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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0년, 지구에 제 4차대전이 발발하고, 방사능과 핵으로 뒤덮혀버린 지구.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이라곤 오직 극지방과 몇몇 작은 섬들만이 남은상태였다. 대한민국에 남은 몇안되는 사람들은 제주도 근방의 작은 섬들이나 백령도로 대피했고, 우리 정부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구역을 찾아 나가기 시작했다. MARS. 화성이였다. 화성에서 살아남을수 있는 방법을 과학자들이 연구하던 중, 찾아냈다. 화성으로 가면 살 수 있었다.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남아있는 우주선은 단 7대.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2달이였다. 2달 후면 이 작은 섬에서 조차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우주선 한 대에 허락되는 무게는 약 2000kg. 식량들과 짐에 1000kg가 사용되고, 남은 1000kg에 사람이 탈수 있었다. 겨우 5명 내지 7명이였다. 7대를 동시에 출발시킬 수도 없었다. 하루에 약 3대, 20명만이 떠날 수 있다.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몇몇의 사람들은 끝까지 지구에 남아있겠다며 고집을 피웠지만, 나는 조금의 희망을 믿었다. 아직까지 지구에서 이뤄보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이틀 후는 우주선이 출발하는 날이다. 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안전안내문자가 울렸다. 정부는 우주선에 탈 수 있는 사람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성별 무관, 나이 무관. 조건은 화성에 자신이 가야하는 이유가 명확한 사람. 이유가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화성에 가서 정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 50명이 화성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안전안내 문자에는 하나의 링크가 첨부되어있었다.
링크를 클릭했을 때 펼쳐진건 빽빽한 시험문제였다. 아니, 시험이라기에는 객관식 문제가 단 한 개도 없었다는거? 눈이 아프도록 많은 문제의 시작은 이름. 이름이였다.
‘한..가온누리’
부모님이 세상을 당차게 , 세상의 중심이 되라는 뜻에서 지어주신 이름이다. 지금 우리 엄마 아빠는 멀리 멀리 계신다. 세상을 부정했었다. 그리고 그 부정만의 감정은 증오로 바뀌었다. 세상에 대한 증오. 사람들이 이야기 하지 않는가. 세상에 대해 어떤 불만이 있어도 세상은 한치 변하지 않는다고. 약간 비뚤어졌었다. 어떻게든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우리 엄마 아빠는 의사였다. 아주 멋진. 우리 부모님은 정말 멋졌다. 사람을 살리고자하는 그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였다. 잠을 하루에 한시간은 잤을까. 자신들이 죽어가는건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들만 살렸다. 병원의 원장님도 우리 엄마, 아빠를 예뻐했다. 그런 엄마아빠의 딸인 나도 원장님이 어릴때부터 사탕을 한 개씩 쥐어주시곤 했었다.
어느 날, 응급실에 걸어들어온 한 남자가 있었다. 술에 취한 취객. 자신이 복싱선수라며 허리가 끊어진 것 같다고. 나는 그날 학교가 끝나 엄마아빠를 보러 응급실에 있었다. 원장님이 원장실에 있으라며 권유했지만 거절했다. 그 복싱 선수는 응급실에서 말도 안되는 요구들을 해댔다. 떡복이를 먹고싶다느니, 베개를 다른걸로 바꿔오라는 그런. 그리고 우리 부모님에게 전한 마지막 요구는 술을 더 가져 오라는 것이였다. 엄마는 안된다고 안된다고 타일렀다. 그리고 그 복싱선수의 손은 엄마의 거친 뺨으로 향했다. 한순간이였다. 엄마는 쓰러졌고 아빠는 달려갔다. 엄마를 감싸안고 아빠가 응급처치를 하려던 찰나 그 복싱선수는 아빠의 배를 찼다. 아주 세게. 복강내출혈이라고 했다. 손쓸 수 없다고 했다. 엄마도. 그동안 잠도 자지 못하고 계속해서 일해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너무나 허망하게 나는 그날 내 눈앞에서 엄마, 아빠를 잃었다. 그 다음날 장례식에서 복싱선수는 울었다. 많이 울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돌아가신 것에 대한 죄송함이 아닌, 자신의 선수 자격 박탈이 억울해서. 나는 울지 못했다. 울 수 없었다. 눈물이 단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슬펐는데. 우리 엄마,아빠 사진 앞에서 우는 그 복싱 선수가 죽을만큼 미웠다. 나에게 사과 한마디도 없이 울기만 했다. 옆에서 코치란 작자는 위로를 했다. 어쩌면 세상이 이리도 냉정할수 있을까. 모든게 너무 밉기만 했다. 나는 의사가 되고싶었다.
