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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는 이 지구에 사는 거의 모든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크든 작든 사람들은 금융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럴듯한 금융회사에 다니며 남부럽지 않게 살던 이뿐이 아니다. 유럽의 이름 모를 소도시에 사는 평범한 시민들, 파리 외곽의 자동차공장 노동자들, 런던 교외의 노점상, 도쿄 시내 조그만 호텔에서 일하던 직원들, 일자리를 찾은 베이징의 젊은이도 사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그들은 왜 그런지 알지 못한다. 뉴스에 등장하는 낯선 숫자들이 어떻게 자기 인생을 힘들게 할 수 있는 건지, 그 숫자가 왜 자기와 상관이 있다는 건지.
◇ 파리에서 - 연금생활자 “무보수 봉사 않고 개인 교습”
르노 공장 앞에서 시위 중인 파브리스 르베르(왼쪽에서 두번째).
지난달 7일 오전 파리에서 기차로 2시간 거리인 르아브르 시내 한 카페에서 근심이 가득한 얼굴의 파브리스 르베르(37)를 만났다. 평소라면 그는 공장에 있을 시간이었다. 인근 상두빌의 르노자동차 공장에서 8년째 일해온 르베르는 지난 9월 일찌감치 위기를 실감했다. 일하는 날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주 근무하면, 다음주는 쉰다. 순환휴직제가 도입된 것이다. “입사 초 임금이 월 평균 1500유로(약 278만원)였는데 지금은 하루 35유로 정도 삭감됐습니다. 그런데 물가는 오르더군요.”
매달 200유로의 할부금도 부담스러워져 최근 새 차를 팔고 중고차로 바꿨다. “2년 전부터 회사 상황이 나빠지더니 올 초부터 토요일 오전에 무임금 노동을 몇 번 했죠.” BMW의 프랑스 내 판매율이 지난해 10월 대비 16.6% 하락하고, 르노뿐 아니라 푸조자동차도 순환휴직제를 시행하는 등 자동차 업계 전반이 흉흉하다.
비좁은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는 아메드 에짐(왼쪽)과 스테판 카이에(오른쪽). 등 뒤로 다트 게임용으로 붙여 놓은 사르코지 대통령 사진이 보인다.
호세 리베로(48)는 파리 근교에서 부인 및 세 자녀와 함께 사는 평범한 건설 노동자이다. 27년 동안 이 일자리를 지켜왔던 그도 한달 전 갑작스러운 변화에 직면했다. 건설 공사 건수가 급감한 것이다. “건설사들은 아파트 분양 후 공사에 들어가는데, 아파트가 안팔려요. 공사가 중단될 수밖에 없죠. 이쪽 일 시작한 이래 이런 경우는 처음입니다. 공사 건수가 줄면 저희 같은 시급 노동자 수입은 덩달아 줄어요. 이달 보너스는 딱 절반만 나왔는데, 다음달은 아예 없을 겁니다.” 리베로는 “업계 대부분이 순환휴직 상태인데 법적으로 1년에 150시간 이상 못 쉬게 돼 있으니, 건설사들이 곧 해고 절차에 들어갈 것”이라고 비관했다.
40세까지 건설 노동자로 일하다 프랑스의 최대 노동단체인 노동조합총연맹(CGT)의 상근자로 있는 벨라야 벤야이아(60)는 비정규직의 피해를 걱정했다. “5년 전만 해도 건설 분야는 최대 호황이었기 때문에 요즘 같은 날은 상상도 못했어요. 지금 공공 부문 건설이 30% 미만이고, 개인 소유 건축은 28%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개보수 수준입니다. 이런 불황에 처한 건설업계의 첫 희생양은 비정규직이 될 겁니다. 어떤 건설사는 1100명의 비정규직을 배제한 채 정규직 450명만으로 공사를 느릿느릿 진행하고 있어요”.
벤야이아는 지난 10월 사르코지 정부의 3600억유로 규모 구제금융을 비판했다. “국고가 비었다더니 도대체 3600억유로가 어디서 나온단 말입니까. 사회보장제도와 고용안정 등 사회적 비용 지출에는 ‘돈 없다’고 내치던 사르코지가 금융가 친구들을 위해서는 큰돈을 빨리도 마련했네요”.
