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언(默言)
왜관 베네딕트 수도원 꼭대기
새벽마다 청동수탉 울음소리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맑고 시린 그 말씀에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엎드리는
죄 있는 고요 일습(一襲)
또는, 그대 가슴에
오체투지로 그늘 모으는
가을 햇살 몇 줄기
자월도(紫月島)
누가 서녘하늘을
자월도(紫月刀)로 내리쳤나?
달을 바라보다 한 목숨 다 저물어도 좋겠다며
찰박찰박 모래밭을 걸어 나오는
여자
저 바다는 늘 천 년 전이다
유리꽃밭
누가 여기까지 저 꽃들을 데불고 왔을까
흥건히 엎질러진 채 금이 간 꽃들
혹은 최후까지 몸을 벼렸던 것들의
찬란한 유해(遺骸)
게발선인장
대한(大寒) 겨울날
기저귀 한 장 걸치지 않고
바알갛게 언 종아리들을 모아
조롱조롱 하늘 귀에 매달린
개구멍받이
저, 꽃
산딸나무
잔뜩 십자가를 짊어진 저 나무
얼마나 깊은 어둠을 밟으며 예까지 왔을까
문득 꽃받침마다
온갖 죄(罪)들이 눈부셔서
지구 한 구석이
저렇게 희디흰 두통을 앓는구나
카페 게시글
자유시(본문12행)
박수현의 짧은 시 『묵언(默言)』 외 4편
눈향나무
추천 0
조회 21
25.03.01 01:41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