그날 원장님은 어릴때부터 쥐어주던 사탕 하나를 주셨다. 아무말 하지 않고, 내손을 꼭 잡고 우리 엄마 아빠의 사진만을 바라보았다. 원장님의 손을 세게 잡으며 의사가 될거라고 다짐했다.
길게 적었다. 내가 화성에 가야만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무 깊게 생각했더니 조금 지쳤다. 나도 모르는 새 잠에 들었고, 얼마가 지난건지 모를 어두운 밤에 긴급 안내 문자가 다시 도착했다.
‘조건 충당, 한 가온누리 합격.’
오늘은 우주선이 출발하는 날이다. 무겁게 캐리어와 가방을 메고 출발 장소로 급히 뛰었다. 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이 우주선에 타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화성이라는 곳에 가는것이 두려워 지구에 남아있는것이겠지. 차츰 줄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드디어 나의 차례가 다가왔다. 옆 우주선이 출발하는 굉음이 들렸다. 우주선에 탑승했다. 우주선에는 대략 7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조금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리고 내 또래의 고등학생같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을 쭉 둘러보고 있을때 즈음 정부에 속한 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 안녕하세요, 만나게 되어 반가워요. 저는 여러분을 화성까지 인도하고, 화성에서의 삶을 도와줄 정부에 소속된 과학자 테디라고 합니다. 편하게대해 주셨으면 해요. 저희는 곧 화성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모두 우주복을 갖춰주시고, 다 입으신 분들은 이쪽으로 와서 이름과 나이 정도의 간단한 신상정보를 작성해주세요. "
앞에 놓인 우주복은 매우 두껍고 답답해보였다. 꾸역꾸역 갖춰 입고, 신상정보를 작성했다. 아까 내 또래로 보였던 사람의 신상 정보를 보게 되었는데, 이름은 이희연. 나이는 열 여덟. 나와 동갑이였다. 조금은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덤덤한 척 했지만 사실 조금 걱정이 된건 사실이였다. 말 벗이되어줄 사람을 찾아 기분이 나아졌다. 그리고 테디가 다시 말을 꺼냈다.
" 여러분들께 드릴 말씀이 너무나 많습니다. 3분 후 우주선이 출발 예정인데요, 여러분들은 무중력 훈련을 받지 못한 일반이라 아마 출발할때 느낄중력에 조금 힘드실 수 있습니다. 자이로드롭을 탔을때 내려오는, 무슨 느낌인지 아실거라 믿습니다. 다만 자이로드롭과는 차원이 다르게 힘드실겁니다. 기절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어요.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의 3배정도 됩니다. 출발 카운트 다운을 시작합니다. 숨을 크게 10초정도만 참으세요. 카운트다운, 텐,나인,에잇"
테디가 카운트다운을 계속해서 외쳤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숨을 크게 참고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고, 눈을 꼬옥 감았다. 몸에 가해지는 압력이 그대로 느껴졌다. 테디의 말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 여러분들, 눈을 떠주세요. 다행히 저희 우주선에 기절한 사람은 없군요. 천천히 호흡을 시도하세요. 이제 여러분들에게 화성에 도착하면 할 일을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나라 사람 말고도 아마 5개국의 나라의 사람들이 도착을 할겁니다. 저희나라 사람들은 K구역이라고 불리우는 구역에 도착할겁니다. 거기에는 임시 거주소 10개가 있어요. 저희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 사람들이 임시거주소를 지었습니다. 지금 이 우주선에 타신 7분이 임시거주소 한개를 사용할거에요. 저희는 N.5번의 임시거주소를 배정받았습니다."