파리 시내의 조그만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는 프랑스와 라몽드(72)는 은퇴자이다. 라몽드는 프랑스어 교사로 재직하면서 터키·멕시코·스페인 등지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고 당시의 법대로 55세에 일찍 퇴직하고 연금을 받으면서 나름 여유 있는 퇴직생활을 즐겼다. 비교적 이른 퇴직이라 전공을 살려서 여러 단체에서 외국인을 위한 불어 교사로서 무보수 봉사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점점 상황이 안 좋아졌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을 보러 가는데, 특히 지난 2년부터는 물가 상승을 피부로 직접 느껴요. 매달 받는 연금은 똑같은데 물가는 같지 않아요. 그래서 무보수 봉사활동은 잠시 접고, 봉사활동 때 알게 된 외국인들에게 불어 개인교습을 해주고 있어요.” 그는 지금 개인연금 중 50%를 집세로 내고 있다.
파리의 젊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바스티유동네에 직장을 찾고 있는 세 젊은이가 월세 680유로의 28㎡짜리 좁은 아파트에 모여 살게 된 이유를 들려주었다. 혼자 살기에 적당한 이 아파트는 원래 아메드 에짐(30)이 2년 전 파리에 일자리를 구하러 오면서 임대한 것이다. 미술학교에서 그래픽을 전공한 에짐은 어렵게 디자인회사에 자리를 구했으나 최근 해고된 상태다.
고향 친구인 스테판 카이에(30)도 올해 초 파리로 직장을 구하러 오면서 비싼 임대료를 절약하고자 둘이 함께 지내게 되었다. 카이에는 법학과 박사준비과정을 수료하고 다시 영화과 석사과정을 마쳤다.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열정만으로 법학을 포기하고 영화를 공부했어요. 내 학위로 충분히 파리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불어 닥친 경기침체로 모든 게 불안해졌어요. 이력서를 200군데에 보냈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얻은 곳이 없습니다.”
에짐은 “처음 1년간은 한 번도 채용된 적 없는 이들을 위한 무직수당인 RMI 400유로, 주택보조금 200유로로 생활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6개월간 회사생활 경력으로 RMI보다 더 받을 수 있는 실업수당을 신청해 놓은 상태죠.”
반면 카이에는 저녁마다 4시간씩 설문조사 회사인 TNS 소레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ANPE에는 등록하지 않았다. “언론은 실업자가 200만명이라고 하지만 실제 더 많아요.” 이런 상황에 한 달 전부터 고향 친구인 샤샤(31)가 또 직장을 구하러 파리로 올라오면서 이 아파트의 식구가 셋으로 불어났다.
이 세 젊은이는 자동차회사 푸조의 최대 생산라인이 있는 스위스 국경지역 소쇼, 물루즈 지역이 고향이다. “저희 세 사람의 부모님과 카이에 형제 4명 전부 푸조공장에서 일해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 잠정 실업상태에 있어요.” 샤샤의 말이다. 샤샤의 고향과 같은 사례는 많다. 지난달 6일 미국자본의 몰렉스 공장이 철수키로 한 피레네산맥 근처의 소도시 빌뮈르의 경우도 그렇다. 이곳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이 이 공장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공장철수는 이 도시 전체의 재앙이나 다름없다. 전 주민 6000명 중 3000명이 폐업반대 시위에 참가한 것이 이상하지 않다. 이날을 ‘죽은 도시의 날’로 선포하고 시위를 주도한 이는 다름 아닌 빌뮈르 시장이었다.
샤샤는 계속 말했다. “저요? 글쎄요, 파리에는 일자리가 있을 것 같아 올라오긴 했지만….” 카이에가 끼어들었다. “지금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해요. 박물관과 미술관도 매월 무료 개방되는 첫 일요일에 몰아서 방문하고 있어요.”
