周易 上編(주역 상편).
1.重乾天(중건천).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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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象曰 天行健 君子以 自彊不息
상왈 천행건 군자이 자강불식
[풀이]
상왈, 하늘의 운행은 건전하고 적극적이어서
찰나에도 쉼 없으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잠시라도 쉬지 않고
노력하며 애를 써 나가도록 한다.
[해설]
여기 大象(대상)은 十翼(십익)중 하나로
문왕과 주공과는 전혀 관계없는 공자의 글이다.
그런데 지욱은 64卦(괘)의 大象傳(대상전)을
모두 觀心法(관심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위 一事(일사) 一物(일물)도 自性(자성)에
會歸(회귀)하지 않음이 없다고 본 것이다.
그러기에 군자의 自彊不息(자강불식)은
天賦之性(천부지성)을 훼손하지 않는 것이고,
止於至善(지어지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고,
明明德(명명덕)을 얻으려는 노력함이
잠시도 쉬지 않음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서 '彊(강)'은 본래부터 강한 것이며
'强(강)'은 지금은 약하지만 앞으로 노력하면
강해지는 것인데,
'하늘이 어찌 강하기 때문에만 건실하겠는가?
쉬지 않기 때문에 건실한 것이 아니겠는가.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流水不腐,류수불부],
지도리는 썩지 않는다[戸樞不蠹,호추불두]'고 한다.
고로 군자가 엄숙하고 공경한 생활을 한다면
날마다 강해질 것이고,
제멋대로 놀아난다면 날마다 구차해질 것이 아닌가.
강해지면 날마다 그 도가 자라날 것이며,
구차해지면 날마다 그 도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기에 군자는 生生(생생)하는 하늘의 운행을
닮아서 끊임없이 쉬지 않는 생명의 기운을 지녀야 한다고
'自彊不息(자강불식)'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의 정체인 가솔들을 생육하고 건강하게 거느리려면,
자신의 영육이 강건함은 물론 끊임없는 노력도
강구해야 함을 가르친다.
남을 해치지 않고 남에게 빛지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같이
살아갈 수 있는 百方(백방)을 찾아서 쉼 없이 세우고
또 자손들과 백성들에게 가르쳐 나가야 한다.
하늘의 운행이 정지한 적이 있던가?
앞마당의 파초도 끊임없이 새 잎을 밀어올리며
自彊不息(자강불식)하는데,
하물며 성군이 부지런히 자강불식이 없을 수 있겠는가?
고로 군자는 양강한 9의 天德(천덕)을 본받기 위해
行健(행건)을 멈출수 없다.
학문과 봉사도 다르지 않다.
乾卦(건괘) 不息(불식)을 체득하여 만사에 임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세조가 성균관에 거동하여 '자강불식'을 통해
'군왕의 도'를 강학받는 장면이다.
임금이 河圖(하도)와 洛書(낙서)를 강하기를 명하였다.
金鉤(김구)가 陰陽(음양)의 理數(이수)가 生成合變(생성합변)하고,
往來屈伸(왕래굴신)하는 이치를 설명하고,
金禮蒙(김예몽)이 반복해서 분석하여 어려운 것을 밝히니,
임금이 말하기를,
"강론은 그만하면 충분하니,
너희들은 각각 술잔을 들라" 하였다.
金鉤(김구)가 잔을 올리고 입시한 재상들에게
行酒(행주)하고 나서 이뢰었다.
"복희씨가 河圖(하도)를 법 받아 八卦(8괘)를 그렸고,
문왕, 주공이 卦辭(괘사)와 爻辭(효사)를 만들었는데
본래는 점치는 법이었습니다.
공자께서 '十翼(십익)'을 완전히 義理(의리)로 썼으니,
이는 사람마다 易理(역리)를 체득하여
쓰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첫머리 乾卦(건괘)는 '군왕의 道(도)'로써
바로 성상에게 해당하는 일입니다.
乾卦(건괘)를 본받으려고 하면 마땅히 天道(천도)를
몸에 받아야 할 것인데,
大象(대상)에서 '하늘의 운행이 쉬지 않으므로,
군자는 이로써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스스로 힘쓰고 쉬지 않는다는 것은
이른바 안일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金鉤(김구)는 학문이 情深(정심)하고
該博(해박)하였으며,
더욱이 易經(역경)에 조예가 깊으며,
천문, 지리, 복서, 산수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가 사람을 가르치는 데는 묻지 않으면
발단하여 밝히지 않았고,
질문을 받으면 반드시
먼저 여러 학설을 널리 인용하면서,
그 同異點(동이점)을 변별한 연후에,
이점 부터 얻은 意義(의의)를 참고로 하여,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쉽게 깨달도록 하고,
혹은 자기 의견에 동조하고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을
공박하는 자가 있으면,
또한 자기 의견만을 옳다고 이르지 않고서,
"義理(의리)란 무궁한 것인데 고집하여
무엇을 하겠는가?" 라고 하였다.
임금이 潛邸(잠저)에 있을 때
宗學(종학)에 나가 강독하였는데,
金鉤(김구)가 당시 박사로 있었기 때문에
깊은 禮待(예대)를 더하였다.
고사로, 사마천의 『사기본기』에는
문왕의 아버지 季歷(계력)이 은나라의 제후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자 사방에서 백성들이 몰려들었다.
은나라 황제 文丁(문정)은 이에 위험을 느껴서
그를 살해하고 만다.
이어 그의 막내아들 문왕이 즉위하자,
아비를 죽음을 경계로 삼아 재위하는 50년 동안
아주 겸손하고 주도면밀한 자세로 지냈다.
그래도 그는 폭군 紂(주)에 의하여
羑里(유리)의 옥에 갇히게 되고,
감옥에 갇힌 동안에 그는 『역』을 연구하고
卦辭(괘사)를 짓고 자신의 天命(천명)을 생각한다.
문왕은 乾卦(건괘)를 얻은 후,
만사가 '원형이정' 같이 질서와 때가 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