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03. 12. (일)
● 청와대
"모두 나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터폰으로 비서관의 연락이 왔다. 대통령은 천천히 일어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내고 천신만고 끝에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 정을 붙이고 살던 곳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다. 관사를 나오자 익숙한 얼굴들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다. 모두 침통한 표정이다. 대통령은 차례대로 가볍게 목례로 답하며 기다리는 승용차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자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 내린다. 밖은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차는 전속력으로 삼성동을 향해 질주했다.
헌재로부터 '파면'이라는 통고를 받는 순간 도저히 믿기지 않아 꿈을 꾸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아침에도 수석 비서관으로부터 '기각'이 거의 확실하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파면'이라니 ...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짐을 챙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삼성동 사저는 당장 갈 수 없다는 전갈을 받았다. 2~3일 간 수리를 하면 입주가 가능하다는 보고였다.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용에 대비해서도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 야당과 언론에서는 대통령이 버티기한다는 비난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왕 떠나는 것 태극기 민심에게 '승복하라' 당부하고 떠나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차가 삼성동 사저로 꺾어들자 태극기가 엄청나게 환호하며 맞고 있었다. '아, 이렇게 기다려 주고 있다니~!' 마음에서 울컥하며 눈물이 나왔다. 차가 사저 정문에 도달하자 수많은 사람과 담당 변호사와 한국당 의원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너무나 감사했고 혼자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일일이 손을 잡아 악수하며 감사를 표하고 대문으로 들어서자 눈물이 주체없이 흘러 내린다.
● 일산 교외 고급 일식집
매우 중요한 손님들이 주인의 직접 안내를 받으며 가장 깊숙한 방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 곳엔 이미 중앙에 중년의 한 사내가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손님들을 반가이 맞아들여 자리에 앉혔다. 손님들은 이 사내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지정된 자리에 앉는다. 이미 TV에서도 자주 보던 인물들이어서 예사롭지 않았다. 사내가 주인에게 눈짓을 하니 주인은 나가더니 미리 준비한 음식을 차례로 상위에 진열했다. 사내가 주전자를 들어 모두에게 한잔 씩 따르며 건배를 제안하자 모두 잔을 높이들고 건배를 한 후에 원샷으로 단숨에 들이켠다.
"이제 우리의 준비는 끝났습니다. 모두 여러분의 덕입니다. 우리는 꺼져가는 이 나라의 운명을 새롭게 리셋해야 합니다. 이부원장! 그 쪽은 잘되고 있지요?"
"네 이미 대세는 우리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우선 2위에 진입 후에 결선에서 승부를 볼 겁니다." 이 부원장으로 불린 사내가 답했다.
"장군, 그 쪽도 잠잠하지요?" 사내가 맞은 편에 앚아 묵묵히 회를 먹던 사내에게 물었다. 장군이라 불린 이 사내는 몸가짐이 신중하고 예사롭지 않은 기가 뿜어 나왔다. 아마 예비역 장성 같았다.
"예, 염려 마시오. 모두 정권이 바뀔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있을 겁니다."
"그래야지요, 아스팔트의 보수들이 노골적으로 계엄령 노래를 해싸서 참 염려가 많이 됐습니다." 사내는 잔에 술을 따라 두 손으로 공손히 건네며 다음 사람에게 눈을 돌려 질문했다. "여론은 예정대로 잘될 것 같습니까?"
뚱뚱하고 머리를 바짝 올린 사내가 답했다. "예, 이미 언론에서 모두 입을 맞춰줘 아주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만 변수는 김진태인데 워낙에 여론에 잡히질 않도록 해놔서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사내는 흡족한 듯 미소를 머금고는 나직하게 말을 꺼냈다.
"제이가 권좌를 완전히 장악해 트럼프로 하여금 우리를 옥죄기 전에 선거를 치룬 다음, 일본과 함께 북한에 투자해 나가고 이어 러시아 극동에 진출해 지분을 가지면 우리의 1차 목표는 달성됩니다. 문제는 보수가 또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철저히 막는게 시급합니다. 보수가 있는 한 북한과 합작은 불가능합니다. 이 점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9. 10. 22. (목) - 제 15일 째
오후 1시 30분 경, 접견 신청이 왔다. 접견 쪽지를 보니 와이프였다. 혹시 무슨일이 있는지 궁금했다. 2사 복도에서 2명이 기다리다 1사와 합쳐지는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자, 3명이 대기하고 있다. 그때 계장(무궁화 3개)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른다. 교도관 안내없이 수형자들만 방치했기 때문이다. 교도관은 1사에 가서 접견자들을 불러 오는 중이었다.
교도관이 엄청나게 깨진 후,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늦게 한명의 수형자가 콧노래를 부르며 들어 온다. 그러자 계장이 소리를 버럭 지른다. "왜 이렇게 늦어?" 그러자 그 수형자가 높은 소리로 "이제 불렀으니까 이제오죠!" "왜 이제 불러?" "교도관이 이제 부르니까 이제오죠!" 수형자는 마치 계장을 놀리듯 여유있게 말 대꾸를 해댄다. 그러자 서슬이 푸르등등하던 계장이 아무말도 못하곤 다음 층에서 교도관에게 잘하라고 말하고 내려 버린다.
이처럼 기가 센 수형자들에게 교도관들은 조금 몸을 사린다. 수형자들은 죄명에 따라 명찰 색깔이 다르다. 흰색은 일반범이고, 조폭은 노랑색, 마약사범은 푸른색이다. 흰색 명찰은 가석방이 있다고 하는데, 행형 성적이 좋으면 3.1절, 4월 초파일, 광복절, 10월 27일 교정의 날, 크리스마스에 나갈 수 있다고 한다. 기타 명찰은 가석방이 없다고 들었다.
그래서 조폭 등 강력범으로 들어 온 자들은 행형성적과 무관하게 만기를 살아야 하므로, 행형성적을 의식하지 않아 교도관들에게 마구 대들고 심지어는 교도관을 폭행한다고 들었다. 아까의 풍경도 그런 것이다. 시스템 운영자들의 주관이 작용하면 시스템 내에 있는 사람들은 괴롭다. 우리 사회가 시스템을 벗어나 휘둘리는 것도 이처럼 권력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권력은 국회와 언론이 쥐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늘 자신들은 권력을 견제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이미 사회의 암초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