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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국훈독경 (天一國訓讀經)
제9권 절대가치와 하나님주의 - 제10일
참된 나를 찾자
날짜 : 1993. 1. 5(화)
장소 : 한국 제주국제연수원
1.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참된 나를 찾자, 이 말은 뭐냐 하면 우리 사람 자체가 참된 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보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선한 사람들이 많으냐, 악한 사람들이 많으냐? 악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많다면, 그 악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가 있을 것입니다. 많은 나라들 중에서 악한 나라들이 많아요, 선한 나라들이 많아요? 악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악한 나라들이 많다면, 선한 나라는 없다는 말이에요?
이런 문제는 인간이면 누구나 다 생각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세상을 보면 선한 세상과 악한 세상이 있는데, 악한 세상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은 어떠한 사람이냐 이거예요. 선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 결국, 인간들은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런 세상이 되었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다면, 인간조상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선한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런 악한 세상, 악한 무리가 되었느냐 하는 것이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 없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계신다면 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말 자체가 있다는 것이 영광입니다. 그러면 종교라는 게 왜 필요하냐? 종교를 찾아 가지고 선한 사람이 되고, 좋은 사람이 되고, 선한 가정이 되고, 좋은 나라가 되고, 좋은 세계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 세상의 근본에 들어가 볼 때, 맨 처음에는 하나님하고 우리 인류시조의 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만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인간 가운데는 남자와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악하고 모든 나라들과 우리가 악하게 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되었겠느냐, 인간으로부터 그렇게 되었겠느냐? 하나님이 있었는데 왜 나쁘게 되었느냐 이거예요. 나쁘게 되었다면 어떤 것이 나쁘게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 나쁘게 된 동기가 뭐냐? 그 이유를 성경에서는 선악과를 따먹고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선악과가 무엇이었느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가 명확히 밝혀져야 됩니다.
이 세상의 문제들 가운데 대다수는 남자와 여자의 두 사람으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것들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근본적으로 나빠지지 않고 선할 수 있으면 모든 어려운 세상을 넘어 하나의 평화의 세계로 가는 길이 80퍼센트 이상 가까워집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남자와 여자에게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내가 있습니다. 그런 근본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선한 사람이에요, 악한 사람이에요? 결국, 내 자신부터입니다. 내가 선한 사람이냐, 악한 사람이냐? 어떤 거예요? 내 자신이 나쁘다고 하면 내가 살고 있는 집도 나쁘고 내가 살고 있는 사회, 나라, 세계, 우주가 나쁘고 그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도 나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쁠 수 없습니다. 인간이 나쁘다는 거예요. ‘인간’ 하게 되면 남자 여자인데 남자가 더 나쁜 거예요, 여자가 더 나쁜 거예요? 기독교인들은 그걸 압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이브가 나쁘다고 합니다. 그러면 주범이 누구냐? 여자도 아니에요. 재판정에서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주범입니다. 주범을 어떻게 치리하느냐? 주범이 결정이 나야, 그것에 따라 가지고 비례적인 죄상에 대한 형벌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일반 사람들도 궁금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반 개개인이면 누구나 궁금해하고 질문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데, 절대적인 하나님이 왜 인간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느냐? 이 문제가 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조상이고, 기독교에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그분과 아들딸이 된다는 우리 인간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 이거예요.
하나는 타락해서 못 쓰게 되었는데, 그렇게 타락하게 내버려두고는 다시 구원하려고 하는 하나님은 도대체 뭐냐 이겁니다. 그러니까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면 아무리 악한 자라고 하더라도 선하게 만들지 왜 못 만드느냐? 이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타락은 도대체 뭐냐? 우리가 타락했기 때문에 이런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나쁘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나쁘냐 이거예요. 왜 나쁘냐 이겁니다.
