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사에서 내려오는 길 적상산 사고지에 들렀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때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한 전국의 사고가 불에 탄 후, 그나마 두 유생(안의와 손홍록-경기전 참봉 오희길이 요청함)의 선견지명과 희생으로 하나 남은 전주사고의 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춘추관을 제외한 정족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등에 새로운 사고를 설치하게 되었으나, 당시 우리나라 북방이 위험하여 광해 6년(1614) 천혜의 요새로 이름난 무주의 적상산에 실록전을 세우고 묘향산의 실록을 옮기게 되었다.
이 사고터는 안타깝게도 1992년 적상산 양수발전소댐을 건설하면서 상부댐 안에 수몰되어 안국사와 함께 저수지 윗쪽으로 이전하였다. 지금 이 터는 적상산성의 동문지라 한다
코로나19로 인하여 필히 작성해야 하는 방문록에 서명을 하고 2층에 오르면 실록에 대한 문화전시관이 있어 관람할 수 있다
때마침 열변을 토해 해설하는 문화해설사 여성분이 있어 다양한 사고의 상식을 들을 수 있었다
다만 실록을 설명하는데 선조실록에 율곡 이이에 대하여 "그가 죽었다" 정도로만 북인정권에 의해 쓰여진 기록이 선조개수실록으로 다시 쓰여 그 훌륭한 율곡의 면모가 없어질 뻔 하다가 나타나 큰일날뻔 했다는 해설에 지금 이시대 역사관이 그대로 나타나는 듯 하여 안타까웠다
그리고 사고 옆에는 인조 19년(1641)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을 보관하기 위해 세워진 선원각이 있었다. 다만 현판은 안국사 역대 주지스님의 글씨로 안국사 성보박물관에 있다고 하는 듯 하다 그리고 한 때 또 이 사고가 불 탈 것을 예견한 담당 스님에 의해 사고의 책권이 안렴대로 잠시 옮겨져 허락없이 사고를 옮긴 책임으로 한때 벌을 내렸다는 이야기에 잠시 예나 지금이나 경직된 공무원 문화를 같은 공무원 입장에서 한탄하게 만들었다
사고지 앞 도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양수발전소댐 전망대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의 양수발전소인 이 곳은 시설용량 60만 KWH의 발전시설을 위해 해발 850m인 안국사터에 상부댐을 건설하고 포내리(250m)에 하부댐을 만들어 괴목천 물을 저수하였다가 전기수요가 적은 야간에 적상산 정상 가까운 분지에 막은 상부댐으로 끌어올리고 주간에 589m의 낙차폭을 이용하여 발전하는 시스템이다.
이 공사로 안국사가 있었던 분지는 마치 한라산 백록담과 같은 경관으로 변모 하였으며, 가파른 산길을 이제는 차를 타고 적상산을 오르게 되었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차를 타고 댐 아래로 내려오다 보면 머루와인동굴이 나온다
적상면 북창리 적상산 일대에 무주군의 대표적인 특산품, 산머루와인의 참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머루와인동굴이 아름다운 자연경관, 문화유적과 함께 어우러져 있다.
오늘은 그래도 서늘해서 그렇지 이 한여름에 이 곳에 오면 그 어떤 피서보다 효율성이 최고인 곳이다
동굴 입구 열감지 카메라맨은 아예 겨울 외투를 걸친채 근무를 선다
안에는 와인을 마시며 족욕할 수있는 시설도 있어 가족끼리 와 한때를 보내기에 최상이다
동굴을 돌아 나오면 1인 2000원으로 산 입장권에 시원한 오미자차 한잔도 주니 더욱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