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자계자자(雌鷄慈子) 4289년 7월 26일(1956년)
숙자(淑子)는 심심풀이로 닭을 길러 보겠다고 한다. 나는 금하였다. 집도 없이 교회 집에 상거(常居)하여 닭을 기를 수 있는가 하고 허락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결심은 나의 권고를 듣지 않고 웅계(雄鷄) 일수(一首)와 자계(雌鷄) 두 마리를 자다 놓고 성력(誠力)을 다하여 기른다.
교회 집에서 옮기게 되어 신문동(新門洞)으로 가고 신문동에서 또 필운동(弼雲洞)으로 옮기게 되었다. 필운동을 일개년 간 있기로 허락이 되었으니 일 년간은 안심하고 있을 수 있는 고로 닭의 장(帳)을 새로 만들고 규모를 더 넓히었다.
그간에 자계(雌鷄) 두어 마리가 알을 낳아 이것을 모아 어미닭으로 안게 하였더니 어미닭은 알이 있는 둥우리에 들어가 알을 안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하여 둥우리를 떠나지 않고 내려오지 않는다. 어미닭이 오래 먹지 않으면 어미닭이 약하여질까 하여 모이를 갖다 주어도 먹지 않고 제가 내려 올 때가 되어야 둥우리에 내려와 몇 십분 동안 모이를 주어먹고 올라간다.
이렇게 근 한 달을 지난 후에 같이 기른 흑색자계(黑色雌鷄) 그 모계(母鷄)가 안고 있든 닭이 잠시 둥우리에 내려 온 후에 흑계(黑鷄)가 뛰어올라 둥우리에 들어가 바야로 껍질을 뚫고 나오려는 병아리를 해롭게 하려는 것을 본 모계(母鷄)는 소리를 치며 운다. 숙자는 이것을 보고 흑계를 쫓아 버렸더니 어미 닭은 둥우리에 올라 배가 고파 주린 일이 있어도 내려오지 않고 알을 품고 있다가 숙자가 병아리를 안어 다른 둥우리에 옮겨 놓으니 도합 새로 깐 병아리가 20여수이다.
어미닭은 이 병아리를 위하여 잠시도 그 둥우리에 잠시도 그 둥우리를 떠나지 않고 땅에 내려오면 모계는 무슨 소리인지 꼭꼭하며 소리를 내면 병아리들이 그곳에 모여들어 어미가 주어 먹는 것을 보고 같이 주어 먹기를 시작한다. 이렇게 자식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것과 자식을 생각하는 것은 인류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또 병아리가 모이면 활개를 버리고 있어 그 병아리로 활개 밑으로 들어오라는 소리로 또 꼭꼭하고 부르면 병아리들은 일제히 어미의 활개 밑으로 모여들고 너무 비지워 그 날개 밑에 다 들어가지 못하면 어미 등 위에 올라앉는다. 날개로 품고 등에 업곤 하여 어미의 괴로운 것은 형언할 수 없는 것 같으나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 품고 업고 하여 시간을 지낸다. 이렇게 하는 동안 병아리는 힘을 얻어 뚜고 날고 날마다 자라난다.
어미 없이 자란 병아리도 몇 마리 있는데 숙자는 전력을 다하여 기른다. 나물을 사다 가른 양식과 섞어 먹이고 병이 들면 약을 사 먹이고 고기까지 사서 먹이고 사람이 먹지 못하는 우유도 먹이지만 어미가 키우는 병아리와 비하면 손색이 있다.
인공은 부족하여 그런지 병이 자주 나서 죽고 잘 자라지 못하지만 어미의 기르는 병아리는 병도 나지 않고 잘 자라나는 것 보면 자식은 어미가 있어야 기른다는 것을 깊이 깨닫는다. 백향산(白香山)이 가마귀가 어미에게 효하는 것을 보고 자조자조조중지증참(慈鳥慈鳥鳥中之曾參)이라 칭찬하였으나 나는 이 자애(慈愛) 많은 닭을 보고 자계자계조중지자모(慈鷄慈鷄鳥中之慈母)로다 하였으나 자모(慈母)는 증참(曾參)과 같이 대표자를 들 자가 없다. 너무 보통이요 너무 많어아 그런지 자모(慈母)라만 칭하여 둔다.
오늘 세상이 각박하여 부모 자식 간 사랑이 없어지고 돌아보지 않고 부모가 걸식하다가 길가에 아사(餓死)하는 자까지 있다는 말을 들으니 심장이 떨어진다. 아-자계자계복자계(慈鷄慈鷄復慈鷄) 너는 조중지자모(鳥中之慈母)로다 하고 읊어 보았다.
