상이 천동설(天動說, Geocentricism)을 믿고 있을 때 망원경을 통해서 우주를 본 갈릴레오는 지동설(地動說, heliocentric Theory)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성경의 진리를 부인하는 이단자라는 낙인을 찍겠다는 위협을 받았습니다. 세상은 갈릴레오의 주장이 옳았음을 나중에 인정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지동설이 상식입니다. 하지만 갈릴레오보다 백 년 전에 코페르니쿠스라는 사람이 이미 지동설을 발표했습니다. 그래서 상식을 뒤집는 혁신적인 생각의 발상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그들의 위대한 도전정신을 기리며 ‘코페르니쿠스적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고 칭찬합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하나님 나라를 하늘 위에 있는 천상의 나라요, 죽은 후에 들어가는 사후천당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천국은 이미 지금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을 거부하고 진리를 따르는 이들의 순종과 희생을 통해서 이 땅에서 늘어갈 것입니다. 천국은 그 단어의 의미와는 달리 지상에서 누리는 천상의 생활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말하기를 해가 떠서 서산으로 진다고 하지만 실은 지구가 자전하고 있는 것이 진실인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 보기에 땅은 고정되어 있고 해가 움직입니다. 그러나 우주를 탐험하는 학자들마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후영혼천국 사상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그것을 붙들고 살아가면 현세에서 책임 있는 청지기로 살기 어려운 상황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을 위협하는 도구로 악용되어 천국에 들어가려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속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여 아들을 보내시고 세상을 관리하라고 인간을 지으셨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행위를 하고서도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고 여기게 하는 사상이 바로 사후영혼천국 사상입니다.
이런 사상이 기독교에 들어온 것은 영지주의적 신화가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오염시켰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이 들려주는 사후세계의 허망한 이야기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세의 작가 단테라는 사람이 지옥에 대한 묘사를 한 것은 서방의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기독교에 들어온 혼합주의적 사상들을 걸러내고 성경을 통해서 우리를 이끌어가시는 하나님의 진리를 다시 발견하고 추구할 때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천국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천국은 귀신에게 속아 살던 거짓과 위선을 몰아내고 그리스도를 본 받아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의 삶 속에 있는 실체입니다. 천국은 다투고 갈등하며 좌절하는 세상에서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리는 당당함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천국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우리 가운데 이미 와 있으며 앞으로 주님이 오시는 날 충만하게 될 세상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천국백성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진리를 따름으로써 어두움과 거짓에 대항하는 빛의 자녀들입니다.
지난 세 번의 설교를 통하여 저는 이것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말세(末世)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다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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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이 말하는 말세는 무엇인가?
다시 한번 말세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말세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상의 종말을 말세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망하고 지구상에 많은 재난이 일어나며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말세라는 말은 좀 무서운 것이며 생각하고 싶지 않은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험한 꼴을 보면 ‘말세야 말세!’하면서 혀를 끌끌 차기도 합니다.
과연 성경은 말세를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성경에서 말세라는 말이 나오는 본문을 생각해 봅시다.
첫째,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던 그 때가 말세입니다.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히브리서 9:26
베드로전서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두 번째,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였을 때 말세입니다.
사도행전 2:17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세 번째, 초대교회는 자신들이 말세를 살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디모데후서 3:1, 2, 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야고보서 5: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위의 말씀을 종합하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사용하는 말세라는 말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시작되었으며, 성령강림을 통해서 더욱 분명해졌으며, 그 결과 지금부터 2,000년 전에 있었던 초기교회는 자신들이 말세를 살고 있음을 확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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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왜 초기교회는 자신들이 말세를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가?