여러분 자신들을 보게 되면 나쁘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몸과 마음이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사실이에요. 어느 나라의 사람 누구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모든 인류는 그런 싸움을 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 여러분은 어때요? 싸우는 사람이 천국 갈 수 있어요? 하나님과 같이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문제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느냐? 세계가 문제가 아니고, 전체 인류가 문제가 아니고, 역사가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 못 된 자리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마음과 몸이 싸우는 데, 뒤죽박죽인 데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평화란 말은 평평하게 화해서 둘이 하나되는 것을 말합니다. (252-304)
2. 타락했다는 것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있어야
여러분, 부처끼리 싸우면 하루종일 편안해요? 싸우는 데는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싸우는 데는 하나님이 같이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마음은 어떤 것이고 몸은 어떤 것이냐? 이게 문제라구요. 마음과 몸이 한 곳으로 가게끔 되어 있어야 할 텐데, 왜 그렇게 되어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피조세계를 보면, 모든 것이 페어 시스템(pair system;쌍쌍제도)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되어 있다구요.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로 보게 된다면, 구원섭리는 복귀섭리고 복귀섭리는 탕감복귀의 섭리입니다. 탕감복귀섭리는 전부가 아담과 해와, 주체와 대상을 중심삼은 거라구요. 이런 탕감복귀도 그냥 복귀가 아니라 재창조의 섭리라는 것입니다. 재창조의 공식은 뭐냐 하면 반드시 주체와 대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환경에는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광물세계를 봐도 전부 주체와 대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원자세계를 보더라도 양자를 중심삼고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혼자서는 운동을 못 합니다. 플러스 이온과 마이너스 이온, 전부 다 주체와 대상으로서 운동합니다. 식물세계는 수술과 암술, 동물세계는 수놈과 암놈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환경이란 재창조의 과정을 거치는데, 재창조되는 공식은 어떻게 되어 있느냐? 환경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의 페어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하나되는데, 여기에 만약 더 큰 것이 있다면 이 더 큰 플러스를 중심삼고 하나되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관계를 대상적 관계라고 합니다. 이래 가지고 커 가는데, 이것이 하나되게 되면 더 큰 마이너스가 되어서 더 큰 플러스와 하나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잖아요. 유치원을 졸업하게 되면 초등학교,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고등학교, 중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 대학교를 졸업하면 석사코스나 박사코스를 밟으려고 합니다. 점점 높이 올라가서 최고의 자리를 원하는 것이 현실세계라구요. 여러분이 친구를 사귀더라도 자기보다 좋은 친구, 선생을 알더라도 지금보다 더 좋은 선생을 원합니다. 그렇게 자꾸 커 갑니다. 종교도 더 좋은 종교를 원합니다. 최고는 어디냐? 하나님까지 들어가는 거예요. 하나님을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게 뭐냐?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그것까지도 점령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최고가 되려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주체 앞에 최고의 상대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보더라도 우리는 원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제2의 존재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남자와 최고의 여자, 이걸 원합니다. 여기에 있는 여러분은 최고의 남자와 여자들이에요, 최악의 남자와 여자들이에요? 싸우는 건 다 나쁩니다. 둘 다 나쁜 거예요. 아무리 잘 했더라도 싸우면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싸우느냐? 이익이 상반되고 주장이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두 세계를 갖고 있어요. 싸우는 세계에는 반드시 두 세계가 따라다닌다 이거예요. 타락한 세계에는 두 세계가 따라다닙니다. 이것이 언제 해결되느냐? 또, 하나님이 있다면 왜 이런 문제를 해결 못 하시느냐? 여기에 문제되는 것은 타락입니다. 타락했다는 것에 대한 철저한 자각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철저한 신념을 가져야 된다구요. “나는 타락한 사람이다” 하는 자각을 해야 됩니다. 타락했다는 그러한 자각이 내 몸 마음을 하나로 만들 수 있을 만큼 힘이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52-306)
3. 숨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
타락에 대한 심각성이 몸 마음을 통일할 수 있는 이상의 심각성이 안 되어 가지고는 타락한 몸 마음을 하나로 만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그래서 세례 요한도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고 외쳤고,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하라” 했습니다. 회개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었느냐? 그 목적이 무엇이었느냐? 나 자신에게는 지옥이 있고 천국이 있습니다. 두 세계가 들어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느끼고 있어요?
남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의로운 사람, 성인들이 말한 것은 대개 자기들은 내놓고 대외적인 세상, 상대적인 관점에서 생각했습니다. 자기를 빼놓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지옥의 근본과 천국의 근본이 어디에 있느냐? 가정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나라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원인은 내게 있는데, 왜 제1의 원인을 빼 버렸느냐 이거예요. 지옥의 근본과 천국의 근본이 나에게 있습니다. 이걸 몰랐습니다. 이건 당연한 거예요.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자기를 이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자기를 이기는 것이 천하를 통일하는 것보다 더 힘듭니다. 세계를 다 통일해 놓았는데, 내가 하나 안 되면 뭘 할 거예요? 자기가 아무리 세계를 통일해 놓았더라도 내가 하나 안 되어 가지고는 그 통일이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만약에 관계된다고 하더라도 걱정입니다. 관계를 맺을 수도 없지만, 관계를 맺는다고 해도 걱정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자각을 가져야 됩니다. 창조원리니 복귀원리니 타락론이니 하는 것은 전부 다 무엇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냐? 세상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나에게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구요. 세상이니 나라니 하는 것은 2차적인 것들입니다. 우리 통일교회 패들도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이거예요.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알아야 철저하게 청산할 수 있습니다.
