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중국의 음악 어원
중국 상(商)나라와 주(周)나라 시대(B.C20-A.D 4C)의 한문에는 ‘악(樂)’이란 글자가 제사(祭祀)와 관계가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림에 있는 樂의 고대형 글자들은 (a-c) 2개의 채로 북을 두드리는 사람으로 풀이된다(쿠트너의 해석). 글자 c의 밑받침이 ‘나무’ 木으로 읽혀질 경우, 나무위의 종(鍾)이나 경(磬)으로 해석할 수도 있게 된다. 이러한 악기들은 제사에 사용되었던 것들이다. 이어서 ‘악’은 공자(기원전 551-479) 이후에 정치와 크게 관련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생각은 음악이 사람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이기에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고 평화롭게 만들 수도 있다고 여긴 때문이다.
이 음악관은 매우 절제된 음악만이 사람의 마음에 덕과 예(예)를 갖추게 한다고 보았으며, 도취적인 음악을 경계했다. 음악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재는 척도로 여겨졌다. 한편으로 ‘樂’이란 글자는 ‘락’으로 발음되면서 ‘즐거음’이란 뜻도 갖게 된다. 이는 음악이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영향을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 주위에서 ‘악’이란 말은 ‘음악’으로 대체되어 있는데, ‘음악’이란 말이 일반화된 시기는 서양 음악이 일반화된 시기와 거의 같다.
▲ 참조 : 플라톤의 'Ethos 론'
■ 정약용(丁若鏞)의 음악관 다산 정약용선생의 목민심서 중의 음악에 대한 구절이다.
“음악이 없어지면서 형벌이 심하여지고, 음악이 없어지면서 병란이 잦아지고, 음악이 없어지면서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음악이 없어지면서 속임과 거짓이 성하여졌다. 무엇으로써 그렇게 된 연유를 아는가. 일곱가지 감정가운데, 그것이 나오기는 쉬워도 억제하기 어려운 것은 노여워하는 것이다. 왈칵하여 답답한 사람은 마음이 화평하지 못하고, 분하여 성내는 사람은 마음이 풀리지 않는 법이다. 바로 그런 때에 오직 남을 형벌함으로써 한때의 심기를 통쾌하게 하면 비록 풀리는 듯 순해질 수 있으나 거문고, 피리, 종, 경쇠의 소리를 듣고 그 마음이 화평하여지고 풀어지는 것만 같지 못하다.
그렇지 않으면 군사를 일으켜서 남의 나라를 정벌하여 그 부끄러움을 씻고 원한을 보복하는 뜻을 마음대로 부리어 또한 한때의 기분을 통쾌하게 할 수도 있겠으나, 날마다 앞에서 음악을 연주하도록 한다면 살벌하고 전투하려는 뜻이 어디에서 일어나겠는가. 음악이 없어지자 형벌이 심해졌고, 음악이 없어지자 병란이 잦아지게 된 까닭이다. 윗사람이 형벌로써 제어하고, 병기로써 위압하면 아랫사람은 이에 응하게 되는데, 그것은 오직 근심과 고통과 탄식하는 소리와 간사하고 아첨하며 엄폐하는 꾀만 있게 될 뿐이다.
이것이 음악이 없어진 후에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고, 음악이 없어지자 속임과 거짓이 성하여진 것이다. 지금세속의 음악은 모두 음탕하고 상스러우며, 가락이 슬프고 부정한 소리이다. 그러나 그런 음악이라도 앞에서 한참 연주하면 官長이 아전붙이를 용서해주고 집어른은 종들을 용서하게 된다. 세속의 음악도 오히려 그러한데 하물며 옛 성인의 음악이랴. 까닭에 예(禮)와 악(樂)은 잠깐 동안이라도 내 몸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 데에도 어찌 성인이 이것을 말하였으리요. 음악을 진작(振作)시키지 않으면 교화(敎化)는 시행할 수 없으며, 풍속도 마침내 변화시킬 수 없으며, 천지간의 화기(和氣)도 마침내 이르게 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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