초기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성경이 소개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그것을 인간에게 위임하셨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죄가 가득할 때마다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세상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노아의 홍수요,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하신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출애굽 이야기는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시고 언약을 지키시는 분임을 명확하게 들려주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셨고 그것을 보존하시며 그것을 바로잡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예언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세상은 참 혼탁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회에는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여 약자들이 신음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정의가 사라지고 자비가 메말라 버렸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그대로 두실 수 없음을 예언자들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어지럽고 악이 득세하는 세상은 끝나고 하나님이 다스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을 예언했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이사야 2:1~2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편 110:3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요엘 1:1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라기 4:5
초기교회 신자들은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이 말하던 주의 날, 여호와의 날, 주의 권능의 날, 마지막 날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고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에는 악인이 심판을 받으며 열방이 주께 돌아오며 모든 사람이 예언자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예언을 하고 청년들은 환상을 보며 아비들은 꿈을 꿀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셨을 때 예언자들이 말하던 바로 그 날임을 성도들은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역사 가운데 개입하셨습니다. 출애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신 것처럼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그 백성을 부르시고 다시 열방을 위한 빛으로 세우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예언자들이 말하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던 마지막 날입니다. 말세입니다. 이제 예언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셨고 오순절 성령체험을 통해서 분명히 보았습니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니라는 말씀이 이제 현실이 되었음을 제자들은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초기교회의 성도들에게 말세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는 때요, 이 세상의 임금이 심판을 받고 쫓겨나는 때요,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시작되는 때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세상의 방식과 이전에 살아가던 구습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새롭게 지음 받은 새로운 피조물로 인식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전부터 예비하신 일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초기교회에게 말세란 구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며,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세신앙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의미하며, 장차 주님이 오셔서 그 나라를 완성할 기대와 소망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세신앙을 가진 성도들은 자신들 안에서 하나님이 무슨 새로운 일을 하시는지 살펴보고 그 일에 자신을 바쳤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선포한 바울은 자기 시대에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올 것을 확신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서로 교제하고 한 형제라고 부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성경의 예언이 바로 자신의 시대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 자신을 바쳤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져야 할 것을 아셨기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을 골고다로 걸어가셨던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하면 구시대의 체제는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이것이 바로 말세신앙입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말세신앙의 창시자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뒤를 이어 올바른 말세신앙을 가진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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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말세신앙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본보기
성경이 말하는 말세신앙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이 지구의 멸망 같은 대재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말세신앙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임을 깨닫고 그 뜻에 자신을 바칠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을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바른 말세신앙이 자라납니다. 하나님의 뜻에 이 세상을 비추어 볼 때 얼마나 어그러졌는지가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깨달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간구하고 그 뜻이 성취되기를 위해 자신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찾고 노력합니다.
이렇게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바로 성경의 역사요 기독교 역사입니다. 그 중에 한 사람, 윌리엄 윌버포스를 소개합니다.
‘노예 해방의 영웅’이라고 하면 링컨을 떠올리는 이들은 많지만, 윌버포스라는 이름은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낯섭니다. ‘영국의 양심’ 윌리엄 윌버포스는 영국에서 노예 제도 폐지를 주도한 정치인입니다.
1562년에 시작된 영국의 노예 무역은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국가 기간산업으로 부상했습니다. 당시 바다를 주름잡던 영국은 아프리카에서 끌고 온 흑인들을 신대륙으로 팔아 넘기는 중개 무역으로 큰돈을 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국가 재정 수입의 3분의 1 정도가 노예 무역에 의존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노예선 화물칸에 갇힌 흑인들은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극도로 열악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시달렸습니다. 대서양을 건너는 도중 4분의 1이 넘는 흑인 노예들이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노예 무역이 비인간적, 비윤리적이라는 지적을 하는 사람은 ‘국익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매국노 취급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노예 무역 폐지를 부르짖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습니다.
1780년 21세의 젊은 나이로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한 윌버포스는 이러한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노예 무역 폐지 법안을 내놓았습니다. 1787년 첫 법안이 제출되었습니다. 고위직에 관심이 있거나 다음 선거를 의식하는 동료 의원들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양심적인 의원들도 노예 무역으로 재미를 보던 왕족, 귀족, 농장주, 무역상 들의 눈치를 보거나 국가 경제에 미칠 파급을 우려해 차마 윌버포스의 손을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윌버포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두 차례나 암살 위기를 넘겼고, 온갖 중상모략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는 의회에서 150여 차례나 노예 제도 폐지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그의 노력과 의지가 마침내 동료 의원들을 움직였습니다. 마침내 1807년 노예 무역을 금지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20년 동안 투쟁한 결과였습니다.
윌버포스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영국 내의 모든 노예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노예 제도 완전 폐지 운동을 벌여 나갔습니다. 그리고 1833년 7월 26일, 의회는 대영 제국 내의 모든 노예들을 1년 안에 해방시킨다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병상에 누워 있던 윌버포스는 이 소식을 들은 지 사흘 만에 눈을 감았습니다. 영국은 후손들 앞에 부끄럽지 않을 명예를 선물한 윌버포스의 공로를 높이 사 그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장했습니다. 훗날 노예 제도 폐지를 위한 윌버포스의 길고도 숭고한 투쟁은 2008년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로 만들어졌습니다.
