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 경기고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묵리 619-1
전화 : 031-333-4091/ 천리요셉성당 (관리)
<희망의 순례자> 책자 소개글
최양업 신부는 1849년 4월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고, 그해 12월 압록강을 건너 의주를 통해서 조선
으로 귀국하게 된다. 이후 충청도로 이동하여 페레올 주교에게 귀국 보고를 한 후, 양친의 순교 이후
넷째 동생 최신정을 보살펴 주던 작은아버지 최영겸 베드로가 살던 이곳 한덕골 교우촌을 방문하여
동생들과 만나서 며칠간 머무르며 형제들을 위로했다.
<한덕골> 출처 -수원교구>한덕골 - 가톨릭정보 - 가톨릭굿뉴스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묵 4리(龍仁市 二東面 墨4里)에 위치한 한덕골(閑德洞)은 박해시대 천주교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들어 교우촌(敎友村)을 이루고 살았던 순교사적지이다.
한국인 첫 사제인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1821-1846) 신부 가족들은 박해를 피해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를 거쳐 이곳으로 피난 와서, 처음에는 기거할 집이 없어 마을 근처 성애골(현재는 매몰되었음) 골짜기에 들어가 산(生) 나무와 산 나무에 칡으로 얽어매고 억새풀을 덮고서 살았었다는 눈물겨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최경환의 형 최영겸도 1832년 무렵에 이곳 한덕골로 이주해 왔으며, 1839년 이후에는 최양업 신부의 넷째 아우인 최신정(델레신포로)이 이 집에서 성장하였다. 김제준은 그 후 가족들을 이끌고 1835년 무렵에 한덕골에서 골배마실로 이주하였다. 이 골배마실은 본래 한덕골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과 어은이 고개를 넘으면 곧바로 갈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 길이 막혀 버리고, 양지 방면에서만 들어갈 수가 있게 되어있다. 한편 골배마실 서쪽에 있는 '숨은 이들의 마을'인 '은이'는 지금으로부터 약 160년 전에 형성된 교우촌으로, 이곳 형제봉 아래는 박해 때문에 떠돌게 된 경기도와 충청도 교우들이 모여 비밀리에 신앙 공동체를 이룩한 곳이다'-출처 http://paxkorea.kr
원래 한덕골은 윗마을 광파리골과 아랫마을 한덕골을 합쳐서 부르던 이름이며, 그중 교우촌은 윗마을인 광파리골이다. 족보에 의하면 성 김대건 신부의 조부 김택현(金澤鉉, 1766-1830)과 숙부 김제철(金濟哲, 1803-1835)의 묘가 한덕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성 김대건 신부 가족들의 한덕골 피난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한국인으로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崔良業) 신부는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해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이듬해 귀국하여 이곳에 와서 중백부(仲伯父 崔榮謙)와 어린 동생들을 눈물로 상봉하였다. 최 신부는 그 이후에도 가끔 이곳에 들러 성사를 주곤 하였다.
이곳 한덕골 출신 순교자로는 성 김대건 신부와 부친 성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 1795-1839)을 비롯하여 김 시몬(1870년 순교, 40세), 김 마리아(1866년 순교, 42세) 등이 있다.
신앙 때문에 고향과 가산을 다 버리고 이곳에 피난 와서, 초근목피로 근근이 연명하며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신자 본분을 굳게 지키며 사셨던 신앙 선조들의 기도 소리가 지금도 바람을 타고 은은히 들려오는 듯하다.
교회사 연구와 성지개발에 각별한 열정을 지닌 인천교구의 고 김진용 마티아 씨는 한덕골 순교사적지를 발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한덕골 사적지 부지 또한 손수 매입하여 수원교구에 기증하였다. 순교사적지를 관리하는 천리요셉 성당은 대형 십자가와 야외제대, 그리고 양옆으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와 최양업 토마스 신부상을 설치했고, 2010년 5월에는 파티마의 성모상을 설치하여 축복식을 가졌다. [출처 : 한덕골 순교사적지 안내판, 내용 일부 추가(최종수정 2015년 12월 1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모바일용 요약 설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한덕골(閑德洞)은 박해시대 천주교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모여들어 교우촌(敎友村)을 이루고 살았던 곳으로, 한국인으로는 첫 번째 사제가 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가족들이 박해를 피해 충남 당진군 솔뫼를 떠나 서울 청파를 거쳐 피난 왔던 곳입니다. 또한 두 번째 사제가 된 최양업 토마스 신부가 귀국하여 어린 동생들을 눈물로 상봉하고 가끔 들러 성사를 주던 곳이기도 합니다.
교회사 연구와 성지개발에 각별한 열정을 지닌 인천교구의 고 김진용 씨는 한덕골을 발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한덕골 순교사적지 부지 또한 손수 매입하여 수원교구에 기증했습니다. 순교사적지를 관리하는 천리요셉 성당은 대형 십자가와 야외제대, 그리고 양옆으로 성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상을 설치했고, 2010년 5월에는 파티마의 성모상을 설치하여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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