<파리 | 박지연 통신원>
◇ 독일에서 - 벤츠 판매직원 “주문 50% 급감”
베를린 시내의 약국을 운영하는 안네 헤롤트(63·여)는 경기침체는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시내는 여전히 붐비고 사람들 쇼핑백도 빵빵해요.” 도선사(導船士)인 토비아스 디어베르크(39)도 “수송 물량이 줄어 독일-스칸디나비아 왕복 선박을 30~40%로 인하된 가격에 빌려주기도 했다”면서 “그러나 해운업 자체가 침체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동차업체나 금융권은 다르다. 수출에 의존하거나 세계시장과 맞물리려 독일에서 세계 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그리고 민감하게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니더작센 주의 소도시에서 벤츠자동차 판매업체 판매원으로 18년간 일해왔던 베안드 나돌니(42)의 말을 들어보자. “신차 판매량은 작년과 같지만, 중고차 구매가 줄어 수지가 나빠졌습니다. 방문 고객이나 전화 문의 고객 모두 50% 선으로 줄어들었어요. 매장을 찾아오는 고객도 25%만이 차를 구입할 뿐이지요”.
자동차 부품 납품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교포 2세 윤성현씨(31)는 “쾰른의 포드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은 벌써 해고될까 걱정하고 있다”며 “우리처럼 공구를 공급하는 업체의 노동자 대부분이 이미 기간제 노동자로 전환되거나 해고한 상태”라고 전했다. 자동차업체가 처한 상황을 묻자 그는 말을 쏟아냈다. “요즘 들어 주문이 30~40%로 줄었어요. 최근 심지어 고객 중에는 창고비용을 아끼려고 이미 받은 제품을 반송한 경우도 있어요. ‘내년에 다시 보내달라’는 뜻이죠”.
경기침체에 따른 판매량 감소 탓에 BMW사는 올해 무려 5500명의 기간제 노동자와 정규직 직원 3600명을 해고했다. 폭스바겐사와 다임러는 성탄절 휴가를 5주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만 앞으로 5만~10만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독일 노동부는 2009년 전체 실업자가 13만명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OECD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까지 독일 실업자 수는 70만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독일 주식지수 DAX는 지난 12개월간 거의 반토막이 났다. 독일 주립은행 4개는 파산위기를 면하기 위해 정부에 구제 금융을 요청한 상태다. 최근 바이에른 주립은행은 주정부로부터 10억유로의 구제금을 받고, 전체 직원 4분의 1인 5600명을 해고해 투자은행 업무를 완전히 포기했다. 금융위기의 공포는 서서히 독일을 휩싸고 있다.
독일 서비스공공노조(Verdi) 바이에른주 위원장 요세프 팔비조너는 구제금융 조치 및 5600명 해고 대책을 내놓은 주정부를 비난했다. “우리가 가장 우려했던 게 현실이 됐다. 전례 없는 혼란을 일으킨 정치가와 은행 경영진 등 책임자들이 회의실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있을 때, 직원들은 이번 문제의 책임을 떠안도록 강요당한 채 존재 위협을 받고 있다. 구제대책은 모든 직원들에게까지 확대돼야 한다.”
<하네스 모슬러 통신원>
◇ 중남미에서 - 멕시코 제1철강사, 1만여명 실직
지난 10월 말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북쪽 과나화토에서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비공식 모임이 열렸다. 미국발 경제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늘 팽팽한 설전을 벌이던 참석자들이 이날은 보기 드물게 만장일치의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모두 경제학 교과서의 상투적인 주장과 달리 국제적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미국으로 오히려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달러가 받아야 할 벌을 자국 통화가 받고 있는 현실에 분개했다.
현지 언론에 실린 이 일화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멕시코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알려준다. 멕시코 페소화 가치는 지난 8월4일부터 10월23일까지 38.74%나 하락했다. 멕시코 금융시장의 80%를 지배하고 있는 씨티그룹·HSBC 등의 외국계 금융자본은 자산을 매각해 달러를 본국으로 보내느라 환율폭등을 더욱 부채질했다. 결국 멕시코는 미국과 통화스와프(맞교환) 협정을 맺고 나서야 환율시장 동요를 잠시나마 진정시켰다.