우주선으로는 대략 일주일이 걸리는 거리라고 했다. 원래는 몇년이 걸릴 아주 먼 거리이나 세계의 과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끙끙 앓은 결과 아주 빠른 우주선이 탄생한거라고 했다. 사람들은 우주선 안의 무중력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나는 아까 본 그 친구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안녕, 그 실례일수도 있겠지만 아까 그 정보 적는거 봤어. 나랑 동갑이더라. 한가온누리라고 해."
내가 먼저 다가와주자 그 친구도 환히 웃으며 화답해주었다.
"아,안녕. 이희연이야."
우리는 금새 친해졌고, 우주선에 적응하고 우주선에 탄 어른들과도 서서히 가까워졌다. 벌써 우주선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였다. 희연이와 나는 일어나서와 잠자기 전 까지도 꼭 붙어있었고, 어른들도 너무나 잘 대해주었다. 밤이 저물었다.
테디가 분주하게 우리를 불렀다.
" 여러분들, 곧 착륙 예정입니다. 다시 우주복을 갖춰입어주시고 자리에 착석하세요. 이번에도 압력을 견뎌야합니다."
출발때 겪은 그 느낌이였다. 우주복을 입고 짐을들고, 드디어 화성에 도착했다. 화성은 생각한것과는 약간 달랐다. 정말 황무지였다.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다는 그 사람들이 지은 임시 거주소를 제외하고는. 생각보다 커다란 임시 거주소 밖으로는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화성을 다 둘러보기도 전에 테디는 우리를 불렀다.
"여러분들, 다들 임시 거주소 안으로 들어가주세요. 임시 거주소 안에서는 우주복을 벗고 숨을 쉴수 있을겁니다. "
같은 우주선을 탄 우리는 K구역 넘버5의 임시 거주소에 들어갔다. 임시거주소는 생각보다 넓었고 쾌적했다. 다행히도 식량과 물은 매우 충분했다. 돔 모양의 임시 거주소는 5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었다. 안은 텅텅 비어있었지만 임시거주소는 매우 넓었다. 10명이 살고도 남을 정도로. 나와 희연이가 한방을 쓰기로 했고 나머지 어른들도 방을 나눠 들어간듯 싶었다. 방에는 이불과 베개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짐을 풀고 거실로 나가니 어른들이 앉아있었다. 식량 배분을 고민하는 듯 보였다. 우리 거주소에서 가장 최고령이신 아줌마가 한마디 했다. 그 아줌마는 아주 유쾌했다. 우주선 안에서 테디를 자꾸
"얘, 태희야.“
라고 말실수를 자주 해서 태희아줌마라고 불렸다. 태희라고 불릴때마다 테디는 당황한듯 보였다. 태희 아줌마는 최대한 식량과 물을 아끼자는 얘기를 오분쯤 했다. 어른들은 약간 지루한 표정으로 태희아줌마를 쳐다보았지만 태희아줌마는 그런걸 아는건지 모르는건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아끼지 않았다. 기나긴 태희아줌마의 말이 끝마친 순간 임시거주소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들은 모두 나가보았다.
아무래도 마지막 우주선이 도착한 것 같았다. 다른 임시거주소 사람도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왔고, 티비에서 많이 보던 약간 익숙한 얼굴의 정부 사람들이 우리를 집합시켰다.
