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간하면 강릉에 한 번 댕겨가세요
동해 바다가 넘실대며 내게로 다가온다. 갈매기를 태운 파도가 해안으로 밀려오며 흰 포말을 일으킨다. 나는 풍덩 바다에 몸을 던져 헤엄치니 꿈의 세계가 요동친다. 깨어나려는 찰나, 아득히 들리는 소리, “어지간하면 강릉에 한 번 댕겨가세요.”
강릉! 유구한 세월이 지나도 산천 경개가 뚜렷하다. 대관령 높새바람이 동해의 일출을 맞이하는 강릉은 색채와 바람, 맛의 고향이다. 예부터 강릉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DNA를 지니고 태어난다 했다. 고향을 다녀올 생각에 가슴이 설렌다.
들를 곳을 정하고 출발한다. 가슴이 설렌다. 길이 막히면 “두둥실 두리둥실~” 사공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이번행차는 대관령에서 일출을 본 후 시장에 들를 계획이다. 곧바로 가려면 고속버스나 기차를 타지만, 풍광을 즐기고 싶을 때는 승용차로 구 영동고속도로를 달린다.
대관령 정상을 넘어 신사임당 사친비가 있는 곳에 이르자, 기별을 넣지도 않았는데 운무(雲霧)가 스쳐가 시비(詩碑)가 말끔해졌다. 경건한 마음으로 사임당의 사모곡을 읽으매, 나를 낳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이 불현듯 그리워진다. ‘대관령 옛길’의 정상인 반정에 도착하니 장쾌한 일출이 바다를 달군다. 휘황한 색채에 어지러울 지경이다. 아,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구나!
대관령 굽이굽이 돌아가는데 고향집에서 언제 도착하냐고 성화다. 형수님께서 차려주신 곤드레 된장국과 서거리 석박지, 고등어자반 구이 백반은 어머님으로부터 전수받은 손맛이 어리었다. 어릴 적 손님이 오면, 얼른 감자를 강판에 갈아 깻잎 다발로 솥뚜껑을 문질러 감자적을 부치던 고소한 냄새가 코끝에 아른거린다.
때마침 춘삼월이라 남대천 고수부지 새벽시장에 들르니 파장 전이지만 봄나물이 개락이다. 봄나물 삼총사 달래, 냉이, 꽃다지며 심산에서 채취한 참나물과 두릅, 개두릅이 좌판에 수북이 쌓였다. 한 겨울을 제외하곤 계절마다 특산물이 등장하여 새벽시장은 늘 활기가 넘치며 온통 북새통이다.
정동진 심곡동으로 옮겨 부채길 잔도(棧道)를 걷는다. 동해안 융성 태고(太古)의 신비가, 산을 품으러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온다. 포말에 비친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바다 냄새를 맡으며 ‘부채 길’을 걷는다. 가다가 뒤돌아보고 하늘을 우러르다 보니 어느새 잔도 종점이다. 가지 말라고 소리치는 파도성을 뒤로 하고 중앙시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옛날 중앙시장 도로변에 노점상이 차려졌다. 어머니께서 머리 짐을 필요한 물건으로 되거리를 하고 팔기도 하여, 내 신발을 사 오시던 곳이다. 중앙시장은 물론, 장날이면 아버님이 ‘감자 적 추렴’을 하셨던 은행나무 ‘옥거리’가 새로 단장되었다. 우선 시장 주위를 한 바퀴 돌며 눈요기를 한 후 장을 봤다.
건어물상과 좌판에 구미를 당기는 특산물이 많았다. 누덕나물과 지누아리 장아찌며, 누런 ‘이룩구’에 이끌려 맛을 보니 아니 살 수 없었다. 해풍에 반건조로 말린 코다리와 가자미, 간간하게 간이 밴 임연수와 쇠미역(곰피)을 챙겼다. 퍼들퍼들한 쇠미역을 데쳐, 달래 무침을 얹고 막장으로 쌈을 싸먹으면 부드러운 봄맛이 돈다. 짐이 점점 늘어나 승용차 트렁크가 비좁아진다. 단오 무렵이면 부새우가 나올 텐데 마냥 아쉽다.
전통 한과상에 진열된 과줄과 강정, 약과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시장 옆 골목 소편육과 소적(메밀묵) 상점은 예전 그대로이고, 어시장에 들르니 어물 사고파는 강릉 말투가 정겹다. 옛날 어머님 단골집 아주머니에게 “안녕 하슈~야?” 인사드리니 “어멍이야라. 아저씨잖소!”라시며 함박웃음을 지으신다. 나처럼 백발 할머니시다. 양미리와 곰치를 샀는데 덤으로 양미리를 받았으니 퇴를 만났다. 천일염을 훌훌 뿌려 석쇠에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양미리에다 시원한 곰치 국이니 이보다 더 좋은 개운한 맛이 있겠는가.
중앙시장은 사계가 숨 쉬며 계절의 맛을 선보이는 삶의 장터다. 산의 귀공자 송이가 향긋한 향기로 초가지붕에서 달덩이로 곱게 자란 처녀 고지 박을 감싼다. 여기저기 풍성한 특산물이 귀성객에게 추억의 그리움을 선사하니 고향이 좋긴 좋다.
강릉에는 볼거리가 많이 탄생했다. 이미 커피거리와 참소리 박물관은 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지 오래고, 컵 박물관과 미디어 아트관이 새로이 이름을 떨치며 관광객들을 반긴다.
오죽헌과 선교장은 물론 부채길과 바우길에서 자연을 품은 풍광에 매혹된다. 매월당과 율곡, 사임당과 난설헌이 태어난 예향이 아니던가. 초당의 소나무 숲길과 경포호수 둘레길은 힐링의 산책로이다. 경포 해수욕장 해변의 많은 호텔에서 즐길 수 있으니, 여가를 내서 한 번 댕겨갈 만 하다.
바다에서 뱃놀이를 하면서 육지를 바라보면, 장엄한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자색 뭉게구름이 쉬어 간다. 대관령 선자령에서 동해를 바라보면 바다와 하늘이 마주쳐서 교감을 주고받는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사계의 빛과 바람과 맛이 완연한 강릉!
“어지간하면 강릉에 한 번 댕겨가세요.”
첫댓글 정말 다녀솨야겠네요
어지간하면...
어멍이야라~^^!!!