그래, 지옥의 뿌리와 천국의 뿌리가 있는데 지옥의 뿌리는 무엇이냐?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몸뚱이가 지옥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은 무엇이냐? 마음은 본래 플러스입니다. 그런데 이 몸뚱이가 또 다른 플러스가 되어 가지고 반발합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커 가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커 갑니다. 모든 피조세계는 사랑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왜 주체와 대상이 필요하냐? 왜 페어 시스템이 필요하냐 이겁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그런 쌍쌍제도를 통해서, 전체의 플러스 대표가 남자고 마이너스 대표가 여자인데, 이 전체를 합하여 하나의 큰 하나님의 대상을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뭘 하는 것이냐? 둘이 작용하고 운동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중심삼고 운동하느냐? 사랑을 중심삼고 운동합니다. 광물도 사랑을 중심삼고 작용하는 거라구요. 광물세계도 그 나름의 사랑을 주고받는다는 것입니다. 식물도 마찬가지고,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얼굴을 봐도 다 둘씩이에요. 전부 다 상대적입니다. 상대적인 관계를 이루지 않고는 안됩니다.
그래서 나라는 생명체를 중심삼고, 남자면 남자라는 생명체를 중심삼고 상대적으로 엮어 나가는 것입니다. 남자도 남자적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있어야 됩니다. 그런 남자하고 여자가 플러스와 마이너스로서 하나되어 가지고 커 나가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서 재창조의 과정을 통해 가지고 대응적인 생명력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누구를 붙들고 싸움을 하느냐? 일생 동안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할 그 싸움의 마당이 어디냐? 딴 데가 아닙니다. 나입니다. 이게 밥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숨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252-308)
4. 하나님도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
그러면 여러분의 양심과 몸뚱이를 놓고 보자구요. 여러분에게는 양심이 있습니다. 좋은 곳을 향해서 가려고 하는 마음의 작용이 있습니다. 나쁜 곳을 가려는 것이 아니라구요. 그러니까 이것은 선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몸뚱이는 양심이 바라는 대로 절대 안 가려고 그럽니다. 반대입니다. 그래서 싸우는 거예요. 두 놈이 싸운다구요.
그런데 지금까지 역사를 통해서 이 둘이 싸우는 전쟁은 끝나 본 적이 없다구요. 휴전이란 걸 한 번이라도 해봤어요? 그 반대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휴전도 못 해 보고 있습니다. 이걸 누가 끝내느냐 이거예요. 이것을 끝내지 않고는 지상천국이 안 옵니다. 심각하다구요. 이거 하나만 잘되면 끝납니다. 그 심각한 자극이 이 모든 것을 누르고 차 버릴 수 있는 계속적인 자각성을 갖지 않고는 영원히 내 평화의 세계는 오지 않습니다.
그래, 양심을 보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했지만 사랑은 어때요? 여러분한테 사랑이 필요해요? 사랑을 만질 수 있어요? 못 만집니다. 그러니까 느껴야 됩니다. 그런데 혼자서는 모릅니다. 사랑은 내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기 혼자 있을 때는 모릅니다. 그래서 남자에게는 대상인 여자가 나타나야 “우우웅…” 하고 운동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자신에게도 사랑이 있는데 그 사랑을 느끼시지 못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사랑의 대상이 필요했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남자예요, 여자예요? 양쪽 다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예요.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양쪽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는 마이너스보다 플러스의 기질이 많습니다. 여자는 남자보다는 마이너스의 기질이 많아요. 그래서 하나님도 여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도 여자가 필요해요? 여러분도 여자가 필요하지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여자가 누구예요? 하나님이 여자가 필요하다면 사랑을 어떻게 하시겠어요? 키스를 하시겠어요, 만지기만 하시겠어요, 좋아만 하시겠어요? 이게 문제라구요. 이런 걸 다 질문하는 거예요. 마음도 못 보고 만져 보지 못하고, 사랑도 못 보고 만져 보지 못하지만 느낌으로 압니다. 하나님을 봤어요? 보지도 못하고, 이쪽에서 터치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느낌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몰라요? 양심이 있는 것을 왜 느낌으로만 알고 볼 수는 없고 만질 수도 없게 되어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상대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명도 못 보잖아요? 힘이란 것도 볼 수 없지요? 힘도 볼 수 없습니다. 왜 모르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점점 가까워지면 더 잘 보여요, 더 안 보여요? 더 안 보입니다. 그런 거라구요. 왜 그래요?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된 것은 자기 자체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보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의 눈은 눈을 보기 위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눈이 눈 자체를 못 봅니다. 코가 코를 위해서 있는 거예요? 상대를 위해서 있습니다. 말도 자기를 위해서는 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듣는 것도 그래요. 듣는 것도 상대적입니다. 내게는 필요 없어요. 손도 그렇습니다. 나 자신을 들기 위해서 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구요. 필요 없다구요. 왜? 하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되면 모르는 것입니다.