그러나 미국발 위기의 여파는 확산되고 있다. 국제파생상품시장에 뛰어들었다 큰 손실을 입은 대표적인 토종 유통업체 ‘코메르시알 메히카나’가 10월 말 채무지불중단을 선언했다. 이달 초 멕시코 제1의 철강회사 ‘알토스 오르노스’는 국제 철강 수요 하락과 신용 경색으로 각종 사업을 줄줄이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해 1만2000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
저명한 민간연구기관인 멕시코금융경영연구소(IMEF)는 최근 멕시코에서 이미 경기침체가 시작되었다고 진단했다. 11월 멕시코 제조업·비제조업 지수들이 모두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현저히 하락한 것이다. 페데리코 우르키사 연구소장의 발언은 더욱 비관적이다. “문제는 이 침체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지, 침체의 늪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경기 침체에 대한 공포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불과 몇달 전만해도 중남미 대륙은 낙관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2003년부터 올해까지 평균 5%를 넘는 경제성장이 지속됐다. 40년 만에 찾아온 호황이었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우호적인 조건들은 동시에 찾아왔다가 한꺼번에 사라지고 말았다. 자원 부국 중남미 국가들에 넉넉한 외화 수입을 안겨주었던 국제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은 끝났고, 낮은 이자율과 충분한 유동성으로 중남미 신흥국에 자금을 융통해주던 국제금융시장도 급속히 얼어붙었다.
미국경제의 일시적 호황으로 급증했던 중남미계 이민자들의 모국 송금액도 현저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민자의 송금액이 석유수출에 이어 외화소득의 두 번째 원천인 멕시코의 충격은 더욱 크다.
브라질의 저명 경제연구기관인 제툴리우 바르가스 재단은 2008년 3·4분기 라틴아메리카의 경제활동 상태를 보여주는 경기지수가 1997년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국제기구들도 비관적인 분석에 합세했다. 중남미 대륙이 올해는 4.5% 성장으로 선방하겠지만 내년에는 3%대 혹은 그 이하로 하락하고 특히 미국경제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멕시코는 0.4~1%에 불과할 것이란 분석이다.
경기침체는 이 대륙이 최근 수년간 축적해온 사회분야의 성과를 수포로 돌릴지 모른다. 중남미 대륙이 최근 성장기 동안 이룩한 9%(44%→35%)의 빈곤율 감소의 성과도 무의미해질 상황에 처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제 식료품 가격 인상까지 겹쳐 빈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질 것이다.
<박정훈/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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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신자유주의]런던 과일노점상 “매출 60% 줄어… 끔찍하다
◇ 런던에서 - 공공재 민영화 탓 서민들 더 압박
고급 대형할인 매장인 막스 앤 스펜서(M&S)의 식료품 매대 일부. 불황에 따라 반값 할인(1/2 price)을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달 1일 부슬비가 내린 런던 근교 도시 스테인스. 주말마다 이곳에서 과일과 잡화를 좌판에 펼친다는 한 중년 남성에게 요새 장사가 잘되는지 물었다. “끔찍하다(It’s a Shit).” 가판 뒤편에 앉아 있는 그의 부인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스테인스에서, 다른 요일에는 근방의 다른 도시에서 열리는 간이시장에서 장사를 한다는 이 부부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통에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60%가량 줄었어요. 하지만 가스·수도·전기 요금이 지난해보다 50% 인상되고 물가는 치솟았지 뭐요. 정말 쓰레기 같아요.” 그는 격앙되어 있었다.
4인가족 기준 분기당 400파운드(약 87만원) 정도인 가스·전기 요금 고지서는 요즘같은 불황에 서민가계를 크게 압박한다. 몇달마다 10~30%씩 인상해왔지만, 불황인 지금 더 오를 기세다. 상하수도와 전기, 가스 등 공공재를 민영화한 영국의 단면이다.
은퇴 후 연금과 자기 집의 방 몇 개를 임대해 얻는 수입으로 살아가는 전형적 연금 생활자인 전직 엔지니어 라이오넬(68)도 그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세든 사람들이) 다들 가난한 학생인데 방세를 올려받을 수는 없지요. 그런데 물·가스·전기요금은 미친듯이 오르고 있어요.”
그는 이런 공공재 민영화에 불황이 겹쳐 업체들간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수도 없이 걸어서는 ‘우리 회사 물값이 더 싸다’고 유인하죠. 정작 문서로 내용을 확인하자고 하면 꽁무니를 빼요. 거짓말인 거죠. 이런 홍보전은 지금같은 때 훨씬 심해요.”
불황은 중산층의 소비 패턴도 바꾼다. 영국생활 10년째인 중산층 교포 강영숙씨(40)는 그동안 써온 값비싼 유기농 식재료를 포기했다. 비유기농 제품을 주로 쓰고, 대량구입하던 화장지나 세제 등은 필요할 때 조금씩 산다.