"안전히 화성에서 다시 뵙게 되어 정말 다행입니다. 앞으로 우리 화성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갑시다. 여러분들을 무슨 이유로 불러냈느냐 하면, 현재는 식량 걱정이 없으나 살아가며 많은 식량이 필요할거라 예상됩니다. 그래서 임시거주소 안에서 감자, 사과와 오이를 키워볼까 합니다. 각 거주소의 대표가 비료와 인공 조명, 토양과 물, 관리대장까지 가져가도록 합니다. 이 재료들로 거주소 안에서 야채와 과일을 키워주세요. "
우리 거주소의 대표를 따로 정하진 않았지만 나이가 가장 많은 태희 아줌마가 모든 재료를 가져왔다. 우리 거주소 안에는 특이한 구조의 방이 있었는데 그 방을 이용하기로 했다. 천장이 투명한 방이였다. 가장 바깥, 구석의 방이였는데 처음부터 과일과 야채들을 키울 용도였던 것 같다. 토양을 넓게 까는 작업을 했다. 한번도 이런걸 해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조금 어색했다. 희연이가 옆에서 찬찬히 알려주었다. 우주선에서 말이 참 많던 스무살의 오빠가 거들었다. 희연이 다음으로 내 또래여서 어색하지 않게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대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화성으로 오게 되었다는 에피소드를 열 번쯤 풀어놓았다. 이름은 찬희라고 했다. 성인이 되자마자 술도 마시고 매일 놀러다닐거라고 기대했는데 여기까지 오게되어 정말 원통하다고 했다. 어른들은 왜 일을 하지 않느냐고 궁시렁 대다가도 가만 보면 일을 참 잘하는 것 같다. 이런걸 자주 해봤을 것 같지 않지만 나보다는 잘했다. 내가 맡은 부분은 흙이 고르지 않은 반면 희연이와 찬희오빠가 한 쪽은 흙이 고르게 퍼져있었다. 찬희오빠가 나를 보며 깊은 한숨을 푹 쉬더니 와서 도와주었다. 한시간정도 지났을까, 거의 다 끝나가던 참에 어른들이 와서 이제 우리가 하겠으니 나가라고 했다. 붙임성도, 사회성도 좋은 찬희오빠는 진심반 장난반으로
“ 아이, 다했는데 이제 와서 뭘 도와줘요~ 저어기 방에서 쉬시죠? 그냥 예의상 하는 말인거 저희 다 알거든요!”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 저희 거의 다 끝났어요, 식량중에 냉동 핫도그 있었는데 그거 좀 만들어주세요, 배고파요”
어른들은 하하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분위기는 참 좋았다. 일을 다 끝내고 어른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기 위함이였다. 임시거주소는 매우 편안했다. 지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거주소 밖으로 나가게 되면 호흡기를 써야했지만. 약간 생각에 빠져있던 참에 찬희오빠는 나를 불렀다.
“가온누리는 왜 화성에 오게 됐어?”
“저는, 음.”
말을 늘이자 어른들이 빨리 말해보라고 재촉했다.
“ 제 이름 뜻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라’ 거든요. 이거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이에요. 철학관 가서 이름을 지었었는데 맘에 들지 않았었대요. 그래서 고민하고 고민해서 지은 이름이 한가온누리에요. 그런데 부모님이 돌아가셨어요.”
흐뭇한 미소를 짓고 나를 바라보던 눈빛들이 조금 변한걸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 동정하진 말아주세요. 여튼, 이름값 하려고 온거에요. 제 꿈이 의사거든요? 화성에 병원 하나 지을겁니다. 기대하셔도 돼요 여러분들 ”
태희아줌마의 남편인 아저씨가 한마디 했다.
“가온누리 이름 참 예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앞으로 아저씨가 냉동핫도그 많이 해줄테니까 힘내라? ”
다들 빵 터졌다. 처음으로 화성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희연이도 말을 꺼냈다.