눈이 볼 때 “아이구, 코와 입이 나를 따라다닌다”고 생각해요? 각각 따라다니는데도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것입니다. 코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부 따라다닌다구요. 몸뚱이도 따라다니고 말이에요. 그렇지만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고 다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 심장에 귀를 대 보라구요. 청진기로 들어보면 쾅쾅쾅 폭탄이 터지는 소리 같다구요. 그런 거 알아요? 하루에 몇 번이나 그걸 생각하고 살아요? 한참 바쁠 때는 일년 동안에도 생각지 못하고 돌아다닙니다. 그걸 생각해 보라구요. 그렇게 “쾅쾅쾅…” 소리가 나는데도 우리는 모르고 있습니다.
또, 눈이 깜박거리는데 하루에 몇 천번 깜박거린다는 것을 생각해요?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릅니다. 여러분이 아이 때는 코딱지를 파서 이렇게 먹어 봤지요? 그 맛이 무슨 맛이었어요? 달았어요, 짰어요? 짰습니다. 그런데 왜 더럽지 않았어요? 지금도 이거 했다가 다른 사람에게 먹이려고 하면, “이놈의 자식…” 할거라구요. 큰일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는 왜 더럽지 않아요?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더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도 왜 모르느냐 하면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랑도 왜 모르느냐 하면 하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도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르고, 힘도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르고, 하나님도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르는 것입니다. (252-312)
5. 하나님은 종적인 참부모
하나님이 어디에 있어요? 내 속 깊은 곳에 있습니다. 생명의 뿌리, 양심의 뿌리, 선의 뿌리, 사랑의 뿌리입니다. 맨 밑창입니다. 제일 깊은 데에서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모릅니다. 이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은 천상에 계신다”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우리의 뿌리입니다. 뿌리 중에도 생명의 뿌리, 사랑의 뿌리, 양심의 뿌리로 되어 있습니다. 이걸 헤쳐야 됩니다. 헤치면, 하나님이 나온다구요. 사랑의 소리를 듣고, 양심의 소리를 듣고, 생명의 소리를 듣고 그래야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양심은 “야, 이놈아! 나쁜 데 가지 말아라” 해서 싸웁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사랑도 “본처하고 사랑해야지 정부하고 하지 말아라, 이놈아” 하는 거예요. 그 소리를 들어야 됩니다. 양심의 소리를 듣고, 생명의 소리를 듣고, 사랑의 소리를 들어야 돼요. 그걸 다 들어 가지고 양심이 하자는 대로 하고, 사랑이 하자는 대로 하고, 생명이 하자는 대로 해 나가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선생님이 기가 막힌 것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영계가 어떻고 사랑의 근본문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다 보여 주더라는 것입니다. 찾고 보니까, 알고 보니까 전부 다 하나님이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 때문에 전부 다 알거지가 된 거라구요.
여러분도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되면 속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님, 어디 있소” 하면, 자기 속에서 “여기 있다” 하신다구요. 마음하고 말하면 다 아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도 “천상천하유아독존”이란 말을 했습니다. 공명된 것입니다. 이 공명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면 다 통합니다. 마음과 몸이 하나되는 자리에 들어가서 사랑과 완전히 하나되면 전부가 통하게 됩니다.
본래는 몸과 마음이 음차(音叉)처럼 공명합니다. 이쪽에서 “땡땡땡…” 치면, 저쪽에서도 “땡땡땡…” 합니다. 몸과 마음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마음과 몸이 “비잉” 하면 영계하고도 “비잉” 하고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공명된 몸 마음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러면 공명하는 놀음을 무엇이 하게 만드느냐? 이것을 파괴시킨 것은 악마의 거짓된 사랑이었습니다. 본래 인간은 참사랑 때문에 생겨났으니까 참사랑만이 몸 마음을 하나로 만듭니다. 그래서 참사랑이 필요합니다.