올초 78펜스였던 유기농 양파 한 묶음 값이 1파운드20펜스로, 89펜스였던 식빵은 1파운드40펜스로 펄쩍 뛰었다. 물가 급등으로 막스 앤 스펜서(M&S), 웨이트로즈 등 고가 대형 마켓의 매출도 줄었다. 강씨는 “점심시간 뒤 테스코(중저가 대형마트)에 가보면 물건이 별로 없다”며 “M&S나 웨이트로즈 가던 사람들이 테스코에 몰린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M&S 매장에서 이전에 찾아보기 힘든 저가상품이 눈에 잘 띄는 매대를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집값도 크게 떨어졌다. 지난 10월 말 기준 영국 주택가격은 전년 대비 약 15% 하락했다. 34년 만의 최대 하락폭이다.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제때 못해 집을 압류당한 가구는 지난 2분기 1만1054가구로 지난해보다 71%나 늘었다.
런던 등 동남부 지역보다 못사는 북부 지역의 경우 불황의 그림자가 먼저 내리깔렸다. 북동부 도시 선더랜드에서는 최근 닛산자동차의 감산체제 돌입으로 노동자 800명이 해고위기에 놓였다. 이곳에서는 이미 노던락의 콜센터 직원 1300명이 실직했다.
인디펜던트는 지난달 초 대니 도링 교수의 말을 인용, “북부지역에는 주로 콜센터, 물류창고, 본부 아닌 지점 등 ‘쉽게 없앨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보도했다.
불황은 이제 영국전역에 만연하다. 혼다·포드 등 자동차 업계가 뒤따라 감산 및 해고계획을 밝혔다. 철강업체 코러스도 400명을 해고키로 했다. 최근 BBC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기업주 20%가 “65세 이상 노동자 해고시 경영 상의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을 십분 활용하겠다고 답했다. 이는 고령 노동자에 대한 ‘손쉬운’ 해고가 남발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오래 일해 연금을 보전하겠다’는 노동자들의 소망도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얘기다.
청년실업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생물학 전공자 플로렌틴(29)은 지난 8월까지 1년간 P&G의 유아용품 관련 연구원으로 일하다 실직했다. 여러 회사에 입사지원을 하고 있지만 불황은 구직자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는 “몇달 전 구인광고를 내던 회사들도 모집 계획을 취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분야는 금융권이다. 연금펀드(Pension Fund)에 근무하는 테드(32·가명)는 “시티(런던 금융가)가 긴장하고 있다”면서 금융권의 구조조정 분위기를 전했다. “로이즈TSB와 HBOS가 합병되면 많이 잘리겠죠. 이렇게 큰 합병뿐 아니라, 크고 작은 합병들이 굉장히 많이 있을 겁니다. 1991년 금융위기 때 그랬듯이 말입니다. 영국은 최근 5년, 10년간 경제성장의 많은 부분을 금융부문의 성장에 기대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금융위기에서 다른 나라보다 훨씬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그의 계획을 물었다. “잘리면 어디로 가느냐고요? 글쎄요. 아무리 아는 게 많고, 좋은 교육을 받았어도 한동안 금융가에서는 직장을 찾기 어려우니 당분간 저축한 걸로 먹고 그 이후에는 정부 보조금에 의지해야죠.”
<런던/ 김은정 통신원>
◇ 도쿄에서 - 호텔 총지배인 “저금 털어서 생계”
“설마 이런 조그만 호텔에서 일하고 있는 나를 세계 금융위기가 직격할 줄은 상상도 못했죠.”