“ 저는 사실 별 생각 없이 왔어요. 부모님이랑은 떨어져 살아서 전쟁 나고는 소식도 통 몰라요, 여러분들하고 쭉 살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 전공이 요리라서 요리 잘하거든요? 맡겨만 주세요”
어른들이 크게 호응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화성에 우주선이 도착하는 소리가 났다. 테디가 우리 말고도 다른 국가의 사람들이 도착할거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호흡기를 급히 차고 또한번 밖으로 나갔다. 우주선에 익숙한 캐나다의 국기가 걸려있었다. 우리 옆으로의 구역이 캐나다의 구역이였나보다. 생각보다 크게 국기가 걸려있었는데 알아보지 못했다. 희연이도 이제야 발견한 눈치였다. 캐나다의 우주선에서 내린 인원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보다 적은 느낌이였다. 임시 거주소의 수를 세보니 겨우 5개밖에 되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하고는 다른 나라의 사상자가 몇 명이고, 몇 명의 생존자가 있는지. 이런 정보를 전혀 알 길이 없어 통 소식도 몰랐었는데 아무래도 캐나다는 생존자가 몇 되지 않았었나보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구역이라 캐나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잘 들렸다. 영어를 사용하다 보니 어느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뭐, 화성이 신기하다는 그런 내용. 캐나다 사람들의 말에 집중하고 있던 와중에 태희 아줌마의 집합령이 내려졌다.
“ 우리 과일채소 키우기 관리자를 뽑아야 해. 관리대장을 받았으니 우리가 돌아가며 관리해도 좋고.”
잊고있었던 과일채소가 생각났다.
우주선 안에서는 크게 말이 없던 예쁜 언니도 한마디 했다.
“돌아가면서 관리하는게 좋을 것 같아요. 혹시 종이 가져오신 분 계세요? 저희도 달력을 하나 만들면 좋을 것 같은데. 일주일에 한번씩 두사람이 돌아가며 관리해요.”
“아, 저 종이랑 펜 있어요. 시계도 들고왔는데 아무래도 고장난 것 같네요.”
희연이가 말했다.
“ 저, 내가 몇 년전에 시계 수리 업체에서 일했었는데 한번 봐도 될까? ”
태희아저씨보다는 약간 어려보이지만 우리 우주선 안에서 나이가 많은 편에 속하셨던 아저씨가 얘기했다. 이름은 이태우였다.
찬희오빠는 기술자도 있다며 얼굴을 밝혔다. 나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예쁜 언니, 이름은 구슬. 이름이 얼굴과 정말로 잘 맞았다. 구슬언니와 희연이는 달력을 만들기 시작했고 아저씨들은 시계를 수리하기 시작했다. 태희아저씨와 태우아저씨는 금방 친해지셨다. 태희아주머니는 식량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임시 거주소는 지구와 똑같았지만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다. 냉장고는 따로 없었고 커다란 벽장이 있었다. 나와 찬희오빠는 어두워질때를 대비해 받은 손전등을 천장에 걸기로 했다. 손전등이라지만 거의 캠핑할때나 쓸 것 같은 커다란 조명이였다. 천장에 단단하게 못을 박았다. 태우 아저씨가 이런 공구들을 모두 챙겨와 주었다. 우리에게 참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다. 못을 박은 위로 끈을 단단하게 맸다. 그리고 조명을 걸었다. 조명은 성공적이였다. 우리 임시 거주소가 밝게 빛났다.
화목하게 다들 할 일을 하던 도중에 누군가 우리임시거주소의 문을 두드렸다. 나와 찬희 오빠가 문과 가장 가까이 있어 나가 보았다. 테디였다.
“ 나무들과 헝겊, 철도 조금 가져왔어요. 용접 기구들도 있고요. 이걸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제작하시면 돼요. 재료들은 아직 충분히 남아있지만 가져갈 수 있는 양에 제한이 있어서 신중하게 사용하셔야 해요. 혹시나 필요한 도구들이 있으시면 임시거주소 넘버1로 찾아오세요. 제가 사용하는 거주소입니다. ”
테디의 뒤로 보이는 재료들은 매우 많았다.
낑낑거리며 들어가자 아저씨들이 와서 도와주었다. 많은 재료들은 문과 과일채소 방 옆에 있는 자그마한 빈 공간에 박아뒀다. 우리는 그곳을 창고로 사용하기로 했다.