거짓사랑의 거짓부모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전인류는 거짓사랑, 거짓생명, 거짓혈통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참사랑을 중심삼은 참부모, 참생명, 참혈통을 이어주기 위한 놀음을 하십니다. 여러분 자체에서 몸 마음이 갈라지는 것은 거짓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참사랑을 어떻게 접촉시키느냐는 것입니다. 몸뚱이를 통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그러니까 마음을 통해서 접촉시킬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252-315)
타락이 뭐냐? 몸과 마음이 소생, 장성, 완성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었는데 장성기의 완성급에서 타락했다 이거예요. 여기서 타락해서 거짓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러니까 이것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사탄의 사랑을 중심삼아 가지고 몸뚱이에 사탄의 뿌리가 박혀 있습니다. 창조원칙에 있어서 사랑관계를 맺으면 소유물이 결정됩니다. 그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지요? 사랑관계를 맺으면 소유권이 결정됩니다. 아무리 미인이라도 나쁜 놈하고 사랑관계를 맺으면 그 사람의 것이 됩니다. 그런 원칙이 있는데, 사랑관계를 사탄하고 맺었습니다. 왕녀가 종새끼하고 붙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아무리 왕녀라도 하인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딱, 그렇게 되었습니다. 타락이 그렇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보라구요! 해와가 누구였어요? 하나님의 부인이기 전에 아담의 부인이었습니다. 아담의 마음과 해와의 마음 밑창에 하나님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아담의 마음과 해와의 마음 밑창에 성상과 형상으로 하나님이 들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한 그 날에, 결혼한 자리에 하나님이 마음 밑에 들어가 가지고 사랑의 관계를 맺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결혼식이 될 것이었습니다. 아담 해와의 결혼식은 하나님의 결혼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의 주인은 누구였겠느냐? 아담이었어요, 해와였어요? 사랑의 주인은 누구였어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맨 처음의 사랑은 뿌리고, 다음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몸뚱이가 아닙니다. 그래서 맨 처음의 사랑은 뿌리기 때문에 수직입니다. 하늘땅을 종적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적인 참부모라는 것입니다. (252-317)
6. 모든 행복의 뿌리
남자와 여자가 통일되는데, 무엇이 먼저 통일되는 거예요? 생식기가 하나됩니다. 생식기는 하나는 볼록이고, 하나는 오목이 되어야 합니다. 이게 딱 수평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자도 좋아하고, 여자도 좋아하는 거라구요. 거기에서 사랑과 생명과 혈통의 통일이 벌어집니다. 통일은 거기서부터입니다. 타락이 뭐냐?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거짓된 부모의 사랑, 거짓생명, 거짓혈통이 출발되었으니 참부모의 사랑, 참부모의 생명, 참부모의 혈통도 거기서부터 전환되어야 합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생식기가 가장 나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장 나쁜 사랑과 생명과 혈통의 궁이 된 거라구요. 본래 타락하지 않았으면 참사랑의 궁, 참생명의 궁, 참혈통의 궁이 되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위가 그곳입니다. 거기서부터 사랑이 시작되고, 생명이 시작되고, 핏줄이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를 하나님이 제일 정성들여서 만드셨습니다. 지금까지 그것이 제일 나쁜 부위라고 생각했지만, 아닙니다. 타락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구요. 그것 때문에 세상을 다 망쳤습니다. 그래서 가장 나쁜 것이 되었습니다. 타락 때문에 나쁜 것이 되어 버렸지 본래는 신성한 것이었다구요.
그래, 여자들은 하루에도 얼굴을 열 번 이상 거울에 비추어 보는데 자기의 얼굴을 그리라면 그릴 수 있어요? 자기의 얼굴은 모르는 것입니다. 왜 그러하냐? 하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얼굴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여편네의 얼굴도 그래야 됩니다. 그 얼굴은 사랑할 때 제일 아름답게 보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미운 곳이 없습니다. 그래야 된다구요.
그렇게 될 것인데, 타락했기 때문에 지금 전부 다 “에이, 더러운 것” 이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부부끼리 한 몸이 되어 있으면 더러워요, 더럽지 않아요? 더럽지 않습니다. 왜 더럽지 않느냐? 하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때요? 자기 아내가 코딱지를 갖다 먹이면 맛볼 수 있어요? 사랑하게 되면 무엇이든지 다 합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도 하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 이거예요. 더러운 게 없습니다. 그러니까 참사랑의 힘은 이상한 것입니다.