또 이상한 것 한 가지는 검은 암탉이 낳은 알 두 개를 숙자(淑子)가 황계(黃鷄)가 앉는 둥우리 속에 넣었더니 흑계가 낳은 병아리 두 마리가 다 흑색이다. 사람 보기에는 전부 황색 병아리 속에 섞여 있는 흑색 병아리 두 마리가 보기에 퍽 좋지 않게 보인다.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 기르면 하고 생각도 하였지만은 황색자계(黃色雌鷄)는 조금도 흑색 병아리를 제 새끼 아니라는 관념은 찾아 볼 수 없다. 다른 황색병아리와 똑같이 업을 때 같이 업고 품을 때 같이 품고 먹일 때 같이 먹이고 부를 때에 같이 부른다.
사람들의 마음보다 얼마나 관대한가. 그리고 병아리가 어미 품을 때 떠나 살 수 있을 때는 병아리도 어미를 생각지 않고 어미도 병아리를 생각지 않고 아주 끊고 또 알을 낳기 시작한다. 모계(母鷄)는 사람보다 지혜스럽다. 사람들은 생활자유가 있는 때에는 부모의 것을 바라고 부모도 자식을 도와주면 하고 염려하니 모계(母鷄)에 비하여 지식의 부족함을 느낀다. 현재(賢哉?)라 자계(雌鷄)에 의아(義我)라 자계(雌鷄)여 하리로다.
<현대 한국어 편집>
# 암탉의 모성 4289년(1956년) 7월 26일
숙자는 심심풀이로 닭을 기르고 싶어 했다. 나는 처음에는 만류했다. 교회 집에 머물면서 어떻게 닭을 기를 수 있겠느냐며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내 권고를 듣지 않고 수탉 한 마리와 암탉 두 마리를 데려와 성심성의껏 기르기 시작했다.
교회 집에서 이사를 하게 되어 신문동으로 갔고, 다시 필운동으로 옮겼다. 필운동에서 일 년간 머물 수 있게 되어 안심하고 지낼 수 있게 되자 닭장을 새로 만들고 규모를 확장했다.
그 사이에 암탉 몇 마리가 알을 낳아 품기 시작했다. 암탉은 알이 있는 둥지에 들어가 알을 굴리면서 계속 앉아 있었다. 너무 오래 먹지 않을까 걱정되어 먹이를 가져다주어도 먹지 않다가, 내려올 때가 되면 잠깐 내려와 먹이를 먹고 다시 올라갔다.
한 달 가까이 지난 후, 함께 기르던 검은 암탉이 품고 있던 알에서 병아리가 부화하려는 순간, 다른 검은 닭이 뛰어들어 병아리를 해치려 했다. 암탉은 소리를 지르며 울었고, 숙자가 그 검은 닭을 쫓아냈다. 어미 닭은 배가 고파도 둥지를 떠나지 않고 계속 알을 품고 있었다. 숙자가 병아리를 다른 둥지로 옮기니 새로 부화한 병아리가 20마리가 넘었다.
어미 닭은 병아리들을 위해 잠시도 둥지를 떠나지 않았다. 땅에 내려오면 특유의 소리로 병아리들을 불러 모았고, 병아리들은 어미가 주는 먹이를 먹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성은 인류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병아리가 모이면 어미 닭은 날개를 펴고 "여기로 오너라"라는 듯한 소리로 불렀다. 병아리들은 일제히 어미의 날개 아래로 모여들었고, 너무 많아 날개 아래에 다 들어가지 못하면 어미 등 위에 올라앉았다. 어미 닭은 힘들어도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병아리들을 품어주고 등에 업어주었다. 이 과정에서 병아리들은 힘을 얻어 점점 자라났다.
어미 없이 자란 병아리들도 있었는데, 숙자는 온 힘을 다해 키웠다. 나물과 양식을 섞어 먹이고, 병이 들면 약을 사서 먹이고, 고기와 우유까지 먹였지만, 어미가 키운 병아리만큼 잘 자라지는 못했다.
인공 부화의 한계인지 병아리들은 자주 병들고 잘 자라지 못했지만, 어미가 키운 병아리들은 건강하게 자랐다. 이를 통해 자식은 어미가 있어야 제대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오늘날 세상이 각박해져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이 희미해지고, 심지어 부모가 굶어 죽는 경우까지 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프다. "오, 자애로운 암탉이여, 너는 새 중의 어머니로다"라고 읊조려 보았다.
흥미로운 점은, 검은 암탉이 낳은 알 두 개를 황색 병아리 둥지에 넣었더니, 검은 병아리 두 마리가 부화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눈에는 노란 병아리 무리 사이의 검은 병아리가 어울리지 않아 보였지만, 황색 암탉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다른 병아리들과 똑같이 돌보고 먹이고 불러모았다.
사람들의 마음보다 동물의 마음이 얼마나 관대한지 놀랍다. 그리고 병아리가 독립할 수 있을 때가 되면, 서로를 잊어버리고 암탉은 다시 알을 낳기 시작한다. 암탉은 사람보다 더 지혜롭다. 사람들은 생활의 자유가 있을 때만 서로를 도우려 하지만, 암탉은 그렇지 않다.
"오, 현명한 암탉이여, 너는 참으로 위대한 어머니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