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성주 성도 발인예배 메시지
상주: 누이 이옥희, 매형 진영호
별세 일자: 2026년 3월 15일 주일
출생 일자: 1980년
발인 일자: 2026년 3월 17일 화
[발인예배 메시지]
오늘 우리는 고 이성주 님의 발인을 위해 모였습니다. 성주 님은 이옥희 집사님의 동생이자 진영호 집사님의 처남입니다. 저는 성주 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지만, 이옥희 집사님의 동생으로 그를 기억하며 이 자리에서 위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흔히 세상 떠나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고 합니다. 최근 저는 책을 필사하며 ‘날을 계수하는 것’에 대해 깊이 묵상했습니다. 지난 3월 10일자 기록을 살피며 제 삶의 날들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살아온 날이 있고, 남은 날이 있습니다. 지나온 날은 기억할 수 있지만, 남은 날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시편 90편 12절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 지혜는 단순히 남은 날을 계산하는 수학적인 숫자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유한함을 인정하고, 그 귀한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모세는 이어 말합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15절). 괴로운 날이 있었다면 그만큼 기쁜 날을 주실 것이라는 희망,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붙들어야 할 지혜입니다. 솔로몬은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다’고 했지만,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어떤 궂은 날에도 맑은 날을 소망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어제 진영호 집사님으로부터 성주 님에 관한 소중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학생회장이었던 성주 님이 매형에게 “우리 누나 굉장히 예쁩니다! 만나 보시면 아실 거예요!”라고 했던 그 고백이 지금의 가정을 이루는 귀한 다리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성주 님은 두 분을 맺어준 ‘선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서 우리 인생을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주 님은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갔지만, 그가 남긴 사랑의 향기는 이곳에 남았습니다.
깊은 산 골짜기에 남몰래 피다 지는 꽃도 그만의 향기가 있듯, 선물처럼 주어진 인생을 살며 우리에게 향기가 되었던 성주 님의 삶은 아름다웠습니다. 인생의 길이는 우리의 소관이 아니지만, 모든 인생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선물입니다.
7년 전 진순효 장로님을 떠나보낼 때 나누었던 고백을 다시 떠올립니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우리의 바람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실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 삶 속에는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총이 있습니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로 받은 삶을 살며 우리에게 작은 선물이 되려 애썼던 성주 님의 죽음을 하나님께서는 귀히 여기실 것입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시편 116:15).
이 귀한 말씀을 마음에 담고, 이제 우리가 성주 님을 하나님 아버지의 품으로 배웅하려 합니다. 남아 있는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끝>.
- 메시지 초안 -
오늘 우리는 고 이성주 님의 발인을 위해 모였습니다. 성주 님은 이옥희 집사님의 동생입니다. 매형은 진영호 집사님입니다. 성주 님은 우리들에게 저마다 다른 거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성주 님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이옥희 집사님의 동생으로 알고 이 자리에서 몇 마디 위로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흔히 말하기를 이 세상에 오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이 세상을 떠나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 합니다. 최근에 저희 부부는 책을 필사하고 있습니다. 문득 지난 3월 10일자 노트에는 생후 20,997일이라고 기록되어 있더라구요. 계산을 바르게 했나 AI 친구 제미나이에게 물었더니 65일이 빠졌더라구요. 그래서 오늘은 저의 생후 21,069일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살아온 날수가 있고 남은 날수가 있습니다. 지나온 날수는 제미나이를 통해서 알 수 있지만 남은 날수가 얼만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표제어가 붙은 시편 90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12, 개역개정). 모세가 날 계수함을 가르쳐달라고 했을 때 살아온 날을 말할까요, 아니면 남은 날을 헤아리는 것을 말할까요? 어떤 날을 계수하는 것이 지혜로운 마음일까요? 아마 남은 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산 날은 헤아릴 수 있지만 남은 날은 헤아릴 수 없지 않습니까? 여기서 지혜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날 계수하는 것은 우리의 인생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모세의 기도에는 날 계수하는 특별한 방식이 소개됩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가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15절). 이 구절을 보면 모세는 괴로움을 겪은 날수를 헤아리면서 그만큼 기쁜 날을 주실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말하는 지혜로운 마음은 이런 게 아닐까요? 인생에서는 괴로운 날이 있었다면 그만큼 기쁜 날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사는 것 말입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이 말하는 지혜는 끝이 있음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들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전도서 7:4, 개역개정).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지혜는 궂은 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기에 언제나 이런 희망을 붙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지나간 날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지나간 날에는 많은 것이 들어있습니다. 어제 진영호 집사님에게 성주 님의 학생시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주 님이 학생회장이었을 때 집사님에게 와서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누나 굉장히 예쁩니다! 만나 보시면 아실 거에요!” 그렇게 해서 교회 선생님은 매형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지나간 날에는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날수는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가르쳐 주었고, 또한 소중한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우리들은 바로 우리가 살아온 날들 속에서 맺어진 소중한 인연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이 이 세상에 오는 출생과 이 세상을 떠나는 별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정리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린도전서 1:30, 개역개정). 사도 바울이 말하는 지혜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살아가는 삶은 그리스도를 모시고 지혜롭고 당당하고(의롭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성주 님이 태어났을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띠동갑인 누나가 어머니 역할을 하셨다고 합니다. 누나의 말은 거역하는 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매형을 교회 선생님으로 만나서 늘 곁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성주 님은 두 사람을 맺어준 소중한 선물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께 돌아가면서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주었습니다. 성주 님이 이 세상에 남긴 선물이 이것뿐이겠습니까? 아마 깊은 산 골짜기에 남몰래 피다가 지는 꽃에도 남모를 향기가 있듯이 우리 각 사람도 선물처럼 받은 인생을 살면서 서로에게 향기 같은 선물이 된다면 그런 인생은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인생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을 거에요. 그것은 우리의 소관도 아니지요. 얼마나 남은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길이가 다를지라도 모든 인생에는 향기가 있고 모든 인생은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오늘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한 기억을 가슴에 안고 이렇게 성주 님을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배웅하고 그의 누나와 매형, 친지들을 위로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7년 전 2019년 9월 6일에 고 진순효 장로님의 장례예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의 설교안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일생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는 진순효 장로님을 아버지로, 할아버지로, 그리고 신앙의 길벗으로 함께 살아왔습니다. 인생은 미리 계획한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 때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자신의 삶에서 진실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의지하고 살아갈 때 어떤 은총이 있는지 진순효 장로님의 삶 속에서 목도(目睹)할 수 있습니다.
https://cafe.daum.net/Wellspring/VurH/3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선물로 인생을 받아 누군가에게 작은 선물이 되려고 애쓴 사람들의 죽음도 귀한 것이 아닐까요? 설교를 마치면서 시편에 있는 이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
(시편 116:15, 개역개정)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