여자나 남자가 일생 동안 무엇을 붙들고 사는 거예요? 할머니 할아버지도 거기에 목을 매고 살고, 어머니 아버지도 거기에 목을 매고 살고, 자기 부부도 거기에 목을 매고 삽니다. 영원히 거기에 목을 매고 사는 거라구요. 그게 잘못되면 집안이 왱가당댕가당합니다. 거기에 목을 매고 사는 게 행복입니다. 그게 없으면 불쌍합니다. 결국은 그것이 제일 보물단지입니다. 거기에 사랑박사가 있고, 생명박사가 있고, 역사박사가 있고, 세계박사까지 다 있습니다. 지상천국이 거기서부터 나오고, 천상천국도 거기서부터 나오는 거라구요.
그곳이 모든 행복의 뿌리입니다. 가장 귀중한 곳입니다. 여러분 모두 소중한 그것을 다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됩니다. 천국의 출발, 천국의 완성이 거기에 다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252-324)
그렇기 때문에 남자 여자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남자도 절반이고 여자도 절반인데, 남자를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려면 여자가 가서 하나되어 줘야 됩니다. 또 여자가 완전해지려면 남자가 가서 만들어 줘야 됩니다. 무엇을 갖고 만들어 주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만들어 줘야 됩니다. 그럼으로써 반쪽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인이 누구였어요? 하나님은 종적인 조상이고 아담 해와는 횡적인 조상이었습니다. 사랑을 중심삼고 그 둘이 하나될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딸이 그렇게 깊은 관계라는 것입니다. 참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합니다. 종적으로 내려오는 제일의 직단거리와 횡적으로 가는 제일의 직단거리는 90도입니다. 요걸 중심삼고 요렇게 되면 이것이 원형이 되는 거예요. 이것이 상하·좌우·전후입니다. 이것은 부자지관계, 이건 부부관계, 이건 형제지관계입니다. 이것이 한 가정입니다. (252-326)
7. 참부모의 개념
‘참된 나를 찾자’인데, 내가 거짓된 나인 것을 확실히 알았다구요. 나는 악마의 눈, 악마의 씨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되지 못한 나를 알았습니다. 거짓된 나를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참된 나를 찾아야 됩니다. 참된 나를 찾아야 되는데, 그것은 혼자서는 못 찾아요. 거짓된 사랑, 거짓된 생명, 거짓된 혈통 가운데서 어떻게 참된 사랑, 참된 생명, 참된 혈통을 찾느냐? 어디에서 그것을 찾을 수 있느냐? 하나님이 이것을 알기 때문에 종교를 통해서 재림사상을 세워 나오셨습니다. 이게 메시아 사상이 되어 있고, 불신자들에게는 구세주 사상이 되어 있습니다.
메시아를 통해서 참사랑, 참생명, 참혈통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참사랑과 접촉할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참부모가 필요합니다. 그래, 얼마만큼 참부모가 필요하냐? 자기 생명보다 더 귀중하게 여겨야 됩니다. 참부모의 개념은 하나님이 피조세계를 창조하시기 이전부터 세워진 것입니다. 창조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된 거라구요. 거기가 출발점이었습니다. 왜 그러하냐? 하나님은 사랑의 대상권을 위해서 피조세계를 준비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느냐?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참부모의 개념을 중심삼고 창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우주도 창조하실 수 없었고 인간과 만물도 창조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참부모가 얼마만큼 필요하다구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그러면 참부모가 와서 뭘 하느냐? 여러분의 양심이 장성기 완성급까지 가서 사랑의 힘을 못 받은 것을 완성기 완성급까지 끌어올려 주자 이거예요. 거기에 사랑을 연결시켜 주자는 것입니다.
타락할 때 양심의 기준은 타락한 사랑의 기준보다 약했습니다. 그러니까 양심의 기준을 강화시키는 것입니다. 양심이 무엇이고 몸뚱이가 무엇이고, 악한 사랑이 무엇이고 선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 아니까 몸뚱이를 누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이 올라갑니다. 그렇게 양심을 정점에 끌어올려 가지고 사랑을 주입해 주면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스위치만 누르면 불이 켜지는 것처럼 됩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말씀을 들어야 됩니다. 말씀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양심이 그런 작용을 할 수 있게끔 몸뚱이를 눌러 버려야 된다구요. 양심이 그런 작용을 할 수 있게끔, 양심이 올라갈 수 있게끔 몸뚱이를 눌러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몸뚱이가 양심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양심이 몸뚱이를 누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짓부모로 말미암아 몸뚱이가 강해졌던 것을 참부모가 와서 눌러 버리고 양심을 높여서 하늘에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제는 양심이 무엇인지 알았으니까, 몸뚱이를 어떻게든지 행동 못 하게 누를 자신이 있어요? 양심은 제2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자각하라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보게 되면, 아담 해와를 중심삼고 보게 된다면 해와는 아담하고 하나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이건 플러스인데, 하나님하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아담만 하나님하고 의논하고 해와는 아담하고 의논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아들이 있으면, 이 아들은 어머니하고 하나됩니다. 아버지한테 물어 보지 않아도 된다구요. 여기서 하나되면 다 됩니다.