도쿄 게이힌 호텔의 도미타 데쓰히로 전 총지배인이 지난 1일 프론트에서 직원들의 업무를 도와주고 있다. 해고된 직원들이 자주영업을 하고 있는 호텔 프론트 앞에 ‘카드 이용이 안 된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지난 1일 만난 도미타 데쓰히로(58)는 불과 한 달여 전만해도 137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쿄 시나가와의 게이힌(京品) 호텔의 총지배인이었다. 그러나 이젠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실업자 신세나 다름없다. 지난 9월 파산한 리먼 브라더스의 일본 법인 자회사에 진 빚 60여억엔을 갚기 위해 호텔 측이 토지 등을 매각하고 10월20일자로 폐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호텔의 고바야시 마코토 사장은 버블기에 사업다각화를 하면서 호텔 건물 등을 담보로 리먼 브라더스 계열 ‘논뱅크’(융자전문 금융회사)인 선라이즈 파이낸스에 거액의 빚을 냈다. 리먼이 파산하자 그 여파로 선라이즈 파이낸스는 지난 9월 도쿄지법에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채권 회수가 시작되면서 호텔로 불똥이 튀었다.
호텔에 근무하던 131명은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이제 40여명만이 남아 호텔을 지키고 있다. 회사의 해고 통보에 맞서 고용 승계 등을 요구하며 ‘자주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측은 이들을 몰아내기 위해 퇴거 요구 소송을 제기했고, 직원들은 가처분 소송을 내 맞서고 있다. 이들은 과거 호텔이 직영했던 구내 레스토랑과 이자카야 등 3개 점포를 직접 운영한다. 객실 손님도 받지만 관리 직원이 없어 20개까지만 개방하고 있다. 물론 아침식사도 제공이 안 되고, 카드도 이용할 수 없다. 연말이면 송년회 등으로 북적거리던 2층 연회장엔 냉기가 가득하다.
“솔직히 리먼 브라더스가 어떤 회사인지 잘 모르지만 원망이 많습니다.”
도미타는 고향인 가고시마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상경해 작은 직장 두 곳을 거친 뒤 1975년 게이힌 호텔에 입사했다. 주방 막일, 프론트 보조 등 밑바닥에서 출발해 96년에는 총지배인직에 올랐다. 흔히 말하는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이 유서깊은 호텔(도쿄 미나토구 지정 역사적 건조물)에 바친 33년은 도미타 인생의 전부였다. 경기가 좋을 때는 전체 객실이 꽉 들어찼다. 하루 70명 이상 묵을 때도 있었다. 시나가와역에 신칸센이 정차하면서 평소 때도 객실 가동률은 80%에 달했다.
그러나 폐업을 발표한 10월 말 이후 직원들의 형편은 180도 바뀌었다. 도미타만 해도 한 달 평균 40여만엔이던 수입이 바로 끊겼다. 지금은 자주영업을 통해 얻는 수익금을 직원끼리 나눠 ‘조합활동비’ 조로 받아간다. 손에 쥐는 금액은 10만엔 안팎.
“생활은 전혀 안 되죠. 기본적으로 내는 국민연금, 주민세, 보험료 등만 해도 10만엔 가까이 됩니다. 그걸 내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어요.”
그는 그동안 모아둔 저축에서 생활비를 충당하지만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고 말한다. 정년인 60세까지 연금을 납부하고 남은 노후를 15만엔가량 받는 연금으로 조용히 보내겠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나마 본인은 하나 있는 장성한 아들이 독립해 나갔기 때문에 부담이 덜하지만, 젊은 직원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조리방에서 일하던 27세 직원은 지난달 둘째 아이를 출산했는데 일거리를 찾겠다고 떠났어요. 참 막막하더군요. 남은 직원들도 언제 떠나갈지 몰라 안타깝습니다.” 떠나는 사람이나, 남는 직원이나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그는 요즘도 전철로 1시간30분 거리의 사이타마현 도코로자와에서 매일 출근한다. 오전 9시에 집에서 나와 오후 10시30분까지 호텔 일에 매달린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측의 불법성을 홍보하는 일, 노조활동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별히 지정된 업무는 없다. 일손이 부족한 곳이면 주방 일이든, 음식 서빙이든 해서 힘을 보태야 한다.
하루 12시간 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욱 견디기 힘들다고 한다. 폐업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었기에 아직은 버틸만하지만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하나,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불안감이 그를 떠나지 않고 있다.
“내년 6월까지는 저금한 돈으로 그럭저럭 생계가 유지될 것 같아요. 그 이후는 모르죠. 갑갑합니다.”
