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 유대교의 네 분파 중 쿰란공동체 꾸린 ‘엣센파’
김병국 교수(백석대·신약신학)
유대교에 네 분파가 있다는 설명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른 것입니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주후 37년에 태어나 주후 100년경에 로마에서 죽은 유대 역사가입니다.그는 자신의 시대에 유대교에 네 개의 분파가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것은 사두개파, 바리새파, 엣센파, 그리고 열혈당입니다. 그들 중 열혈당은 주후 6년에야 최초로 역사에 등장합니다.
<하시딤>
이 네 분파에 대해 설명하기 전에 먼저 하시딤이라는 사람들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레스 왕이 귀환 허락 칙령을 내린 후 이스라엘 포로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성전을 완공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는 성벽까지 완공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말라기에서 보는 것과 같이 신앙생활을 게을리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하시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하시딤이라고 해서 모두 동질적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이라는 왕이 대제사장직을 겸하게 된 이 사건은 하시딤에 속한 여러 사람들의 성향을 뚜렷이 드러나게 해 주었습니다. 우선 이 때 모습을 뚜렷이 드러낸 세 분파와 열혈당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하고, 그들의 신학에 대해서는 그 다음에 자세하게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네 분파에 대한 개략적 설명
1) 엣센파
먼저 엣센파라는 사람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47년에 사해 북서쪽의 쿰란 지역 동굴들 속에서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학자들은 대개 그 문서들을 남긴 공동체가 엣센파였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엣센파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이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이들은 왕이 대제사장직을 겸하는 것에 대해 극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얼마나 반대를 심하게 했던지 왕은 이들 중 몇 명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이대로 정통성이 없는 대제사장 밑에서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반항을 했다가는 계속 죽임을 당할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내린 선택은 따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해 호수 북서쪽에 있는 쿰란(Qumran)으로 가서 자신들끼리 공동체를 만들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결혼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장려하지도 않았습니다.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들의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양자를 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수도원 공동체와 같은 삶을 살다가 주후 68년에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백석대·신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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