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11번>은 1905란 부제가 말해주듯이 러시아혁명의 게기가된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1악장에는 광장, 2악장에는 1월9일, 3악장에는 기억, 4악장에는 경종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피의 일요일 사건’이란 러시아 노동자들의 평화적인 시위에 대해 정부가 발포함으로써 1천명 이상의 사망자와 5천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을 말한다.이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다. ‘1905년’이라는 부제를 가진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1번>은 바로 이 ‘피의 일요일’사건을 테마로 삼아 작곡되었다.쇼스타코비치가 이 교향곡에 착수한1956년은 흐루시초프(Nikita Khrushchyov)가 ‘평화공존론’을 제창하고 ‘스탈린 비판’을 감행하면서 이른바 ‘해빙’이 시작된 해였다. 또 그 해 9월에는 전 음악계가 그의 탄생 50주년을 축하해 주었고,그에게는 레닌 훈장이 수여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 역사의 중대한 사건을 비교적 평이한 음악어법으로 다룬 새 교향곡의 발표는 자칫 정권이나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전향적 태도로 해석될 소지를 안고 있다. 더구나 1957년 9월에 완성된 이 작품은 ‘10월 혁명’ 40주년 기념일에 즈음하여 초연되었다. 사실 쇼스타코비치는 레닌을 신봉했던 사회주의자였고,이 교향곡은 암울했던 스탈린 시절의 절망에서 벗어나 새로운 희망을 꿈꾸던 시기에 나왔다. 따라서 이 곡은 소련 역사의 시발점을 돌아보는 의미를 지니는 동시에, 그 상징적 사건에 바쳐진 ‘음악적 기념비’라 하겠다. <참고 ‘피의 일요일 사건’ : 클래식 명곡명연주>
■ 음악구성 쇼스타코비치 최초의 ‘표제 교향곡’인 이 작품은 악장마다 ‘피의 일요일’당시의 상황을 상정한 제목을 갖고 있으며,모든 악장에 등장하는 혁명가의 선율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든 악장은 중간에 쉼 없이 계속해서 연주되는데,전곡 연주에 통상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이 장대한 작품은 쇼스타코비치 자신의 <교향곡 제7번>이나<교향곡 제8번>처럼 러시아 역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묘사한 ‘음악적 프레스코화’와도 같다고 하겠다.
◆ 제1악장: ‘궁전 앞 광장’ 느린 템포로 진행되는 첫 악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그 첫 부분은 참사가 일어나기 전 겨울궁전 앞 광장의 싸늘한 정경을 그리고 있다.하프의 화음을 배경으로 약음기를 부착한 현악군이 연주하는‘광장의 테마’로 시작되며,이후 음산한 팀파니의 레치타티보와 불길한 신호나팔 소리가 들려온다.중간부는 침묵을 지키는 무능한 황제 밑에서 신음하는 민중의 모습을 그린 듯하다.구슬픈 혁명가 ‘들어주소서!’에 이어 보다 억제된 분위기의 ‘죄수들’선율이 민중의 고통을 나직이 토로하는 듯하다.마지막에는 다시 처음의 분위기로 돌아간다.
◆ 제2악장: ‘1월 9일’ 역시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먼저1부에서는 먼저 민중가 ‘오 당신! 우리의 대부이신 황제여’가 탄원하듯 흐르면서 신호나팔 소리와 함께 고조되었다가,그것이 가라앉으면 전곡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인 ‘모자를 벗자’의 슬픈 선율이 금관 합주로 울려 퍼진다. 2부로 넘어가면 앞서 나왔던 선율들이 다시 등장하되 한층 격앙된 흐름을 보이면서 분노와 저항의 감정을 드러내고 군중의 외침,기도,신음,울음 등이 떠오르는 듯하다. 돌연 폭풍 전야의 고요와도 같은 정적이 흐르며 ‘광장의 테마’가 들려온다.그리고 얼마 후, ‘타타타타!’ -갑작스런 작은북의 연타가 정적을 깬다.이제 군대와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참혹한 광경이 펼쳐진다. 격렬한 푸가토가 진행되며 충격과 공포에 빠진 군중의 혼란을 나타내고,타악기들이 광포하게 질주하며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해산시키는 군대의 모습이 그려진다.그리고 또다시 갑작스런 정적.
◆3악장: ‘추도’ 이 아다지오 악장은 희생자들을 위한 진혼곡이자 추모가이다.먼저‘불멸의 희생자들이여,그대들은 쓰러졌구나’의 선율이 엄숙하게 흐르고,중간부에서는 음울한 분위기가 흐르다가 마치 그것을 딛고 일어나듯‘안녕,자유여!’의 선율이 밝은 표정으로 등장하여 감격적인 찬가로 고양되어간다.그리고 클라이맥스에서는‘모자를 벗자’선율이 복수의 맹세처럼 울려 퍼진다.마지막에는 처음의 테마가 재등장해서 자유롭게 변주되며 슬픔의 극복과 혁명의 결의를 다지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 4악장- ‘경종’ 비극을 딛고 일어나 혁명을 향해 전진하는 민중의 모습을 묘사한 악장. ‘격노하라,압제자들이여’의 선율을 금관과 목관이 힘차게 연주하며 출발하고,이후 맹렬하게 질주하며 거침없이 타오르는 혁명의 기운을 부각시킨다.클라이맥스에서는 다시금‘모자를 벗자’동기가 등장하고, 2부로 넘어가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군가를 연상시키는 혁명가‘바르샤반카’의 격앙된 선율이 행진곡으로 발전하며 결연하게 전진하는 군중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그러나 한동안 지속되던 격렬한 기세는 어느덧 흩어지고,마침내 코다로 접어들면 실패로 막을 내린‘제1차 러시아 혁명’의 의미를 반추하는 듯한 숙연한 흐름이 떠오른다.잉글리시호른이‘모자를 벗자’의 선율을 노래하고,마지막에는 호른의 라이트모티브 연주와 함께 의미심장한 경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장렬하게 마무리된다.
<출처: 클래식 명곡 명연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