<세계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 중에서 인용>
그러므로 바른 말세신앙은 무엇입니까?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나 자연재해를 보고 종말이 다가왔다고 선동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바른 말세신앙은 하나님의 뜻에 집중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 가지, 진실, 사랑, 그리고 신앙을 추구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이 세상을 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실천하는 삶입니다. 200년 전에 영국에서 윌버포스는 자기 시대에 흑인 노예들에게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보았습니다. 모두들 경제적인 현실과 사람들의 의견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때 그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고 실천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 시대에 진실이 가려지고 억울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 상황에 눈을 감아버린다면 우리는 말세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이 이 세상에 실현되기를 추구하는 진지한 기도와 노력을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그루터기 같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100년 전에 흑인 노예들이 학대 받는 약자였다면 오늘날에는 누가 약자입니까? 누가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습니까? 어떤 진실이 가려지고 있습니까? 그로 말미암아 누가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까?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비로소 우리는 구습을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한 시편 기자는 고백했습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며 목자 없는 양 같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면서 가르치셨습니다(막 6:34). 우리도 주님께 기도드립니다. ‘주여,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보게 하시고, 우리 가운데 있는 영혼들의 아픔을 보고 공감하며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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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휴거신학에 대한 반성적 비판
이처럼 바른 말세신앙은 현 시대와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있는 문제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이 그 문제를 통하여 바르게 드러날 수 있는 길을 찾습니다. 그래서 말세신앙을 가진 이들은 언제나 시대를 이끌어가는 선구자들이었으며 새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헌신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확대되었고 지옥 같은 흑암의 나라는 점점 축소되거나 퇴출되었습니다. 물론 그 때마다 고난과 희생이 동반되었습니다.
바른 말세신앙을 가진 이들은 왕의 귀환을 기다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처럼 주어진 금화를 가지고 부지런히 장사하는 사람들과 같습니다(눅 19:11~28). 주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오실 때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입니다. 왕위를 가지고 오시는 주인이 장차 다스릴 곳을 잘 관리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의 나라를 떠날 생각을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천국이 장차 이 세상을 떠나 공중으로 들어 올려 하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휴거신학입니다.
휴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이 땅에 있던 사람들이 무덤에서 일어나고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도 모두 공중으로 들림 받을 것이라는 신앙입니다. 그것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18절 말씀을 잘못 이해한 결과입니다. 바울 사도께서는 가족 가운데 먼저 돌아가신 분들로 인하여 그 유족이 너무 슬퍼하지 않도록 위로와 격려의 말을 편지에 썼습니다. 비록 먼저 가신 분이 지금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지만 주님이 다시 데리고 오실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날이 되면 우리도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 본문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큰 소리 곧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소리와 함께 오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만나러 간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갔을 때 들려온 소리와 비슷합니다(출 19:16).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하나님의 영광으로 오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자 비유입니다. 두 번째 비유는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다니엘서 7장을 생각나게 하는 그림입니다(단 7:13).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킨 성도들이 하나님 앞으로 인도될 것을 미리 보여준 묵시적 그림입니다.
그리고 공중에서 무엇을 합니까? 주님을 영접합니다. 왕의 귀환 이야기를 생각해 봅시다. 귀인이 드디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도시로 돌아옵니다. 그 때 도시 안에 있는 사람들이 왕을 영접하러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그림을 바울 사도는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이라고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왕을 맞이하여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 왕이 다스릴 땅으로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른 이해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천국이 있다는 신앙을 가진 생각을 가지고 이 본문을 읽으면 자연히 지구를 떠나는 이야기로 읽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휴거라는 말을 만들어 내어 성경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과오를 범했습니다. 하나의 과오는 연이어 과오를 만들어 내게 되는데, 공중에서 7년 동안 혼인잔치를 한다느니, 그리고 지상에서는 7년간의 대환란이 시작된다느니 하는 이론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이 모든 휴거신학은 말세신학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 복음과도 반대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는 주기도문과도 맞지 않습니다. 휴거신학을 몰아내지 않는다면 1992년에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그릇된 종말론이 언제 또 다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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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두 가지 신앙형태: 말세신앙과 휴거신앙
천국이 어디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삶은 언제나 천국입니다. 말세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낡은 문화와 구습을 청산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시대는 언제나 말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에게 인생은 천국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지옥이듯이, 어떤 사람들에게 지금 이 시간은 말세이며 어떤 사람들에게 지금은 깊이 잠들어 있는 한밤중입니다. 우리는 바른 말세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에 동참합시다. 우리는 그릇된 휴거신학을 우리 생각 속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하나님의 책임 있는 대리인이 됩시다.
예수님이 말세신앙으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새 시대의 도래를 선언하셨습니다. 초대교회가 말세신앙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증인이 되어야 함을 깨닫고 헌신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방인의 시대를 예감하고 자신을 이방인의 사도로 바쳤습니다. 그리고 오늘 온 세상에 이방인들이 예수를 주라 시인하며 경배합니다. 지나간 모든 시대에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말세신앙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새로운 문화와 전통을 확립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 일하심에 동참하는 신앙이 바로 말세신앙이며 하나님의 경륜을 외면하고 현실을 외면하는 신앙이 바로 휴거신앙입니다. 우리가 어떤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다음 주에는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겠습니다.
<끝>.
말세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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