<도쿄 | 조홍민특파원>
◇ 베이징에서 - 구직자 “위기, 내 일이 될줄 몰랐다”
지난 2일 베이징시 차오양구 샤오윈루에 위치한 차오양구 노동·사회보장국. 한국의 지방노동청에 해당하는 이곳의 직업소개소에는 오전 11시가 되자 구직신청서를 접수하려는 행렬이 20m가량 이어졌다. 4평 남짓한 접수처에는 신청서를 작성하는 실업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구직신청자가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접수처의 남자 직원은 접수 대장을 보여주며 “벌써 150명을 넘어섰다. 이대로라면 오늘은 400명을 채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는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지난달부터 구직신청자가 조금씩 늘고 있다”면서 “실업자 증가보다 일자리가 줄고 있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차오양구의 동쪽 둥바에 사는 왕즈강(王志剛·32·가명·사진)도 아침 일찍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구직 행렬에 서지 않았다. 아니 설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미 두 달 전에 구직신청서를 접수했다. 그런데도 매일같이 이곳을 찾는 것은 혹시 새로운 구직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구직정보는 인터넷에도 많습니다. 그러나 매일 집에서 구직 사이트를 서핑하자니 뭔가 허전해요. 마음에 드는 일자리도 없고,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거의 매일 직업소개소를 찾지요.”
왕즈강이 찾는 곳은 차오양취 노동·사회보장국만이 아니다. 매주 수·금·토에는 인력시장이 열리는 산위안챠오에 들르고 간간이 베이징시 중심가 용허궁의 직업소개소를 찾기도 한다. 국제전람중심, 농업전람중심 등에서 개최되는 취업박람회도 그가 놓치지 않는 곳이다.
지금은 이렇게 직업소개소를 전전하는 신세이지만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그는 당당한 사무직 직원이었다.
2001년 후베이성 우한이공대학을 졸업한 그는 7년 동안 건설회사, 보험회사, 페인트대리점 등 여러 회사를 거쳤다. 대학에서 물류학을 공부한 터라 보험판매를 제외하고는 대개 유통업, 창고업 등 전공과 연관된 분야에서 일했다. 그러나 저임금 때문에 직장을 그만뒀다. 그의 월급은 1500위안(약 30만원) 정도.
지난 6월 그는 집에서 멀지 않은 베이징 시내의 한 호텔에 다시 취직했다. 월급이 1700위안으로 조금 나아졌고, 업무도 물품관리여서 흥미가 있었다.
그러나 네 달 만인 10월 초 회사를 떠나야 했다. 베이징올림픽 이후 손님이 급감한 데다 금융위기설까지 돌자 호텔에서 직원을 감축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얘기를 들으면서 그게 나의 일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직장을 자주 옮겨 두려움은 없지만 이제 두 달이 되어가니 걱정이 쌓이네요.”
베이징에 일자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 생산직이 대부분이다. 그는 “어쩌다 사무직 일자리가 나오긴 하지만 대졸자의 임금이 농민공의 월수입과 별 차이가 없어 지원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왕즈강은 금융위기라 단기간에 원하는 직장을 찾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물류업 관리직 분야 취업이 목표인 그가 장기적인 구직전쟁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내핍생활. 그는 식비, 교통비 등 하루 생활비로 30~40위안(6000~8000원)을 쓴다. 보통 한끼 식사값도 안 된다. 점심식사를 하는 날보다 거르는 날이 더 많다.
“그래도 나는 베이징 사람이어서 2개월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퇴직수당을 받고 있으니, 저 혼자만 감당하면 되니까요. 지방출신이 실직하면 방세 때문에도 베이징에서 한 달 버티기도 힘듭니다.”
그의 금융위기에 대한 생각은 소박하고 낙관적이었다. “엔진이 너무 빨리 돌면 과열돼 고장이 나는 것처럼 세계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문제가 생긴 것 아니겠느냐”면서 “회복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사회보장국의 앞 마당에서 한 시간가량 이야기를 한 왕즈강이 ‘직업정보센터’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직업정보센터’의 대형 전광판에는 구직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있었다. ‘청소원 모집, 18~40세, 800~1000위안/ 타자공, 18~30세, 1200~1500위안/ 택배원, 남자 18~30세, 1000~1400위안/ 화물차 기사, 1000~2000위안…’. 한참 동안 전광판을 주시하던 있던 그은 용허궁 쪽으로 가봐야겠다며 자리를 떴다.
<베이징 | 조운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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