미국에는 중앙 행정부가 있고 주(州) 정부가 있는데, 주에는 주법이 있어서 주 사람들은 주법하고 하나되고 군 사람들은 군하고 하나되면 됩니다. 중앙정부가 아니라도 거기서 하나되면 다른 국민들과 대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심이 제2의 하나님이지만, 주체와 대상의 관계로 볼 때는 양심이 제1의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몸 마음에 있어서 양심은 제1의 하나님이다 이거예요. 양심은 하나님의 대신입니다. 인간에 있어서 절대적인 하나님입니다.
발전소의 전기가 큰 공장을 돌리면 조그만 전등도 불이 켜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찬가지의 작용입니다. 같은 힘이 통하는 것입니다. 줄만 굵게 해놓으면 송전소가 터져 나갑니다. 다 끌어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송전소의 줄이 굵으면 발전소의 힘이 직통합니다. 굵은 줄을 쓰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양심이 뭐라구요? 하나님을 대신한 제2의 하나님적인 존재요, 대상적인 존재요, 내 몸 마음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뭐냐? 양심은 육신이 하는 모든 것 가운데 모르는 것이 있어요, 없어요? 없습니다. 하나님처럼 모든 것을 압니다. 양심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지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을 비디오카메라처럼 찍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252-329)
8. 우리의 입장
그러면 양심하고 하나님을 비교할 때 내 양심이 내 몸뚱이를 먼저 알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내 양심보다 먼저 내 몸이 하는 것을 아시게 되어 있어요? 양심이 먼저 압니다. 어째서 그래요? 하나님이 먼저 아시는 자리에 서게 되면 하나님의 부속품이 됩니다. 하나님의 손발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별개의 개성진리체로서 하나님의 대상입니다. 그러니까 대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입니다.
우리는 5퍼센트 창조의 가치를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원리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코 크리에이터(co-creator;공동의 창조주)가 되게 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절대적인 5퍼센트의 책임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양심보다 먼저 아신다면 인간은 그 대상자의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 해와가 타락해 가지고 무화과나무 아래 엎드려 있을 때 하나님이 와서는 “야, 이놈의 자식들아! 너희가 타락해서 죄를 지어 가지고 이러지, 이놈의 자식들” 그러시지 않았습니다. “아담아, 어디 있느냐” 하고 물어 보셨습니다. “너 죄 짓고 그러는구나” 하지 않으셨다구요. 왜 그렇게 물으셨느냐? 양심이 먼저 알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하나님보다 앞서서 내 자신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이걸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양심은 부모가 필요 없습니다. 부모가 양심을 빌려 줘요? 배우지 않고도 다 압니다. 선생이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양심에 대해서 교육하는 것을 들어 봤어요? 양심을 교육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양심은 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한테 물어 볼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먼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이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이냐? 양심은 부모에 앞서 있다, 양심은 선생보다 앞서 있다, 양심은 하나님보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필요 없고, 선생이 필요 없고,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이 위대합니다. 그런 위대하고 절대적인 주인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됩니다. 자기가 그 자리를 찾으면 참부모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몸 마음도 그와 같은 입장에서 딱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심이 발라야 됩니다. 그것이 바르게 되면 기도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양심에 따라서 행동하게 됩니다. 양심하고 의논하고, 양심한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놈의 몸뚱이야, 양심이 하라는 대로 안 하는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몸뚱이를 때려잡는 것입니다.
