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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란 사실이 물질적인 '효용'을 가질 때는 거의 없다. 그러나 가끔은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친구들의 자기소개서(자소서)를 고쳐줄 때다.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친구들에겐 '자소서'도 잘 쓸 거라는 얘기처럼 들리나 보다. 웬만하면 거절하고 싶지만, 늘 우정을 들먹거리는 까닭에 이걸 거절하는 게 쉽지가 않다. 그래서 항상 '자소서 청탁'에 치이지만, 막상 친구가 보내준 글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문장이나 글이 나빠서가 아니다. 거기엔, 내가 아는 친구의 모습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김재현·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거기엔 오직 '스펙(자격)'과 '커리어(경력)'뿐이다. 옷만 얘기하고, 그걸 걸칠 몸은 없는 것과 같다. '자기 자신을 이토록 모르는 건가'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현상을 단순히 좁은 취업문 때문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자존감'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 물질, 혹은 경력을 개인의 정체성과 동일시하는 잘못된 시선이 우리 세대에 더욱 심해진 취업난과 결합해 내부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듯해 서글프다.
"요즘 뭐 해?"라고 물으면, 대부분 "스펙 쌓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토익점수 800과 900 사이에서 아등바등,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는 친구들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내가 아는 너희는, 경력 한 줄로 더 아름다워지거나 덜 아름다워지는 놈들이 아니라고. 너라는 이유만으로 '아름다운 까닭'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너의 '진짜 스펙'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