나는 학교 진로 체험 시간에 의자와 테이블을 만들어 본적이 있어서 의자와 테이블을 제작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일주일 간은 일할 거리가 많을 촉이 온다. 찬희오빠도 와서 거들어 주겠다고 했다. 달력 만들기를 마친 구슬언니와 희연이는 헝겊으로 바닥의 카펫과 방석을 만들겠다고 했다. 구슬 언니의 가방에서는 큰 반짇고리가 나왔다. 아저씨들과 태희아줌마는 방에 짐을 놓고 사용할 벽장과 옷장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나와 찬희오빠는 나무를 자르려는데, 생각해보니 자가 없었다. 나는 캐리어 안의 필통을 뒤졌다. 15cm 자가 다행히도 있었지만 턱없이 작을걸 알기에 자부터 만들었다. 나무를 적당하게 잘라 마커로 표시했다. 만들다 졸려 죽을뻔했지만. 30분의 노동에 걸쳐 50cm자를 만들어 냈다. 태희아주머니에게 자를 빌려드리려고 갔는데, 아저씨들은 자도 없이 척척 깔끔하게도 잘라내고 있었다. 우리는 감탄하며 다시 의자제작부터 시작했다. 배워온 나보다 찬희 오빠가 더 잘하는 것 같아 어이가 없을 따름이였다. 깔끔한 의자가 완성되었다. 겨우 한 개 만들었지만. 우리는 사람 수에 맞춰 7개를 만들기로했다. 3개째 만드니 속도는 빨라졌지만 계속되는 단순 노동에 약간 지쳤다. 그래서 우리는 남은 의자 만들기는 내일로 미루기로 했다. 대신 옷장에 들어갈 옷걸이를 만들기로 했다. 철사와 헝겊으로 노래를 부르며 만들었다. 생각보다 살만하다고 느꼈다.
슬슬 배가 고파오던 와중에 다시한번 우리 거주소의 문이 두드려졌다. 이번엔 태희아줌마가 나갔는데, 신경을 쓰고 있지 않자 태희 아주머니가
‘오마이갓, 예스’
를 반복하며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을 찾았다. 웬 영어, 라고 생각하며 나가보니 문 앞에 외국인들이 서 있었다. 아마 아까 도착한 캐나다사람들 같았다. 나를 보며 설명을 이어갔는데, 불을 피울수 있냐고 물었다.
나와 태우아저씨, 찬희 오빠 모두가 성냥을 가져왔기에 불을 피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성냥은 충분히 많았다.
나는 영어로 충분한 성냥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캐나다 사람들은 성냥 열 개만 나눠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덧붙여 침대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물물교환을 하자는 셈이였다.
나는 태희아주머니에게 번역을 해주었다. 그러자 태희아주머니는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손가락으로 오케이의 제스쳐를 취했다. 성냥 열 개를 세어 주자 내일 까지 침대를 만들어 준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한달이 흘렀다. 우리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을 거의 제작했다. 이제 불도 피울수 있으니 음식도 구워먹을수 있고, 다같이 둘러 앉아 밥을 먹을 식탁, 옷장도 있고 편히 잠을 잘 침대도 있었다.
희연이와 함께 호흡기를 차고 거주소 밖으로 나왔다. 망원경으로 지구를 바라봤다. 푸르던 지구가 회색빛으로 변해가는게 한눈에 보였다. 지금 지구에서 살고 있는 생명체는 얼마나 될까. 희연이도 아무말 없이 지구를 바라봤다. 의사가 되겠다는, 이름의 뜻을 지키겠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여기에 왔는데 정작 할 수 있는게 없어 무기력해진다.
시무룩한 내 표정을 눈치 챘는지 희연이가 한마디 건넸다.
“ 무슨 생각 해?”
“ 그냥, 화성에서 뭘 할수 있을지 하는? 그런 생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