잠 못 자는 것을 제일 싫어하는 것이 몸뚱이입니다. 잠을 못 자면 큰일나요. 그렇지만 “잠 안 자고 살아 봐라, 이놈의 자식”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먹는 것입니다. “죄 졌지, 이놈의 자식? 금식해라, 이놈의 자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뭐예요? 거짓된 사랑입니다. “미인이 있으면 전부 다 도적질해 먹으려고 하는 이놈아…” 하면서 때려잡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전부 다 청산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간지러움도 극복해야 됩니다. 눈을 깜박깜박 안 하고 몇 분까지 가는가 하는 훈련도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이놈의 성기가 문제입니다. “이놈의 자식아, 왜 이렇게 일어서? 죽어” 그러면 죽어야 된다구요. 미인들을 보면서 그저 갖다 대더라도 그게 죽어야 된다구요. 그러지 않고는 이걸 이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배후를 잘 알 거라구요. 잘못된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알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완전히 망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나 양심은 그걸 원하지 않습니다. 양심은 그러한 자리에서 도약을 해서 본연의 자리에 오르기를 바랍니다. 그러니까 양심을 따라가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어떤 문제라도 다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그런 자리에 가는 데 문제가 있어요, 없어요? 자기의 몸뚱이를 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제발 나를 치십시오”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그걸 자신이 원해야 돼요. 그렇지 않고는 저 높은 자리에 오르지 못합니다. “지옥의 밑창에 가더라도 희생하고 봉사하겠습니다” 해야 된다구요. 그러면 그곳에서 여러분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래 가지고 여러분을 저 높은 자리에 올려 주는 것입니다.
그래, 이제는 어느 것이 사탄 편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거예요. 진리를 알면, 어느 것이 악하고 선한가를 자동적으로 다 알게 됩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수천만 년 동안 구원역사를 통해서 핍박받는 자리에 서 계셨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고통을 당해 나오셨겠는가를 생각해 보라구요.
하나님이 그런 고통스러움을 다 감내하면서 지금까지 바라셨던 것은 무엇이었느냐? 하나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고대해 나오셨습니다. 역사를 통하여 핍박을 받아 왔던 나의 참부모, 참아버지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한 자녀를 바라 나오셨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 앞에 또다시 지난날과 같은 고통을 안겨 드릴 수 없는 것이 자녀 된 우리의 입장입니다. (252-331)
9. 몸뚱이를 점령하고 양심을 개발하는 것이 참된 나를 찾는 것
양심은 뭐라구요? 양심은 부모보다 앞서 있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스승보다 앞서 있고, 하나님보다 앞서 있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몸뚱이가 지금까지 요사를 피워서 나를 데리고 부려먹은 것을 알았다 이거예요. 끽, 까 버리는 것입니다. 아침에 볼 적마다 “이놈의 몸뚱이…” 하고 눌러 버리는 거예요. 몸뚱이를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몸뚱이에 눈이 있으면 마음에도 눈이 있고, 몸뚱이에 코가 있으면 마음에도 코가 있고, 몸뚱이에 입이 있으면 마음에도 입이 있는 거라구요. 오관이 다 그렇습니다.
그런 훈련을 하게 되면 어디에 가다가 척 보게 될 때 무엇을 잘못 보면 “아이구…” 하면서 그 자리에서 재까닥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 되겠습니다” 하는 그게 기도입니다. 따로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냄새도 “흐흠” 하고 맡아보면 악마의 냄새인지, 하나님의 냄새인지 다 안다 이거예요. 말도 두 가지로 하잖아요? 악마의 말인지, 하나님의 말인지 안다는 것입니다. 만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가지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한 방향이 아니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면서 지그재그로 움직입니다. 그것을 바로잡겠다고 결심해야 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양심을 자꾸 개발하는 것입니다. 양심을 잘 개발해 가지고 뭘 하느냐? 잃어버린 참사랑을 찾고 참생명의 씨를 전수받는 것입니다. 이게 슬쩍슬쩍 안 통한다 이거예요. 자기가 천국 갈지, 지옥 갈지 다 압니다. 다른 사람한테 물어 볼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 갈 패인지, 지옥 갈 패인지 다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양심을 개발해야 됩니다. 부모에 앞서고, 스승에 앞서고, 하나님에 앞서는 귀한 양심을 내가 발견했다는 사실에 환희의 만세를 불러야 됩니다.
그래서 타락했다는 자각을 심각히 느껴야 됩니다. 타락했다는 것, 이걸 느끼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 걸 여러분은 다 느끼기 싫지요? 서구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살았으니까 “나는 그런 게 필요 없습니다” 하면서 상관하지 않겠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식입니다. 예외가 없어요. 그래, 몸뚱이를 점령하고 양심을 하나님처럼 모시고 참부모의 사랑과 생명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참부모의 생명에 연결되어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안됩니다. 중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참된 나를 찾을 자신이 있지요?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알기는 다 알 거라구요. 이제 안다면 행동해야 됩니다. 그렇게 행동하겠다는 사람들은 손 들어 보라구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25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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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
하늘부모님 천지인 참부모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